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음은 단지 또 다른 경험차원으로의 탄생일 뿐이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신과 하나가 될 때까지 영적으로 진보해 가는 과정에서 내딛는 또 하나의 발걸음입니다. 이런 영적 진보야 말로 삶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환생(계속 태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지상에서 진보를 계속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즉 환생은 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취된 자신의 영적 진보를 깨달을 수 있고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 가를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상으로의 환생중간(영계)에서 주어집니다(그래서 태어날 환경, 태어나서 할 일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 난다고 합니다.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이것이 존재의 다른 국면에서 취할 수 있는 유리한 점입니다. 영계의 단계에서 자신이 더 이상 지상으로 환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태어나고 죽는것은 단지 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입니다. 죽는다고 아주 사라지거나 존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바른 삶을 산 사람에게는 육체의 죽음이란 또 다른 경험의 차원으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은 아주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지구 차원 밖의 일을 하게 됩니다.
2. 영혼: 실체: 초의식
우리가 물질적 육체를 벗어나면 물질적 차원에서 영혼이라고 불렸던 것은 우리의 주요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초의식이라고 불려집니다. 생각은 곧 행동이기 때문에 그리고 생각은 정신과 영혼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실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생각은 그 사람의 심장박동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에서 생각하는 대로 영혼의 형상을 창조합니다.
죽은 후에 육체적 감각이 지속되는 시간은 우리가 물질적 육체로 사는 동안에 형성된 무의식의 수준 혹은 의식상태에서 죽음을 생각해 온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매나 그와 유사한 사람들의 민감한 감수성에 의해 입증되듯이 의식은 죽음 뒤에도 지속됩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자면 많은 영혼이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식욕과 같은 욕구와 감각들이 변하기도 하고 그런 욕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영혼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실체가 자신의 죽음을 깨닫든 그렇지 못하든 간에 영적 힘은 항상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왔듯이, 죽음은 개성이나 인격처럼 아주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물질세계, 우주, 그리고 영계는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감각적 의식이라는 것은 물질세계 안에서 잠재의식으로부터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케이시의 다른 책에서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끼리 또 같은 시대에 환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생에도 같은 시대에 살았겠죠. 귀족들이었을래나? 불교에서는 전생에 교만했던 사람은 금생에 키가 작게 태어난다고 했으니 저를 포함하여 상당수의 오빠들이 전생에 쪼~~금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