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단위 마을피서가 어려운 상황, 아버님 제안으로 번쩍 눈을 뜨다
원래 8월 둘째주 주말 즈음, 가족단위로 1박2일 일정 정도 피서를 갈까 했다.
장소도 곰배령이나 방태산쪽으로 계획하고 방학을 앞두고 두루 여쭈었는데
시일이 지날수록, 부모님과 아이들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일을 하셔서 시간내기 어려우시거나
지역 특성상 놀러오는 친척들이 있어 어디 가기 곤란하거나,
간다 하더라도 주로 아이만 보낼 수 있는 집이 많았다.
꼭 가족단위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이웃 사이 추억과 정을 쌓는데 피서의 목적을 두었는데
가족 단위로 갈 수 있는 집은 한 두 집 정도밖에 되지 않을 분위기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궁리하고 있던 찰나,
지난주 금요일 바깥놀이하다 가게 된 앞강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 지켜보시던 복기 아버님의 제안.
"선생님, 다음 주 금요일엔 아이들 밥하고 김치같이 반찬 하나씩만 싸오면
여기다 천막치고 고기 구워먹는 건 어떻습니까?
애들 보니까 옆에서 고기 구워먹고 노는데 좀 그러네요."
아버님 제안을 듣고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아, 자연이 가까운 원통이라 가족끼리 강가에 버너에 라면 들고 와서 먹으면 그게 피서라는데
숙박하는 여행을 장기간에 걸쳐 준비한 것도 아닌 상황에 아버님 제안이 혜안처럼 느껴졌다.
# 부모님들께 연락드리기 시작하다
원래 피서 계획에 관심 많으셨던 숙영이 어머니, 아은이 어머니께 먼저 연락드렸다.
숙영이 어머니는 방태산 쪽에 계신 지인이 하는 펜션까지 알아보려던 찰나였다.
전화드리니 아직 안 알아보셨다 하셔서 다행이라 말씀드리고, 지금 상황을 설명드렸다.
부모님 제안이 있었다며 대신 금요일 강가에서 놀 때 이렇게 하면 어떨지 의견을 여쭈었다.
"아, 그것도 좋죠~ 그렇게 하면 일하는 사람들도 갈 수 있고."
아은이 어머니와도 통화했다.
"네, 좋죠. 우리한테 천막 있어요. 안에 모기장도 있는 거에요." 하신다.
세상에, 시작하자마자 천막이 생겼다.
# 본격적으로 상의하며 부탁드리다
8월1일 월요일 오전, 미리 연락드린 복기 아버님과 다인이 할머니께서 배움터에 오셨다.
복기 아버님께 다른 부모님들 반응도 좋다고,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방안이라고 말씀드렸다.
제안하신 복기 아버님께 물놀이를 하며 먹을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품목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미리 써둔 것을 보여드리고 품목을 추가, 정정했다.
다인이네는 1박2일 피서를 간다 하더라도
와룡각 운영하시는 아버지께서 음료수는 본인이 내겠노라 해오셨던 터,
할머니께 아이들과 부모님들 마실 음료수와 컵을 준비하시면 어떠실지 부탁드렸다.
복기 아버님이 아이들 물놀이 할 때 갈증해소에 무슨 음료가 좋은지 추천해주셨고
다인이 할머니께서도 그렇게 알고 흔쾌히 챙기겠노라 하셨다.
아버님 말씀으로 생닭집에 가서 뼈를 발라 달라고 하면 살만 발라주는데,
따로 양념을 만들어 재워두면 닭갈비가 된다 하신다.
복기 아버님께는 아버님 그 요리솜씨를 발휘해달라 부탁드렸다.
"와... 그거 진짜 별미겠어요. 먹고 싶어지네요. 해주세요, 아버님."
아버님과 상의해서 다른 고기와 먹을 것 있는 걸 감안해 준비해오실 양을 결정했다.
# 서로 더 챙기시려는 부모님, 넘치는 복 속에 일한다
평소 낮시간에 아기 보시느라 움직이기 어려운 신영이 어머니는
저녁에 직접 배움터를 찾아오셨다. 고마워라...
필요한 물품 목록들을 보여드리며
"어머니, 부담되지 않는 수준에서 가져오실 것 정하셔요." 했는데
금겹살이라고 부르는 삼겹살에 요즘 그 비싼 상추, 깻잎, 쓰레기봉투까지 챙겨오시겠단다.
(결국 나중에 전화드리니 그 사이 벌써 고기를 주문해놓으셨다 하셨단다.
깻잎, 상추를 양보해달라고 양해 아닌 양해를 구했다)
먼 친정댁 다녀오신 아은이 어머니는 배움터에 들러 물품목록을 보시곤
"큰 건 신영이 엄마가 많이 준비하네요." 하시더니
전화로 말씀하신 천막 외에
아이스박스, 찐 옥수수, 김치, 고추, 마실 물을 챙겨오시겠단다.
