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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고 헌책방 찾아가기-1]
"오늘도 다리 품 팔아 마음을 채우러 간다"
그림을 몹시도 좋아하는 황제로 알려져 있는 송나라 휘종. 그는 곧잘 유명한 싯귀 한 두 구절을 화제로 내놓곤 했다는 데, 한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亂山藏古寺)"란 제목이 나왔다. 분, 초를 다투며 돌아가는 세상살이 가운데 특히 헌책방 순례, 옛 절의 흥취, 감흥을 찾아 나서는 일은 과연 어떻게 그려져야 타당한 것일까.
무수한 사람들이 휘종의 주문에,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사이에 자리잡은 퇴락한 절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당선작은, 화면 어디에도 절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대신 숲 속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러 올라가는 모습이 아스라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양대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에 나오는 대목이다. 스님이 물을 찾아 나왔으니 어디엔가는 분명 절이 있을 터. 어지러운 세상이 꽁꽁 숨겨둔 그 절을 찾는 길은, 물을 길러 뒤뚱뒤뚱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스님의 발걸음을 좇으면 될 일. 책을 찾아 나서는 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헌책방 순례는 그렇게 시작한다. 조금은 엉뚱하게, 세상이 만들어준 편이를 십분 활용할 심산이다. 지하철 타고 헌책방 찾아가기. 먼저 지하철 1․2호선에서 만날 수 있는 곳부터 소개한다.
천장에 닿는, 층층이 쌓인 책 가운데 한 군데만 건드려도 죄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뽑을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 책의 탑. '순례'는 다만, 그 탑에 대한 '의례'라면 답이 될까.
"본래 책읽기는 느린 것이야, 정성을 들이는 일이지" '뿌리서점' 주인아저씨의 충고다. 헌책방 순례는 그렇게 용산의 뿌리서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글을 연재하기도 했던 '헌책방 전문가' 최종규 씨는 자신이 다달이 펴내는 <헌책사랑>에서 뿌리서점을 '진짜 훌륭한 책이 뭔지 알려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마치 이름처럼, 헌책방의 원류이기도 한 이 곳. 이색적으로 영화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끝내 영화 <해피엔드>의 촬영지로 스크린에 '데뷔'하기도 했다.
1978년 정부 시책에 따라 학원가가 4대문 밖으로 옮겨갈 때, 뿌리서점도 원효로에서 지금의 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경기, 경복, 양지, 상아탑학원 등 용산의 한 부분을 턱허니 차지했던 학원가가 명멸하는,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뀐 그 동안 항상 제자리를 지켰다. 물론 최근에 그 옆 골목으로 옮기긴 했지만. 그 사이 장서는 10만 권으로 불고. 맘씨 좋은 책방아저씨, 김재욱 씨는 반백의 머리가 돼, 늘 그렇듯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몸에 좋은' 매실차부터 권한다.
"학원들이 죄다 노량진 쪽으로 옮겨갔지. 어느 날 보니 주택가 뒷골목만 지키고 있는 꼴이 됐어. 자연스레 학생들의 발걸음은 뜸해졌지. 이제 일반인이 대부분이야. 하지만 이 사람들 모두 단골손님들이지.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끊을 수 없는 게 헌책방의 매력이잖아."
인천이 지하철 1호선의 기점인지 종점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아무튼 1호선을 타고 종국에 도착해야 할 곳은 분명하다. 동인천이다. 편의상 1호선 기점을 의정부북부역으로 잡았다면, 구로역에서 한번 주춤한다. 인천과 수원의 갈림길이다. 그러나 헌책방 순례는 당연스레 인천선이다. '아벨서점', '배다리헌책방' 등이 몰려 있는 이 곳이 있기 때문이다. 청계천 헌책방 골목에 맞서는 인천의 명물. 묵은 된장과 늙은 호박 같은, 헌책방. 켜켜이 묻어나는, 눅눅한 그 책 내음. 그리고 책을 발견하는 재미. 발 품을 팔아 마음을 채우는 곳이 이렇게 모여 있다.
