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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치를 추구하는 수행 분야와 일을 다루는 분야를 말하는데, 여기에 승(僧)을 붙이면, 이판승-사판승이 된다. 흔히 불교계에는 이판과 사판으로 구분을 많이 한다. 참선, 염불, 간경 등 수행을 전문으로 하는 스님을 이판승이라 하고 종무를 전문으로 하는 스님을 사판승이라 한다.
그런데,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로 볼 때, 이런 구분은 옳지 않다. 이판과 사판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이 서로 원융무애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중도이고 부처님이 깨달은 길이다.
화엄십찰로 개산하였다는 가야산 해인사의 법당이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적광전이라 하는데, 이 적광(寂光)도 중도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 마음에 양변의 집착을 비우면 고요한 적(寂)이 되어 지혜의 빛인 광(光)이 난다. 적광이 바로 중도로 존재하는 우리 마음을 말한다. 중도가 부처님 마음인데 그 마음을 적광이라고도 표현한다.
선종에서도 가장 많은 도인을 배출하여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 종단 조계종과 일본에까지 큰 법맥이 전해진 임제종(臨濟宗)에서는 중도를 ‘살활(殺活)’로 표현한다. 양변의 번뇌망상은 죽이고(살), 지혜는 살린다(활)는 것이다. 선도 중도이지 별 다른 세계가 아니다. 부처님이나 조사의 깨달은 마음은 하나다. 중도의 마음이다. 중도의 마음은 일체의 번뇌망상을 여의고 지혜로 밝은 마음이다.
이런 중도의 마음을 조사들은 흔히 ‘운개일출(雲開日出)’로 표현한다. 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번뇌라는 구름이 걷히면 지혜가 나온다. 번뇌를 버리면 지혜가 저절로 나온다. 우리 마음에 욕심과 화, 어리석음을 버리면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대자유인, 영원한 행복인 부처님이라 한다. 우리 범부들은 흔히 ‘비워라’ 하니 무조건 남에게 양보하고 져주는 것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더욱 더 나와 내 것에 집착한다. 그러는 한 행복할 수가 없다. 마음에 집착하는 생각, 분별망상을 놓아버리면 지혜의 빛이 저절로 나온다. 이와같이 번뇌망상을 비우는 마음을 행하는 것이 참선이다.
성철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중도가 부처님이니 중도를 바로 알면 부처님을 봅니다 … 시비선악의 양쪽을 버리고 융합자재한 이 중도실상을 바로 봅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원한 휴전을 하고 절대적 평화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