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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요절 :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기도 : 성령님!!! 이 시간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제목 : 영광스러운 교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성복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지 방향을 잡으시고 어떠한 신앙의 모습을 하나님께 보여야 하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다같이 22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말씀을 들은 남편들은 쌍수를 들며 아멘 아내들은 기겁을 하며 노멘 할 것입니다. 사실 아내 된 성도들이 단순하게 말씀에 순종해서 주님께 순종하듯 남편에게 순종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내들은 말합니다. 남편이 예수님 같으면 복종하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복종할 수 없어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님 같은 남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논리대로 한다면 교회는 불순종이 가득 찰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문제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서 기인합니다. 이 불순종은 옛사람의 행실입니다. 무죄했던 하와가 왜 타락했습니까? 연단 받은 의지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훈련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3월 30일자 SBS 뉴스에 한 해 이혼하는 부부가 10만 쌍이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 성도의 이혼이 얼마나 많을까요? 최근 농구 선수 서장훈과 아나운서 오정연 부부가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진다는 뉴스가 핫 이슈입니다.
저도 부부로 살면서 사실 속으로 몇 번은 이혼을 결심했고 아내에게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붙잡아 주시는 은혜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용운의 시 복종을 보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僕從)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오랜 전에 좋아했던 시인데 나중에 설교할 때 예화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 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면 위의 시와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함과 행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요즘 부인 따로 애인 따로인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모르기 때문에 잠시 잠깐의 쾌락을 즐기며 거룩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이혼 했을 때 문제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 상당수가 생계를 걱정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요즘은 요한 웨슬리의 부인 바질 여사와 같은 분이 많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완덕의 경지까지 가신 분이고 그래서 성경의 핵심 진리 성화된 성도들의 생애에도 나오시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도 출판될 정도로 훌륭하신데 포악하고 질투심 많은 아내에게 머리 채를 잡혀 머리가 한 움큼 뽑힐 정도로 노년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저도 아내에게 10년이 넘도록 혹독하고 처절한 무시와 냉대를 당하면서 아내의 이름을 최금옥에서 최순종으로 바꿔야 한다는 영감이 자동으로 생겼습니다. 바라건대 아내 된 분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는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아내들이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까?
다같이 23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하나님께서 남자를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후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 후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3장 16절을 보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결국 창조적 질서와 하나님 말씀 때문에 아내들이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직책이나 권세를 철저하게 지키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한 질서가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월권을 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와 행복이 영원토록 유지되는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빛과 생명의 근원 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을 보면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2장 1절을 보면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없는 교회와 천국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사실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대환난 진행과정 보십시오. 예수님은 대환난 때 사용될 재료와 일꾼들을 준비하시기 위해 인을 떼시고 네 생물은 인을 떼시는 예수님을 도와드리고 천사들은 나팔을 불고 대접을 쏟는 등 대환난을 집행합니다. 이와 같이 주인과 종은 권세와 임무가 다르므로 예수님과 네 생물과 천사들이 하는 일은 각각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인구를 계수할 때 유아와 여인 그리고 레위인은 계수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7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라고 했고 민수기 2장 33절을 보면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고 하나님께서 레위인의 기업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신 10:9)
동네에 아들 양산하보다 한 살 많은 김태산 어린이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없이 자라다 보니 제가 아버지처럼 대해 주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아들이 시기 낼 정도로 저를 아버지로 자주 부르며 따릅니다. 성복교회도 하루 속히 담임 교역자가 확정 되어 질서와 순종을 통한 행복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아내들이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는 것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다같이 24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여기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한계시록 14장 4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대표격인 144000의 교회시대 이기신 분들의 삶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범사에 순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결(純潔)이 신앙생활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정욕과 죄성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마음과 행실을 철저히 참회하고 꾸준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순결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남녀간의 순결은 영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잘 지켜야 될 것입니다.
둘째는 범사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順從)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영웅적으로 순종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괴로움을 인내해야만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를 온전히 버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을 잘하는 사람은 빠르게 성장됩니다. 성령님께서 순종을 잘하는 영혼 속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십니다.