청계천 헌책방 골목 역시 마찬가지. 그 곳은 2호선 동대문운동장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야 한다. 쉬엄쉬엄. 그렇게 거슬러 신촌까지 오라. '옛책, 그 언저리에서'라는 책까지 낸 헌책방의 신화, '공씨책방' 공진석 선생 또한 이들 대열 가운데 가장 앞 열에 이름을 올리는 분이다. 선생이 작고한 이후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가게를 옮겼다. 헌책방 순례자들 사이 이 곳은 깍듯이 예를 갖춰야 하는 그런 곳이다.
'그 곳은 한 번 가봐야 한다'는 별표가 너댓개씩 붙는 곳이 있다. 그 시끄러운 신촌에서 꼭꼭 숨어있는 '숨어있는 책'. 영화 <국화꽃향기>에서 가게 이름만 등장했던 바로 그 곳. 지난 99년 11월 문을 열었다.
이 곳은 헌책방이라면 '기본메뉴'인 참고서, 잡지류는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인문․사회․자연과학 서적과 예술 관련 서적이 중심이다. 책을 '아는' 책방주인 노동환 씨의 이력 때문이다. 노씨는 미술 전문출판사인 <열화당>과 사진 전문출판사의 <눈빛>의 편집장을 지냈다. 부인인 이미경 씨 또한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런 까닭에 이들 부부의 책사랑은 유별나다.
마냥 헌책방이 좋아 집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들고나와 이 일은 시작했다. 최근엔 인문․사회과학 서적류만 따로 묶어 지하에 책방 2호점을 냈다. 주인 아저씨는 오전시간을 책을 구하러 돌아다니거나 책 손질하는 시간으로 대부분 보낸다. 찢어진 것을 붙이고 먼지를 털어내고 사포로 닦아내기도 하고. 그런 까닭에 개점 시각은 오후 2시.
"몇몇 손님들은 책손질은 사가는 사람의 재미이기도 한데 이것마저 빼앗느냐며 항의 아니 항의를 하기도 해요. 먼지에 쌓인 책을 보면 먼저 손부터 가는 것이 버릇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 부부가 애서가 축에 끼는 편이기도 하니까요."
책도 맛이 있다. 만약 그 맛이 책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에서 가늠되어지는 것이라면, 이런 곳들은 중독되기 십상인 곳이다. 급히 앞만 보고 달리는 분 혹은, 자꾸 뒤를 돌아보는 분들이여, 혜량있으시길.
● 지하철 1 호선
* 의정부북부
헌책백화점 031-876-6231
더존책방 031-876-2354
우리서점 031-874-5972
고려문고 031-847-5947
* 외대앞
신고서점 960-6423
* 회기
책나라 960-7484
* 동대문
북011 2234-5746
* 종로5가
신진서점 2275-1831
* 용산
뿌리서점 797-4459
* 노량진
책방 진호 815-9363
* 신길
중앙서점 847-8434
* 신도림
역내 재고서점
* 소사
성가책방 032-655-0884
소래책방 032-663-1452
* 부천
근영서림 032-343-8068
* 부평
부평종합서적
신세계 헌책방
* 동인천
배다리헌책방
아벨서점 032-766-9523
한미서점 032-773-8448
삼성서림 032-762-1414
우리서점 032-765-6745
창영서점 1 032-763-3406
창영서점 2 032-713-4715
* 안양
경향서점 031-445-0972
* 수원
남원서점 031-258-8425
오복서점 031-243-5375
헌책서점 031-244-4005
대지서점
● 지하철 2 호선
* 왕십리
조은책방 2296-8185
* 동대문운동장
유림사 2272-2124
상현서점 2275-5780
거창서점 2275-5780
덕인서점 2273-8420
국도서점 2272-5725
함양서점 2272-5267
* 아현
책사랑 365-5842
문화책방 392-4641
* 신촌
숨어있는책 333-1041
공씨책방 336-3058
정은서점 323-3085
* 홍대입구
온고당 335-4414
* 대림
신동아서점 864-7729
* 신대방
알뜰서점 865-2442
* 봉천
동양서점 888-6263
* 서울대입구
현대서점 877-7561
책창고 886-3737
책상은책상이다 886-1958
* 낙성대
흙서점 884-8454
삼우서적 889-8823
* 방배
헌책백화점 584-1480
* 구의
대성서점 453-9850
광주서점 444-8726
* 성수
천지서적 469-2107
● 헌책방순례
"인간은 책 보다 오래 견디는 구조물을 짓지 못한다"
② 3~5호선 타고 책방 찾아가기
이번 순례는 책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세계명작동화'에나 등장하는,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그것이다.
