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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타르키(autarky)를 흔히 폐쇄경제(closed economy)라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자주 꼽히는 것이 북한의 경제이다. 물론 북한이 원해서 폐쇄경제가 된 것은 아니고, 1980년대 말 사회주의 블록경제가 무너진 후, 미국의 유일 헤게모니 아래 봉쇄정책 결과 어쩔 수 없이 고립경제 - 보다 엄밀히 말해서 세계경제에서의 소외 또는 "왕따" - 가 되었다.
북한은 자신의 고립을 "주체경제"라고 스스로 미화하기도 한다. 종주국 미국과 일본에 대한 주변국 남한의 "종속경제"보다야 질적으로는 더 "독립경제"이니, 국내총생산이니 국제수지니 외환보유니 양적인 수치 놀음을 떠나서, 최소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자랑할 만 하다. 솔직히 이데올로기가 인민에게 쌀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알도 없이 비굴하게 상전의 골프카트나 몰아주고 광우병 쓰레기 고기를 게다가 돈까지 얹어 국민에게 사다 먹이는 쥐새끼같은 개독정권 보다야 국가의 자존심 측면에서 훨씬 낫다. 배 좀 고프다고 정조까지 팔아 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야 한다면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왜 필요한가? 차라리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버리지.
폐쇄든 고립이든, 닫히고 갇혔다는 말이 주는 부정적인 뜻이 역시 아우타르키를 웬지 북한의 구시대적 전체주의처럼 낙후되고 음침한 경제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괜히 개방적(open)이니 세계적(global)이니 하는 말들을 좋아하도록 그렇게 언어(言語)에 의해서 조건지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폐쇄니 개방의 느낌을 떠나 글자 그대로 아우타르키는 auto-arkeia 즉 스스로 통치하는 체제라는 뜻이다. (경제학적으로는 autarky - 자족경제, 정치학적으로는 autarchy - 독재체제 라고 쓰며 구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autarchy보다는 自己支配 self-dominance를 뜻하는 autocracy 즉 auto-kratia라는 말이 더 적확하게 보인다.) 그래서 아우타르키의 경제학적 직역은 self-sufficient economy 즉 자급자족경제가 될 것이다.
자급자족은 모든 독립국가의 정치적 이상일 뿐 아니라 논리학적 무류성(無謬性)이기도 하다. 신은 완전무결하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아우타르키이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완전무결성 (perfect infallibility) 즉 신이 존재할 수 있는지 어쩐지 잘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완전히 자급자족적인 시스템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동적 시스템은 외부 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외부 동력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자체동력 auto-kineton 이라고 한다. 영원한 자체동력을 무한동력 perpetuum mobile 이라고 한다.
아우토키네톤으로 움직이는 경제는 아우타르키이다. 완전한 자급자족. 무역이 필요 없는 나라. 에너지 독립... 만일 바닷물 속 중수소로 핵융합을 일으키는 기술이 이루어 진다면... 만일 공장에서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전기 값 제로, 쌀 값 제로, 물 값 제로인 사회가 온다면... 그러면 노동과 생산이 필요할까? 그러면 경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경제 없는 경제 즉 완전한 아우타르키... 그곳은 천당일까 지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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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쯤에... 그러니까 거제도 촌놈 영삼이가 세계화를 외치며 갑자기 OECD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고 싶어서 지랄 발광할 무렵... 당시 서울인지 대구인지에서 세계화(globalization)를 주제로 하는 학회 - 컨페런스를 빙자한 칵테일 파티 - 가 열렸다... 나는 그때 한국의 경제학자들에게 도대체 세계(global)와 지역(local)을 나누는 공간의 인식론적 의미가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었다. 남들이 개방경제하자고 열내며 침을 튀길 때 나는 폐쇄경제 아우타르키로 찬물을 끼얹으려 했다... 왜 그때 내가 그곳에서 깽판을 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한국까지 왔다갔다 할 차비가 모자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젊었고 가난했다...