또한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란 의미는 이와 같이 교회시대의 이기신분들 144000처럼 범사에 순결과 순종의 삶을 아내들이 남편에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제3수도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이 두 가지 점에서 큰 유익을 얻고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확실히 순결이 신앙 생활의 기초여서인지 마음의 순결과 함께 육체의 순결이 동행하면서 진보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순종은 마음 고생이 심하게 수반되는 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금번에도 십자가도보순례에 로마 군인을 시키면 어쩌나 벌써부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2년 전에 로마 군인이 성령 충만했는데 지금은 그때 어떻게 했나 생각이 들어서 기도는 하고 있지만 참으로 순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순종의 축복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같이 25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들은 아내들을 사랑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편들이 아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예수님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첫째,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크게 세 차례의 시련과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30세가 되기 전 태어나실 때부터 세례 받으실 때까지 세 차례의 큰 시련을 당하셨습니다. 첫 번째 큰 시련은 무엇입니까?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신 것입니다(마 2:13). 어려서부터 타국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련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당하셨습니다.
또한 세 차례의 큰 시험을 감당하셨습니다. 열두 사도가 바로 추격 받을 때 예수님께서는 허화시를 통과하셨고, 열두 제자가 아말렉 군대와 싸우면서 두 번째 연단과정을 통과할 때 예수님께서는 의혹성을 통과하셨고, 제자들이 세 번째 연단 받을 때는 미지를 통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인내와 온유 그리고 겸손 등 사랑의 본이 되셨습니다.
둘째, 여호와와 아사셀의 속죄 희생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시면서 큰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아사셀을 위하여 버림받는 속죄제물의 사명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때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단 한 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후에 피 한 방울 남김 없이 흘려주시고 죽으신 것은 여호와를 위한 속죄제물의 사명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사순절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십자가 도보 순례를 하시면서 주님 가신 길 따라 낮은 마음으로 한걸음씩 걸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있는 처소에서 낮은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시겠습니다. 좁은 문 좁은 길 끝에서 영광의 주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같이 26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려면 우리의 행실을 정결케 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첫 번째가 25절에서 말한 어린 양의 피(계 7:14) 입니다. 둘째와 셋째가 본문의 맑은 물 되신 생수와 같은 성령님(겔 36:25)과 빛에 대한 말씀(요15:3, 17:17; 엡5:26)입니다. 그리고 넷째가 연단 받을 수 있는 환경(단 12:10) 마지막으로 다섯째가 순종하는 의지(벧전 1:22)라는 것입니다.
점점 상번제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밝은 빛 된 진리를 통해 죄성과 정욕에 물든 삶은 이제 쉽게 분별을 하지만 값 싼 입술의 고백으로 끝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양희근 목사님이 결혼식 피로연 뷔페에 갔는데 사순절을 의식하면서 처음에는 일식 삼찬의 회칙을 따라 승리하겠노라고 결심했답니다. 그런데 먹어서는 안 되는 고기류 등이 많아 먹을 만한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 둘 양보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처음 결심이 쉽게 깨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한 끼 내지는 하루 금식을 했을 텐데 지금은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목사님은 기내에서 음식이 나왔는데 고기 반찬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방울 토마토만 하나 먹고 고기는 먹지 않음으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최근에는 아예 점심 간식을 따로 챙겨 놓고 마음 편하게 먹고 있습니다. 사실 회칙에 간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괜찮긴 하지만 일부러 챙겨서 먹는 자신을 보고도 상번제 드리지 못하는 연약함을 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 상번제가 회복되는 한 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같이 27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그럼 과연 어떤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교회 이름이 영광스러운 교회이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큰 믿음 교회나 온누리 교회처럼 많은 사역을 감당하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예수중심교회나 성락교회처럼 많은 권능을 행하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여의도 순복음교회나 명성교회나 연세중앙교회처럼 교회가 부흥되어 건물이 올라가고 성도들이 많아지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이런 것들도 영광스러운 교회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애굽의 수치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수치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5장 8-9을 보면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은 이 세상을 상징하는데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수치스러운 것이 무엇일까요? 학벌이 부족하거나 지식이 모자라거나 가난하거나 가문이 나쁘거나 못생겼거나 질병에 걸렸거나 세상적인 행복의 조건들이 없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인간의 심령과 육체 속에 뿌리 박힌 죄성 때문에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우다’는 헬라어 ‘파리스테미’인데 ‘옆에 또는 가까이 두다, 선물하다, 내놓다, 제공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데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우리 이 모습 그대로 옆에 가까이 두고 영원토록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의 핵심 진리를 듣기 전 영광스러운 교회에 대해 2000년경부터 느헤미야 2장 17절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를 붙잡고 다시 수치를 받지 않는데 초점을 맞추며 살아왔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회복과 부흥이었습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본이 되는 방법 밖에 없고 부흥을 위해서는 충성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지금까지 기도하며 달려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설 때에 너무나 냄새 나고 부끄러운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의 영광스러움을 보기 위해 간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니엘도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각국에서 수욕을 입은 이유에 대해서 다니엘서 9장에서 하나님께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여러 번 언급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7절에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느헤미야 1장 6-7절을 보면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느헤미야 1장 11절을 보면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었느니라”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교회는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익은 열매가 된 성도들입니다. 