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우울했다.
어젯밤 내내 열 시간 이상을 끙끙 앓면서 잤다. 아침에 유선생이 출근하고 나서 또 잠이 들었다.
계속 잠이 쏟아지고 지독하게 온 몸이 쑤시는 것이 몸살까지 겹친듯 하다. 잠에 취해서
잠깐 고개들어 하늘을 보니 붉어져 가는 단풍들과는 달리 어둡고 낮게 내려앉은 모습이
'잿빛 권태마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요즘은 컴 앞에 앉아 일상적인 기록조차 못하고 시간에 쫒기며 보내고 있다.
숙제처럼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데 몸이 말을 안듣는다. 독도와 울릉도 그리고 설악산까지
다녀와서 쉴 틈없이 너무 무리를 한 탓에 체력 회복을 할 기회를 놓쳤더니 급기야는
나를 꼼짝 못하게 늪속으로 빠뜨리고 만다. 켜 켜 쌓인 먼지가 오래되면 쉽게 닦아지지 않듯이
내 몸속에 들어붙은 피로가 눈녹듯 사라지지 않고 매케하게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어제는 화곡 모임날, 또 재능기부 날이었다.
아침 일찍 신정일 형님께서 주신 간식비 20만원으로 떡과 포도, 그리고 꼬마김밥등
푸짐하게 준비해서 먼저 목동으로 가서 형님들께 차려 드렸다.
그리고 이내 돌아서서 독산동 구립코트로 향했다. 모두 열 두명,
국화부 대회가 있는 날인데..개나리부들도 결석이 많았다.
한 두 게임 마치고 오후 한 시반이 되자 학생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비트로팀의 순규씨와 일웅씨가 도착해서 합류했다.
그동안 비트로 팀에서 재능기부를 했던 중3학년 학생들이 요즘 시험준비와
고입 준비로 바빠서 방과후 학습지도가 안되니 할 수 없이 화곡팀이 재능기부 하는
CA시간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학생들은 40명이니 사실은 화곡식구끼리는 벅차다.
듬직한 비트로 남자 팀원들은 최소 한 사람이 10 명은 감당이 되니 우선 순규씨와 일웅씨
얼굴만 보아도 안도감이 들었다.
마침 문성 중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코트장으로 직접 방문한다는 시간과 약간의 텀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노래와 춤등 장기자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더니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춤과
노래등 매우 개성있고 발랄하게 자신을 표현하였다. 상품으로 현금 2만원씩 받아 갔는데
그 때 그 순간만큼은 모든 학생들이 하나로 집중하고 있었다.
북한의 김정은이 중학교 2학년이 무서워서 남침을 못하고 있다더니 사실 중3과 중2는
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랐다. 선생님들이 얼마나 애간장을 녹이면서 가르치고 있는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테니스 재능기부를 하면서 더욱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사실 내 자식들은 착하게 잘 큰것 같은데 그 녀석들도 학교에 가면 저 학생들처럼
고삐뿔린 망아지들처럼 그렇게 자유를 탐하며 보냈으리라.
잠시후 문성중학교 길은식 교장선생님이 재능기부 현장을 방문하였다.
감사의 뜻으로 음료수와 홍삼 엑기스를 전하였는데 화곡이란 화곡동에서 왔느냐 물으며
비트로 팀은 어떤 팀이냐는 질문을 하셨다.
화곡은 일산 분당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역사가 37년된 여성 테니스 클럽임을 설명하자
그냥 금천구 지역에 사는 어머니들이 재능기부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 먼곳에서 일부러 찾아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노라고 하였다.
비트로팀은 대한민국 아마추어 대표급들이 순수 한국 토종 브랜드 '비트로'에서 후원을 받는
팀원들로 지난 3월부터 계속 방과후 학습으로 학생들에게 테니스를 지도하다가
이번 10월에는 CA 시간에 합류하였다고 설명하였다. 하나같이 건강한 어머니들의 모습에
탄복하고 또 좋은 재능을 함게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깊은 감사의 뜻을 보였다.
또 길은식 교장은 "요즘 학생들은 체격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 또 정신적인 건강을 체크해 보면
사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살까지 생각할 만한 학생들이 많아 더욱 더 마음껏 뛸 수 있는
체육 시간을 늘리는데 비중을 두고 있다. 자칫 CA 시간은 학생들이 집중을 안하고 어영부영
시간 떼우기식이 될 수 있는데 여러 좋은 선생님들께서 일대일 지도를 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다"고 전했다.
맑은 가을 하늘에 조금 쌀쌀한 바람이 부는 코트에서 학생들과 비트로팀, 그리고 화곡 가족들은
혼연일체가 되었다. 장난치며 웃고 딩굴더니 이내 시간이 되자 금방 학생들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텅 빈 코트장에 화곡과 비트로팀 플랜카드만 높은 소리를 내며 펄럭거리고 있었다.
늦게 비트로팀의 만규씨가 도착했고 화곡 가족들이 다 떠나고 우리 팀원들은 조금 더 오래 남아
해가 아직 중천에 떠 있는 시간인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헤어졌다. 남자가 세 명이니
게임도 안되고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아주 오래갔다.
삶은 잠깐인듯 싶다. 순간처럼 금방 지나간다. 이렇게 재능기부를 하기 위해 거의 하루 일을
다 포기하고 포천에서 온 순규씨나 강동에서 온 일웅씨, 만규씨등 다 엄청 바쁜 사람들인것을
잘 알고 있다. 살다 지치고 조금 우울한 그 어느 날, 자신과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추억이 큰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가끔 이 세상에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가질 때,
이런 나눔이 더 밝은 색상으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글을 남긴다.
아래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 대한 정민교수의 글 일부를 옮겨 본다.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고통을 감추고 산다. 삶은 위장의 가면이다. 평화는 은폐된 유예다. 일상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다. 엊그제 TV에 나와 애정을 과시하던 잉꼬부부는 얼마 뒤 '사실은 끔찍했다'며 갈라선다. 만인이 부러워할 미모의 여배우는 자꾸만 자살하고, 부자들은 끊임없이 송사를 반복한다. 하루가 비참한 인생들은 사는 게 차라리 단말마의 비명 같다. 인생에 구원은 있는가? 신은 대체 있기는 한가?
선과 악이 밀도가 다른 두 액체처럼 섞이지 않은 채 포개져 있는 듯한 앙브리쿠르 시골 본당. 나른한 권태와 뒤틀린 절망이 11월에 내리는 는개처럼 둘러싼 공간. 첫 본당에 부임한 지 3개월 된 초짜 신부, 그가 자신들의 삶 속에 끼어들까 봐 속물적 군상들은 신부를 완강히 거부한다. 몇 소소한 사건 너머로 편견과 오해와 독선과 음모가 늪처럼 숨어있다.
재능기부 참가자
비트로팀- 이순규 김일웅 강만규
화곡- 김옥선 방선정 백경희 한인경 이병숙 신경옥 김선영 문희 배진희 탁영란 손동숙 송선순
찬조
문희는 맥주 찬조
신정일 형님 20만원 점심과 간식 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