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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상담과정에서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나요?1)
How Can Counselors Associate Bible with the Counseling Process?
이 관 직
(목회상담학)
1. 문제제기 및 목적
2.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대한 비평
3. 상담에 있어서 성경 사용에 대한 역사적 이해
4. 성경을 상담의 과정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나요?
4.1 균형 있는 해석학적인 접근의 필요성
4.2 신학적 틀을 염두에 두기
4.3 위로부터의 접근과 아래로부터의 접근을 유연성 있게 병행하기
4.4 성경에 기초한 검사지 사용의 가능성
4.5 주제별로 사용하기
4.6 인용할 것인가? 아니면 적용할 것인가?
4.7 풍부한 성경적 메타포를 활용하기
4.8 상담자의 자기인식의 중요성
4.9 과제로서의 성경읽기
5. 맺는 말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uggest some specific methods with which pastoral counselors may associate Bible in their counseling process. Before moving to the main issue, this writer criticized Lacking Christianity Contaminated by Psychology written by Seong Ho Ok that is one of best-sellers. He is strongly against any approach that may associate psychological understandings with Bible. He is a layman and not a professional counselor who took courage to challenge the Christian counseling movement in Korea from a biblical counseling perspective. He misunderstands the integration model of Christian counseling as a kind of melting or assimilating approach. He takes the doctrine of "sola Scriptura" and of "the sufficiency of the Scriptures" in a wrong way and tries to support the biblical counseling approach. This writer criticizes him because his approach is not much based on the approach of Reformed theology that values common grace in relation with special revelation, the Bible. In the next section, the use of Bible in the pastoral counseling movement in the United States in the twentieth century is explored. Seward Hiltner, Wayne Oates, Carroll Wise, Donald Capps, and Jay Adams are compared to one another. In the main section, nine practical areas relevant to the research question are examined: the necessity of balanced hermeneutic approach, consideration of a theological framework, flexible use between "From the Above" approach and "From the Below" approach, possible use of inventories based on Bible, thematic use of Bible, quotation or application, use of diverse biblical metaphors, importance of self-awareness of the counselor, and Scripture reading as a homework.
1. 문제제기 및 목적
최근 한국교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는 옥성호의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2007)를 접한 필자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필자가 잠시 상담실에서 몸담았던 사랑의 교회의 원로목사이신 옥한흠 목사의 장남인 저자가 쓴 책이 기독교상담학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사실과 비전문인인 저자가 자신이 깊이 있게 알지 못하는 기독교상담 또는 심리학이란 전문 분야에 대해서 너무나 확신 있게 비판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옥목사님의 아들인 저자에 대해서 비평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고 비전문가의 저술에 대해서 비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출간되자마자 기독교계 출판물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그의 책이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악영향이 끼쳐질 것을 생각하면 학자적인 양심으로 비판을 하고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누군가 그 역할을 하겠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영향력이 줄어들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지냈다. 그러나 그의 책에 대해서 독자들이 올리는 댓글들이 엄청나게 많은데다가 대부분은 극찬 일변도의 글들이며 계속 베스트셀러 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 우려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침 이번 한국목회상담협회의 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맡은 주제로 글을 쓰면서 짧게라도 옥성호의 책에 대한 비평을 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었다. 그의 책은 이 글의 주제와도 관련성이 깊기 때문에 그의 글에 대한 비평을 함으로써 글을 전개하려고 한다.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라는 자극적인 책 제목이 표현하듯이 옥성호는 심리학과 기독교상담학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에서 접근한다. 특히 심리학을 활용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매우 의심에 찬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의 이같은 태도는 성경을 상담과정에 연결하려고 시도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연장되어 나타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성경을 상담 과정에서 연결하려고 시도하는 기독교 상담학자들에 대해서 일갈을 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기독교 심리치료 또는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이상, 성경을 형식적으로라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운 기독교 심리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자신들이 공부한 심리학 이론에 맞추어 성경을 적용하려니 당연히 성경 말씀을 심리학 이론에 맞추어 왜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무서운 함정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부정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혼합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갖다 섞어 버림으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모르게 되는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자기 생각에 따라 이리저리 성경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경우 성경은 이제‘부정’의 대상도 되지 않습니다. 단지, 나의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할 뿐입니다.1)
만약 옥성호의 주장과 같이 목회(기독)상담사들이 성경 말씀을 왜곡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심리학 이론에 짜맞추기를 하는 상담을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성경 연결법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과연 상담과정에서 성경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작업이 “이것저것 갖다 섞어버림으로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 모르게 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일까?
