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노래운동 Nuevo Cancionero Argentino은 1960년대 페론 정부의 민족음악 보호정책 덕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라디오 방송은 아르헨티나 작곡가의 음악이나 전통 민속음악을 50% 이상 내보내도록 의무가 부과되었고, 아르헨티나의 누에바 깐시온은 정통성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페론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아르헨티나의 노래운동도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70년대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정치적 저항성을 담게 되었고, 군부에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실종된 다수의 민중을 대변하는 노래로 변모했다.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의 어머니 메르세데스 소사 Mercedes Sosa는 1935년 7월 5일 아르헨티나 북서부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방송국에서 개최한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수줍음이 너무 많아 무대에 올라서도 고작 서너 곡밖에 부르지 못했어요. 나는 이런 소심함을 극복하고 관객과 호흡하려고 애썼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노래 자체를 즐겁게 하고싶었어요. 대중의 덕택으로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은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로선 뚜꾸만이나 그밖의 어떤 곳에서도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소사의 음악은 칠레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의 선봉 비올레따 빠라(Violetta Parra)와 누에바 깐씨온의 선구자 유빵끼 등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 강력한 저항 음악의 출현을 예고했던 누에바 깐시온 운동에 크게 영향받았다. 그녀는 1966년 아르헨티나 코스킨(Cosquin) 페스티발 우승에 이어, 필립스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지명도를 높이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굴곡진 현대사는 소사의 노래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아르헨티나 민중의 연인인 에비타가 사망한 후, 망명객이 되었던 페론이 재집권하지만 7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곧바로 페론의 두번째 부인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만, 1976년 다시 군부쿠데타가 발생하고 만다. 군사정권은 반정부 세력에 해당되는 페론 지지자와 좌익 등을 탄압한다. 군부 집권 초기 1년간 수천 명이 실종되었고, 더러운 전쟁 La Guerra Sucia이라고 불리는 1976?83년 7년 동안에는 9천~1만5천 여명이 행방불명되었다. 한국에 민가협 어머니들의 수요 집회가 있듯이, 아르헨티나에서도 이 기간에 실종된 사람을 찾기 위해 붉은 스카프를 두른 〈5월광장 어머니회〉의 목요집회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소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독재와 폭력에 저항하는 노래로 아르헨티나 민중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소사의 노래의 커다란 인기는 곧 군부에게 걸림돌이 되고, 소사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감시당한다. 마침내 소사는 1975년에 체포되어, 죽음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1979년에 고국 아르헨티나를 떠나 망명의 길을 떠났다. (망명 전 남편의 죽음도 심한 고통이었다.)
"이런 정치적인 문제들은 극복할 수 있어요. 정말 이겨내기 힘든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입니다.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통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요."
망명자의 신분이 된 후에는 1979년부터 1982년까지 존 바에즈, 밥 딜런, 해리 벨라폰테 등 포크가수들과 전쟁의 만행을 고발하는 콘서트를 열고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 자유와 평화를 향해 한 목소리를 냈다. 이런 정치적 행동으로 인해 소사는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로 일컬어지고있다.
"난 1979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라디오와 TV에서 내 노래를 내보내지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같은 언어권인 마드리드로 갔던 거예요. 망명은 가장 처참한 형벌입니다. 누군가 한 개인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대중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그만큼 강해져야만 한다는 거죠."
하지만 유럽 망명기간 동안 심한 심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소사의 음악적 역량은 보다 원숙해졌다. 결과적으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 2월, 군정종식과 더불어 3년간 국외추방을 당했던 소사는 고국으로 돌아와 유빵끼나 록 가수 피토 빠에스Fito Paez 같은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인권을 위한 투쟁과 라틴 아메리카의 독자적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는, 그녀를 누에바 깐씨온 최고의 해석자 반열에 올려놓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전세계 민중을 위해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건 나를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니까요. 노래는 변합니다. 투쟁과 단결의 노래도 있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호소하는 것도 있죠. 내가 1982년 아르헨티나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대 위에서 국민들에게 새롭게 표현해야 할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건 국민들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어요. 왜냐구요?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게 투쟁이거든요. 아니 라틴 아메리카에 산다는 게 그렇죠. 나는 국민들에게 무슨 문제제기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사람들이 소사의 노래가 정치적 이슈로부터 멀어졌다고 말했을 때, 소사는 변화를 인정하며 "난 급격하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 노래하는 방식의 변화죠. 전세계로 열린 많은 길이 있잖아요. 그럼 내가 바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잖아요.
