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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황무수 부사장님의 특강내용으로 일상생활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귀감이 되는
좋은 말씀이 많아 본 지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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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수부사장 프로필
- 조선사업 본부장
- 1945년 2월 6일생 (경남 진해 출신)
- 1972년1월 1일 현대그룹 공채입사
○ 일 시 : 2006. 8. 21(월) 14:00 ~ 15:30
○ 과 정 : 현대중공업 신입사원 수련대회
○ 대 상 : 입사 1년차 신입사원
○ 강 사 : 황 무 수 본부장
신입사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먼저 세계 일류 기업인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또한 이 자리에 서서 패기와 젊음이 넘치는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특강을 하기에 앞서 가족사진 한 장을 준비 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조직이 가정이고 모든 조직의 바탕은 가정의 원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 5년 만에 딸을 하나 낳았습니다. 얼마나 귀한 딸입니까? 또 한편으로는 없다가 있으니까, 없는 것하고 있는 것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0 하고 100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하나만 키우자, 하나도 없던 우리에게 하나라도 주셨으니까 하나라도 제대로 키워보자고 집사람하고 결정하고, 결국 하나만 낳아서 키웠습니다. 우리 아이가 여러분 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사진 설명) 제일 끝에 있는 사람이 사위고 그 옆에 딸, 외손녀, 그 다음에 집사람하고 제가 있는데 이것이 지난 여름휴가 때 찍은 사진입니다. 여름휴가 때 오래간만에 하나 찍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크면서 다른 친구들은 오빠나 언니나 동생이 있는데 자기는 없다고, 동생을 하나 낳아 달라는 겁니다. 혹시 여기에 혼자 큰 사람 있습니까? 형제, 자매 없이 혼자인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내리십시오) 제 나이 때만 해도 혼자 키운 사람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여기는 별로 없네요. 그런데 좀더 커서 엄마, 아빠가 이제는 아이를 안 낳는다는 것을 알고는 고아원에서 하나 데리고 오라는 겁니다. 그것도 안 된다고 했더니 중학교 때쯤 되어서, 아니 초등학교 한 5, 6학년이 되니까 필요 없다는 겁니다. 왜 필요가 없느냐? 지금 동생 낳으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혼자 컸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혼자만 키워도 되겠다고 생각했고, 또 아이의 모든 것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혼자 크면서 상당히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동생을 낳으라고 했다가 포기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삭이는 걸까요? 그런데 부모가 아이에게 도움이 못 되어 줬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중학교 때는 공부를 좀 괜찮게 해서 고등학교를 울산 시내에 있는 모 여고에 보냈는데, 혼자 자라면서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좀 모자란다고 해야 하나,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 성적이 아주 안 좋았습니다. 대학은 가야 하는데 상당히 걱정을 했습니다. 집사람은 쇼크를 받아서 몸에 이상이 와서 대수술을 하고 그랬는데, 지금 여러분도 크면서 부모님하고 여러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자식하고 부모관계가 이해가 좀 될 것입니다. 아이가 힘들어 할 때 좀 도와주려고 해도 부모는 자식한테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이야기인데, 옆에서 방황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하루는 “아빠, 내가 학교 가서 무슨 생각하는지 아세요?” 하는 겁니다. 제가 알 수가 있습니까? 그냥 공부 잘 하고 있겠지 했는데 “성적이 안 오르니까 걱정만 하고 있다” 는 겁니다.
