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
개심사, 그 고요의 눈 내리는 숲길에서
신 현 락 (시인)
1.
개심사 가는 길
문득 한 소식 하려는가
나무들 서둘러 흰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위를 털면서 숲 속으로 사라지는
길도 금세 눈으로 소복하다
여기에 오기까지 길에서 나는
몇 번이나 개심改心하였을까
한 송이 눈이 도달할 수 있는 평심平心의 바닥
그것을 고요라고 부를까 하다가
산문에 서서 다시 생각해 본다
어느 자리, 어떤 체위이건 눈은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不平마저 부드러운 곡선이다
설경이 고요한 듯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허지만 송송 뚫린 저 오줌구멍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저지른 저 고요의 영역 표시
경계 앞에서도 어쩔 수 없는 방심放心뒤에 진저리 치던
나의 불평이란 기실 작은 구멍에 불과한 것
하물며 개심開心이라니!
그 구멍의 뿌리 모두 바닥에 닿아 있으므로
길은 불평의 바닥이다
불평하지 않으며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그러니 애써 한 소식 들은 척 하지 말자
눈이 내렸을 뿐 나는 아직 고요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 고요의 입구」전문
한 편의 시가 지금 내 앞에 있다. 한때 울면서 매달렸었으나 지금은 남
이 되어버린 사람처럼 옛날에 내가 썼으나 지금은 이미 내 곁을 떠나 남
이 되어 버린 시. 헤어진 애인을 다시 본 적이 없으니 그 기분을 알 수 없
으나 아마 책상 앞에서 옛날의 내 시를 마주보는 이 기분과 크게 다를 바
없을 듯싶다. ‘정겹다’라고 하기엔 뭔가 서먹하고, ‘낯설다’라고 하기엔
친숙한 그 무엇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사랑의 추
억처럼 이 시도 이미 나에게는 과거완료형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내가 비
집고 들어가기에는 언어의 결정이 너무 단단하다. 나는 이미 이 시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다시 꺼내 읽는다. 다른 분들은 어쩐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내 시를 잘 읽지 않는다. 쓸 때는 집중하지만 일단 점을
찍으면 돌아보지 않는다. 언어들이 너무 쓸쓸해서가 아니다. 언어가 알몸
그대로 뒹굴고 있는 시행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돌
아보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자신의 시에 대한 뒷이야기를 써야 하는 이
러한 자리는 내게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최대한 나를 불편하
게 하지 않는 시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불편해 하는 목록 중의 또 하나를 들으라고 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여행을 들겠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나는 여행이 불편해서 싫다. 불편한 여행이 싫은 게 아니라 여행 자체가
불편하다. 여행이라면 말 그대로 혼자서 가는 나그네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건강도 그렇고 나를 속박하고 있는 현실
적인 상황을 벗어버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껏 내가 하는 여
행이라야 남들과 같이 어울려서 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또한 멀리 가려면 차를 타야하는데 나는 그게 귀찮다. 발차 시각을 맞
추는 것도 귀찮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꼼짝없
이 갇혀 있어야 하는 그 공간도 싫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그
자명한 사실이 싫다. 지금까지 내가 다닌 여행 중에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여행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 동네 아줌마들도 다녀왔다는
금강산이나 동남아는 물론 해외라고 이름 붙은 곳을 가 본 적이 없다.
내가 여행을 가는 경우는 대부분 직장이나 단체에서 가는 행사성 여행
이다. 생각해 보니 그 단체여행이란 것 때문에 내가 여행을 불편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직장의 친목회에서 연중행사의 일환으로
두 번 정도 여행을 계획한다. 대개 방학하는 날을 전후하여 1박 2일 동안
다녀오는데 장소라고 해보아야 재탕에 삼탕까지 우려먹은 곳으로 선정되
기 일쑤이다.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긴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
지는 않다. 거기에다가 버스 안에서 왜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는지…….
사회를 맡은 사람은 무슨 사명을 띤 사람처럼 빠진 사람을 일일이 점검해
가며 노래를 시켜대니 한가하고 유유자적한 여행이란 애시당초 꿈도 꾸
지 말아야 한다.
작년, 겨울 방학 직전에 직원 여행으로 개심사를 가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도 그러하였다. 불참하고 싶은 마음 굴뚝이었다. 하지만
남자 직원이라야 서너 명밖에 없는데 빠진다고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
서 할 수 없이 참가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으나 별로 감흥이 돌지 않았
다. 개심사는 여러 번 가보았던 곳이었고, 무엇보다 연말이라서 매우 바
쁜 때에 이틀이나 낭비되는 시간이 정말 아까웠다.
그 날, 속으로만 불평하면서 버스에 올라 ‘나 저기압이니까 노래는 절
대 시키지 마시압!’이라는 문구를 이마에 붙인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 눈
을 감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친목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즈음에 어디에선가 “눈이 온
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눈을 뜨고 보니 첫눈임에도 제법 송이가 굵은 함
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노래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침묵 속에
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첫눈으로 인하여 일순간에 들떠 있던 분위기
가 고요하게 가라앉은 것이다. 개심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발목
까지 덮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서둘러 개심사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뒷
모습을 보며 나는 한참을 산문의 입구에 서 있었다. 왠지 그네들에게 미
안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사를 추진하는 친목회장이나 사회자의 눈
에 비친 나의 모습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내가 불편해 하면 상대방도 당
연히 불편하다는, 이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나는 정말 몰랐던 것인가?
눈을 맞으면서 개심사 산문에 서서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아직 멀었던
것이다. 평상심이 곧 도라고 하던 옛 선사의 말이 사락사락 길바닥에 내
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불평하면서 오던 그 길이 흰 눈으로 아득하
고 개심사로 올라갈 길도 눈으로 소복하였다. 불만이 왜 없었겠느냐마는
싫은 기색 하나도 없이 사이좋게 올라가는 동료들의 발자국 위에 다시 눈
이 쌓이고 있었다. 그때 개심開心이라는 언어가 내 안 어디에선가 ‘쿵’하
고 울려왔다. 내 입술 근처에서만 맴돌던 언어가 비로소 가슴 언저리 어
디에서 고요라는 흰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나는 나의 불평도 눈을 맞게
길바닥에 놓아두기로 하였다. 불평하지 않으며 다 갈 수 있는 길이란 없
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지금 나는 한 편의 시를 마주하고 있다. 나로서는 비교적 편하게 쓴 시
이지만 그래도 불편한 감정이 든다. 지금의 나는 이 시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직장에서의 여러 가지 잡다
한 규칙과 사람과의 관계를 불편해 하고, 투덜거리면서 살고 있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퇴직 날짜를 꼽아보고
한숨을 짓기도 한다. 앞으로 내가 고요로 가는 길에 대해 더 이야기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시는 당분간 소란한 일상 속에 힘들어 하고 있는 나를 가끔
고요의 입구로 데려갈 것임을 안다. 당분간 이곳에서 더 살아야 하리라.
고요란 절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고요의
입구라고 눈 내리듯 나지막하게 이야기 해 주는 이 시의 전언을 다시금
확인하는 까닭이다.
신현락 시인
* 1992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따뜻한 물방울』『풍경의 모서리, 혹은 그 옆』이 있음.
* 저서로『한국현대시와 동양의 자연관』이 있음.
* shinpoet@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