다인이네와 아은이네가 친척 사이라,
다인이네가 음료수와 얼음 챙기기로 했고 아은이네는 아이스박스를 챙기시니
서로 연락해보시라 말씀드렸다.
배움터 옆집 부경이네 아버님은 남은 것 있으면 내가 챙기겠노라 하신다.
아은이네가 천막을 빌려주신다고 말씀드리니 요즘은 휴가철이라
당일 오전 일찍, 당신과 가서 자리를 잡아놓자하신다.
아, 철두철미하시다.
불 붙이는 토치도 있고, 4인용 텐트도 있으시다면서
"차 필요하면 말해. 이장님한테 빌려달라 그럼 되지. 동네 애들하고 가족들 가는건데..." 하신다.
아이쿠. 이장님 트럭까지...
부경이 아버님께서 배움터 건물 옆 창고에서
예전에 어르신들이 안 쓰고 챙겨두신 접시, 수저를 꺼내신다.
"이것도 써도 되는거야." 하신다. 배움터는 뭘 준비해야 하나...
아버님께 배움터에서 불피울 화로와 숯은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부모님들 이렇게 많이 준비하시는데 배움터가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냐 하는데
부경이 아버님이 한사코 말리신다.
"에이, 됐어~ 뭐하러 돈 들여. 내가 돌쌓고 망올리고 밑에 불피우면 되는데..."
복기 아버님도 그러시고 부경이 아버님도 그러시니, 결국 지켜보다가 정 안 되면 사기로 했다.
이 정도로 서로 더 챙기려고 하는 분위기니 조심스레 말리는 게 일이다.
벌써 웬만한 것은 거의 다 준비가 되가는 상황이니
늦게 연락이 닿는 부모님이나 나중에 무얼 챙기면 되냐 묻는 분이 민망할까 싶을 정도다.
서울 다녀오실 일이 있어 수요일 오후 되어 배움터에 들린 숙영이네 어머니는
이미 수박 두 통을 부탁드렸는데 물품목록을 살피시고 원래
없던 것도 가져오시려고 한다.
"숙영이 삼촌이 이번에 호프 열었잖아요.
거기 갖다주는 소세지가 있는데, 그것도 구워먹으면 맛있겠더라고요.
제가 그거 챙겨갈게요."
"오후 내 놀다가 아빠들도 늦게 오면 좋죠.
거기 밥은 누가 가져와요? (네, 진현이네가요)
잘됐네. 거기서 아빠들 오면 아예 저녁까지 먹으면 되겠다." 하신다.
이야, 이거 진짜 동네 피서다.
전화로 여쭌 진현이 경주 어머니는 오후에 댁 가까이 한식식당에서 일하시는데
일 마치고 오후 3시쯤 오시겠다며 과일하고 밥을 가져오시겠단다.
"우리 애들이 아침을 방학이라 늦게 먹으니까 그 쯤되면 배고플 거거든요.
제가 밥을 갖고 갈게요, 그럼."
예진이네 어머니는 예진이가 감자 삶아달라 했다 하신다.
예진이네가 농사를 짓는다고 알고 있던 참이라 찐 감자 부탁드리는 김에
"혹시 어머니, 가능하시면 깻잎이나 상추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여쭈니
"음, 깻잎은 제가 가져갈게요. 상추는 좀 상태가 안 좋아서 그렇네요." 하신다.
요즘 그 비싸다는 깻잎, 해결됐다.
수빈이네 어머니께 쌈장을 부탁드리니 기꺼이 준비하겠노라며
"제가 그 전 날, 배움터 지나면서 갖다드릴게요. 볼 일 보고 그 날 오후에 갈게요." 하신다.
거의 준비 안 되는 게 없다.
아이들 편에 보내드릴, 안내문만 따로 한 장 썼다.
20110805_앞강물놀이.hwp
...
아이들 각자 점심(혹은 늦은 아침)먹고 오고
돗자리, 물놀이 도구, 구명조끼는 있으면 가져오라 할 계획이다.
배움터 여름방학 활동 예산이 무색해졌다.
부모님들이 챙기시고도 남는 것을 살폈다가 준비해야 할 정도다.
장비, 재료, 인력이 거의 현지조달형이다.
당신 가족 피서처럼 기꺼이 챙기고 나서는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고맙다.
복기 아버님의 활동 제안도 참 적절했다.
준비기간도 길지 않았지만 믿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부모님들 덕분이다.
아이들도 당연히 각자 집에서 조금씩이라도 챙기는 게 맞는 듯
우리 집에서 혹은 각자라도 무언가 챙겨오려고 했다.
아이라도 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라도 준비하는 그게, 자존심이고 사람염치겠지.
얼마나 고마운지... 돌이켜볼수록 기적같다.
엉성하고 부족할 때 있어도 인정많은 원통 아이들과 부모님 사이에서 일하니
부족한대로 다 메워진다. 이게 복인 것을 진심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