결국 좋은 대학은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공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외롭게 자란 탓에 처음에는 아이를 10명 정도 낳는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결혼한 지금 하나 하고 반입니다. 하나는 지금 뱃속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제 딸아이하고 대화가 안 됩니다. 대화가 되었으면 사춘기 시절 힘들 때 대화로 풀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자기를 이길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주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대화의 방법을 잘 몰랐던 겁니다. 평소 가정에서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잘 안 풀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풀었는가 하면 제가 가끔 해외 출장을 갔었는데 출장 나갈 때마다 딸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많이 발달되어 메일로 보내고, 전화가 발달되어 전화로 하지만, 저는 편지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계속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메일을 보내는 것하고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겁니다.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씁니다. 그것을 보고 딸아이가 자기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자식이 마음의 문을 여니까 부모하고 자식간의 의사소통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가서는 자기의 위치를 찾는 겁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일본 가서 6, 7년 공부하다가 결혼도 하고, 지금까지 한국에 나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딸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도 지금 막 직장에 들어 왔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가나 제일 막내입니다. 또 한편으로 가족에 비유하면 갓 태어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형님 되는 사람도 있고, 아버지뻘 되는 사람도 있고, 회사의 조직 속에 전혀 다른 계층들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여러분과는 전혀 다른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접근하려고 해도 잘 모릅니다. 부모하고 자식간에도 잘 모르는데, 회사 생활 하면서 그 집단속에서 여러분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1900년생 이니 돌아가신지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1980년도에 돌아 가셨는데 제가 막내입니다. 제가 사춘기 시절에 저희 아버지하고 저하고 큰 사건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아버지하고 완전히 담을 쌓고,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 돈은 한 푼도 안받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냥 혼자 힘으로 공부하면서 대학 졸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가지고 머리가 커지면서 아버지하고 화해하고 이해를 해야 되겠는데, 미루다가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저희 집에서 모셨는데 그것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제 딸아이하고 저와의 관계, 아버지하고의 관계에서 무엇이 문제였는가 하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던 겁니다.
이제 여러분이 직장에 들어와서 생활하면 지금까지 집에서 생활하던 것하고 전혀 다릅니다.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 하고 서로를 잘 알고 있고 가정에서는 어릴 때부터 서로를 알고 있는데, 이제는 전부 모르는 전혀 생소한 곳에 들어와 있는 겁니다.
다른 이야기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오래전의 이야기인데 회사에 청소하는 별정직 아줌마들이 있습니다. 돌집이라고 불리는 “문화관”에서 제가 근무할 때인데 거기에 청소하는 아줌마 한사람이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그 아줌마를 보는데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서 내가 저 아줌마의 얼굴을 한번 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 제가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그때 이미 제가 중역이었는데, 중역이 인사를 하니까 아줌마가 처음에는 이상해 하면서 대답도 잘 안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한달정도 지나니까 얼굴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한테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마음의 문을 열자. 여러분도 회사에 들어 온지 6개월이 넘었고 여러분이나 선배님들 모두 반이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겁니다. 반에 있는 형님들이나 혹은 반장, 과장들이 여러분을 다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사람들은 여러분을 잘 모릅니다. 나부터도 여러분을 잘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러분이 먼저 마음을 열고 그 사람들을 대해 달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의 벽이 너무 두꺼워집니다. 너무 오래 갑니다. 그 사람들 보다 여러분이 더 오래 회사에서 근무 할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1년 있다가 나갈 사람도 있고, 5년 있다가 나갈 사람도 있지만, 여러분은 30년 이상 여기에 있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럼 누가 먼저 문을 열어야 합니까? 누가 마음의 문을 열고 누가 좀 더 양보를 하고 누가 전체 분위기를 끌고 가야 하느냐? 하는 겁니다.
