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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범 작가가 <자연과생태>에 '마음따라발길따라' 기사로 연재하던 내용이 책으로 묶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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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나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하는 길, 그리고 나를 위로하는 나의 ‘올레’
길․사람․자연․역사에서 찾은 나만의 ‘올레’
‘올레’는 걷기 길을 상징하지만, 휴식, 위로, 꿈, 성찰, 떠남, 만남도 상징한다.
그래서 ‘올레’는 곳곳에 있고, 사람마다 인식하는 ‘올레’의 상징성이 다르다.
위로가 필요해서, 또는 성찰이 필요해서 떠난 여행, 특별한 만남과 감동이 있었던
여행지가 나만의 소중한 ‘올레’, 내 길이 된다.
삶이 힘겨울 때, 세상사에 무덤덤해질 때, 도피하고 싶을 때 우리는 여행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여행길은 되돌아올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길, 사람, 자연, 역사의 현장에서 나만의 ‘올레’를 찾았다.
세상은 무수히 많은 길들의 합이고 여행은 내 길을 찾는 방법이다. 모두 자진만의 ‘올레’ 하나 가슴에 품길 바란다.
가슴에 품은 나만의 길, ‘올레’
∎‘올레'는 제주에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 만의 ’올레‘가 있다.
∎‘올레’는 소통, 휴식, 위로, 꿈, 성찰, 떠남, 만남을 상징한다.
∎여행은 나만의 길을 찾는 방법이다.
∎저자는 길, 사람, 자연, 역사에서 그만의 여행지 ‘올레’를 찾았다.
독자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올레’를 찾길 바란다.
이 책은 네 가지 테마로 묶였다. 길, 사람, 자연, 역사다. 또 이 네 가지는 ‘위로여행’, ‘사색여행’, ‘생태여행’, ‘공감여행’을 의미한다.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성찰하며, 자연의 무덤덤함, 치열한 삶과 역사에서 나를 찾는다. 저자는 그 과정과 장소를 나의 ‘올레’라고 부른다.
모든 길에는 누군가의 기억이 배어 있다. 기억은 기쁨이나 슬픔일 수 있고, 때론 온전한 삶 자체일 때도 있다.
길을 걷는 건 열량을 소비하기 위한 신체 사용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삶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 혹은 몸부림이다.
그 작은 절실함들이 모여 새로운 길을 만들고, 나에게는 나만의 ‘올레’가 탄생한다. 여행이란 결국 다른 이의 세상을 들여다보거나 내가 살아온 세상을 돌아보거나, 둘 중 하나다.
서승범
늘 손 안보다 그 밖에 있는 것을 동경했다. 같은 시공간이지만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동굴의 문을 차고 나간 여행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두려움은 없어졌지만, 무척 익숙한 동굴을 아직은 좋아한다. 바깥과 나를 번갈아 들여다보는 재미가 좋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내 손 안에 있는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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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 대학시절에, 나를 위로한 건 청소 아르바이트하던 교수식당의 밥이 아니라 청소 마치고 가끔 타던 134번 시내버스였다.
타고 내리는 승객들과 동떨어진 뒷자리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보며 종로통과 광장시장, 경동시장을 거쳐 경희대학교와
외국어대학교 주변의 골목을 돌았다.
어두컴컴한 종점에 내려 노란 장판 씌워진 평상에서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으로 내 방황은 충분히 화려했다.
그 길, 그 골목은 나의 길, 나의 골목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떠돈 여행에서 보고 먹었던 것들은 대부분 휘발되고,
남은 건 하얀 감자꽃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넘었던 정선의 어느 고갯길이고, 장기판 차(車)에 손가락 하나 얹어두고
장을 어디로 칠까 고민하던 할아버지의 자글자글한 주름이고, 호기와 객기를 얼려버린 추위, 그 추위마저 감싸버린 안개이고,
송강 정철이 시를 지었을지도 모를 누정에 누워 청한 낮잠이다.
위로가 곳곳에 있는 건, 삶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여행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고, 나를 돌아보려 노력한다.
그런데 여행은 내게 위안을 주었지만, 내 성찰은, 뭐, 늘 실패의 연속이라 건지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계속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내가 상처투성이라서가 아니고, 뭔가를 잊고 싶어서도 아니며,
여행의 소소한 풍경들이 주는 기쁨을 맛보고 싶어서다.
