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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8. 여섯째날 오후, 로마 - 5.9~5.10 귀국)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오후 2시 15분경에 로마시내 벤츠투어를 시작하였다. 벤츠투어란 선택 관광으로 6인용 승합차인 벤츠를 타고 로마시내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다. 로마 시내는 도로가 좁아 대형버스의 진입이 어렵다고 한다.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여행 목적에 부합하긴 하지만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것을 보려면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했는데 한 낯의 날씨가 뜨거워 걷기가 귀찮은 참에 벤츠를 타고 다니니 편하기는 하였다.
벤츠 관광 첫 번째 코스는 바티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고대 건축물 판테온이었다. 판테온(Pantheon)은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의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로마의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인 서기 125년경에 재건되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당대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직접 보니 외관은 좀 낡고 탈색이 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과연 2000년 가까이 지난 건축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상태가 양호하였다.
판테온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넓은 실내공간이 나왔다. 천정은 돔 구조로 되어있는데 중앙에 채광창 역할을 하는 원형구멍이 뚫려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구멍 아래 바닥에는 비가 올 때 천정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빗물이 빠져날 수 있게 배수시설이 되어있었다. 이 판테온은 7세기 이후부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었다. 그 흔적으로 둥그런 벽면에는 중앙 제대를 비롯하여 성모마리아 등의 조각상이 곳곳에 있었다. 바닥에서 원형 구멍까지의 높이와 돔 내부 원의 지름은 43.3m로 같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지름이 43.3m인 구(공 모양)인데 반원 위쪽은 돔이고 아래쪽은 원통으로 되어있는 셈이다.
사진 1) 로마시내 벤츠 투어를 시작하다.
사진 2) 판테온 신전(인터넷 자료)
사진 3) 판테온 신전 입구의 기둥
사진 4) 판테온 신전 내부 제단
사진 5) 판테온 신전 내부
사진 6) 판테온 신전 돔형 천정 중앙 개구부
사진 7) 판테온 신전 바닥 중앙 배수구
사진 8) 판테온 신전 내부 조각상
고대 로마인들의 신비한 건축술에 감탄을 하면서 바깥으로 나오니 전면 기둥사이로 보이는 광장에 앞서 바티칸에서 보았던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있었다. 가이드가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안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모조품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양 사람들은 길고 뾰족한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판테온 측면 도로 한쪽에는 어느 남자가 황금색 옷을 입고 공중부양 묘기를 선보이고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앞서 피사의 사탑을 방문했을 때 진입로에서 언뜻 보았던 모습과 동일하였다. 우리는 공중부양 모습의 눈속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벤츠를 타고 다음코스인 트레비분수로 이동하였다.
사진 9) 판테온 신전 입구 기둥사이로 바라본 광장
사진 10) 판테온 신전 외부 모습
사진 11) 공중부양 묘기
로마의 분수 가운데서도 최고의 걸작이자 가장 유명한 트레비분수는 흰 대리석 작품으로 1762년에 완성되었다. 이 분수는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중앙에 바다의 신인 넵투누스상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있고 주변에 여러 개의 아름다운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이 속설은 여러 사람의 입소문을 거치면서 한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연인과의 소원을 이루고, 세 번을 던지면 힘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는 큰 기대를 하고 트레비분수를 찾아갔으나 유감스럽게도 전체적으로 보수공사중이어서 아름다운 모습을 관찰할 수 없었다. 상황이 그러한데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공사 중인 분수대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투명 안전벽 틈새로 들어가 줄을 서서 물도 없는 연못에 동전을 던져 넣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젤라또를 하나씩 사서 핥아먹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었다. 날씨는 점점 더 더워져 뜨거운 태양빛에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으로 손가락이 끈적끈적해졌다. 우리는 다시 벤츠를 타고 유명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스페인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사진 12) 보수공사중인 트레비 분수
