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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때릴 건가? 소를 때릴 건가?”〈67〉남악회양 선사 ② |
師 因馬祖 多習坐禪 一日將 於菴前磨 祖問 磨作甚 師曰磨作鏡 祖曰磨 豈得作鏡 師曰磨 旣不成鏡 坐禪 豈得成佛 祖曰如何卽是 師曰比牛駕車 車若不行 打牛卽是 打車卽是!
남악회양 선사가 제자 마조(馬祖)가 좌선만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루는 기왓장을 가지고 가서 좌선을 하고 있는 암자 앞에서 갈고 있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남악 스님이 대답하였다.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네.”
“기왓장을 간들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찌 부처가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컨대 소가 수레를 끌 때 수레가 만약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 다스린다 ![]() <직지심경>에 소개한 이 대화는 매우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전등록>에서는 위에 소개한 대화의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있다.
“마조스님이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으니 남악 스님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선을 배우는가? 앉아있는 부처를 배우는가? 만일 좌선을 배운다면 좌선은 앉는데 있지 않다. 만일 앉아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일정한 형상이 아니다. 머무를 곳이 없는 법에 대하여 취하고 버리는 생각을 내지 말라. 그대가 만일 앉아있는 부처가 된다면 그는 부처를 죽이는 일이다. 앉는 일에 집착한다면 참다운 이치를 통달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소를 때려야 하는가?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뜻은 매우 평범하다. 그러나 대단히 유명한 말씀이다. 평범한 진리가 위대하다는 뜻이다. 차가 멈췄을 때 차를 매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운전수에게 차를 몰기를 부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가장 현명하고 지혜롭게 산다는 수행자들은 그 간단한 문제를 놓치고 근본이 아닌 지엽적인 일에 마음을 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마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지엽인지를 몰라서 이리라. 또는 알면서도 가치관에 아직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일에 있어서 선과 후를 알면 거의 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마차를 말 앞에 두지 말라는 말도 있다. 당연히 말이 마차 앞에서 끌어야 한다. 그런데도 몸을 조복(調伏) 받는다는 말을 선가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곧잘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찾는다. 수레를 때려야 하는가? 소를 때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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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어리석은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린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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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찾는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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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마음 다스린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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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나 마음이나....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찾는다.
감사합니다 _()()()_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찾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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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