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淸州(청주)!
내가 태어난 곳은 청원군이고 중,고등학교를 다닌 곳은 청원군 어디서나 20K 이내인
청주시였다. 70년대 그 시절, ‘15만 청주시민과 150만 충북 도민’이라 했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85만 청주시민에 160만 충북도민’이 되었다.
청주시를 가락지 모양으로 둘러쌌던 ‘청원군’은 4차례의 주민투표 끝에 1년전 통합을 이뤄
지금은 청원군은 사라지고 청주시만 남았고 어릴적 꿈과 추억이 서린 고향도, 가슴 먹먹한 부모님
산소도 그 곳에 있다 아직 소쩍새 우는 소리가 있는.....
모처럼 ‘송산대장’님에게 ‘그대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일임했더니 내 고향 옆 ‘증평’의 ‘좌구산
座龜山’을 간다. ‘증평’은 괴산군에 속했었다, 근래 들어 증평군으로 분리되었고, 증평은 오래전
부터 청주에서 시내버스가 다니는 가까운 거리이고 거기에 ‘보병제37사단’이 있어 ‘신병교육대’
의 춥고 배고팠던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고교 시절은 예쁜 여학생과 시내버스를 타고 어느 솔밭에 갔었는데 그게 ‘좌구산’이었나?
(손은 안 잡았다)
청주에서 증평을 가는 중간에 유명한 ‘초정리 약수터’가 있다. 세종과 세조가 오래 머물며
치료하던 역사가 전해진다. 한적한 정자만 있던 시절, 소풍을 가면 ‘설탕만 넣으면 그냥 사이다’
라고 감탄 했던 그 약수는 그 후 정말 ‘설탕만 조금 넣어 ’천연사이다‘로 시판되었다. 세월이
흘러 몇 년전 가 보니 복잡한 도시화로 도저히 그 시절 풍경은 온데 간데가 없다.
‘좌구산 座龜山’!
‘괴산군 청천면, 증평군 증평읍, 그리고 청주의 미원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658m). 증평군
쪽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좌구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데, '좌귀산'이라고도 읽는다. 또한, 한자 표기를 달리해 '좌구산(坐狗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은거해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김치(金緻)가 ‘좌구산’에서 개가 세 번
크게 짖어대는 소리에 깨어 몸을 피함으로써 훗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특히 이 산은 ‘한남금북정맥 [漢南錦北正脈](,속리산 천황봉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청북도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도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산줄기) 에 속한다.
거기를 간다 내 고향 거기를...
초여름 버스는 달리고, 달려 '속리산 휴게소' 에 내려 놓는다.
고향 갈 때면 늘 여기에 드른다 '속리산'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고향 이름이다.
이 휴게소 뒤로 보이는 9봉은 '오솔길'이 몇년전 올랐던 '구병산' 이다.
산아래 마을은 '김진호 님' 의 고향이고 그 덕에 염소탕을 먹었었다.
이윽고 도착한 '이티재' '미원면'쪽으로 넘어왔다.
우리고향 '남일면'과 이웃한 '미원'은 물 좋기로 유명하다.
전국의 많은 생수 취수원이 이 미원면에 있다.
사진을 찍고보니 '이티휴게소' 이름이다 이름이 멋지단 생각..
광개토왕이 왜 생각 났을까?
이 휴게소의 아기자기한 모습이 좋다.
앞 돌로 세운 것은 '충청북도'의 지도 이다.
바다가 없는 충북은 북부에 제천. 단양. 충주가 . 남쪽에 영동. 옥천. 보은이 그리고 중부에
청주. 증평. 괴산.진천. 음성.등 3개시에 8개 군이 있다. '명풍명월'의 고장이다.
난 충북이 고향인 것을 늘 감사한다.
오늘은 늘 존경하고 좋아하는 '송산대장'님 내외와 함께 한다.
난 그 멋진 폼에 늘 주눅이 든다. 어느날 보니 나보다 배가 더 많이 나온듯 하다
그것도 고소한 즐거움이었다.
아침에 살짝 빗방울 스처간 숲의 솔향은 가장 근원적인 행복감에 젖게 한다.
고향, 고향 땅이다...
같은 행복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조용하던 숲속이 시끄러워졌다.
'이티봉'은 작은 '지적표시점'만 있고 팻말이 없다.
한 산우의 친절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이다.
'상당산성' 청주의 동쪽 거대한 성곽으로 성안에는 마을이 있다.
길이 없던 그시절, 그 성안에 살던 '박0희'라는 선배는
학교도, 교회도 일등으로 왔다 걸어서..
청년시절, 눈덮힌 그 산성에 교회 청년들이 등반을 갔는데
눈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니
한 여청년의 구두 뒷굽이 없어졌다 눈 속에 그 굽을 찾아 온 회원들이 더듭었다
'송산대장'님의 개인 블로그 시그널...멋지다.
'좀 있어' 보이고...서양물도 먹은듯 보이고...
그러나 추베린저 대장님이 선물한 '산꾼 미시령' 깃발만 하랴!
아! 아쁠사! 2K 정도 큰 봉을 두개 넘어 습도 많은 초여름 땀흘리며 갔더니 반대로 왔단다.
다시 출발지로 '빽'한다.
그렇게 왕복 4키로, 되돌아오니 11시 30분이 지난다. '궁시렁 궁시렁'''"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 오니 산행 할 의욕이 반감 된다.
이티봉약수에서 목을 축인다. 마음도 안정시키며...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시 힘을 내어 시작 해 본다.
.좌구정'까지 3K 이다.
그래도 다시 산에 오르니
솔향과 바람과 다시 행복감에 취한다.
화려한 녹음의 '연두'속으로 햇살은 쏟아지고..
여기였다. '구녀성'!
어릴적 학교에서 많이 들은 전설이다.
1남9녀를 둔 어머니가
하도 아들 딸이 서로들 다투니 내기를 하여 아들이나 9녀가 죽기로 한다.
아들은 나막신을 싣고 한양 다녀오고, 9녀는 산 위에 성을 쌓고...
어머니가 보니 아들이 질 것 같았고 생각하다 팥죽을 쑥어 딸들을 방해한다.
결국 9녀들이 지고 죽음을 맞는다.
남존여비? 남아선호? 그 많큼 귀했다 아홉 딸을 죽기기까지...
'구녀성'이다. 오른쪽으로 성곽이 선명하다
신라인들이 쌓은 거란다.
2000년전 신라인의 손길이 닿은 돌 들이라니...더듬어 본다.
중간중간 이정표가 잘 되어있다.
모처럼 오랫 만에 보는 고향 '지명'에
고향 땅임을 실감하며 행복감에 젖는다.
'구녀산'도 '충청북도'도 '청원군'도 얼마나 정겨운가!
글자 까지도 예쁘단 생각... 그렇게 고향은 좋은거다..
높낮이 심한 봉들도 넘나들고 이런 평탄 한 길도 걷고
종줏길 산행은 이런 멋이 있다.
속도가 안붙는다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안내판도 정겹다. '힘드시죠?'
지난 주 지리산의 '오늘이 마지막 산행일 수 있습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경고 보다 ...
이윽고 내려선 '좌구정'...
정맥 길은 이처럼 국도를 여러번 넘는다.
이 고개뿐 아니라 우리가 걷는 산줄기가 증평군과 청주시의 경계점이다.
뱀이 많은가 보다 여러번 경고판이 있고
실재 뱀도 본다.
다시 방고개 까지 부지런히 걷자
할머니 같이 연세 많았던 고모 한 분이 '방고개 고모' 가 계셨다
'내수 방고개"(현재의 내수읍 방고개)였으니 이 산 아래 어딘가 사셨던 모양이다.
미원쪽도 증평쪽도 거대한 저수지가 많다.
작금의 가믐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여름산의 고요함은 이어지고..
혼자라도 좌구산까지 가보려 속도를 높여 본다. 혼자 뛰어 나가...
여름산의 시원한 바람이 산뜻하다.
아직 방고개 까지도 멀었다.
여러 봉들이 넘나듦이 심하다.
가파른 내리막길 끝이 없다. 줄을 잡고 오라는데
줄 설치가 참 성의 없다는 생각.
이윽고 내려선 '방고개'... 천문대가 있었다.
2시까지 내려오라는데 벌써 2시가 가까웠다. 홀로 속도를 빼 봤지만
아직도 좌구산은 2.7K ..
할수없이 자연휴양림 쪽으로 급히 내려 가야했다.
좌구산 천문대
이 아래도 여러 펜션들과 함께 휴양림이 펼쳐진다.
토끼와 거북의 길도 있고...
이 설화는 근대화 시절은 거북이를 엄청 높혔지만
요즘의 교육 현장에서는 "같이 '"더불어"가 강조된다.
하룻밤 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라면 금상첨화리라..
입구 까지 내려왔다.
꽃도 웃고 나도 웃고 ...
행복한 하루에 웃는다.
계곡 물이 말랐으니....
식수에 이러는게 좀 그랬지만 무릎을 식혀야 했다 ...
나보다 송산대장님이 먼저 한거구,
난 5분인데 그 분은 13분을 했다... 절대 '도찐개찐' 이 아니다 ㅎㅎ?
아! 그 시절 여러번 소풍왔던 '초정약수"
그 한적함은 찾을 길 없다..
세계 3대 광천수! 그렇게 유명했다.
청주를 중심으로 우리고향 남일면은 남쪽이고,
여기 북일면은 북쪽이다. 고교시절 '예쁜 여학생'이 북일면에 산다 했는데...
좌구산 어느 골에 살고 있을까 서울로 가서 살고 있을까?
'한글 공원' 이란다. 세계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 는 청주의 자랑이다.
그 부분으로 한글공원도 있나 보다
그게 있었다 비석으로.. 그리 외웠던 '나랏말쌈이 즁국에 달라..."
초정약수를 사랑하는 고향인들의 긍지가 대단하다.
이 공원 앞에 늘어선 '모아모아 장터'에 표고파는 이, 꿀 파는 이, 장아찌 파는이..
그 중 그 '여학생'은 없겠지?
'한글 소나무'란다.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으로 대표되는 충북인들의 소나무 사랑은 여기에도 나타난다.
그 정자가 그 시절 보았던 정자인가?
달려갔지만 잠겨 있고 그 샘은 뵈지 않는다.
뒤로 보이는 산 줄기가 오늘 산행길 이었다.
아래로 '천연사이다' 공장이 있다.
약수였다!! 초정약수 ...
그 수량에 놀랐지만 밋밋한 맛에
옛 시절 '사이다' 맛은 찾을 수 없다.
FDA가 인정하고 세종대왕이 117일간이나 머물렀다니 ...
눈에 안질이 생겼고 그래서 세종은 여기에서 안질을 치료했다
그 거대한 상징탑 앞에 앉아 본다.
밤에도 같이 잠들고(직접 본 일은 없음)
낮에도 이렇게 같이 잠든다. 행복한 부부
고향 땅을 걸은 초여름의 날.
하루종일 추억 속에 행복했던 멋진 날 이었다.
5, 6월의 '지리종주'와 '설악종주'등 무리함으로 발톱들이
'색카맣게' 변해 있지만 이런 건강도 이런 산우님들도 감사하거늘...
첫댓글 제가 보니 도찐,개찐 맞는데요. 푸 하하하하하하
산은 어딜가나 소나무길이 참 정겹네요.
고향다녀오셔서 행복 두배네요.선생님
머가 도찐.개찐입니까? 제가 늦게. 아주 짧게 했다니까ㅎ
늘 과분한 응원 크게 감사드립니다.
ㅎㅎ같이한산행 평생잊혀지지 않겠지요~~3여년만에 초정약수(탄산수)먹어보았네요~~
오와~~대원산 마마님도 납시였네요~~감사드립니다~~
같이하여 즐거운 날이었답니다.
그렇더라도 뭘 평생 못잊을 ㅎㅎ
남은 날들이 엄청 많을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