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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목회하였던 무의탁노인공동체 예수마을의 어르신들
추수감사절, 성탄절 절기에 교회의 온정을 기다린다.
신학생 시절 봉사하였던 성주 소망원, 양로원과 육아원이 함께 있었던 곳에도
구정, 추석이면 식구들은 세상의 온기를 기대한다.
시설에 수용된 자들 역시 사회적으로 기쁨이 있는 날에는 어떤 기대감이 있고 그 기대에 소수의 교회와 사람들이 부응해주어 감사하였다.
요즘 같은 여름 휴가철에 시설생활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가족 단위 피서, 국내의 산과 계곡, 바다 해외 유명한 곳
이러한 동정이 실시간 TV를 통해서 전해진다.
시설수용자들 역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현실에 대해 위축된다.
이들에게도 사회문화적인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사회요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다.
이번 8월4일(월)-6일(수) 우리 교회는 이런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베풀고자 한다.
논산 애육원 학생 35명을 초청 안동 양반문화탐방과 경주 신라유적관광 계획을 준비 중에 있다.
연초 제직회에서 미리 언급되었던 것으로 이는 저의 개인적인 애육원 아이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저가 논산 예수마을의 원목으로 시무할 때 애육원 학생들이
2주에 한번 와서 농사일과 어르신들 목욕, 청소 등의 일들을 도와주었다.
농사 약 3000평을 지을 때였는데 농사라고는 한 번도 안지어본 저가
농기구 하나 없이 혼자 경작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땅이었다.
학생들이 와서 논밭 정리 도와주고 목욕시켜드리고 청소해 주어서 근근이 예수마을을 꾸려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은혜를 갚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이라 생각하지만 보다 넓게 생각한다면
①가족과 친척으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들의 심령을 회복시키는 온정적 차원
②충청도 백제문화권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경상도 안동문화권 방문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다.
이는 경상도에 대한 이해와 우호적 감정을 가지게 되어 장차 지역감정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③형편이 되면 겨울이나 내년에 우리 아이들이 논산을 방문하여
공주, 부여 등의 충청권의 백제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함으로 상부상조의 계기가 될 것이다.
고아를 돕는 것을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성경(마25:31-46)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 하시며
지극히 작은 자인 고아 한 아이에게 잘하는 것이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성경에는
[신14:29]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런 말씀을 주신 성경적인 배경을 알아보자.
성경 역사의 첫 시대는 주전 1850년 - 1150년까지로 주로 족장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가 배경이 된다. 이 시대의 사회구조는 부족사회이고 그 생활양식은 반유목(半遊牧)의 형태였다.
부족사회의 특성
당시는 부족사회의 형태를 띠었고 부족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개인보다 단체 혹은 무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활환경이 사막 아니면 스텝 지역이기 때문에 부족의 일치단결은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사막에서 개인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조건은 그가 소유하는 물질적인 사유재산이 아니라 개인이 얼마만큼 자기가 속해 있는 무리와 강한 유대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부족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족이다. 여기서의 가족이라는 낱말은 오늘날의 핵가족이 아니라 일가친척을 모두 포함하는 대가족 곧, 종가를 포함하는 한국의 가문을 연상케 한다. 가장은 이러한 사회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가장은 조상의 전통을 유지 보존하며 자녀의 결혼을 주관하고, 가장의 축복권이 인정되었다. 성경에서 이 같은 가장의 전형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같은 족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고 가족은 그 보다 좀 더 큰 단위인 씨족에 소속되어있다. 씨족의 특성은 언제나 동일한 장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씨족을 구성하는 여러 가족들은 보통 씨족의 테두리 안에서 결혼하기 때문에 모두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 또 씨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동재산과 공동과업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유재산은 별로 의미가 없다. 설령 의미가 있다고 해도 사유재산의 최종적인 권리는 씨족에게 있다. 여러 씨족들이 모두 한명의 공동 선조 휘하에 들어갈 때 부족이 된다. 부족을 구성하는 씨족들은 같은 장소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흩어져 살며 상호독립적인 단위이다. 반대로 가족은 반드시 일정한 장소에 살고 있는 씨족에 예속되어 있으며, 한 개인은 반드시 가족공동체 안에 예속되어 있을 때 생존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 시대 사회구조에서 가족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회적인 단위이다. 또 가족과 씨족의 가장 큰 관심은 많은 후손들이다. 가족 혹은 씨족의 세력은 그 구성원의 숫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반유목민적 생활양식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작은 가축인 양과 염소를 생계수단으로 목축을 하였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샘과 목초지를 찾아 방랑하던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계절과 목초지의 조건에 따라 어떤 장소에서는 장기체류를 하기도 하였다. 이때 봄이 오면 농사를 지었는데 고작해야 보리농사 정도였다. 출애굽하던 백성들은 사막의 악조건 때문에 농사를 짓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하였다.