아무튼 세계화를 하겠답시고 영삼이는 벼라별 구석을 다 쑤시고 다녔다. 대학에서는 연구 프로젝트가 늘어났다. 덕택에 해외출장을 빙자한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었고... 사모님들에게 들려질 루이뷔통 백을 사기 위해서 해외명품가격동향을 조사하시는 교수님들의 수도 늘어났다... 심지어 국내에서 정치사찰이나 해먹던 안기부의 007 친구들이 졸지에 이제는 경제전쟁의 시대라면서 파리 피갈의 밤문화 경제를 배우고 가기도 했다... 삼성과 골드스타는 세계의 공항마다 공짜 짐수레를 놔주기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군발이 독재 후진국에서 군기피자 문민 선진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이 "선진국"임을 과시할 수 있는 길은 - 돈벼락 맞은 강남 졸부들이 그렇듯이 - 돈다발을 흔들며 돈자랑하는 것이었다.
외무부와 안기부에서는 해외 민영화(privatization) 사례를 연구했다. 말이 좋아 연구지...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쏟아져 나온 국영기업체를 우리 기업에게 사다주려는 것이었다. 대우의 우중이가 징기스칸의 세계정복이라도 할 것처럼 세계경영을 떠벌이고 그에 장단 맞춰 영삼이는 "국가갱앵"을 떠들었다... 합동결혼의 과대망상 교주 선명이도 외국 로비스트들에게 돈을 뿌려댔다. 경제성이 없었으니 당연히 망해버린 외국 기업들을 왜 대~한민국이 사려고 혈안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외국 것이라면 똥이라도 좋았다. 군발이들에게서 해방된 고급 공무원들의, 특히 - 요즘은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 경제기획원 재무부 쪽의 "엘리트"들은 파워 엘리트들인 만큼 그네들의 파워를 과시할, "뽀다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랬다. 이미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나온 그네들에게 외국이란 일류대학보다 더 일류였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했다. 외국과의 갸냘픈 인연도 그네들 끼리의 (또 그네들의 마눌들 끼리의) 한국 사회에서는 우물안 개고리식 파워를 과시할 수 있는 연줄처럼 보여졌다. 조선시대 문반들이 그랬듯이 그네들은 필연적으로 사대주의자였다. 대한민국의 공복들이 일본 대장성의 관료인 듯 미국 대사관의 재무관인 듯 착각도 들었다. 그네들의 나르시시즘이라는 일류병 앞에서는 나라도 민족도 없었다. 그네들의 나르시시즘은 페티시즘이 되었다...
외국의 똥 냄새는 샤넬 파이브처럼 향기롭게 느껴졌다. 하기야 향수의 원료는 동물의 배설물이라던데... 가끔 그것이 똥이 아니냐고 묻는 순진한 어린이도 있었다. 그러나 졸부 나라의 파워 엘리트들은, "아니! 니들 주제에 언제 외국 가서 똥이라도 퍼 봤어? 다 경제발전 덕택에 이렇게 외국까지 나가서 똥을 푸는 거 아냐?" 라고 했다... 사실 그 말도 그럴 듯 했다...
외국 은행들은 자기 똥을 치워주려는 한국 기업들에게 거의 무제한 돈을 빌려주었다. 그냥 줬어야 되는 게 아니었는지? 남의 돈 받고 남의 똥 치우는 게 아니라 남 한테서 돈까지 빌려서 제 똥도 아니라 남의 똥을 치운다... 뭔가 좀 논리적으로 이상했지만... 영삼이는 그런 게 선진화라며 갱상도 문딩이 똥고집으로 우겨댔다. 돈은 넘쳐 났다. 일부는 똥 치우는데 쓰였고, 일부는 겸사겸사 남의 나라에서 펑펑 써댔다. 똥 되어버린 남의 기업 되살려주려니 설비가 필요했고, 그 설비는 또 그 돈을 빌려준 그 나라에서 사줬다...