제가 조금 전에 가족사진을 보여 드렸는데, 그 중에 손녀가 있는데 외손녀가 참 좋습니다. 딸아이는 공부하고 있어서 외손녀를 우리가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힘은 듭니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를 제일 어린 아이 하나가 완전히 바꿔 놓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한번 바꿔서 해 봅시다. 지금 여러분이 제일 막내로 반, 팀, 과에 소속되어 있는데 여러분이 얼마나 윗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냐?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여러 가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서 면담 및 설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근무한 여러분 부모님의 이야기, 혹은 큰 형님들의 이야기인데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가정문제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같이 근무하는 선배님들의 나이가 여러분 아버지쯤 되는 분들은 사실은 그렇게 많이 배우지를 못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했다든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든지, 주로 중학교도 졸업 못 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회사 와서 하는 것이라곤 하루 종일 일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자꾸 올라가서 지금 받는 임금은 상당히 높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대학까지 다 나옵니다. 집에 있는 집사람은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아도 생활이 다 되니까 다른 여가 생활을 즐깁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아버지가 안다는 것이 결국은 일 밖에 없고, 평소 때도 일을 하고 주말이 되어도 회사 와서 특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대학까지 나왔고 또 부인은 부인대로 여가 생활을 즐깁니다. 그런 가족들하고 통하겠습니까? 안 통하는 집안이 참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가정문제가 제일 심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정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제 시작하는 여러분은 가족으로 보면 제일 막내이고, 그 소속되어 있는 반이나 팀이나 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사람이고, 여러분 “스스로 마음을 열어주고, 양보해 주고, 이해를 함으로써 소속되어 있는 반 혹은 팀이 새로운 분위기가 될 수 있다” 라는 마음가짐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양보와 화합이란 말을 썼습니다.
저는 1972년 1월 1일부로 입사를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필기시험을 다 치고 최종 면접시험을 보았는데, 저는 현대중공업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조선사업본부 라고 현대 건설에 있었습니다. 현대건설에 대학출신 1차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12월에 면접을 보는데 면접할 때 면접관 중에 겨울에 시장가면 포목점 아저씨가 입는 두툼한 털 잠바 같은 것을 입고 있는 것이 연상이 되는데 그런 분이 몇 분 앉아 계셨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저 분이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돌아가신 정주영 명예회장님 이셨습니다. 저야 그 분 얼굴도 잘 모르니까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때 인상이 꼭 시장 포목점 주인 같은 인상,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겁니다. 우리 회사의 사훈이 근면, 검소, 친애 입니다.
제가 가족이야기, 제가 회사 들어온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 중에서 여러분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 명예회장님하고 있었던 일중에 하나가 면접 했을 때 이야기이고 하나는 조선 2야드 이야기입니다. 지금 여기에 조선 2야드에서 일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조선 2야드가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1993년에 시작해서 1996년까지 3년 동안에 건설을 했습니다. 제가 건설 책임자였습니다. 기획, 계획을 하고 건설하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조선사업부가 1야드만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장님이 오셔서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도크 2개를 더 파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도크 2개만 파면 배가 만들어 집니까? 공장도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회사 내에서는 전부 현재 도크를 더 파가지고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지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명예회장님이 지시를 하시니까 반대는 못하고, 지금 조선을 확장하면 일이 안되는 것인데, 이윤이 남지 않는데 배를 몇 척이나 만들어야 투자한 돈을 벌 수 있을까? 도저히 숫자상으로는 계산이 안 된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그 자리에는 해양사업부가 있었습니다. 그 공장을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지금 현재의 8도크, 9도크를 파고 가공 공장, 판넬 공장, 대조립 공장, 도장 공장을 전부 건설했습니다. 우리 현대중공업 내에서 조선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입니다.
제가 명예회장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분의 그런 예지, 그 당시에 8도크, 9도크 합한 2야드를 건설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현대중공업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당시 1야드에서 했던 것이 얼마냐 하면 1년에 평균 30만 톤의 철판을 소모했습니다. 올해는 150만 톤 입니다. 내년, 내후년에는 170만 톤까지 합니다. 그 분이 전문가들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판단을 하실 수 있었느냐?고 생각하면 상당히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현대중공업을 만들고 지금 조선사업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회사에 들어 왔을 때 많은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회사에 입사하면 바뀌는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생활을 하다가 회사에 들어와서 어떻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다들 했을 겁니다.