-자자의 말 중에서
길 위에서 지난 시간의 뒷표정을 정리하다
자주 걷는다. 익숙한 길, 추억만으로도 충만한 길, 그리고 때로는 호젓한 길
16 제주올레 16코스_모든 길에는 누군가의 기억이 배어 있다
28 백두대간에 난 첫 고갯길, 하늘재_하늘에 닿는 길을 거닐다
42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를 걷는 우이령길_다시 열린 옛길, 생소함만 가득하고…
54 가산, 생원과 함께 걷는 봉평 메밀꽃길_달빛에 숨 막힌 메밀꽃은 보지 못했어도
66 강화 봉천산과 창후물길_새로운 한 해를 향한 다짐
80 서울성곽길에서 사람들의 생태를 보다_시간과 삶이 빚은 자연 앞에서
그래도 부대끼며 사는 게지
떠나는 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가장 혼자이고 싶을 때,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 오히려 치열한 삶 속으로 뛰어든다.
96 혜화동에서 낙산공원, 그 담벼락과 골목_인연이 만든 비경
112 수원 화성과 팔달문시장_갈비보다 시장, 화성보다 사람
128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_모든 책은, 그냥 책이다
142 시간이 화석으로 남은 군산_볼 품 없는, 그래서 볼 만한 근대의 흔적
156 전주 한옥마을, 그 언저리_조금은 서글픈, 한옥마을의 분칠
170 서울 종로구 청운동_북촌의 풍경
184 습관처럼 찾는 강화 전등사_자그만, 몇 개의 인연
때로는 자연에 기대다
자연은 위안도 주지만 혹독함도 겪게 한다. 역시 자연은 그답게 ‘그러하다.’ 그 무덤덤함이 편하다.
200 춘천 중도에서의 낭만적 혹한의 밤_세상의 모든 잡담 뒤로 물리고
214 경북 예천군 금당실_소나무와 함께 한 가을여행
228 강원도 홍천군 밤벌_세상 낚시꾼들을 위한 변명
242 천은사의 비, 개심사의 소나무_눈 오는 개심사를 찾는 까닭
258 장성 축령산 자연휴양림_숲, 그 향연 속에서
270 제주 비자림과 두모악_좋은 사람은 좋은 풍경을 닮았다
그들도 나처럼 살았으니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는 현실이고 미래다’
그렇다고 역사의 현장에서 답을 구하지는 않는다. 나도 역사의 한 점이라는 것을 느낄 뿐이다.
288 김포 장릉(章陵)과 남양주 광해군 묘_왕릉의 두 모습
300 팔베개하고 눕다, 담양 소쇄원_곁에 두고 보는 낙
316 인천 자유공원 일대_오래된 미래
330 역사의 길, 자연의 길, 남한산성_돌에 새겨진 역사와 인간
346 경주의 하룻밤_왕들의 정원 혹은 무명씨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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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운 풍경이 늘 궁금했다.
서두를 일 없는 날 어둠 속 정류장에서 간혹 첫 차를 기다리는 것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출근 시간 지하철을 어쩌다 타 보는 것도,
여행지 맛집 두고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널리고 널린 ‘전주식당’이나 ‘대전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는 것도,
영화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해 오도카니 앉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오래된 시장에서 살 것 없어도
아주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 양반들의 손을 응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이살고 있는 세상이 궁금해서다. p16
또 다른 길 하나.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면 대도시 서울의 그저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에 지나지 않지만,
종로 5가에서 광화문 거쳐 아현동에 이르는 길은 나에겐 잊을 수 없는 길이다.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주머니가 곤궁했던 나는 곧잘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제일 처음 오는 버스를 집어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여정을 반복했다. 나는 그 서푼짜리 여행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p22
빨래를 널고 싶었다. 긴 비에 눅눅해진 이불 따위를 널어두면 참 잘 마를 날씨였다.
그런 날에 북한산과 도봉산을 나누고 서울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군 교현리를 잇는 우이령을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찾았다.
그 사이 중부지방에 엄청난 비가 내렸지만 우이령을 찾은 이틀은모두 쾌청했다.
북한산은 나의 조강지산이었고, 오랜만에 다시 찾고 싶었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좌우에 둘러두고 걷는 맛은 좋았다. p43
꽃밭 한가운데서 봐도 꽃보다는 마른 풀 같은 향기만 건조하게 떠돌지만
작고 단출한 꽃송이들이 모인 군무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그래서 더 정이 간다.
한낮의 메밀꽃밭도 이럴진대 달밤의 메밀꽃밭은 오죽하랴, 나는 계속 ‘꽃은 달빛이라야 제격’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p59
여행이란 대부분 내가 들인 공만큼의 추억과 경험을 돌려준다.
