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향교가 위치한 일월면 도계리는 마을의 좌우에 장군천과 반변천이 흐르며
일월산 남쪽 기슭에 둔덕을 이루고 냇물을 따라서 길이 나 있으며,
서쪽 마을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영양읍과 청기면,
그리고 수비면으로 통하는 세 갈래 길이 마을 가운데로 나 있다.
본래 북초면의 지역으로서 뒷두들 혹은 도부라고 불렀으나
1914년 행정 구역을 고칠 때 당중동과 무등곡을 합하여 일월면 도계리라고 했다
도계(道溪)를 풀이하면 냇물을 따라서 난 길이란 말이니
냇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으며,
뒷두들 또는 도부리(道阜里)라고 부르기도 하며
1600년 무렵 이씨(李氏)라는 농부가 처음으로 마을에 들어와
마을 둔덕 위에 농토를 일궈 살면서부터 뒷두들이라 불렀고
1678년 덕봉면 장중이라고 개칭했다가
1682년 일월면 도부리라 불러 오던 중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마을 좌우에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하천을 따라 도로가 개설된 마을이라 해 도계동이 됐으며
1964년 행정 분동으로 도계1리가 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일월면 도계리에 향교가 있는데
후학들을 교육하고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서 봄과 가을로 향사를 올린다.
조선조 숙종 5년(1679) 을미(乙未) 년에 정식으로 향교를 설치했는데,
향교의 자리는 본래 영해 부사를 지낸 김천보(金天寶)의 옛집으로서
향중(鄕中)의 왼편으로 다시 옮기게 됐으며,
영양향교 건물은 조선 숙종 9년(1683년) 건립됐다.
영양에 처음 향교가 설치된 것은
고려 명종(明宗) 때인 1179년으로 이때 현사(縣舍)를 지금의 현리에 설치하고,
향교를 영양읍 동부리 여기봉 아래에 설치했으므로
그 일대를 향교동이라 했으나
이것은 오랜 세월과 잦은 병란으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고,
조선 숙종 때에 분현(分縣)이 되면서 설치한 향교가 지금 남은 것이다.
영양향교는 5성(聖),10철(哲)과
송조(宋朝)6현, 한국 18현을 봉안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그리고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되어 있고,
매년 춘추로 대성전에서 향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