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시조 알랑 고아는 고구려 주몽의 딸”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
대만에 거주하는 몽골인 사학자 한촐라 교수가 1990년 한국에 도착해 한 말이다. 한촐라 교수의 제자인 박원길 박사는 이를 몽골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몽골비사』에 전해지는 성녀이자 몽골의 시조로 추앙받는 알랑 고아의 아버지가 고구려 건국 시조인 고주몽과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알랑 고아의 아버지 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은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 코리(Kohri)족을 떠나기로 하고 지지자를 모아 코릴라르(Khorilar)라는 씨족을 만들어 보르칸 산으로 이동한다. 거기서 알랑 고아는 다섯 아들을 낳는다. 이 중 세 아들은 빛의 정령을 받아 출산한다. 고구려의 주몽·유화부인 얘기와 흡사하다.
김운회 동양대 교수는 “몽골·만주·반도 등에 걸친 민족은 동일한 갈래에 속하는 데다 이후 고려·몽골 양국 지배층 간 혼인으로 관계가 깊어져 서로를 '신부·신랑 나라' 또는 '어머니 나라'로 부르게 됐다”고 말했다. 게렐 주한 몽골 대사도 최근 “몽골과 한국은 모두 북방에서 기원한 기마 유목민족의 후예이고 하늘의 상징인 푸른 반점을 지니고 있다”며 '사돈의 나라'라고 강조했다.
몽골 언어는 우리말과 어순은 물론 자음·모음 구조까지 비슷하다. 그래서 몽골인과 한국인은 상대 언어를 빠르게 배운다. 재한몽골학교 관계자는 “몽골인은 모음 발음 하나를 빼고는 한국어 발음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말했다. 최기호 교수는 몽골어·만주어·한국어 등이 같은 계통의 언어(동북아시아어족)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단어도 있다. 김운회 교수에 따르면 '눈'이 같고 '귀'가 비슷하며, '바른쪽으로'를 '바른쭉으루', '왼쪽으로'를 '준쭉으루'로 발음한다.
또 세 민족은 체질인류학적으로 얼굴과 몸매·골격이 아주 비슷하다. 한국에 거주하는 몽골인이 유학생 3000명을 포함해 3만~4만 명에 달하지만 외모에서는 한국인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몽골반점이 공통적으로 90% 이상 나타나고, 유전자 염색체 지도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나무꾼과 선녀 설화나 '까치가 울면 정다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몽골에도 있다. 몽골인도 음식을 먹을 때 고수레를 한다. 제기차기·공기놀이·씨름 등의 민속놀이 역시 유사하다.
역사적으로 이들 민족의 활동무대는 만주·몽골 대평원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그리고 요(거란족)·금(여진족)·원(몽골족)·청(만주족)은 치열한 민족 경쟁 속에 세워진 제국이다. 이들은 중국에 대등하게 맞서거나 중국을 장기간 지배했다. 이 중 지금까지 독립국가를 유지하는 민족은 한민족과 몽골족뿐이다. 북방민족이 세운 마지막 제국인 청은 만주에서 일어나 중국 본토와 대만·티베트·위구르를 장악했다. 몽골 전역도 1717년 청 수중에 들어간다. 몽골인은 이를 대평원에서 경쟁하던 만주족에게 지배당한 것이지 중국의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나라 때 멸시당하던 한족은 19세기 들어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다시 흥하게 하자는 '멸만흥한(滅滿興漢)'의 기치를 내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붕괴되자 청에 복속됐던 몽골·티베트·위구르 등은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독립의 뜻을 이룬 곳은 소련의 지원을 받은 몽골(외몽골)뿐이었다.
티베트와 위구르가 세운 독립국은 중국 공산당의 침공으로 와해됐다. 만주와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은 일본의 지원 아래 만주국과 몽골신장자치국이 들어섰으나 일본 패망과 함께 중국에 점령당했다. 중국은 몽골의 독립을 승인했으나 여전히 '몽골은 중국이고 칭기즈칸은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구해우 상임이사는 “중국의 역사 왜곡을 자기 땅을 삼키려는 음모로 보는 몽골이나,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북한 점령을 합리화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한국은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