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 춤의 비밀, 사람 빼고 가장 복잡한 몸짓 언어의 대가
사람 만나면 비켜달라고 의사표현 하기도…세계 15종 대부분 멸종위기
» 두루미 부부가 서로를 마주 보고 돌면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1992년 김포 홍도평야에서 처음 재두루미를 만난 순간을 잊지 못한다. 검고 희고 붉은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우아한 큰 새를 본 충격과 희열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후 20여년 동안 해마다 한강하구는 물론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 일대와 천수만, 러시아, 일본 홋카이도 등 두루미의 월동지와 번식지를 찾아 다녔다.
위장그물 속에서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두루미의 몸짓 언어가 그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놀랐다. 새끼와 어미, 가족과 가족, 부부 사이, 그리고 두루미와 사람 사이에도 수많은 행동과 소리로 의사표현을 한다.
미국 지질조사국의 두루미 전문가인 데이비드 엘리스 등은 국제두루미재단 등에서 기르는 두루미 15종을 30년 동안 관찰한 결과 두루미의 소리와 몸짓 언어는 60가지 이상으로 다른 새들의 20여 가지, 원숭이의 30여 가지보다 월등하며, “인간을 빼고 척추동물에서 가장 복잡한 행동을 지닌다”고 결론 내렸다. 게다가 같은 동작도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띠기도 해 두루미의 행동의 복잡성은 더욱 늘어난다.
흔히 ‘춤’으로 알려진 두루미의 행동은 고개 숙이기, 높이 뛰기, 달리기, 나뭇가지나 풀을 집어던지기, 날개 퍼덕이기 등 다양한 동작으로 이뤄진다. 대표적인 표현 방식을 소리, 사랑, 싸움으로 나눠 알아본다.
■ 소리
» 흔히 두루미가 하늘을 향해 부리를 쳐들고 있는 모습을 구애 모습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사진처럼 영역 다툼인 경우가 많다.
5000만년 전 지구에 출현해 남아메리카를 뺀 모든 대륙에 서식하는 두루미는 석기시대부터 인간의 관심을 끌었다. 모든 서식지에서 두루미와 관련한 전설과 신화가 있는데, 장수와 행운, 정절, 그리고 특히 한반도에서는 평화의 상징이다. 두루미는 나는 새 가운데 가장 큰데다 높이 날고, 새가 보이지 않는 하늘 멀리서부터 나팔을 부는 듯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천국의 전령이란 뜻에서 ‘천상의 새’라고도 불린다.
두루미는 새끼가 부화 직전 내는 삐약거리는 소리부터, 새끼가 먹이 조르는 소리, 비행 전과 도중 내는 소리, 경계음, 침입자에게 내는 소리, 부부 사이의 유대를 다지는 소리가 모두 다르며, 행동과 합쳐 의사를 표현한다.
두루미 부부가 부리를 하늘로 향한 채 번갈아 큰 소리를 내는 합창은 연하장 등에 많이 실리는 대표적 모습이다. 그러나 실상은 ‘뚜르륵, 뚜르륵~’하는 소리가 요란하고 구애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니다.
수컷은 날개를 등 위로 펼치고 암컷은 날개를 접은 상태에서 수컷이 한 번 소리 지르면 암컷은 짧게 두 번 응답한다. 암수가 내는 소리가 다르고 종마다 특징이 있어 종을 구분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 행동은 부부가 유대를 강화하고 침입하려는 다른 무리로부터 영역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부부애와 함께 과시, 경고, 방어, 밀어내기 등의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두루미는 심지어 사람을 만났을 때 비켜달라고 ‘뚜륵, 뚜륵’ 신경질적인 짧은 소리를 반복하기도 한다. 사생활의 간섭을 싫어하는 두루미의 습성을 알 수 있다.
■ 사랑
» 마주보고 뛰기.
» 마주보고 고개 숙이기. 오른쪽이 암컷.
» 마주보고 서로 인사하듯 고개 숙이기.
» 날아오르며 몸 비틀기.