한국교회에서 전문적인 목회(기독)상담사들이 배출되기 시작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상담과 성경이 어떤 관계성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성경적 상담학자들은 ‘오직 성경으로만’ 상담해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지 구체적으로 상담 상황에서 성경과 심리학적 이해와 통찰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 다루지 못했다. 반면 대부분의 목회상담학자들은 성경을 목회상담 현장에서 연결하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심리학적 이해에 기반을 둔 임상수련과 상담에 치중한 채 균형을 잃고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들어서서 한국목회상담협회 안에서 목회상담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신학적 성찰을 강조하는 학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 나아가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자원인 성경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목회(기독)상담의 과정에 연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앞으로 많은 고민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한국적 상황 속에서 필자는 초보적인 수준이겠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의 가능성을 제안해보려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따라서 이 글의 목적은 목회(기독)상담사들이 상담 과정에서 성경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데 있다.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기 전에 옥성호의 책에 대한 비평을 하고, 상담과 성경이 어떤 관계성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각기 다르게 이해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하면서 이 주제가 미국 목회상담 운동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2.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에 대한 비평
옥성호는 구체적으로 기독교 상담과 관련성이 깊은 세 사람을 선택하여 그들의 글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며 비판을 한다. 국내에서는 정태기와 주서택, 미국에서는 게리 콜린스와 데이빗 시먼스의 성경 해석법을 비판한다. 씨뿌리는 비유를 연결하며 “폐쇄적인 자아상,” “억압된 내면의 분노”라는 주제로 글을 쓴 정태기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해석하신 비유를 그가 함부로 심리학적인 의미를 담아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옥성호는 비판한다.2) 그는 “제가 힘든 상처들을 갖고 사는 많은 사람을 돕고 싶은 정태기 원장을 비롯한 많은 상담학자의 진심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분들의 진심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진의와는 관계없이 성경 말씀을 정신 분석 이론에 맞추려고 하면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 이론에 사용되는 말씀은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3) 성경을 지나치게 심리학화하거나 어느 심리학의 틀로 성경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는 것과 같은 시도를 하는 목회(기독)상담학자들은 그의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귀를 열고 경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옥성호가 비판하는 통합주의를 지향하는 목회(기독)상담학자들은 성경 말씀을 어느 심리학 이론에 “맞추려고”하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맞추는”것은 적응시키거나(adapting) 동화시키는(assimilating) 것을 의미하는 반면 “연결하는”(associating) 것은 두 부분의 유사성(similarities) 또는 유비(analogies)를 발견하거나 성경의 내용을 더 분명하게 하거나, 더 풍성하게 드러내거나, 기존의 해석을 보완하는 창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옥성호가 지적한 씨뿌리는 비유에서 예수님의 분명한 해석은 “이다”(is)로 명시적으로 볼 수 있는 해석이며 성경의 권위 자체인 신적권위가 부여된 해석인 반면 정태기의 해석은 그렇게 “볼 수도 있다”(may or can be seen)이라고 하는 개연성과 가능성을 내포하는 인간의 해석이기 때문에 정태기의 해석과 적용도 창의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옥성호가 오해하고 비판한 것은 정태기가 마치 본문을 왜곡해서 새로운 해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옥성호의 인간이해에 대한 깊이 없음과 폭이 넓지 못함, 그리고 해석학적인 한계점은 다음에서 잘 나타난다: “성경은 분명 구원받는 것은 ‘거듭나는 것’(요 3:3)이고 ‘새 것이 되는 것’(고후 5:17)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나고 완전히 새 것이 된다는 것은 분명 대단히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먼스를 비롯한 기독교 상담자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이런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는 구원이 그다지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4) 그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는 말씀이 “새로운 피조물”과 “새 것”이 하나님과의 존재론적 관계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바뀐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놓치고 있다. 현상학적으로도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을 체험한 성도들이 구원을 “이미” 받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니”라는 역동성 속에서 완전한 구원을 대망하며 변화해나갈 때 여전히 옛 자기의 모습과 갈등하며 죄성을 지닌 마음으로 고통하며 가족과의 관계에서나 대인관계에서 여전히 병리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마치 인식도 못하고 있는 양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크리스천들도 우울증을 앓으며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여전히 심리역동적인 이슈가 해결되지 않아서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이같은 그의 해석과 이해는 마치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신 예수님을 향하여 안식일을 어겼기 때문에 비성경적인 행동을 했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다 깨어진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형태의 정신적인 질환과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고통하고 있는데 설령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심리학적 접근으로 또는 약물처방으로 그들이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비성경적인 것일까? 목사 후보생으로서 신학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이 통합주의적 입장에서 상담하는 기독상담사들을 만나 내담자 경험을 통하여 상담을 받으면서 그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며 그 신앙이 더 깊어지며 풍성해지는 현상을 그는 어떻게 설명해낼 수 있을까?5)