육아역시 마찬가지여서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고 함께 한 시간만큼 그 관계는 농밀해진다.
내가 세운 육아의 기준은 ‘주지 않는다’다. 안아주지 않고 안고, 먹여주지 않고 함께 먹고, 놀아주지 않고 함께 놀고,
재워주지 않고 함께 자는 것. ‘준다’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받을 것’에 대한 생각을 하니까.
그 무의식은 낭중지추가 되어 어느 순간 마음을 다치게 한다.
“아빠가 이만큼 놀아줬으면, 너도 말을 잘 들어야 할 것 아냐!” 육아여행에 ‘다시’는 없다. p77
성곽 순례객에게 성곽 없는 성곽길은 마뜩찮겠지만, 아직은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문화란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삶이 아직 견뎌 살아내야 하는 대상일 때, 문화란 어떤 의미와 힘을 가질까.
성곽을 따라 북악산 언저리로 파고든 집들이 본래 사대문 안에 살던 이들의 것이었겠는가.
엄한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해 씨앗에 깃털을 붙여 하늘에 날리는 민들레처럼, 이들은 살림을 줄이고 줄여 깃털 같은 살림으로
보다 높고 좁은,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닿지 않는 곳으로 왔을 터다.
문화란 지키고 가꿔야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게 자연이니까. p87
비경 따윈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찌 없겠는가만, 보다 보면 오십 보 백 보일 테니, 그보단 자신에게 의미 있는 나름의 ‘비경’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게다.
‘그 시절’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그 담벼락과 골목이, 이제는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다.
광화문에서 볼 일을 마치고, 흐린 가을 날씨가 아까워 혜화동으로 향했다.
반기는 사람도, 만날 사람도 없었지만, 낙산과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몇 개의 작은 인연을 생각하러. p97
인가 드문드문한 산마을에 가게가 있을 리 없었지만, 남의 사정 헤아릴 처지가 아니었다.
정말 목이 말라 미치기 직전이었다. 가장 가까운 농기구 창고에 들어가니 사람은 없고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3리터 들이 막걸리 두 통. 잠시 고민하다가 만 원짜리 한 장과 전화번호 적은 편지를 두고 한 통을 들고 나왔다.
버드나무 그늘 밑 평상에 배낭 풀고 앉아 남은 신김치에 마시는 막걸리라니.
나는 그 맛을 그 뒤로 다시 보지 못 했다. 잊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잊히지 않는다. p125
모든 책은 새 책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냐, 하면, 그래도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많단 뜻이다.
‘모든 책은 헌 책이다’는 이론상 말이 그렇단 얘기다. 말하자면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과 같은 거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이기는 건 순간이다. 마찬가지로, 읽고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할 책이 수두룩하다.
조르바와 춤을 출 수 없다 해도 조르바의 이야기는 전해들을 수 있으니까. p138
선창. 사람이든 물건이든 들고 남이 잦은 곳은 그곳만의 색깔 혹은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선창은 바다로 드나드는 곳이니 사연도 많고 색깔도 진하다. 그건 이정록의 시집 <정말>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홍어’나 ‘참 빨랐지 그 양반’ 같은 시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어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몰려 가버리면
선창이 아니라 선창 할아비라도 쓸쓸해지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p149
작업실을 옮겼다. 창밖을 내다보면 휘황한 불빛에 한 잔 생각 간절한 홍대입구에서 해가 인왕산을 넘어가면
인적 드문 청운동으로. 누추하긴 마찬가지나 오가는 길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세종로에서 광화문 거쳐 효자동 그리고 청운동. 서울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 처음 했다. p171
거리에도 표정이 있을까?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그 신선한 풍경에 표정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같은 길을 자주 오가다 보면 그 거리의 표정이 보인다. p181
저항도 누군가에겐 상장이 되고 훈장이 되지만, 그는 그렇지도 못했다.
대학가에서 시위가 사라질 즈음 몇 번의 취업 실패 끝에 공단으로 들어간 그의 소식에 나를 비롯한 많은 후배들이
보인 반응은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만난 우리는 외포리 포구의 낮술과 전등사 산책으로 하루를 보냈다. p195
뭔가 자꾸만 헛돌고 있다고 느껴질 때나 잡지 못한 기회들이 떠올라 괴로울 때 강릉 가는 차표를 사겠단 거다.
기쁨이 나의, 우리의 친한 친구였던 시절, 우리를 취하게 하던 그 희망을 다시 찾고 싶단 얘기다.