사실 교회 전체적으로 볼 때 교회시대나 천년왕국은 주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시대의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천년왕국 성도들 안에도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광스러운 교회는 영원한 천국 즉 신천지가 되었을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저는 경험이 없지만 많은 분들이 K선생님을 통해서 익은 열매 된 성도로부터 나오는 온유와 겸손 그리고 사랑을 느끼면서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영계의 태양 되신 주님께서도 구약 시대의 이기신 분들 24장로와 교회시대의 이기신분들 144000의 보좌들을 주님의 보좌 가까이 두신 이유도 그분들은 영광스러운 교회로 옆에 가까이 두고 싶은 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같이 28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아내 사랑을 정욕적인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아내 사랑이 자기 사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옛사람의 행실 즉 자기 중심적인 행실을 사랑하며 살아갑니까? 하루 세끼 시간을 정해 놓고 그것도 모자라 참, 간식, 야식, 특식 등 식욕을 얼마나 만족시키며 살아갑니까? 이와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다같이 29-30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우리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즉 먹어 주고 자 주고 씻어 주고 마음과 생각을 즐겁게 하는 등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얼마나 자신의 정욕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육체도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야 스스로 보호하듯이 우리의 신앙도 영적으로 성장해서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이 되어 스스로를 죄성과 정욕 그리고 결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환난은 이런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이 없이는 통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여 있으면 군중 심리에 의해 잘 할 수 있어도 혼자 있을 때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약하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정욕과 죄성의 세력이 막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밝은 빛 공동체에 재속 수도회를 설립하게 하시어 이제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성무일과 중심으로 어디서든지 절제와 회개 그리고 인내의 삶을 살게 하신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제3수도회에 입회할 때 수도회보다도 성무일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혼자서 수도 비슷하게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환난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이 되어야 함을 알지만 스스로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수도회라는 틀도 주셔서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수도자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도 어디에 있든지 자신을 보양할 수 있는 은혜가 주님으로부터 공급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같이 31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창세기 2장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과 같은 말씀으로서 결혼식 주례 때 자주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창세기 12장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도록 했던 것처럼 부모를 떠나라는 것은 영적인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그 후 세 차례 연단 과정을 통과한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처럼 부부가 된 남녀도 처음에는 서로 살아온 환경, 생활 습관 등 차이점으로 부끄러운 행실들이 많이 나타나 몸은 한 몸이 쉽게 되지만 마음은 쉽게 되지 않아 마음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익은 열매 되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죄성과 정욕과 결점이 있지만 절망하지 말고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와 롬 6: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며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옛사람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익은 열매의 목표를 회복하는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다같이 32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즉 생명의 합일이라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같이 33절을 합독하시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우리는 육체가 피곤하면 쉬고 상처 입으면 약 바르는 것이 자동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중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6절을 보면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고 했습니다. 악령들은 우리의 존재감을 파괴합니다. 저도 남편으로 12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아내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남편으로서 인정만 해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남편들은 인정과 존중을 먹고 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여보! 힘내! 라고 한 번이라도 실천해 보는 한 주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결론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영광스러운 교회로 주님 옆에 가까이 갈 수 있기 위해서는 순종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남편과 아내와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통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임박한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순종의 믿음을 주님께 보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성복교회가 더욱 사랑과 순종을 통해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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