或見菩薩 而作比丘 獨處閑靜 樂誦經典
① ② ③ ④
或 見 菩 薩
또 혹 볼 견 보리보 보살살
① ④ ② ③
而 作 比 丘
조사이 될 작 견줄비 언덕구
① ④ ② ③
獨 處 閑 靜
홀로독 살 처 한가한 고요정
③ ④ ① ②
樂 誦 經 典
즐거울낙 외울송 경전경 경전전
1.修行-100번 읽고 10번 쓴 다음에.. 첫날부터 오늘까지 가르침을 읽고 외우며 쓴다.
2.觀法-경전회상에서 보운법사가 이 게송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1-미륵보살이 광명을 통해서 타방세계의 보살이 비구가 되어, 인욕(忍辱)바라밀 닦는 것을 노래했다.
2-법화문구(法華文句)에서 이르시길, “홀로 숲속에 살며 악인(惡人)과 악수(惡獸)를 인내(忍耐)하며 성내지 않는 것을 생인(生忍)이라 하고, 의지를 굳게 다지는 것을 고행인(苦行忍)이라 하고, 불도(佛道) 구하는 것을 제일의인(第一義忍)이라 한다.”하시었다.
3-또 문구(文句)에서 이르시길, “이작비구(而作比丘)는 고행인이 되고, 독처한정(獨處閑靜)은 생인이 되고, 낙송경전(樂誦經典)은 제일의인이 된다.”하시었다.
4-혹견보살(或見菩薩)은! 법화경의 사람을 가리키니, 어떤 사람이든 법화경을 지니고 읽게 되면 보살의 직위를 받고 부처님이 되는 수기(授記)를 얻게 된다.
따라서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어떤 중생이든 법화경에서 하나의 게송이나 하나의 글귀를 지니거나, 내지 한 번이라도 법화경의 가르침을 듣고 수희(隨喜)한 사람이면, 내가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는 아뉵다라삼막삼보리의 수기를 주리라.”하시었으니, 법화경의 사람을 일승보살(一乘菩薩)이라 한다.
5-이작비구(而作比丘)는! 삼계를 벗어나기 위해 출가하는 사람을 비구라 한다면, 이는 이승(二乘-보살승)의 비구와 삼승(三乘-성문.연각승)의 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승(一乘)의 비구는 곧바로 무명(無明)을 벗어나기 위해 출가를 하니, 어떤 사람이든 법화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베껴 쓰고 공양을 드리고 남에게 알려주는 일을 진실한 비구라 한다면, 이를 묘법비구(妙法比丘)라 한다.
법화경 자아게(自我偈)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자아득불래(自我得佛來) 무량제겁수(無量諸劫數)”라 하심은 부처님이 법화경의 사람을 가엾게 여겨 자비를 베푸신 게송임을 알아야한다.
6-독처한정(獨處閑靜)은! 법화경은 다른 경전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에 독처(獨處)라 하고, 다른 경전과 함께 하지 않으나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정(閑靜)이라 한다. 따라서 다른 경전에서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얻을 수 없으나, 법화경에서는 다른 경전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연화한정(蓮華閑靜)이라 한다.
따라서 방등경전과 반야경전과 화엄경전 만을 읽고 외우며 수행한 사람보다, 차라리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수행한 사람이 방등과 반야와 화엄의 도리를 더욱 깊이 깨달아 알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법화경의 법사를 만나면 무량한 부처님을 뵐 수 있느니라.”하시었고, 또 “법화경의 하나의 문장에는 헤아릴 수 없는 도리가 있느니라.”하시었다.
7-낙송경전(樂誦經典)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모두 경전에 의지해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즉 깨달았을 때에 바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을 그대로 말로 설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을 통해 깨닫고 난 뒤에 경전의 말씀과 동일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외에 깨달음에 들어가는 방법은 모두 잘못된 수행법임을 알아야한다.
법화경에서 5천 명의 증상만의 사람이 물러난 것은 법화경의 가르침을 들을 만한 근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니, 이는 경전에 의지하지 않으면 모두 증상만의 사람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보살의 온갖 육바라밀이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나온 것이라면, 그 가르침 역시 경전일 수밖에 없으니, 어찌 경전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랴! 경전(經典)이란! 바로 불심(佛心)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시방세계 자체가 바로 경전이니, 따로 경전을 어디서 구하랴! 따라서 일승보살(一乘菩薩)이 묘법비구(妙法比丘)가 되어 연화한정(蓮華閑靜)에 머물면 시방세계가 온통 경전불신(經典佛身)임을 알게 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시방에 일승만 존재하고 이승과 삼승은 없느니라.”하시었다.
8-일승인(一乘人)을 불인(佛忍)이라 하고, 이승인(二乘人)을 보살인(菩薩忍)이라 하고, 삼승인(三乘人)을 성문인(聲聞忍)이라 하고, 사승인(四乘人)을 중생인(衆生忍)이라 한다.
이승의 보살일지라도 불인(佛忍)에 와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으면 불인을 감당하기 어렵다. 하물며 삼승과 사승에 있었으랴!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부처님이 현존해 계시는 마당에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물며 부처님이 멸도하신 뒤에 있었으랴!”하시었다.
또 이르시길,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타방의 국토에 가서 법화경을 유통하겠습니다.”
또 이르시길, “섶을 이고 불길이 들어가 타 죽지 않을지라도 어렵다 하지 않고, 이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사람을 두고 어려운 일이다. 하느니라.”
9-법화경의 사람이 비록 보살은 아니나, 무명(無明)을 깨트리고 곧바로 불인(佛忍)에 들어가 묘법을 깨달아 시방이 일승경계(一乘境界)임을 아는 것은,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공덕 때문인 것이다.
3.利益-경전회사에 보운법사가 이 게송에 대해 게송으로 연설을 하였다.
-偈頌-
하근기의 사람은
부처님 가르침의 말씀이
문자로 보이고,-1
중근기의 사람은
부처님 가르침의 말씀에
놀라 두려워하고,-2
상근기의 사람은
부처님 가르침의 말씀이
바로 불신(佛身)임을 안다.-3
-寶雲法師 經典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