» 마주보고 날갯짓 하기
우리나라는 월동지여서 두루미나 재두루미의 짝짓기 행동을 보기 힘들다. 두루미가 번식하는 홋카이도의 2~3월이나 러시아 하바롭프스키 힌칸스키 자연보호구역의 3~4월에 두루미의 사랑이 절정을 맞는다. 번식철이 되면 두루미의 머리위 피부와 재두루미의 얼굴 피부가 더욱 붉게 물들고, 신경이 예민해져 다른 무리와의 마찰도 잦아진다.
두루미의 사랑 춤은 마주 보며 머리 굽히기, 마주 보며 높이 뛰기, 옆으로 몸 비틀기, 고개 숙여 발 구르기, 날개 펴고 발돋음 하기, 서로의 주변 돌기 등 2~4분 동안 계속된다.
» 일본 홋카이도 두루미 번식지에서의 교미 동작.
» 교미 직후 인사하듯 고개 숙이는 동작.
춤이 무르익어 마음에 들면 암컷은 자세를 낮추고 날개를 활짝 펴 수컷을 맞는다.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지만 수컷은 교미를 마친 뒤 암컷 머리를 넘어 앞으로 뛰어내린다.
짝짓기가 끝나면 암수는 서로 인사를 하듯이 고개를 깊이 숙인다. 이 동작은 만족감과 성취감을 표시하는데, 흥미롭게도 상대방의 기를 꺾는 공격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일본 홋카이도 센슈대의 두루미 전문가인 마사토미 희로유키는 이를 “교미를 위해 억눌렀던 공격성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 다툼
» 두루미 두 쌍의 영역 신경전. 왼쪽 두 마리와 오른쪽 두 마리가 부부이다.
»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 큰 소리를 내며 기싸움을 벌인다.
» 싸움이 가열되면서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차는 열전이 벌어진다.
» 자기 영역에 침입한 두루미를 완력으로 밀어낸다.
» 싸움에서 이겨 영역을 차지한 두루미 부부가 기쁨과 만족감에 겨운 춤을 추고 있다.
철원 등 우리나라에선 두루미가 큰 무리를 이루고 있지만 이는 월동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러시아·중국·몽골의 번식지에선 다른 쌍의 영역까지 4㎞는 떨어져 있어 여러 마리의 두루미를 보는 것이 매우 힘들다. 이처럼 서로 떨어져 사는 새이기 때문에 두루미는 영역을 지키는 일에 민감하고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상대와 다툴 때는 목을 세워 부리를 하늘로 향한 채 커다란 소리로 운다. 싸움이 격화되면 몸을 날려 부리로 쪼거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일격을 가한다. 좀 떨어져 있는 상대를 쫓을 때는 날개를 요란하게 펄럭이며 낮게 날아서 다가서는데, 100m 이상 떨어져 관찰하는 사람한테도 날개 소리가 들릴 만큼 위협적이다. 하지만 두루미는 몸짓과 소리로 싸울 뿐 실제로 부상을 입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두루미가 평화의 상징인 이유가 있다.
» 두루미와 그보다 약간 덩치가 작은 재두루미의 영역 싸움이 커졌다.
» 싸움은 작은 재두루미의 승리로 돌아가고 두루미는 고개를 숙였다.
» 재두루미 한 마리가 순종한다는 뜻으로 땅에 납작 엎드려 있다.
어쩔 수 없이 무리를 이뤄야 하는 월동지에서도 우두머리 두루미가 심기가 불편하면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두 내쫓기도 한다. 서열도 강해 대드는 상대는 끝까지 따라가 내쫓는다. 따라서 복종의 자세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엉거주춤 몸을 낮추고 목을 에스 자로 구부리며 자리를 피한다.
늘 다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긴장이 풀릴 때 두루미들은 함께 춤을 추고 어린 두루미는 나뭇가지나 마른풀을 공중에 집어던지고 날아가서 잡는 놀이도 즐긴다. 어른 새도 이 흥겨운 놀이에 끼어들기도 한다. 새들 가운데 이처럼 감정 표현에 능숙하고 놀이도 즐길 줄 아는 새가 또 있을까.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iroyuki MASATOMI, Some Observations on Mating Behaviour of Several Cranes in Captivity, J. Ethol. 1 : 62-69, 1983.
David H. Ellis et. al.,A sociogram for the cranes of the world, Behavioural Processes 43 (1998) 125–151.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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