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가 200억원을 들여 ‘해미읍성 및 천주교 성지의 세계적 명소화’를 추진하는 것에 허정 스님(천장사 주지)이 “관광활성화 사업이 아닌 특정종교 사업이다. 사적 116호 해미읍성은 특정종교 성지가 아닌 다양한 종교의 소통과 화합의 장소로 남아야 한다”고 했다.
허정 스님은 지난 20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국민 정서 반하는 천주교 성지화 작업
스님은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천주교와 서산시가 추진 중인 해미읍성 성지화 계획 때문”이라며 “천주교는 전국토에서 성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주교의 성지화‧성인화 작업은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어떤 사람이 기적을 행한다거나 순교를 해도 믿음과 용기를 존경‧칭찬하지 성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회통념에서나 불교에서 정의하는 성인은 지혜와 자비라는 공통의 덕목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역사 덮어쓰기는 그만
천주교에서는 순교했거나 생존시 출중한 덕행으로 명성이 높았던 신자가 사망한 다음, 엄격한 조사를 거쳐 공경할 수 있도록 복자로 선포하고, 신자들이 복자들에게 기도해 기적의 은혜를 입은 경우 교황이 시성식을 통해 성인으로 공포한다. 스님은 “우리나라에는 순교자 103명이 성인이 됐다. 순교자가 있는 곳은 어디고 성지로 불리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해미읍성도 같은 이유로 해미성지로 부른다”고 했다.
스님은 천주교가 사찰인 천진암을 ‘천진암 성지’로 바꾼 것과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처형된 대구 관덕정을 ‘천주교 성지 관덕정 순교기념관’으로 만든 것을 본보기로 들었다.
스님은 “한국 천주교는 성지화 작업을 한다며 땅에 새겨진 타종교 흔적에 천주교 순교사로 ‘덮어쓰기’를 하고 있다. 천주교는 ‘나의 역사 만들기’가 결과적으로는 ‘남의 역사 지우기’라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했다.
해미읍성은 우리 역사의 현장
스님은 “해미읍성은 마을과 이웃한 평지에 축조되어 있고 접근성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해미읍성은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공동체 회복의 장소, 종교화합의 장소로 사용돼야 한다”고 했다.
스님은 “해미읍성 동서남북에는 해미읍성과 같은 역사를 가진 돌로 만든 미륵불이 사방비보로 세워져 있다. 이 가운데 동쪽 산수리 미륵은 30년 전 잃어버린 것을 올해 호암미술관에서 발견해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스님은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시대 축조 돼 유교의 흔적도 많다. 불교와 천주교와 유교의 흔적이 중첩되는 해미읍성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교가 만나게 되는 소통의 장소”라고 했다.
앞선 16일, 다음 아고라에서는 서산 해미읍성을 사방에서 수호하던 미륵불 가운데 하나인 산수리 미륵불을 호암미술관에서 되찾아야 한다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9월 30일까지 5000명 서명을 목표로 진행되는 서명에는 31일 현재 157명이 동참했다. (서명 바로가기)
다음은 허정 스님의 공개편지 전문.
천주교 대전교구 유흥식 교구장님께 | | 어렵게 키보드에 손을 얹습니다. 저는 서산시 고북면에 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천장사 주지 허정(虛靜)입니다. 얼굴도 모르는 분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것은 천주교와 서산시에서 추진하는 해미읍성 성지화 계획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작년에 교황이 다녀가고 나서 올해 그 후속작업을 위하여 198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사업예산으로 문체부에 올려놓고 국회의 승낙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사업계획에는 해미대성당 주변 논 6000평을 매입하여 주차장을 만드는 사업도 있고 구 해미 초등학교에 교황기념관을 짓는 계획도 있습니다. 서산시에서는 종교적인 사업으로 보지 말고 우리지역 관광활성화 사업으로 봐달라고 말하지만 사업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유치하는 과정을 보면 이것은 특정 종교의 사업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천주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전국토의 성지화(聖地化)작업을 벌이고 있고 해미성지는 그 일환일 뿐입니다. 문제는 천주교에서 추진하는 성지화(聖地化) 성인화(聖人化)작업에서 성인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용어인 성인과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국민이 동의 할 수 없는 성지화, 성인화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국어사전에서 성인이란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을 뜻하며 ‘한국고전용어사전’에서는 ‘재덕(才德)이 뛰어나고 사리(事理)에 정통하여 만고(萬古)에 사표(師表)가 될 만한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聖人)의 기준은 어느 정도의 지혜와 자비를 갖추고 있는가에 따라서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하여 누구나 성인(부처)이 될 수 있기에 성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매우 객관적입니다. 즉, 5가지 거친 번뇌중에서 3가지(몸을 나라고 착각하는 것, 고정관념에 대한 집착, 의심)번뇌가 없으면 성인의 첫 번째 단계인 ‘예류자(수다원)’가 됩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사람이 기적을 행한다거나 순교를 당한다거나 하는 것은 그의 믿음과 용기를 존경하고 칭찬하지만 성인으로 불려지지는 못합니다. 사회통념에서나 불교에서 정의하는 성인은 지혜와 자비라는 공통의 덕목을 충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의 성인은 ‘순교하였거나 생존시에 출중한 덕행으로 명성이 높았던 신자가 사망한 다음, 엄격한 조사를 거쳐 공경할 수 있도록 복자(福者)로 선포하고, 신자들이 복자들에게 열심히 기도하여 기적의 은혜를 입은 경우 엄밀히 조사한 뒤 교황이 행하는 시성식(諡聖式)에서 성인으로 공포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103명의 순교자가 성인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순교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고 성지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미성지입니다. 이러한 ‘성인화’작업은 일반국민의 정서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고 국토의 ‘성지화’작업도 1600년 역사를 가진 불교 및 여타 종교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천주교의 ‘국토 성지화 욕망’에 의해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암자 천진암은 천주교 ‘천진암 성지’로 탈바꿈되고 있습니다. 