2000년 앨범 <미사 크리오야Misa Criolla>로 그래미 베스트 포크 수상
참고 “Rhythm Planet: The Great Music Makers”, Tom Schnabel著, Universe Publishing, 1998
- Mercedes Sosa(선곡)
1. Cancion Con Todos(모두가 부르는 노래) 2. Cancion y Huayno(깐시온과 와이뇨) 와이뇨는 폴크로레 형식 가운데 하나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무곡이다. 연주자마다 즉흥성을 발휘하고 변주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매력을 갖고있다.(또 어떤 음악이 그렇지 않은 게 있겠냐만..) 3. Caruso 4. Chacarera de las piedras(돌무덤의 차카레라) 차카레라는 아르헨티나 북동부 지역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Santiago del Estero의 폴크로레 리듬이다. 삼바zamba와 함께 대표적인 보통 빠르기의 서정가요이다.(느린 곡도 많지만, 그룹의 경우 변주가 많다.) 5. Cancion del derrumbe indio(준령의 인디오의 노래) 6. De Alguna Manera (어떤 스타일) 7. Drume Negrito (잘자라, 인디오 아기야. 원곡: 아따우알빠 유빵끼) 8. El tuerto y los ciegos(애꾸눈과 장님들) -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와 듀엣 9. Gracias A La Vida - 존 바에즈Joan Baez와 듀엣 10. Hermano, Dame Tu Mano(형제, 자매들아. 서로 손을 잡고) 11. Almas en el viento(알마스의 바람) 12. Inconciente Colectivo - 찰리 가르시아와 듀엣 13. La Belleza(미인) 14. Los Hermanos(겨레) 15. Te recuerdo Amanda(원곡: 빅토르 하라) 16. Todo Cambia(모든 것은 변하네, 작곡: Julio Numhauser)
Cambia lo superficial Cambia tambien lo profundo Cambia el modo de pensar Cambia todo en este mundo.
Cambia el clima con los anos Cambia el pastor su rebaño Y asi como todo cambia Que yo cambie no es extraño. *Cambia, todo cambia
Cambia, todo cambia.
Cambia el sol en su carrera Cuando la noche subsiste Cambia la planta y se viste De verde la primavera.
Cambia el pelaje la fiera Cambia el cabello el anciano Y asi como todo cambia Que yo cambie no es extraño.
Pero no cambia mi amor Por mas lejos que me encuentre Ni el recuerdo, ni el dolor De mi pueblo y de mi gente.
Y lo que cambió ayer Tendra que cambiar manaña Asi como cambio yo En esta tierra lejana.
*반복
Pero no cambia mi amor Por mas lejos que me encuentre Ni el recuerdo, ni el dolor De mi pueblo y de mi gente.
*반복
피상적인 것도 변하고 심오한 것 역시 변하네 생각의 방법도 변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네
해가 가면서 기후도 변하고 양치기의 가축떼도 변하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것처럼 내가 변해간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변하네, 모든 것이 변하네 변하네, 모든 것이 변하네
밤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태양의 길은 변하네 식물들도 변해 봄에는 초록이 되네
맹수의 털도 변하고 늙은이의 머리칼도 변하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는 것처럼 내가 변해간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그러나 내 사랑은 변치 않네 난 내 민족과 내 사람들로부터 가장 멀리 있지만 그 기억도 그 고통도 변하지 않네
어제 변한 것들은 내일도 변할 것이네 이 멀리 떨어진 땅에서 내가 그렇게 변해가는 것처럼
변하네, 모든 것이 변하네 변하네, 모든 것이 변하네
그러나 내 사랑은 변치 않네 난 내 민죽과 내 사람들로부터 가장 멀리 있지만 그 기억도 그 고통도 변하지 않네
변하네, 모든 것이 변하네 변하네, 모든 것이 변하네
17. Unicornio(원곡: 실비오 로드리게스) 18. Vientos del Alma 19. Volver a Los 17(원곡: 비올레따 빠라, 밀톤 나시멘투Milton Nascimento와 듀엣) 20. La Peregrinacion(순례의 밤) 2000년 앨범[Misa Crio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