매 가구는 사유재산으로 가축 떼를 소유하였으나, 목초지와 샘은 어디까지나 씨족의 공동소유였다. 농사를 지을 경우에 농경지는 모든 가족들이 골고루 나누어가졌다. 그러나 농토의 최종 소유권은 가족에 있지 않고 씨족에 있었다.
이 같은 생활양식과 사회조직 안에서 사회계층의 차이는 있을 수 없으며 빈부의 차이는 실제로 불가능하였다. 씨족 전체가 가난하거나 전체가 부자였다. 씨족 안에서 사회적 계층의 차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을 밀접히 연결하는 연대의식과 공동운명의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빈곤과 착취의 희생물이 되는 가난한 이들은 개인의 안정을 전적으로 보장하는 가족과의 유대가 끊긴 자들이다. 성경에는 이 같은 가난한 사람들로 과부, 고아, 이민자와 이방인들을 언급한다.
1) 과부
과부가 당하던 고난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알 필요가 있다. 정상적으로 여자는 자기 아버지의 집에 속해 있거나 결혼 후에는 남편의 집에 속하게 된다. 유목민적인 환경에서 여성의 역할은 주로 가사를 돌보며 많은 노동을 부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에게 의식주의 안정을 제공하는 것은 그녀의 아버지 혹은 남편이었다. 여인이 남편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의 안정의 상실, 나아가 생존수단의 상실을 의미한다. 사막의 거친 환경에서 여인은 남자 없이 자신의 안정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부를 억압하지 말고 특별한 정성을 기울려 도와주라고 한다.(출22:21)
2) 고아
과부 못지않게 고아도 빈곤과 착취의 희생물이었다. 육친을 잃어 보호자가 없게 된 어린이가 쉽게 남의 손아귀에서 고난을 당하기 때문이다. 고아는 보통 씨족의 다른 성원에 의해서 보호를 받게 된다. 흔히 양친을 잃은 고아는 씨족의 다른 가족에 입양하였다. 고아는 어차피 과부와 마찬가지로 사막의 악조건 때문에 가족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아는 씨족의 특수한 배려와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3) 이민자
그들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이 속해 있던 부족에게서 떠나 온 자이다. 그는 다른 부족에게 가서 살므로 쉽게 착취와 압박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추방된 자, 망명한 자, 자연의 참변을 당한 자, 전쟁으로 부족을 떠나 온 자들이다. 사막과 부족의 관습은 이들을 보호하였다. 나그네로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은 사막의 환대법에 의해 보호 받았다.(창18:3)
가나안 정착 이전의 사회조직과 생활양식은 근본적으로 사막의 거친 환경을 전제로 하는 유목민의 세계이다. 유목민은 이 같은 상황에서 상호보호의 책임감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혈연관계를 기초로 한 이들 씨족과 부족들의 연대의식과 책임감은 혈연관계에서 이탈한 자들, 즉 가난한 자들을 사회적 공동책임 하에 보호하였다. 과부와 고아, 이민자는 사회에서 소외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가나안 정착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상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사회였다. 그리고 사회적 불의나 불평등은 사막의 거친 환경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어떤 씨족이나 부족 안에서 무리 전체가 불안정이나 안정을 누리게 되며 또한 일개인이 재산을 독점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무리의 연대의식과 일체감 때문에 빈자와 부자의 출현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가나안 정착기
여호수아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부족이 골고루 분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8:1-10) 씨족들은 주어진 땅에서 아직 주민이 없던 땅을 개간해가며 평화적으로 정착하였다. 때로 그들은 전쟁을 하며 정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정착 한 후에는 씨족들은 그 구성원인 가족들에게 땅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유목민들은 사막에서 거처하던 천막을 떠나 가옥을 짓고 살게 되었으며, 점차로 목동의 신분을 벗어나 농사꾼과 고정된 목장을 가진 가축사육자들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사막의 유목민의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토지의 소유권은 씨족이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도록 하였다. 부득이 다른 씨족에게 팔게 되었을 경우에 그 가족이 속한 씨족은 팔린 토지를 다시 사들일 권리가 있었다. 땅의 소유권은 개인 가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씨족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의 편중현상이 없었던 평등한 사회가 도시화 현상과 왕정제도에 의해 파괴되면서 부의 편중과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었다.
