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볼 사람?

<에피소드1>
국어과 박 선생님이 다음 문장을 제시했습니다.
‘달리기는 우리 몸에 유익한 운동이다.’
박 선생님: 위 문장에서 ‘달리기’는 문법적으로 어떤 구실을 하나요?
- 여러 학생이 거수합니다. 그 중 성적이 중간 정도인 영희를 지명합니다. -
영희: 동사입니다.
박 선생님: 그래? 잠깐 생각해 볼까. ‘달리기’는 위 문장에서 중심이 되는 것 같은데…
영희: 아! 주어군요. 선생님.
박 선생님: 그래요. 영희 양이 말한 것처럼 ‘달리기’는 이 문장에서 중심이 되는 주어입니다.
영희: ( ‘선생님, 고맙습니다.’)
<에피소드2>
정 선생님도 다음 문장을 제시합니다.
‘달리기는 우리 몸에 유익한 운동이다.’
정 선생님: 위 문장에서 ‘달리기’는 어떤 구실을 하는지, 아는 사람?
수철: 주어입니다. 선생님.
정 선생님: 맞았어.
<에피소드3>
김 선생님도 다음 문장을 제시합니다.
‘달리기는 우리 몸에 유익한 운동이다.’
김 선생님: 위 문장에서 ‘달리기’는 어떤 구실을 하는지, 말해 볼 사람?
창수: 주어입니다. 선생님.
김 선생님: 그래요. 잘 말해 주었어요. ‘달리기’는 위 문장에서 중심이 되는 주어입니다.
위 에피소드는 수업 시간에 흔히 이루어지는 질문과 응답 장면입니다.
<에피소드1>
박 선생님은 중간 수준인 영희를 지명하여 오답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희는 조금만 더 생각하면 정답을 말할 수 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정답에 접근할 수 있도록 힌트를 줍니다. 그리하여 결국 정답에 이르게 합니다.
이러한 수업 장면은 많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처음엔 정답을 말하지 못했지만 잠깐 더 깊이 생각하여 정답을 말하게 된 영희는 속으로 흐뭇하고도 기쁩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에피소드2>에 등장하는 정 선생님과 <에피소드3>에 등장하는 김 선생님의 문답과정에서 다른 점이 없었나요?
① “아는 사람?”
② “말해 볼 사람?”
①과 ②에 숨겨진 교사의 기본적 자세를 들추어 본다면 편견일지언정 심각한 차이를 찾게 됩니다.
“아는 사람?”
교사는 학생을 선별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는 학생이 있을 테고, 또 모르는 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는 학생’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을, 반성적 사고에 의하여 알게 하려는 것보다는 우선 정답을 맞추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아는 학생’에게 관심을 더 갖게 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입니다. ‘모른 학생’에게는 질책이 따를 것이며, 질책을 받은 학생은 학습의욕저하 뿐만 아니라 적대적 감정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말해 볼 사람?”
교사는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말해 볼 의향이 있는지. 말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학생의 발표의사에 따라 자진응답하게 합니다.
교사들 중에는 기계적으로 응답하게 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합니다. 번호대로, 줄대로, 날짜대로 하는 등 발표 의사와는 관계없이 응답하게 하고는 칭찬 또는 질책을 합니다.
“말해 볼 사람?”
이 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교사의 인간존엄사상까지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
앞서 소개한 기너트의 저서입니다.
기너트는 말합니다.
"교사들은 이론적으로는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고 생각도 다 가지고 있지만, 불행한 일은 생각만으로는 학생들을 교육할 수 없다."
교사들 대부분은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뜻을 받아 주며, 개인차와 개개인의 독특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실천하는 일은 학생을 지도하는 전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과정에서 그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실 현장 교사는 특별한 교수 기술을 지니고 그 소임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2010.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