근검절약이 미덕이었던 대한민국에는 이제 개미들이 없었다. 모두가 베짱이들이였고 그와 함께 동네방네 가라오께와 룸싸롱이 우후죽순 번져났다... 이제 외국 은행들은 깔아논 판 돈을 슬며시 걷기만 하면 되었다. 그들의 똥은 치워졌고 한국은 잘 살찌워진 국내 기업들을 고스란히 은쟁반에 바쳐 그들에게 상납할 것이었다.
베짱이들의 오르가즘은 서울이 2002년 월드컵 축구 개최지로 선정되었던 1996년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었다... 니뽕과 공동 개최한다는 게 좀 찝찝했지만... 드디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등극한 대한민국을 선진국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라며 할렐루야를 불렀다. 이것이 장로정권 석세스 스토리의 피날레였다... 이너서클에 들어가기 위해 영혼이라도 파는, "아부지 나 대통령 되뿠다!" 출세주의자의 집요한 꿈. 남의 시선 안에서만 내 존재의 가치가 있는 병적인 열등의식... 그리고 얼마 후 영삼이가 부르짓던 세계화의 거품이 터지고 IMF의 찬 바람이 모질게 불어왔다.
모든 사건의 연속이 극도로 정밀한 타이밍이었고 아니면 완벽한 음모의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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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자유"를 떠드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자유"를 수출한답시고 남의 나라를 무력이나 또는 경제력으로 침략하는 선진제국을 싫어합니다... 따라서 "자유무역협정"이란 용어도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역협정"이면 그냥 "무역협정"이지, 왜 거기에 꼭 "자유"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나요? 결국 "자유"가 아니기 때문에 "자유"인 척 보이려고 그럴까요?
무역이든 외교든 협정을 하려면 전세계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평등하게, 공정하게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평화가 아닐까요? 왜 자기네들끼리만 쑥덕쑥덕 비밀협정을 맺으면서 거기에 "자유"란 말을 끼어넣을까요? 차라리 솔직하게 "배타적 쌍방무역협정"이라고 이름 붙이세요.
한미 FTA가 어느 나라에 더 이익이 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미국에 더 이익이 되겠지만, 또 미국이라는 호랑이를 등에 업고 여우짓을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다른 약소국들을 갈취해 먹는데 도움이 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렇게 해먹다가 미국과의 공범으로 찍혀서 미국과 함께 다른 나라들로 부터 왕따당하는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더 손해겠지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 경제적 효과란 사실 계산이 전혀 불가능합니다.
한미 FTA도 여러가지 면에서 잘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일 아고라 정의 포럼 창립 1주년을 맞아 FTA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서울 효창동 백범 기념관에서 오후 두 시에 만납니다. 그곳에서 많은 네티즌들을 뵐 수 있기 바랍니다.
아고라 경제방 898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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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리드미님! 최고!! ^^*
공감 가득 입니다!!
추천하고 댓글도 달고 왔시요~~~!!^&^.
크흐~ 이 분은 왜 이리 글을 잘 쓰고...왜 이리 싫은것도 많은 것입니까? 좋아하는 것은...뭐예요? ㅎㅎㅎ
얼마전 '자유하시게'란 글을 올린적이 있는데...
자유라는 표현을 싫어하신다 하시니 괜시리 내가 뜨끔해지는거 있죠? ㅋ
사이버상에서 표현되는 글들에 자신을 대입시켜 착각이나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가 이에 속하겠지요? 그래도 모처럼 readme님의 아정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좋은건 겉으로 표현을 잘 안하는 속깊은
사랑으로 근엄하고 무서운 아버지같은 그런 모습이여요.
"아정포의 영원한 아버지로~~!" 하면 그 싫어하는 자유를 달라 하시지 않을까요?
궂은일에 항상 총대메 주시고 ...
와아~~~ readme님 너무너무 멋져요~~^^
야근 후, 이제야 보고 찬성 클릭하러 찾아가는데, 아고라 싸이트가 열리지 않네요..ㅠ.ㅠ
readme님~~~ 고맙습니다.~~~~
더 시크해지셨어..더...ㅎㅎㅎ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구요 readme님. 자벌레님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