읽어 보셨는지? 책 제목은 들어보셨겠지. 1719년 작품으로, 작가가 60세 가까운 나이에 처음 쓴 것이 이 소설이다. 원제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 줄거리는 누구나 알고 있을 터이고.
자, 그렇다면 다음 질문.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이란 책은 아시는지? <장 발장>은 아는데 <레 미제라블>은 읽지 않았다거나, <돈 키호테>는 익숙한데 <아마디스 데 가울라>는 낯설다는 답변이 대부분일 터이다.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 역시 생경한 책일 테고. 지금은 인천으로 자리를 옮긴 '인현서점' 주인아저씨가 던진 질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군소리를 조금만 늘어놓자면, <레 미제라블>은 혁명․외교․전쟁 등 각종 읽을거리가 망라된 '프랑스 혁명사 외전'으로도 읽히는, 빅토르 위고의 걸작. '인류의 책'으로까지 불리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기사도소설의 전범인 <아마디스 데 가울라>를 그 연원하고 하고 있는 수작이다.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은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가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쓴 책이다. 이른바 패러디소설. 역시 디포처럼 처녀작이었으며, 1967년 세상에 내놨다. 수명을 자그마치 3백년 가까이 이어온 <로빈슨 크루소>는 이렇게 '리모델링'을 통해 그 수명을 끝없이 연장시켜 놓은 셈이다. "인간은 책보다 오래 사는 구조물을 짓지 못한다"고 되뇌인, 아이언 퀼 또한 이런 경우까지 염두에 둔 모양이다.
투르니에의 이 작품은, 1995년 번역됐다. 방드르디는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노예 '프라이데이'의 불어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빈슨 크루소>의 프라이데이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등장하는 반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원시인' 방드르디는 전면에 나선다. 이만한 걸작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야생의 고독>이란 책도 있다. 이미 짐작하겠지만, 투르니에의 같은 책을 제목만 달리해 옮긴 것인데, 단지 5년 일찍 국내에 소개됐다는 하나의 차이점 때문에 지금은 대형문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책이 됐다. 책 역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곧바로 진열대에서 내려진다. 심지어 절판돼 지상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방드르디, 원시의 삶>이란 책도 있다. 작가 박경리의 <토지>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개작한 <청소년 토지>처럼, 이 책 역시 투르니에가 학생들에게 읽힐 생각에 다시 손을 본 것이다. 2000년 우리나라에서 출간됐다. 그런데 이보다 13년 전인 1987년 선보인 <방드르디>는 동일한 저작임에도 기억하는 이가 거의 드물다. 먼지 켜켜이 묻어나는 헌책방에서나 만날 수 있는 책이 돼 버렸다.
투르니에의 작품을 이렇듯 장황하게 들먹이는 까닭은, 헌책방을 찾아다니다 보면 책만이 갖는 독특한 '연대기'를 목도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학교 교실에 그렇게 늘 붙들린 채 사는 이 땅의 가여운 '정주민(定住民)'들은 '요점 정리'에는 익숙할지 모르나 책 한 권이 펼쳐 보이는 이처럼 다양한 '변주'에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늦은 저녁에서야 K는 도착했다. 마을은 깊은 눈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조금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성은 안개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따라서 큰 성이 있는 것을 알리는 희미한 등불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큰 길에서 마을을 통하는 나무다리 위에 서서 오랫동안 희멀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은 이렇게 첫머리를 시작한다. 프랑스 고성들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단상을 적어둔 고려대 김화영 교수의 <예술의 성>은 카프카의 이 작품을 달리 읽어나간다.