저는 입사하면서 생각했던 것을 지금까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에 들어가서 내가 대한민국의 조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는 것입니다. 입사한지가 35년이 되었는데 그때 생각이나 지금 생각이나 똑같습니다. “내가 가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 한국의 조선 산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해서 관리직으로 들어왔고 여러분은 생산직으로 들어와서 상황의 차이는 조금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무엇인가를 마음에 다짐하고 입사했을 겁니다.
지금 현재 골리앗크레인 450톤 2개가 있습니다. 원래는 8도크, 9도크에 없었습니다. 1, 2, 3도크에 450톤 크레인이 2개가 있는데, 합치면 900톤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부산에 있는 대한조선, 지금의 한진조선소인데, 그때 당시 제일 큰 지브크레인이 30톤이 있었습니다. 30톤 크레인으로 블록을 들고 운반하고 탑재하고 하다가 900톤 짜리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회사에서 저한테 그것을 하라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전에 6개월 동안 영국에 가서 연수를 받고 왔는데, 어떻게 한다는 것은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계산하고, 방법을 찾아내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마침 그때 외국인 사장을 모시고 있었는데 덴마크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장님이 자기가 코치해 준다고 맡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도면을 그려서 계산한 후 사장실에 가서 허락이 떨어지면 실행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900톤 골리앗 크레인에 대해서 어떻게 핸들링하고, 블록을 어떻게 하면 탑재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모든 방법을 준비하고, 또 어떤 것은 계산하는데 한달이 걸렸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데크하우스 같은 것은 하나로 만들어서 탑재하는데, 한번은 회사에서 사진 한 장 주면서 “이 사진대로 해라” 지시가 이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하나 보고 한달 동안 계산을 했습니다. 한달 계산하고 처음으로 시도할 때 얼마나 떨리고 설레임도 많았겠습니까? 새로운 방법을 하나 강구해 놓고 현장에 가서 용접하는 것부터 전부 감시하고 확인합니다. 그 당시 겨울이었는데,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 퇴근하고 난 이후 1시, 2시가 되어도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눈이 펑펑 내리는 곳에서 900톤 골리앗 크레인, 450톤 두 대가 큰 블록을 들고 탑재할 때 “내가 했던 일이, 준비했던 일이 이렇게 해서 성립이 되는구나!”계산상으로는 다 나옵니다. 실제로 괜찮은지는 잘 모릅니다. 모든 것이 처음 하면 신기합니다. 새로운 것을 전부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갖추어져 있는 것을 빨리 습득하는 일입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학교생활 했던 것, 가정생활 했던 것하고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는데, 나쁜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갈등할 수도 있습니다.
또 제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은 조선사업부에서 했고 고정되어 있는 것은 해양사업부에서 했습니다. 최초의 시추선을 1984년도에 계약했는데, 1984년도 그때 당시에 10월달까지 배가 한척도 계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0월 달에 첫 번째로 계약한 것이 시추선 이었는데, 그 계약을 한다고 제가 노르웨이에 가서 2달 동안 진짜 엄청 고생 했습니다. 잘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시간도 쫓기고 어려움 끝에 계약을 했는데 그 계약 자체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습니다.
건조하는 동안에도 상당히 힘들었고 회사에 손실도 많이 끼쳤습니다. 상당히 많은 손실을 회사에 끼친 부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는 몇 번 책임을 지고 회사를 그만 두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관계되는 사람들이 회사를 많이 그만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 끝내고 나서 생각을 하니까 억울합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 계약하고 건조했는데 이 경험을 살려서 회사를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해야겠다고 오기가 생겼습니다.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했다고 실패로 끝나면 안 됩니다.
여러분도 회사 생활을 하다가 조그마한 일에 좌절할 수가 있습니다. 또 조그마한 일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또 가정에서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좋은 경험으로 삼아야 합니다.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실패를 해 보았기 때문에 무엇을 잘못해서 실패했는지 원인 분석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그만두면 그 다음에 또 실패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패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살리는가가 여러분이 회사생활 및 살아가는데서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이런 말입니다. 마음을 한번 먹어서 어떤 일을 했다가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경험을 살려 실패하지 않으면 됩니다.
