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떡살[떡본]’의 유래
떡본 또는 떡손 · 병형(餠型)이라고도 하는 떡살은,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누르는 면에 음각 혹은 양각의 문양이 있어서 절편에 찍으면 문양이 아름답게 남게 하는 도구입니다.
사용하는 방법은 적절한 크기로 잘라낸 떡에 물기를 묻혀서 떡살로 도장을 찍듯이 누르면 되는데, 이렇게 찍은 떡은 어느 정도 굳으면 그 문양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떡살은 재질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나눌 수 있는데, 단단한 소나무 · 참나무 · 감나무 · 박달나무 등으로 만드는 나무떡살은 1자 정도의 긴 나무에 4 ~ 6개의 각기 다른 무늬를 새긴 것이며, 사기 · 백자 · 오지 같은 것 등으로 만드는 자기떡살은 대개 보통 5 ~ 11㎝ 정도의 둥근 도장 모양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잡고 꼭 누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궁중에서 쓰던 사기떡살은 고급스러운 백자(白磁)로 만든 것이 많습니다.
떡살의 문양은 주로 부귀(富貴)와 수복(壽福)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 길상(吉祥)무늬를 비롯하여 장수와 해로를 뜻하는 십장생(十長生) · 봉황 · 국수무늬, 잉어 · 벌 · 나비 · 새 · 박쥐 등의 동물무늬와 태극무늬, 빗살 등의 기하학적 무늬, 만(卍)자 등의 불교적인 무늬와 꽃 · 수레바퀴무늬 등 아주 다양합니다.
특히 떡살의 문양은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은 일, 궂은 일, 돌, 회갑 등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했는데, 단옷날의 수리치절편에는 수레무늬, 잔치떡에는 꽃무늬, 사돈이나 친지에게 보내는 떡에는 길상무늬를 찍었습니다.
특히 선물용으로 보내는 떡은 그 문양에 따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떡살의 무늬는 일반적으로 가문에 따라 독특한 문양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문양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 빌려 주지도 않았습니다.
부득이하게 떡살의 문양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할 만큼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었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듯, 우리네는 한번 먹고 나면 없어져 버릴 떡 하나라도 보는 즐거움으로 구미를 돋우었으며,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하기를 즐기던 우리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떡살은, 선조들의 격조 있던 음식문화를 대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