옥성호는 기독교 상담에 대해서 매우 의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갖게끔 한다:
‘기독교 심리학’은 교회에 파고든 모더니즘 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기독교 심리학’은 오늘날 교회 속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더니즘의 선두 주자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다윈의 진화론에 맞추어 재해석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해왔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쩌면 다윈의 진화론보다 더 교묘하고 무서운 프로이트나 융 그리고 로저스 등이 제시하는 인간 본질에 대한 심리학 이론에는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그 이론들에 맞추어 성경을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두렵고 안타까운 일입니다.6)
옥성호의 이와 같은 시각에는 심리학에 치중했던 목회상담 운동이 일조를 한 면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목회(기독)상담학자가 성경에 대해서는 깊은 해석력과 이해가 부족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담 접근을 성경적으로 지지하기 위하여 관련 성구를 몇 구절 인용하는 것으로 상담에서 성경을 연결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비전문가인 옥성호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던 부분을 한국의 목회(기독)상담학자들은 겸손히 자신들의 모습을 자각하게끔 하는 도전의 목소리로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경적 상담학자들은 ‘오직 성경으로’상담해야만 한다는 강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에 많은 목회(기독)상담사들은 구체적으로 성경을 상담 과정에서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균형잡힌 모델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비전문가로서의 옥성호의 피상적 심리학 이해와 인간이해는 그의 책에서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 마치 전체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용감하게 말하는 것은 스스로의 심리역동적 이슈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책 표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외국어 대학교 노어과를 학부에서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 주에 있는 노틀담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한 그가 약 90여년의 역사적 전통을 가진 미국교회의 전문적 목회상담 운동과 목회상담학자들 그리고 약 3-40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미국교회 기독교상담 운동과 학자들의 접근에 대해서 너무나도 쉽게 싸잡아 비판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글은 드러난 일부의 현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과잉일반화(overgeneralization)의 인지적 왜곡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옥성호의 책에서 다룬 그의 신앙과 기독교 심리학 또는 상담학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숙성되지 않은 채 표현된 것임을 그의 역설적인 고백이 잘 드러낸다:
크리스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으나 20대 후반 어느 시점에 ‘기독교는 코미디’라는 결론을 내리고 기독교에 대해 관심 자체를 끊었다 그러나 가정적 환경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해 교회 출석은 빠지지 않았으며 겉으로는 기독교인으로 행세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6년 1월 로이드 존스 목사의 ‘교리 강좌 시리즈’를 읽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크리스천이 되었다.7)
기독교 신앙의 회심 체험을 한지 1년이 겨우 넘은 시점에서 마치 한국교회나 목회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자신만이 본 것처럼 책을 출간하고 ‘선지자적인’외침을 부르짖는 것은 경솔하며 미성숙함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마치 불안정한 대상관계를 맺는 경계선 성격장애적인 요소에서 보이는‘가치절하’(devaluation)와 ‘이상화’(idealization)를 오가는 극단성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와 같은 역동성은 그의 책을 기꺼이 출간한 부흥과 개혁사의 백금산 목사에게서도 보이며 그들의 오고간 서신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이전에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가졌던 저자의‘냉소적인’태도가 이제는 기독교 상담학에 대해서 비판하는 그의 글에서 곳곳에서 느껴지는 것은 회심한 후에도 기본적으로 그의 근본 성격에는 큰 변화가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옥성호의 책의 기본적인 논지는 이미 미국의 성경적 상담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적 상담학을 신봉하는 박사과정 학생 Bill Smith는 1996년 가을호 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통합주의자에 대해서 카운터펀치를 날리기 위해서 성경적 상담학자들이 주장한 내용들을 크게 15가지로 분류하여 각자의 강조점을 비교하는데 이 내용에서 성경적 상담학을 주장하는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와 인간이해가 잘 나타난다: 1) 세속 심리학은 기독교에 근본적으로 반대한다(Adams, Powlison, Bulkley), 2) 특정한 심리 이론의 주장은 기독교에 반대하는 이론이다(Bobgan, Ganz, Vitz), 3) 심리학은 거짓말로 상담한다(Bobgan, Owen), 4) 과학은 권위가 있지만 심리학은 과학이 아니다(Vitz, Kilpatrick, Bobgan) (옥성호, 제 1장 “심리학은 과학인가, 종교인가”참조), 5) 종교철학은 현대 심리학의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논증한다(Kilpatrick), 6) 심리이론들은 건전한 성경 해석과 모순된다(Owen, Adams), 7) 심리학은 조직신학과 모순된다(Powlison, Owen, Vitz), 8) 실천신학은 심리학보다 더 인간을 잘 이해하며 도울 수 있다(Powlison, Kilpatrick, Adams), 9) 심리학은 역사적으로 상대적이어서 시대가 바뀌면 바뀐다(Vitz, Powlison), 10) 심리학은 위험한 촉매이며 이단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Powlison) (옥성호의 책의 주장과 일치), 11) 심리학은 황제로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Vitz, