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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보뢰(亡羊補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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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보뢰(亡羊補牢) 亡 : 달아날 망 羊 : 양 양 補 : 도울 보 牢 : 우리 뢰. [동의어]亡牛補牢(망우보뢰) [출전]<戰國策> 양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나 일을 실패한 뒤 재빨리 수습을 하면 그래도 늦지는 않다는 뜻. 전국시대 초나라에 장신이라고 하는 대신이 있었는데 하루는 오 양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대왕께서 궁 안에서는 좌편에 주후를, 우편에 하후를 데리고 계시고, 궁 밖에 나가실 때에는 언릉군과 수근군이 대왕을 모시는데 이네 사람은 음탕하고 방종하여 절도 없이 재정을 낭비하므로 국가 대소사를 막론하고 이렇게 오래 나아가다가는 어는 날이고 우리 영성은 보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나 ?" 양왕은 장신의 말을 듣고는 버럭 화를 내며 꾸짖었다. "그대는 망령이라도 들었나 보군, 그대는 그런 엉뚱한 말로 이 나라 백성의 민심을 혼란시킨 수작이 아닌가 ?" 장신은 조금도 황망함이 없이 대답을 했다. "신은 현재의 이 실정을 목격하고는 그 중대함을 느끼고 더 이상 함구불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초나라가 어이 오늘과 같은 이 지경에 이르렀으며 신이 어찌 감히 민심을 소란 시키겠습니까? 황공하오나 대왕께서는 하루 속히 이일을 시정하시기 바라오며 만일 그러시지 않고 계속 이 네 사람만을 총애하신다면 초나라의 존망은 조석에 달릴 것입니다." 그래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장신은 "대왕께서 기왕 신의 말씀을 믿지 않으신다면 신이 잠시 조나라에 피하여 시국이 돌아가는 형편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리하여 장신은 조나라로 가고 초양왕은 여전히 사치하여 그런지 오개월이 지난 뒤 진나라가 과연 초나라를 침공하여 양왕은 성양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이때에야 비로소 초양왕은 장신의 말을 깨닫고는 즉각 사람을 조나라에 보내어 장신을 불러오게 했다. 장신이 대왕의 부름을 받고 초나라로 돌아오니 양왕은 친절히 그를 맞이하고는, "과인이 애당초 그대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으련만, 지금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겠으나 그래도 이제 과인이 어찌해야 좋을지 알려줄 수 없겠소 ?" 이에 장신이 느긋이 대답을 했다. "신이 일찍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토끼를 발견하고 머리를 돌이켜 사냥개를 시켜도 늦지를 않은 것이고 양이 달아난 뒤 다시 우리를 고쳐도 늦질 않다고요, 그리고 옛날에 탕무가 백리 땅에서 나라를 일으켰고, 걸왕과 주와은 천하가 너무 넓어 또한 멸망했습니다. 현재 초나라가 비록 작더라도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기우면(절장보단(切長補短)) 그래도 수천리는 되는지라 당연히 탕무왕의 백리에 불과한 땅과 견주면야 굉장히 많은 것이지요..." |
망양지탄(望洋之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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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지탄(望洋之歎) 望 : 바랄 바라볼 망 洋 : 바다 양 之 : 갈 지 歎 : 탄식할 감탄할 탄. [참조] 정중지와(井中之蛙) [출전]《莊子》〈秋水篇〉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 곧, ① 남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나의 미흡함을 부끄러워함의 비유. ② 제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하는 탄식. 먼 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
다기망양(多岐亡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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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망양(多岐亡羊) 多 : 많을 다 岐 : 가닥나뉠 기 亡 : 잃을 망 羊 : 양 양. [동의어] 망양지탄(亡羊之歎) [유사어] 독서망양(讀書亡羊). [출전]《列子》〈說符篇〉 달아난 양을 찾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서 양을 잃었다는 뜻. 곧 ① 학문의 길이 다방면으로 갈려 진리를 찾기 어려움의 비유. ② 방침이 많아 갈 바를 모름.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이름은 주(朱), B.C.395?∼335?]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
맥수지탄(麥秀之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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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수지탄(麥秀之歎) 麥 : 보리 맥 秀 : 빼어날 팰 수 之 : 갈 지 歎 : 탄식할 감탄할 탄. [원말] 서리맥수지탄(黍離麥秀之歎). [동의어] 맥수서유(麥秀黍油). 맥수지시(麥秀之詩). [참조] 은감불원(殷鑑不遠). 주지육림(酒池肉林). [출전]《史記》〈宋微子世家〉.《詩經》〈王風篇〉 보리 이삭이 무성함을 탄식한다는 뜻. 곧 고국이 멸망한 탄식. 중국 고대 3왕조의 하나인 은(殷)나라 주왕이 음락에 빠져 폭정을 일삼자 이를 지성으로 간한 신하 중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세 왕족이 있었다.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干)이 그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형으로서 누차 간했으나 듣지 않자 국외로 망명했다. 기자도 망명했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거짓미치광이가 되고 또 노예로까지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왕자 비간은 끝까지 간하다가 결국 가슴을 찢기는 극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주왕은 삼공(三公:왕을 보좌하던 세 제후)의 한 사람이었던 서백[西伯:훗날의 주문왕(周文王)]의 아들 발(發)에게 주살(誅殺)당하고 천하는 주왕조(周王朝)로 바뀌었다. 주나라의 시조가 된 무왕(武王) 발은 은왕조의 봉제사(奉祭祀)를 위해 미자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 그리고 기자도 무왕을 보좌하다가 조선왕(朝鮮王)으로 책봉되었다. 이에 앞서 기자가 망명지에서 무왕의 부름을 받고 주나라의 도읍으로 가던 도중 은나라의 옛 도읍지를 지나게 되었다. 번화하던 옛 모습은 간데 없고 궁궐터엔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치 못한 기자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보리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麥秀漸漸兮(맥수점점혜)] 벼와 기장도 윤기가 흐르는구나 [禾黍油油兮(화서유유혜)] 교활한 저 철부지(주왕)가 [彼狡童兮(피교동해)]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不與我好兮(불여아호혜)] [주] 기자 동래설(箕子東來說) : 기자는 주왕의 횡포를 피하여, 혹은 주나라 무왕이 조선왕으로 책봉함에 따라 조선에 들어와 예의 밭갈이 누에치기 베짜기와 사회 교화(敎化)를 위한 팔조지교(八條之敎)를 가르쳤다고 하나 이는 후세 사람들에 의한 조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라고 함. 왜냐하면 진(晉)나라의 무장(武將) 정치가 학자인 두예(杜預:222∼284)가 그의 저서《춘추석례(春秋釋例)》의 주(註)에서 "기자의 무덤이 양(梁)나라의 몽현(夢縣)에 있다" 고 적고 있는 만큼 '기자 동래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임. |
맹모단기(孟母斷機) -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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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단기(孟母斷機) 孟 : 맏 맹 母 : 어미 모 斷 : 끊을 단 機 : 베틀 기. [원말]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동의어] 단기지계(斷機之戒). 단기계(斷機戒). [유사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출전]《列女傳》〈母儀傳〉.《蒙求(몽구)》 맹자의 어머니가 [유학(遊學) 도중에 돌아온 맹자를 훈계하기 위해] 베틀에 건 날실을 끊었다는 뜻으로, 학문을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 전국 시대를 살다 간 맹자의 어머니의 훈육 일화이다. 집을 떠나 타향에서 공부하던[遊學] 어린 맹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때 맹자의 어머니는 베틀에 앉은 채 맹자에게 물었다. "그래, 글은 얼마나 배웠느냐?" "별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머님." 맹자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리고 이렇게 타일렀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이 베의 날실을 끊어 버린 것과 다를 게 없다." 크게 깨달은 맹자는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전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마침내 공자(孔子)에 버금가는 명유(名儒)가 되었다고 한다. |
맹모삼천(孟母三遷)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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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孟母三遷) 孟 : 맏 맹 母 : 어미 모 三 : 석 삼 遷 : 옮길 천. [원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동의어] 삼천지교(三遷之敎). [유사어] 현모지교(賢母之敎).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출전]《列女傳》〈母儀傳(모의전)〉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 전국 시대, 유학자(儒學者)의 중심 인물로서 성인(聖人)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亞聖)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맹자의 어머니는 처음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그래서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이곳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제구(祭具)를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를 냈다. 서당에서는 유교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런 곳이야말로 자식을 기르는데 더할 나위 없이 놓은 곳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
명경지수(明鏡止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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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지수(明鏡止水) 明 : 밝을 명 鏡 : 거울 경 止 : 그칠 지 水 : 물 수. [출전]《莊子》〈德充符篇〉 맑을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이르는 말. 《장자(莊子)》〈덕충부편(德充符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에 왕태(王 )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교의 비조(鼻祖)인 공자와 맞먹을 만큼 많은 제자들은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상계(常季)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올자(兀者)는 어째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가만히 정지(靜止)해 있는 물이니라." 또 같은〈덕충부편〉에는 이런 글도 실려 있다. "거울에 흐림이 없으면 먼지가 앉지 않으나 먼지가 묻으면 흐려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오랫동안 현자(賢者)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맑아져 허물이 없어진다." [주] 올자 : 형벌(刑罰)에 의해 발뒤꿈치를 잘린 불구자. |
무장공자(無腸公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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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자(無腸公子) 기력이 없는 사람. 창자가 없다는 의미로 '게'를 말함. 속빠진 인간과 지배 계급의 부패상을 풍자함.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 1908년 안국선(安國善, 1854-1928)의 신소설 작품( 우화소설, 정치.풍자소설) '나' 는 옛날같지 않게 도덕 . 염치 . 의리 . 절개를 잃고 악 속으로 빠져 든 금수(禽獸)만도 못한 인간 세상을 한탄하다가 잠이 들게 되었는데, 그 꿈 속에서 '금수회의소' 라는 곳에 이르게 된다. 주제 : 인간 세계의 모순과 비리를 규탄.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을 모르고, 여우보담도 간사한,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창자없는 것은 게보다 심하고, 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호랑이보다도 포악한,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도다. |
묵적지수(墨翟之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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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적지수(墨翟之守) 자기 의견이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것. [ 관련고사 ] 묵자(墨子)가 제(齊)나라에서 초(楚)나라로 급히 달려갔다. 공수반(公輸盤)이 초(楚)를 위하여 송(宋)을 치려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묵자(墨子)는 공수반(公輸盤)에게 말했다. "북방(北方)에 나를 치려는 자가 있는데, 그대가 죽여 주기 바랍니다." "의(義)를 위하는 나로서는 남을 죽일 수 없소." "그렇다면 왜 송(宋)을 치려 하시오. 초(楚)는 땅이 넓고 송(宋)은 부족(不足)합니다. 사람하나 죽이지 않는 것이 의(義)라 하면서 어찌 많은 사람을 죽이려 하시오." 그리고 묵자(墨子)는 초왕(楚王)을 찾아 갔다. "좋은 수레를 가지고 있는 자가 이웃집 헌 수레를 훔치려 들고, 비단 옷을 입은 사람이 헌 옷을 훔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자가 지게미나 겨를 훔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도벽(盜癖)이 있어서 그렇지." "그럼 5 천리 넓은 땅과 새와 짐승, 물고기가 많은 초국(楚國)이 사방(四方) 오백리의 식량(食糧)이 부족(不足)한 송(宋)을 치려는 게 이와 같지 않습니까?" "그것은 공수반(公輸盤)의 뜻을 살펴보려 한 것이오." 묵자(墨子)는 공수반(公輸盤)의 재주를 알아보려고 허리끈을 풀어 성책(城柵)같이 하고 나무 조각으로 방패(防牌) 대용(代用)의 기계(機械)를 만들었다. 공수반(公輸盤)이 9번공격(攻擊)하였으나 묵자(墨子)는 9번 다 방어(防禦)하였다. 공수반(公輸盤)은 마침내 굴복(屈伏)하고, 묵자(墨子)는 초(楚)의 침략(侵掠)을 미연(未然)에 방지(防止)하였다 한다. 묵수(墨守) 자기 의견이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것. 묵적지수(墨翟之守)의 준말. 관련고사 : [묵자(墨子)] 공수편(公輸篇) 1)묵적이란 이가 제나라에 있을 때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자, 묵자는 곧 초나라로 가 '공수반'을 만나 전쟁을 만류했다. 2) 송나라는 좁은 땅에 인구가 많은데, 땅이 넓은 초나라가 굳이 침략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통렬히 공수반을 공박하고 초왕을 만나게 해달라 했다. 3) 부강한 나라가 빈곤한 나라를 치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있으면서 이웃집의 하나밖에 없는 헌 옷을 훔치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논지로 초왕을 설득한 것이다. 4) 이에 묵자는 모의(模擬)로 성(城)을 만들어 공수반과 일종의 전쟁게임을 했는데, 공수반은 열 가지 책략으로 성을 공격했으나 묵자는 끄떡도 안 했다. 5) 결국 초왕은 묵자에게 송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
문일지십(聞一知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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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지십(聞一知十)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한부분을 통해 전체를 미루어 아는 총명함을 말함. [고사] 공자의 제자는 삼천 명이나 되었고 후세에 이름을 남긴 제자가 72 명이나 되었으며 철인(哲人)으로 꼽힌 사람도 10 명이나 되었다. 제자 중에 자공은 재산을 모으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어 공자가 주유천하하는 자금의 대부분을 대었고 재주와 재치도 뛰어났다. 그러나 말없이 묵묵히 스승의 뒤를 따르는 안회는 매우 가난했으나 삼 개월 동안 어질었다고 인(仁)을 허여받은 유일한 제자였다. 안회와 자공의 길고 짧음에 대해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은 "사(자공의 이름)가 어찌 감히 회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 공자는 자공의 대답에 만족했다. 역시 자공은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을 알고 있었다. "네가 안회만 못하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스승의 가슴에서 기뻐 우러나오는 대답이었다. |
물아일체(物我一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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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윤리사상 제물론, 물아일체의 사상을 이해한다. 유학 사상 -공자, 맹자, 순자 도가 사상 -노자, 장자 불교 사상 -석가모니 장자(莊子)의 윤리 사상 -「제물론(齊物論)」과 물아일체(物我一體) 1> 장자(이름은 周, B.C.369-286) 중국 전국시대 말의 사상가· 도학자. 본명은 장주(莊周). 만물을 끊임없이 유동변화하는 것으로 보고, 그 유동변화를 도(道)라고 하는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 을 주장 '자연과 나는 하나'라는 물아일체 사상을 주장 인생관을 사생(死生)을 초월하여 절대무한의 경지에 소요(逍遙)함을 목적으로 하였고, 또한 인생은 모두 천명(天命)이라는 숙명설(宿命說)을 취함 노자에 비해 탈속한 정신적 절대 자유를 추구 하는 경향 저서인《장자》33편(내편 7, 외편 15, 잡편 11)은 장주학파(莊周學派)의 논설집으로, 기발한 우언(寓言)과 비유로 문명을 날카롭게 비평하였는데, 인위(人爲)를 버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복귀할 것을 설파함. 2> 도(道) 사상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져 버린 것." 천지 생성의 원인이며 이끌어 가는 원리 현상 세계의 유한성과 모순 대립을 초월한 절대적 진리 3>「제물론」의 만물제동(萬物齊同) 사상 '만물을 제일(齊一,하나 같이)'하게 보는 이론 모든 만물은 하나이다.(萬物齊同) : 제물(齊物) 道의 관점에서는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 등의 차별은 무의미. 모든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 정신적 절대 자유의 경지 4> 좌망(坐忘)과 심재(心齋)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 좌망(坐忘) -조용히 앉아 우리를 구속하는 일체를 잊어버리는 것. 심재(心齋) -마음을 비워서 깨끗이 하는 것. 5>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일체를 잊고 마음을 비울 때 절대 평등의 경지에 있는 도(道)가 마음에 모이게 됨. 물아일체 : 자연과 내가 하나되는 절대 자유의 경지 지인(至人), 진인(眞人) -도를 지녀 물아일체적 경지에 이른 인간 6> 문제점 일체의 사회 규범, 제도를 거부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요소를 지님. 7>《장자》명문 彼出於是, 是亦因彼., 是亦彼也, 彼亦是也. : '저것은 이것에서 나왔으며, 이것 또한 저것에서 나왔다. 이것이 또한 저것이오. 저것 역시 이것이다.' <指物論>과<白馬非馬論>-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 '천지는 한 손가락이오.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 天地與我竝生,而萬物與我爲一 : 천지와 나는 함께 생겨났으며, 만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 <胡蝶夢> -不知周之夢爲胡蝶與,胡蝶之夢爲周與.: <호랑나비의 꿈>-'장자가 꿈속에 호랑나비 된 걸까? 호랑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된 걸까 알지 못하겠네.' 丘也與汝皆夢也,予謂女夢亦夢也 : '공자와 너는 모두 꿈이오. 내가 너에게 꿈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또한 꿈이로다.' 그외.-無用之用, 빈배가 되라. 道는 똥 오줌에도 있다. 朝三暮四., 道通爲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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