도시화 현상은 개인이 목축이나 농사로 만족하지 않고 장인이 되어 기업을 시작하게 된다. 금석세련공, 직조공, 빵굽는 자, 도기공 등으로써 새로 출현한 이 직종들은 상호유대를 맺고 교환경제를 출현시킨다. 교환경제의 첫 단계는 물물교환으로서 예를 들면 모직물과 가축의 교환 같은 형태이다.
그러나 사회변혁을 일으킨 더 큰 요인은 군주체제의 출현이었다.
왕정체제가 들어서면서 왕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신, 궁녀, 상비군의 유지에 필요한 제 경비가 막대하게 들었고 이를 위해 각종 세금을 거두어 들였고 토지의 사유화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전통사회체제가 붕괴되는 동시에 본격적인 부의 불균형과 빈부의 격차가 생겨나고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난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아모스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이 이런 사회적인 불의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는 모습이 선지서 곳곳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요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잘 돌보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시68:5]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사1:17]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렘7: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성경은 신구약을 막론하고 가난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도 이웃 사랑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논산의 애육원 아이들을 초대한다.
우리가 행하는 이번 일로 인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주님만 아시고 지금도 주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이끌어 가신다.
이일을 통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웨슬리에게 영향을 끼친 익명의 성도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원래 영국국교인 성공회의 목사였다. 그는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32세에 미대륙의 인디언 선교에 나섰지만 2년 만에 참담한 실패를 하고 깊은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 영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돌아오는 그가 탄 배가 큰 폭풍을 만나 모든 승객이 죽음을 앞 둔 절박한 시간, 그 역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에 탄 몇 명의 젊은이들이 그 폭풍의 와중에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그는 보았다. 그들은 종교개혁자 존 후스의 신앙을 계승하는 모라비안 형제단원들이었다. 그는 거기서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혔다. 아니 저들은 죽음의 와중에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인가? 그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이 날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신앙적인 경험들을 하면서 마침내 감리교를 창시하게 된다. 그가 창시한 감리교는 오늘날 전세계에 많은 교회와 성도를 가진 정통 교단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웨슬리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폭풍 속에서 웨슬리가 만났던 모라비안 형제단원의 이름이 역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땅에서 감리교라는 큰 교단과 웨슬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을 만든 계기를 만들어주었던 그들의 이름을 우리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서는 날, 그 위대한 종들이 누구였는지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폭풍 속에서 태연히 기도하였던 그들은 그 날 자신들의 행동이 웨슬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웨슬리에 의해 감리교가 창시될 것이라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의 작은 삶을 통하여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났는지를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이번에 만날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에 따라 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아침 밥해주고 점심도시락 사준 아이가 나중 어떻게 되어서 무엇을 할지 우리는 지금은 알 수 없으나 이다음 천국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때 주님은 여러분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며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할 것이다. 이다음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 되어서 칭찬 받을 자, 자손이 축복을 받을 자가 나올 것이다.
당장 어떤 결과를 기대하지는 말자.
그러나 이런 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교회와는 다소 거리가 먼 곳에 사는 노순희 집사,
동네 반장인 슈퍼 아주머니가 행복한교회가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하여 긍지를 가졌다고 한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우리 교회와 여러분이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시다.
언젠가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
모든 자들이 주안에서 빈부귀천이나 강함과 약함이 없이 함께 사는 좋은 날이 올 때를 기대하며 삽시다.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 이웃과 형제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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