"참다운 성은 이렇게 존재하는 법이다. 모든 성은 항상 이 같은 박명 속에 서 있게 마련이다. 깊은 눈, 안개 그리고 어둠은 성의 풍경의 일부를 이룬다. 청명한 빛 속에 서 있는 윤곽이 뚜렷한 성이란 오직 관광안내서나 선전용 캘린더 혹은 그림엽서 속에 존재할 뿐이다."
얇지만, 감동은 충만하다. 아울러 김화영 교수가 설명하는 고성의 모양새가 우리가 찾아가는 책방과 일견 닮았다.
각설하고, 지하철 3호선에서 마주하는 '고성'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곳은 홍제역 인근의 '대양서점'이다.
대양서점은 홍제동 헌책방골목의 터주대감이다. 부근 대여섯 곳 헌책방의 '흥망사'에 굴함 없이 지금까지도 제 갈 길만을 가고 있는 곳. 가게 바로 뒷편 골목에 새로이 2매장까지 마련했고, 그 곳은 아들인 정태영 씨가 맡았다. 대를 잇고 있는 그들의 책사랑 또한 헌책방이 주는 매력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헌책보다는 재고도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곳도 있다. 3호선 학여울역의 '책창고'가 바로 그 곳이다. 넓은 매장에 양질의 책을 확보하고 있다는 장점이 돋보이는 이 곳은 기존 헌책방의 개념을 새롭게 작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직원들이 해당 분야를 나눠 맡고 있어 책에 대해 묻고 찾기가 쉽다는 점, 헌책방 가운데 유일하게 수도권내 몇 곳에 분점을 갖고 있다는 점 등이 특징. 그런 까닭에 순례자들 사이 '별표'가 네댓 개씩 붙는 곳이다.
규모로 따진다면,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의 '고구마' 또한 결코 뒤쳐지는 곳이 아니다. 잡지, 참고서, 문학, 인문․사회과학 등 아동도서에서부터 전문도서에 이르기까지 20만 권 이상의 책을 몇 개의 매장에 나눠 보관해야할 지경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42곳의 책방 가운데 3곳만 선보인다. 책방을 소개하면서 이 같은 주객전도 본말도치가 또 있을까마는, 나머지 39곳은 '품을 팔아 마음의 양식을 모으는 순례자'들에게 돌린다. 해량있으시길.
● 지하철 3 호선
* 원당
집현전 031-968-4945
* 연신내
문화당서점 384-3038
작은우리 383-6263
* 홍제
대양서점 394-4853
* 독립문
골목책방 313-5066
* 경복궁
서울예고 앞 헌책방 395-6359
* 고속터미널
정음책서점 535-2991
* 도곡
한솔서점 562-6234
서적백화점 577-9876
* 학여울
책창고 557-1616
* 대청
황룡서점 2226-9414
* 경원대
한빛서점 031-758-9484
* 초림
책창고분당점 031-719-2939
● 지하철 4 호선
* 상계
책백화점 932-8233
* 수유
가람서점 902-9391
창동서점 906-2286
* 미아
서울서점 983-4501
대흥서점 981-3214
* 미아삼거리
교양서점 981-1005
책의 향기 919-3583
책백화점 915-6513
안흥책서점 911-8211
경북서점 918-1625
송천헌책방 982-0886
* 길음
문화서점 917-6874
* 성신여대입구
그린북스 921-0592
이오서점 926-6368
보문로 이름 없는 헌책방 923-9960
* 한성대 입구
광서당 742-6155
삼선서림 747-3444
* 혜화
혜성서점 741-0143
* 사당
사당문고 3472-5555
● 지하철 5 호선
* 송정
충남서점 664-1475
* 목동
수현헌책방 2607-5223
열린책방 2653-7122
* 공덕
굴다리헌책방 706-2338
* 애오개
마포서적 312-3165
* 서대문
서대문도서 392-8180
연구서원 738-0174
* 청구
헌책백화점 2252-3554
* 신금호
고구마 2232-0406
* 개농
신영서점 404-3375
※ 자료출처: 인터넷 동호회 <숨어있는책>, 다달이 펴내는 책 <헌책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