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가 있는 아침> 2주차
산
이문길
내 소원이 무엇인지 아나 소원이 생각날 리 없는 산골이라 아내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뭔데 내가 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 안 사는 저런 큰 산 하나를 사는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쓸데없는 것 사서 뭐하게 또 빌어먹을라카네 내가 풀이 죽어 말했다 개간해서 농사 지을라 안 칸다 나는 말없이 산을 둘러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나한테는 필요 없지만 나무들한테 산이 필요해서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안개한테 구름한테 산이 필요해서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사도 누가 사는지 산이 모르기 때문에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사도 아무 소용없는 빈 산이라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내 만년에 그런 산에 혼자 살고 싶어 내가 사고 싶은 것이다
나도 아내가 무섭다. 아내의 성난 목소리가 무섭다. 아내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오면 원고지 칸에 적어놓은 글씨들이 저절로 옴츠러든다. 고료도 못 받는 시 쓴답시고 소홀했던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하지만 “빌어먹을” 시인 남편을 둔 아내여, 안개와 구름을 어찌 돈으로 살 수 있겠는가. 사고팔고 또 사고팔아도 산은 산, 아무리 주인이 바뀌어도 산이 바뀔 수는 없을 터. 철 따라 피는 꽃과 흐르는 맑은 시내, 이따금 굴러 내리는 돌멩이의 적막을 어떻게 돈으로 살 수 있겠소. 시의 가치는 無用의 有用性(무용의 유용성), 그래서 시인들은 “사도 아무 소용없는 빈 산”을/에 사고/살고 싶어한다오.
집에 가고 싶다
이상국
그해 소한 날 나는 울산에 있었다
바닷가 허름한 식당 문짝에 고래고기 메뉴가 보였다
파주 어디에선가는 기러기탕을 팔던데
세상에, 그 아름다운 짐승들을 잡아먹다니
사람들은 못 먹는 게 없지만
먹을 게 늘 모자라는 모양
대왕암 보러 가는 길에 바람이 맵다
할머니 제사도 이맘때였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하도 이악해서
해마다 날씨가 춥다고 했다
전 우주가 동참하는 소한 추위를
당신 시어머니 한 사람 인격과 맞바꾸다니,
우리 어머니는 참 대단하다
그러나 정말 이악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들어서 강퍅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기러기를 탕 해 먹고 고래를 잡아먹는 게 아닐까
천리 북쪽 집에서 내 아들 바우는
자기 꿈이 안 보일까 봐 밤마다 안경을 쓰고 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안경도 없다
소한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는 얼마나 이악할까
추우니까 집에 가고 싶다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요. 우리가 강퍅한 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렇다구.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요. 하지만 그 아름다운 짐승들; 고래, 기러기를 잡아먹는 건 좀 너무 했다 싶네요. 허긴 전라도 어디에선 눈도 못 뜬 애기돼지를 찜해 먹는다는데. 지구상의 동물들, 인간을 뺀 모든 동물들, 새벽에 눈 떠 해 저물도록 돌아다녀도 그 작은 배를 다 채울 수 없다는데. 하기야 인간만큼 더 큰 위장 가진 동물은 없으니까. 시방세계 두루 삼켜도 모자랄 위장을 지녔으니까. 그 위장 채우기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첫댓글 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친절히 해설(?)을 해주시니 저같이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다행인지요...어느 게 시고, 어느 게 해설인지 분간이 안 되네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 이곳에 방문도 황송하온데 글도 올려주시니 귀 뚫고 맘 뚫고 읽고난 지금은 맘이 아싸해옵니다 내안에 위장도 크서 채우다가 채우다가 이제는 욕심으로 가득히 채워놓았습니다 선생님!!^*^
시가 있는 아침에 초대된 독자는 장교수님께서 들려 주시는 시로 인하여 아침이 더 찬란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