하지만 도착한 건 강릉의 바다가 아니라 도시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 속에 숨은 바다를 찾는다.
마음 속 바다든, 강릉이든, 간혹 떠올리는 첫사랑의 추억처럼 찾아갈 자발적 유배지가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
나에겐 강릉과 함께 춘천이 그렇다. p202
나에겐 다행스럽게, 당사자에겐 불행스럽게도, 이번 여행에는 동행이 있었다.
작업실을 같이 쓰는 형인데 <낭만적 밥벌이>란 책을 썼다. 홍대부근에 카페를 창업한 이야기인데, 지금은 글만 쓰고 있다.
최근 캠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중도 캠핑은 첫 캠핑이었다.
초등학교 보이스카우트 이후로는. 추위 때문에 망설임이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아마도 호젓한 캠핑장을 배경으로
설경이 주는 낭만과 화로가 주는 온기가 더해져 ‘낭만적 혹한’을 꿈꾸었을 텐데,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p206
소로 건너 있는 용문이용실. 길 건너기 전,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비도 막고 해도 가리는 슬레이트와 그 밑의 간판, 용문이용실이란 이름과 전화번호가 간단히 적혀 있다.
이용실임을 알리는 등과 사람이 드나드는 문. 벽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고 그 앞엔 자전거가 서 있다.
그 옆 골목길로는 키 낮은 돌담길이 이어졌고, 호박 줄기가 돌담을 타고 담을 넘어 바깥세상을 보고 있다.
그 위로 푸르디 푸른 하늘.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이용원에 들어가 작은 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과 팔의 땀을 닦고 나와 다시 가게를 찾았다. p225
마흔 가까운 이제서야 깨달앗지만, 모든 일은 ‘모름지기’가 가장 무섭다.
‘싶은 욕망’보다 ‘해야 하는 의무’를 달고 다니는 ‘모름지기’ 앞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릎을 꿇었던가.
맞다, 결국 아비란 먹을 것을 물고 와야 한다. 낚시질로 갖은 해산물을 거두어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니,
이 구절 때문에 낚시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는 건 이치에 닿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낚시에 대한 관심은 한창훈의 저 명제에 동의를 표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p236
초입에 위치한 슈퍼마켓에서 아저씨 한 분이 잠깐 밖에 나왔다가 말을 건네신다.
뜨거운 보리차, 참 맛있다. 커피를 주시겠다고, 설탕 좋아하느냐고 물으시기에 ‘블랙 좋아하시나 보다’ 생각하며 조금만 넣어 달랬다.
열린 문 틈 사이로 백설 흑설탕(흰설탕 만들겠다고 만든 회사에서 만든 흑설탕) 밥숟가락으로 한 술 가득 넣으신다.
“내가 설탕을 워낙에 좋아해서~” 하시면서 건네시는데, 꽤 달달한데도 싫지 않다. p251
친구와 나는 말이 없었다. 지겨운 쳇바퀴에서 벗어난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서른 후반의 나이, 간단한 밑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래는 늘 불안한 법이고, 시절이 수상하니 불안은 더하다.
하지만 모든 불안이 위로와 희망의 말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그냥 같은 길을 걷고, “야, 이 나무 참 근사하지 않냐?”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불안을 견디는 힘이 생긴다.
내가 불안했을 때 나는 또 다른 친구와 금강변을 걸었고,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보았다. p278
장릉과 광해군 묘에 들렀다. 영월에 있는 단종의 장릉이 아니라 김포에 있는 원종의 장릉이다.
죽어 왕이 된 자의 능과 왕이었다가 쫓겨난 자의 묘는, 그리고 그 대비된 행색은 묘한 비틀림으로 다가왔다. p289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우리가 올려다봐야 하는 것 가운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별로 없다.
저 거대한 조각상들에게 복잡한 거리의 이정표 놀이나 시킬 게 아니라면 상像도 단을 낮추고 크기를 줄여 그 표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청·일 조계지 끝에 자리 잡은 공자의 석상은 그나마 낫다. 몽실한 눈썹과 의연한 눈빛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고개 쳐들고 봐야할 건, 하늘과 새 그리고 나무 정도면 충분하겠다. p325
성 안의 길과 밖의 길은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평행선을 그리지만, 길의 생김새는 사뭇 다르다.
성 안의 길은 역사의 길이고 밖의 길은 자연의 길이다. p341
사람들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지만, 정작 시간이 주어졌을 때 주저하지 않고 떠나는 이는 별로 없다.
‘어디’가 아니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p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