제가 회사 생활하면서 주로 이런 이야기들은 명예회장님이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 나갔고 사훈을 어떻게 하고 여러분 잘 아시죠? 적극 의지, 창조적 예지, 강인한 추진력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을 겁니다. 이런 것들은 여러분이 생활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가 체득해야 합니다.
두 번째, 스스로 자신을 만들자. 우리가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우리 회사가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회사의 비전은 경영자들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 제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장이 만들어 가야하고, 여러분 자신의 비전은 여러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거창한 것 아니라도 좋습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 하고, 나중에 결혼해서 가정을 가졌을 때, 또 나이가 더 들었을 때 혹은 지금 현재 여러분의 위치에서 아니면 직위가 좀 더 올라갔을 때의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하고 여러분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들어 와서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회사를 다녔습니다. 보통 한가지 일에 종사하면 대개 2내지 3년을 합니다. 그러고 나니 30년 하고도 몇 년이 지나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은 현장에 가면 대부분 지금 주어진 일들에서 큰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똑같은 일을 계속합니다. 그럼 어떻게 30년 동안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떻게 전문가가 먼저 될 것인가? 가 중요합니다. 그럼 일만 합니까? 일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이 일을 했다가 저 일을 했다가 제가 걸어 왔던 것처럼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여건도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보내야 되느냐? 일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회사와 가정이란 것을 생각하고 여러분 주위 여건에 맞는 것을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자기 취미에 맞는 일을 지금부터라도 찾아서 조금씩 해야 합니다. 회사는 그런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일을 하고 있는 곳에서 key는 무엇인가 하면, 여러분이 일하는 곳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빨리 습득하고 전문가가 되면서 주위의 일과 어떻게 융화시키면서 여러분의 비전을 만들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1년, 2년 있다가 회사를 그만 둘 것이 아니잖습니까? 최소한 30년은 근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을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회사는 여건만 제공할 뿐입니다. 울타리만 쳐 줄 뿐입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만들어야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에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우리 회사의 비전은 Global Leader 입니다. 여러분 개인이 봤을 때는 개인 한사람의 비전이라는 건 Global Leader가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설정을 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고, 필요할 때 변화시켜 가야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30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세 번째, 정년까지 근무하자. 저는 지금 조선사업부를 맡고 있는 본부장입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도 대부분이 조선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한국 조선 산업의 현실적 인식을 보시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영국이 조선 1위였습니다. 그러다가 50년대에 와서는 서유럽이 가격 경쟁력 우위에 있었습니다. 60년대, 70년대 가면 일본이 가격 경쟁력 우위입니다. 위에서 비교하는 것은 전체를 생각 안하고 가격에 대한 것만 표시한 겁니다. 그 다음 80년대, 90년대 와서는 한국이 가격 경쟁력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지금은 중국입니다. 그러니까 가격만 가지고 보면 점점 더 변해가지고 이제는 중국이 한국보다 가격경쟁이 우위입니다.
그 다음 한?중?일 조선 경쟁력 분석을 보시면 이것은 중국 사람들이 만든 자료입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중국 사람들이 만든 것인데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봅시다. 인건비가 중국이 1이면 일본은 7배이고 한국은 8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일본보다 한국이 인건비가 비쌉니다. 우리 회사의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간 수입이 보험료, 퇴직금 다 합치면 달러로 6만불입니다. 여러분! 6만불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개인소득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줄을 세우면 6만불 정도 되면 20%안에 들어갑니다. 우리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기장이면 얼마나 받겠습니까? 적어도 8만불은 받을 겁니다. 내가 그 기장에게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수입이 있는 사람 중에서 어느 정도쯤 된다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어 보니까 그 기장이 50%는 안 되겠냐고 합니다. 그 정도 되면 15%내에 충분히 들어 갈 겁니다. 미국에 현대자동차가 공장을 세웠는데 인건비가 3만불이 안 됩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 생산직 평균이 지금 6만불입니다. 인건비 비율을 보면 중국이 우리의 8분의 1이라는 겁니다.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비쌉니다.
