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의 부도나 와당, 그리고 불단 등에서 새의 몸에, 사람 머리를 한 인두조신(人頭鳥身)의 새를 만날 수 있다. 범어로 카라빈카(Kalavinka)라고 하는 이 상상의 새가 바로 가릉빈가(迦陵頻伽)인데, 히말라야에 있는 설산(雪山)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자태는 물론이고 소리 또한 묘하고 아름다워 묘음조(妙音鳥), 미음조(美音鳥) 또는 옥조(玉鳥)라고 한다. 극락정토에 사는 새라고 하여 극락조라 부르기도 한다.
가릉빈가는 어떤 상황이나 장소를 미화하고 이상화하려는 방법으로 흔히 사용된다. 불교 경전에 의하면 고대 중인도 교살라국 사위성(舍衛城) 남쪽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날에 가릉빈가가 내려와 춤을 추었고, 묘음천(妙音天)이 가릉빈무(迦陵頻舞)라고 하는 무곡(舞曲)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불전이나 부도를 장식하는 소재로 가릉빈가가 자리잡게 되었다.
가릉빈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리와 몸체와 날개는 새의 형상이고, 얼굴과 팔은 사람의 모습이다. 몸체는 깃털로 덮여 있으며, 깃털이 달린 화관을 쓴 경우도 있고, 때에 따라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장식문양으로 가릉빈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이후이다. 가릉빈가문양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고승대덕(高僧大德)의 부도인데, 대표적으로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과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그리고 구례 연곡사의 북·동부도가 유명하다.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의 가릉빈가
상단 괴임대 8면에 각각 날개를 펼치고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는데, 다리와 날개의 표현이 섬세하고 자세가 유연하다.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에는 상단 괴임대 8면에 각각 날개를 펼치고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는데, 다리와 날개의 표현이 섬세하고 자세가 유연하다. 쌍봉사 철감선사탑에는 상대석 위에 8면의 안상(眼象)을 가진 탑신 괴임대가 있고, 각 안상 안에 주악상과 가릉빈가를 양각으로 표현하였다. 가릉빈가는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자세이며 특히 날개의 깃털이 뚜렷하다. 어린애 같은 귀여운 모습이 담겨 있으며 온화하고 정겨운 느낌이다.
쌍봉사 철감선사탑의 가릉빈가
탑신 괴임대 8면에 안상을 조성하고 그 안에 가릉빈가를 새겼는데, 형태가 다양하고 조각이 정교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릉빈가의 불교적 존재 의미는 그 형태보다 소리에 있다.
연곡사 북부도의 가릉빈가는 8면의 탑신 괴임대 각 면에 1구씩 새겨져 있는데, 특히 세 개의 발가락 표현이 앙증맞다. 이밖에 같은 경내에 있는 동부도의 가릉빈가도 볼 만하다.
연곡사 북부도(좌)와 동부도(우)의 가릉빈가
세 개의 발가락과 날개의 표현이 특징적인 가릉빈가로, 비파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있다.
불단에 장식된 것으로는 영천 은해사 백흥암의 극락전 불단에 새겨진 가릉빈가가 잘 알려져 있다. 조각 솜씨가 매우 정교하고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띠매듭을 한 옷을 입고 천의를 머리 위로 휘날리고 있어 얼핏 보면 비천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새의 날개와 발가락을 갖고 있어 가릉빈가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릉빈가는 악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이 가릉빈가는 공양물을 연잎 위에 받쳐들고 있어 더욱 이채롭다.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불단의 가릉빈가연꽃봉오리를 받쳐든 공양상으로, 조각 수법이 뛰어나고 채색이 아름다워 우리나라 사찰에 표현된 가릉빈가 중에 걸작으로 꼽힌다.

분황사터 와당의 가릉빈가
한편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유적인 황룡사터와 창림사터, 보문사터 등에서 발견된 와당에도 가릉빈가가 등장한다. 와당의 가릉빈가는 세 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첫번째는 보문사터 와당에서처럼 새의 형상이 정면을 향하여 양 날개를 활짝 펴서 위로 원을 그린 모습이다. 두번째는 창림사터 와당에서처럼 반 좌향한 자세로 두 팔을 높이 치켜든 채 양 날개를 약간 펼치고 있는 형상으로, 머리 위에 얹은 작은 새의 날개 모양 화관이 특징적이다. 세번째는 와당 내구(內區) 전체에 꽉 차게 가릉빈가를 배치하고, 가장자리에 24엽의 연판무늬를 촘촘하게 장식한 모양이다. 대개 정면을 향해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가 양 날개를 활짝 펴서 원형을 그리고 있다.
가릉빈가에 대해 『능엄경』(楞嚴經) 권1에서는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미친다”고 하였으며, 『정법염경』(正法念經)에서는 “그 소리가 극히 신묘하여 하늘과 사람과 긴나라[音樂神]가 흉내낼 수 없으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가릉빈가를 보살마하살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마하살은 보살을 아름답게 일컫는 말이다. 『대지도론』 권28에서는, “이 새는 알 속에서 나오기 전에도 울음소리를 낸다. 그 울음소리는 여타 다른 새들의 것보다 미묘하고 뛰어나며 보살마하살의 소리도 또한 이와 같다. 보살마하살이 아직 무명의 껍질에 싸여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그가 설법하고 의론하는 음성은 성문(聲聞)이나 벽지불(辟支佛) 및 모든 외도(外道)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권8 「공행품」(共行品)에서는 부처의 32길상 가운데 하나인 범음상(梵音相)을 가릉빈가에 비유하면서 “부처의 음성이 마치 대범천왕의 것과 같고, 가릉빈가의 울음소리와 같이 아름답고 곱기 때문에 범음상이라 한다”고 하였다.
결국 가릉빈가라는 새가 갖는 불교적인 존재의 의미는 그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 있으며, 그것은 범음(梵音)의 구상적인 표현이자, 상징형이다. 범음의 소리는 미묘하여 그 무엇도 흉내낼 수 없으며, 사방에 두루 미치고 듣는 사람이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
『화엄경』에서는 “청정·미묘한 범음으로 무상한 정법(正法)을 연출하니 듣는 사람들이 기뻐하여 맑고 오묘한 도리를 얻는다” 하였고,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범음이란 대범천왕이 내는 음성으로, 그 음이 정직하고, 그 음이 화아(和雅)하며, 그 음이 청철(淸徹)하고, 그 음이 심만(深滿)하며, 그 음이 편주(遍周)하여 멀리 들리는 음성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소리는 부처만이 낼 수 있는 소리이다. 따라서 범음을 내는 가릉빈가는 다름 아닌 부처의 또 다른 화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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