사진 13) 트레비 분수 앞 아이스크림 가게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지역이다. 17세기에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데에서 광장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배경으로 나온 스페인 계단이 유명하다. 1722년에 건립된 137개의 우아한 스페인 계단의 위쪽에는 언덕 위에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의 쌍둥이 종탑이 우뚝서있다. 우리는 성당 앞을 지나는 도로에서 하차하여 계단을 따라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였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실망스럽게도 계단의 배경이 되는 성당의 쌍둥이 종탑이 보수공사로 인해 안전 막으로 가려져 있고, 계단을 장식한 진달래꽃들도 뭔가 정리가 안 된 것처럼 우중충하여 전체적으로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낭만을 느낄 수 없었다. 성당의 종탑 앞에는 성모마리아를 기념하는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그 기둥의 모양이 오벨리스크를 모방한 것이어서 또 한 번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오드리 헵번이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지점에서 가이드는 우리 일행 중 여자들을 한명씩 앉혀놓고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을 찍는 중에 붙임성 좋은 우리 아내는 그 짧은 순간 어느새 외국인 남자를 꼬였는지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바르카차의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 : 낡은 배의 분수)는 테베레 강에서 와인을 운반하던 낡은 배(바르카차)를 본떠 만든 것으로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르토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로마에 홍수가 지나간 후 이곳에 조그만 조각배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이 조각배에서 영감을 얻어 17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 14) 스페인 광장 계단
사진 15)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사진 16) 오드리 헵번이 앉았던 자리에서 외국인 남자와 다정한 포즈를 하고있는 아내
나는 조각배 분수대 주변을 이리 저리 오가며 빼곡한 관광객들의 틈새를 비집고 기행문에 넣을 스페인 계단 전경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가이드는 우리일행들을 이끌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 위해 어디론가 가버렸다. 가이드는 수신기를 통해 어디로 모이라고 안내를 했으나 주변이 소란스러워 나는 그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일행들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당황하여 황급히 계단을 따라 올라가 앞서 벤츠에서 하차했던 성당앞 도로까지 가보았으나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숨을 헐떡이며 허둥대는 나를 향해 계단 아래쪽에서 고함치며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 계단 아래 광장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에게로 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아마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아내를 향해 주의 태만으로 시간을 지체시킨 나를 욕하며 책망한 모양이었다. 내 잘못이긴 하지만 가이드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이 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책망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감정이 몹시 상하였다. 마음이 흥분된 탓인지 손가락에 묻어 끈적거리던 아이스크림의 흔적이 휴대폰 카메라 렌즈에 옮겨 붙어 그때부터 찍은 사진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나오게 되었다.
사진 17) 스페인 광장 조각배 분수(바르카차의 분수)
우리는 다음 코스로 베네치아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베네치아 광장은 바로 옆에 위치한 베네치아궁(Palazzo Venezia)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베네치아궁은 피에트로 바르보 추기경이 자신의 저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으며, 16세기 중엽에는 베네치아 공화국 대사관으로 쓰였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정면에는 1911년 완공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Monumento di Vittorio Emmanuele)이 있다. 우리는 가까이에 가서 자세히 관찰하지는 못하고 이 기념관을 배경으로 인증 기념사진을 한 컷씩 찍고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도 없이 다음코스로 이동하였다.
사진 18) 베네치아 광장에서 비토르 에마뉴엘 2세 기념관을 배경으로
사진 19) 베네치아 궁전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 간곳은 ‘진실의 입’이다.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은 지름 1.5m의 원판 대리석에 사람의 얼굴 앞면을 새긴 조각상으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고대 로마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고 하나 확인된 것은 아니다. 조각상은 수염이 있는 남자의 얼굴로 눈과 코, 입이 뚫려있어 이 구멍으로 물이 빠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실의 입’이란 이름은 조각상의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강의 신 플루비우스가 손을 잘라버린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남자 주인공 그레고리 펙이 오드리 헵번과 데이트를 즐기면서 이곳에 손을 넣고 잘리는 시늉을 하여 오드리 헵번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정한 모습의 그 명장면으로 인해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 장면을 모방하여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그곳에 도착한 우리도 3초 인증 샷을 위해 바깥에서부터 줄을 서서 30분이 넘게 기다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것이 정말 고대 로마의 하수도 뚜껑이 맞는다면 이탈리아 인들은 대단한 조상을 둔 셈이다. 그 당시 도시에 하수도를 설치할 만큼 발달된 문명의 주인공이란 점도 그렇지만, 하수도 뚜껑 하나만으로도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끌어 모아 후손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순서를 기다려 차례로 사진을 찍은 후 소박한 규모의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을 통과하여 오후 4시 50분경에 바깥으로 나왔다.