그런데 인력자원은 중국에는 얼마든지 있고 일본은 모자랍니다. 한국은 최근에 들어와서 좀 모자랍니다. 모자라서 훈련생을 많이 뽑아서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올해는 정년까지 연장이 되었습니다.
자료화면에서 강재를 보겠습니다. 중국은 자기 나라에서 톤당 400불에 사고 일본은 520불에 사는데 우리나라는 620불에 삽니다. 전체 원가 구성요소를 보면 인건비하고 자재비 비중이 큰데, 제일 큰 것이 그 중에 인건비가 이렇고 자재비 중에서 철판 값이 제일 많이 들어가는데 철판이 이렇습니다. 그럼 지금 성과는 중국에 있는 조선소가 우리가 내는 성과보다도 훨씬 더 싸게 냅니다.
그런데 선주가 중국에 다 안 가고 우리나라에 오느냐 하면 아직까지도 품질이나 납기 등 여러 가지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조금 비싸도 한국으로 옵니다. 우리가 70년대 시작할 때 일본과의 경쟁에서 선주들은 싼 맛에 발주를 했습니다. 지금은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똑같은 경우입니다. 중국이 우리를 추월할 때가 언젠가는 옵니다. 똑같은 조건이 된다고 합시다. 물론 그때 가서는 중국이 우리보다도 8분의 1의 인건비는 아닐 겁니다. 인건비는 좀 올라갈 겁니다. 그러나 지금 이미 원가가 싸지고 있고 중국이 품질이나 납기를 잘 지킨다면 싼 곳에 가지 왜 비싼 곳에 오겠습니까?
기자재는 지금 자기들 것은 중국이 쌉니다. 그런데 수입하는 것은 높습니다. 자급률이 아주 낮습니다. 일본은 가격은 높으나 자급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한국도 기자재 가격은 약간 높지만 자급률이 거의 85% 이상입니다.
여기 보시면 건조효율이라고 있는데 무슨 뜻인가 하면 1인당 1CGT 건조시간이라고 써 있는데, 어떤 일을 할 때 1톤의 일을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 하는 겁니다. 쉬운 배는 좀 적게 걸리고 어려운 배는 많이 걸립니다. 그것을 평균으로 해서 보면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일본이 제일 적게 걸립니다. 아직도 공수가 제일 적게 든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10내지 15 맨아워가 들어가고, 한국은 15내지 20이 들어가는데, 중국은 40내지 50이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 비하면 2배내지 1.5배가 됩니다. 인건비가 8분의 1인데 건조효율은 2.5배가 들어가니까 그것만 가지고 하면 아직도 인건비가 쌉니다. 공수는 2.5배내지 2배가 더 들어가는데 비용은 8분의 1이다 그럼 인건비는 훨씬 쌉니다.
옛날에는 납기지연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납기는 우리보다 길지만 지연시키는 일은 요즘 많이 적어 졌습니다. 여기에 엔진사업부에 근무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요즘 중국도 엔진을 두 달 빨리 달라고 한답니다. 그 만큼 자기들도 납기를 당기고, 지키고 있습니다. 선박 성능품질도 대폭 제고 되고 있고 비교적 높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분석한 것입니다.
아까 세 번째로, 정년까지 근무하자고 했습니다. 올해부터 정년이 58세로 연장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계신 분들은 30년 동안 근무를 하게 됩니다. 정년까지 근무하려면 첫째 조건이 무엇입니까? 회사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이 건강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건강하지 않으면 회사는 살아 있어도 정년까지 근무를 못합니다.
먼저 “회사가 살아 있어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봅시다. 어떤 상황에서 살아 있습니까? 올해 임단협이 끝나고 회사 비용 부담 증가분이 회사 전체로 보면 10%이상 올랐습니다. 지금 평균이 6만불이라고 했는데 매년 10%씩 오른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10년 후에 100% 올라가서 지금의 배가 됩니다. 그럼 인건비가 그 만큼 올라갔을 때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겠습니까? 회사에 돈이 조금 남는다고 해서 그런 쪽으로 나가면 경쟁력을 어떻게 가집니까? 물론 중국의 인건비도 올라갑니다. 중국도 우리처럼 노사분규 없으란 법 없습니다. 지금 중국은 다 국영입니다. 개인화로 되면서 문제가 생길 겁니다. 현대중공업은 한국의 조선소들이 그 동안 걸어왔던 30여년을 비슷하게 걷겠지만 그 시간은 상당히 단축이 될 것입니다.
지금 같이 근무하는 선배님들 중에 30년 동안 근무할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나이가 40, 50이 넘은 사람이 몇 년 근무 더 하겠습니까? 이 현대중공업에서 가장 오래 있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무엇을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줄 것인가? 회사는 만들고 싶은데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해 주어야 합니다. ‘현재가 중요하지. 정년까지, 30년까지 어떻게 생각을 하냐’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정년까지, 30년까지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회사는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 들어온 여러분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 회사는 재투자를 해야 합니다. 재투자를 해서 일도 늘리고, 일도 쉽게 하는 방법도 찾고, 자동화도 하고, 이윤을 더 낼 수 있도록 하고, 경쟁력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회사는 첫째로 성장을 해야 합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은 일을 자꾸 많이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성장을 합니다. 그 다음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적정한 이윤을 취해야 합니다. 적정한 이윤을 취하면서 성장을 하려고 하면 일을 더 많이 받아 내기 위해서 시설도 확장해야 하고, 이윤을 더 내기 위해서 시설도 바꾸어야 되고 사람도 키워야 됩니다.
여러분 지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 회사에서 30년 근무 할 건데, 이제 몇 년 근무 안할 사람들이 내 것을 잠식한다, 그런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30년 근무를 해야 되고 저 사람들은 1년, 2년이면 나가고 혹은 5년이면 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회사는 신입사원들 혹은 젊은 사람들이 오래 근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여러분은 거기에 호응하면서 할 일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회사가 하고 싶어도 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져 회사 문 닫습니다. 일거리 못 가져오면 여러분의 일자리가 줄어듭니다. 앞부분에서 건강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 요즘 조선사업부는 “툴박스 미팅한다.”고 하는데 지금 한번 물어 봅시다. “툴박스 미팅”알고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현장에서 작업하기 전에 개인 지적을 한다고 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회사가 안전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우스운 일입니다. 여러분 건강인데, 여러분이 건강하게 정년퇴직할 때까지 건강을 유지하라는 말인데, 여러분 중에 가정을 꾸린 사람들은 가정의 장으로서 가정을 잘 이끌도록 해달라는 말인데, 왜 여러분 협조가 안 되는 것입니까? 다치면 누가 다칩니까? 회사가 다칩니까? 상당한 경우에 어떤 시설을 안 해서 근본적으로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본인들이 자기 자신을 잘 지키지 않는 겁니다. “나는 아니겠지.”그런데 여기에 있는 여러분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찔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다쳤을 때 회사는 보험료만 더 내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생활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데도 회사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하자고 하면 제대로 반영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직 다쳐보지 않았기 때문에, 30년 동안 근무를 안 해 봤기 때문에 실감을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전부 여러분 자신의 일이 됩니다. 현장에서 말하는“툴박스 미팅”은 자기 작업장에서 스스로 할일이 무엇인가? 하고 내가 무엇을 지켜야 되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회사는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자기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회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회사가 있어야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회사는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회사는 재투자를 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이 건강해야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결혼 하신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제법 됩니다. 