또한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처형된 대구 관덕정에 조성된 천주교 성지‘관덕정 순교기념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천주교의 성지화 작업은 땅에 새겨진 타종교의 흔적에 천주교의 순교사로 ‘덮어쓰기’를 하고 있으며 천주교의 ‘나의 역사 만들기’가 결과적으로는 ‘남의 역사 지우기’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천주교의 성인화 작업의 위험성은 ‘생명의 역사’로 가득차야 할 종교사가 ‘죽음의 역사’로 채색되고,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신앙이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칭송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길로 나아가야할 다종교 사회에서 순교=성인이라는 생각은 위험스러운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주교가 박해를 당한 것은 그 당시 조선의 정치이념과 사회제도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다른 사상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가 지금처럼 조상님께 제사 지내는 유연성을 발휘했다면 아마 박해는 훨씬 덜했을 것입니다. 성인화 작업의 모순점은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드러납니다. 예를들어 지금 대한민국에서 누군가가 북한을 찬양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한다면 국가보안법에 의해 제제를 당하고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박해를 받는 사람을 두고 뒤에 후손들이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존경해야 하겠습니까? 천주교의 성인 만들기가 아무리 종교안에서의 일이라고 변명 한다해도 일상적으로 ‘해미성지’라는 도로 이정표를 걸어놓고 ‘성지로’라는 도로명을 지정하고 ‘교황순례길’이라는 명예도로명을 만들고 ‘교황벽화’를 도로변에 그리고 ‘교황방문도시’라는 입간판을 고속도로 옆에 세우고 관공서에서 ‘해미성지 세계명소화 사업’을 하고 있다면 결코 종교안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천주교가 겉으로 웃는 모습으로 이웃 종교와의 소통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다른 종교의 사찰을 빼앗고 다른 전통의 역사와 문화를 짓밟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천주교인의 선량한 웃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드러내놓고 비판을 하고 불상을 훼손하는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될 뿐입니다. 사적 제116호 해미읍성은 마을과 이웃한 평지에 축조되어 있고 접근성이 편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미읍성은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공동체 회복의 장소, 종교화합의 장소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첫째 해미읍성은 공동체 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광장입니다. 갈수록 개인화 고립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해미읍성 광장은 우리가 잃었던 공동체 문화를 재현하고 계승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읍성은 이순신장군이 근무했던 왜구를 지키는 역사의 현장이며 연등축제, 연날리기, 활쏘기와 같은 민속놀이와 민속공예가 펼쳐지는 체험의 현장이며 농산물 직거래장터, 주막집, 찻집이 있는 소통과 교류의 장소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놀이가 만나는 해미읍성은 지역시민 공동체를 굳건히 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둘째 해미읍성은 종교화합의 장소로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해미읍성 동서남북에는 해미읍성과 같은 역사를 가진 돌로 만든 미륵불이 사방비보(四方裨補)로 세워져 있습니다. 해미읍성을 지키는 미륵불을 사방비보(四方裨補)라고 하는 것은 해미읍성이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원리에 의해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보풍수(裨補風水)란 도선(道詵)국사가 불교의 밀교(密敎)를 바탕으로 체계화 하였고 태조 왕건이 신봉한 사상으로 일반풍수와는 달리 인위적으로 사찰과 탑을 건립해서 지기(地氣)를 보태고(裨) 채우는(補) 풍수사상입니다. 그중에 동쪽 산수리 미륵은 30년전에 잃어버렸는데 금년에 호암미술관 정원에 있다는 제보가 있어 마을 주민들과 불교계는 산수리 미륵을 찾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미읍성은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자 유교를 국교로하는 조선시대에 축조 되었음으로 유교의 흔적도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와 천주교와 유교의 흔적이 중첩되는 해미읍성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교가 만나게 되는 소통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해미읍성은 특정종교의 성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교의 소통과 화합의 장소로 남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서나 지역관광활성화를 위해서 바람직합니다. 교구장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0년 ‘쇄신과 화해’라는 참회의식에서 "우리 교회는, 세계 정세에 어둡던 박해 시대에, 외세에 힘입어 신앙의 자유를 얻고 교회를 지키고자 한 적도 있었으며…우리 교회는 다종교 사회인 우리 나라 안에서 다른 종교가 지닌 정신 문화적 가치와 사회 윤리적 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잘못도 고백합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한 고백이 국민과 타종교인을 속이는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주십시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입니다. 교구장님!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드리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적어 보았습니다. 모든 종교가 자신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불교도 불교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있는 것들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안한 해미읍성의 이용방향은 우리와 시민의 행복을 위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관점에서 드린 말씀이고 종교간의 화합을 위해서 올린 글입니다. 잘 살펴보시고 지혜롭게 판단하시어 공존과 평화의 길을 가는 동반자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2015년 7월 20일 연암산 천장사 허정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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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cetana@gmail.com] ---------------------------- 작년 교황방문후 올해 서산시는 198억(혹은 513억)의 예산으로 향후 3년간 기념관,광장등 해미성지 세계명소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서산시가 주최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천주교 대전교구 차원에서 깊숙히 관여하고 있기에 "대전교구 유흥식 교구장님께"라는 공개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해미읍성, 특정종교의 성지 되어서는 안 돼”-불교포커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73973 '해미성지 명소화’ 논란 불교계, “여러 종교 화합 장소 돼야”-카톨릭뉴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045 “해미읍성, 종교화합 장소로 남아야”… 천주교 성지 사업에 불교계 지적-천지일보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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