사진 20) 진실의 입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서있는 모습
사진 21) 진실의 입
사진 22) 복도 끝에 진실의 입이 장식되어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다시 차를 타고 어느 언덕을 돌아 다음 코스인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가니 오후 5시였다.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은 고대 로마의 발상지로 전해지는 일곱 언덕의 하나인 카피톨리노(Capitolino)언덕 한 모퉁이에 있으며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고 한다. 큰 계단 위에 전개된 이 광장은 좌우 양쪽의 한 쌍의 건물(카피톨리노박물관, 팔라초 콘세르바토리)과 안쪽 정면의 시청사의 3개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좌우 건물이 마주보는 간격은 투시효과의 조화를 위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할수록 넓어지게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있다. 광장과 건물의 디자인은 그 수법의 독창성과 공간통일의 탁월성으로 해서 미켈란젤로의 가장 뛰어난 건축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진실의 입’ 코스에서 기다리느라고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내어서 그런지 가이드는 우리에게 유적지를 감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뭔가에 쫒기 듯 서두르는 인상을 주었다. 아마도 벤츠이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가이드의 재촉에 따라 얼른 사진만 찍고 또 다시 허둥지둥 벤츠를 타고 다음 코스인 ‘포로로마노’로 향하였다.
사진 23)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사진 24) 캄피돌리오 광장의 시청사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
사진 25) 시청사 계단의 조각상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 중심지로 신전과 공회당, 시장 등의 시설이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서기 293년에 까지 로마의 정치·경제·종교의 중심지였으나,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부터는 그대로 방치하여 토사 아래에 묻혀 버렸다가 19세기부터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오늘 날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때는 막강했던 위엄 있는 건물들이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아직 옛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로마의 영광을 되새겨볼 수 있다.
이곳에는 엄청난 규모의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아치형 건물 등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감상을 하고 싶었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불과 5분정도 이 유적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포로 로마노’ 유적지 한곳만 제대로 보려 해도 한나절은 족히 걸릴 텐데 불과 몇 시간 만에 로마시내 유적지 전부를 훑고 다니도록 일정을 잡은 것은 무리가 있다. 여행사가 정한 일정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패키지여행의 단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는 언덕위에서 ‘포로 로마노’ 유적지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고는 곧 바로 전차경기장으로 이동하였다
사진 26) 포로 로마노 전경(1)
사진 27) 포로 로마노 전경(2)
사진 28) 포로 로마노 전경(3)
대형 경기장(또는 광장)'이라는 뜻의 ‘치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는 아벤티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었던 로마 최대의 전차경기장이자 대규모 집단 오락시설이다. 로마에서 최초로 건설된 전차경기장이며 역사상 가장 큰 운동경기장으로 꼽힌다. 본래 로마의 에트루리아 왕들이 경기와 오락을 위해 건설하였으며 목재로 지었다. BC 50년경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약 2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다시 건설했다. 크기는 길이 621m, 너비 150m로 매우 넓고 당시 로마 주민의 1/4 이상이 들어올 수 있어서 매우 인기가 높은 장소였다. 그 후 더욱 확장되어 약 27만 명을 수용할 정도까지 커졌다.
후세의 황제들은 경기장 건물을 확장하거나 더 멋지게 꾸미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차경기야말로 민심을 잡을 수 있으며 국정에 대한 백성의 불만을 호도하는 방책으로 사용되었다. 경기장은 U자형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세 면에 좌석이 있고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전차경기뿐 아니라 축제, 공연 등이 열렸다. 이 경기장은 5C까지 정상적으로 사용되다가 549년을 마지막으로 황폐화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이전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경기장 자리에 조성된 공원에서 콘서트나 대형 집회 같은 행사가 열린다. 우리는 한쪽 언덕에서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오후 5시 30분경에 마지막 코스인 콜로세움으로 이동하였다.