이미 가정생활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앞으로 전부 결혼할 겁니다. 회사와 나의 위치, 가정과 회사, 또 가정의 내 위치 이런 자리에서 생각을 한번 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선만 이야기해서 미안합니다만 제가 타사업부는 잘 몰라서 조선만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근무하고 있는 중공업내 50%가 조선이 차지한다고 했는데 큰 경영지표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매출이고 하나는 생산량입니다. 회사가 성장을 하려면 매출이 계속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2005년도에 47억불 하다가 2006년도에는 61억불로 몇 년 동안 상당히 많이 늘었습니다. 2003년도에 우리가 100만톤 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는 145만톤, 2007년에는 150만톤, 2008년도에는 170만톤을 할 것입니다. 일 양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회사 설비도 많이 늘리고 재투자도 많이 할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는 시간을 좀 벌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정년퇴직할 때까지는 저도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10년까지의 일은 제가 하고 있고 사장님이 직접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30년까지 여러분 보장을 나는 못합니다. 다음 사람이 해야 하고 여러분이 같이 해야 합니다. 몇 년 동안의 조선사업은 매출도 성장도 상당히 좋습니다. 지금 현재 계약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이 현대중공업 생기고 나서 제일 좋은 때입니다. 여러분이 제일 좋은 때에 들어왔다고 해서 어려움을 모르면 안 됩니다.
어려울 때는 한해가 지나가는 12월 달이 되어도 계약 한 건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연말이 되어서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야 하는데 내년 1년 일이 안 찹니다. 그렇게 시작한 해가 여러 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2007년도 계획을 짜는데 2008년도까지 현장일이 다 차있습니다. 그러니 계획 세우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지금은 상당히 좋은 시절입니다. 여러분이 좋은 시절에 들어 왔는데 이런 시절이 항상 유지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시 한번 우리 가족사진 보십시오. 제가 지난번에도 이런 이야기 한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인생을 셋으로 나누면 처음의 3분의 1은 부모 밑에서 자라고 공부하고 했던 것, 이제 여러분은 앞의 3분의 1은 다 지나갔습니다. 가운데 3분의 1이 이제 시작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가정을 꾸리고, 그러다가 정년이 되어 일을 그만 둘 때까지를 3분의 1로 봅시다. 나머지가 3분의 1입니다.
앞으로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납니다. 지금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오기 전까지 3분의 1은 여러 가지 굴곡이 많았을 겁니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 왔지만 지금은 똑같은 조건에 서 있고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다 끝내고 마지막 3분의 1을 내가 어떻게 보낼 것이냐, 내 위치가 여기 있는 동료들 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지금 이 회사 생활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따라서 마지막 3분의 1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직장을 그만둔 후 여러분이 80세, 90세까지 살텐데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또 회사가 있어야 가운데에 있는 3분의 1이 보람되고, 마지막 3분의 1도 여러분한테 좋은 3분의 1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회사도 건강하고 여러분도 건강해야 합니다.
제일 처음에 이야기 했다시피 여러분이 마음을 좀 비워주고 양보할 것은 좀 해주고 여러분이 속한 반, 팀에 어떻게 하면 좋은 분위기로 끌고 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여러분의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제 외손녀가 즐거움을 주는데 단순한 즐거움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런 역할을 해 주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또 여러분이 앞으로의 계획도 세우고 30년 후 정년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회사하고 함께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련대회에 와서 단합도 하고 좋습니다. 저는 강의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여러분한테 재미있게는 강의해 주지 못했다고 생각을 하지만, 제가 여러분처럼 똑같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35년을 살면서 느껴왔던 것을, 또 회사를 이끌고 있는 본부장으로서 여러분한테 진심으로 당부하고 또 선배로서 방향을 제시해 줄려고 노력했는데 얼마나 여러분 마음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입사원 하계 수련대회가 단순한 수련대회로 끝나지 말고, 끝나고도 여러분이 계속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제 이야기는 끝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