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오월은 핑크빛 꿈을 꾸는 예비부부들의 계절이다. 여기저기서 새 출발을 알리는 청첩장이 계절을 짐작하게 한다.
결혼식장에 가보면 신랑·신부에 이어 눈길이 가는 곳이 양가 혼주다. 신랑·신부 못지않게 양가 혼주의 의상이 산뜻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은 양복을 입고 여자들은 한결같이 한복을 차려 입는다. 한복만큼 선의 아름다움을 살린 옷도 드물다. 우아하고 정숙한 멋을 풍기는 한복은 예복으로는 안성맞춤인데도 남자들은 한복을 버린다.
대부분 신부 어머니의 옷은 붉은색 계열이고, 신랑 어머니의 옷은 푸른색 계열이다. 대비되는 두 색은 남녀가 음양의 합일치를 이루어 조화롭게 잘 살라는 기원이 담겨있다고 한다. 집안 할머니 말씀으로는 신부의 부모는 잘 키운 딸을 남의 집에 보내야 하는 것이 분해서 붉은색 옷을 입고, 신랑의 부모는 아들을 두어 기세가 등등하고 서슬이 시퍼렇다고 하여 푸른색 옷을 입는다고 한다. 웃자고 하는 소리겠지만, 전혀 근거 없는 말씀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태를 반영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요즘은 한복도 개성에 맞춰 입기를 원하지만, 오래된 관습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관습을 따르자니 개성을 드러내지 못해 유감이고, 무시하자니 왠지 자녀의 앞날에 행여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찜찜하다.
그런데 요즘 한복의 색이 파스텔톤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결 차분해진 한복의 색상에서 세태의 변화가 읽혀진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경계가 옅어지듯, 기세등등하던 신랑쪽에서도 기운이 꺾여 웬만하면 신부쪽을 배려해 혼사 일을 추진한다. 서슬 푸른 시어머니가 아니라 갈수록 며느리의 비위를 맞추는(?) 수준으로 변해간다.
신부쪽에서도 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위를 얻는다는 사고로 바뀌었다. 아니 이제 남녀평등을 넘어서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시대다. 신랑 신부가 나란히 입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은근한 깊은 속정보다 과감하게 남들 앞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고 만족해하는 젊은 세대를 보며 변화된 문화의 흐름을 느껴본다. 이러다 한복 색마저 바뀌지 않을지 모르겠다.
노애경(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