사진 29) 전차경기장
사진 30) 전차경기장을 바라보고(왼쪽)
사진 31) 전차경기장을 바라보고(오른쪽)
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콜로세움(Colosseum)은 1세기경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으로 고대 로마의 유적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크며,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이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동상(colossus)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재의 제공 터가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르네상스 시대 건물들이 콜로세움에서 가져간 자재를 사용해 지어졌다고 하니 입맛이 씁쓸하다. 워낙 거대한 건축물이기에 그렇게 뜯어갔어도 아직 형태가 많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콜로세움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외형의 모습만 바라보다가 이곳 관광을 끝으로 로마시내 벤츠투어를 마쳤다. 차량 이동시간과 대기시간을 빼면 유적지 한 코스를 둘러보는데 불과 5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니 우리가 얼마나 날림으로 관광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사진 32) 콜로세움 옆에 있는 콘스탄티노 개선문(Arco di Constantino)
사진 33) 콜로세움 앞에서
사진 34) 콜로세움
사진 35) 콜로세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모습
우리는 콜로세움 앞 광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대기하다가 오후 6시경에 인근 식당으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고 빅토리아 테르미 호텔로 복귀하였다. 우리는 호텔인근 슈퍼마켓에서 약간의 음료와 과일 등을 사서 호텔 잔디밭 한쪽에 풀어놓고 마지막 밤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었다. 우리는 그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다음날(9일) 아침 식사 후 짐을 챙겨서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 제5터미널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러시아 국적 여행기를 타고 모스크바 공항을 경유하여 출발했던 때와 역순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5월 10일 오전 12시 경이었다.
사진 36) 저녁을 먹은 식당
사진 37) 저녁식사
사진 38) 우리가 3일간 묵었던 빅토리아 테르미 호텔
사진 39) 빅토리아 테르미 호텔 정원에서
사진 40) 호텔 아침식사
사진 41) 로마 공항 제5터미널
사진 42) 우리가 타고 돌아온 비행기
사진 43) 로마공항 이륙 직후 내려다 본 모습
사진 44) 귀국길에 몽고 상공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진 45) 비행 운항 정보
사진 46) 피곤하여 옆 좌석에 앉은 낯모르는 아이를 껴안고 자는 아내
이탈리아는 비교적 좁은 범위 안에 유적지 등 관광자원이 많아서 자유롭게 배낭여행을 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이 느꼈을 텐데, 불편함을 싫어하는 아내들을 배려하여 패키지여행을 선택하는 바람에 시간의 낭비 등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 일정은 갑자기 이루어져 사전 공부가 부족했고 외국인들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미처 준비하지도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통하여 로마의 역사를 체험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우리와 다른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앞으로 해외여행을 할 때는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여 보다 알찬여행이 되도록 할 것이다.
1. 기행문 작성에 참고한 자료
- 여행사 안내자료
- 인터넷 백과사전
- 먼저 다녀온 분들이 인터넷에 남긴 글
2. 이곳에 올린 사진의 출처
- 필자 휴대폰 카메라
- 함께 간 우리 일행들의 카메라
- 자세한 상황설명을 위해 부득이 몇 장은 인터넷에서 다운 받음
첫댓글 멋진 로마의 휴일이었네요~~
뜨개천사같은 분은 이태리에서 잘 보디가드해야합니다.
이태리사람들의 미인알아보는 실력은 세계적이라하더이다~ㅎㅎ~
그래도 어울림은 역시 부부가 최고네요~~
고맙습니다~~
이태리를 상세하게 여행하게 해주셔서~~
사전지식 안가지고도 이렇게 상세히 리얼하게 적어시다니~~~
부럽습니다~ㅋ~^^*
관심있게 읽어주시는 분이 있기에 애써서 기행문 남긴 보람을 느낌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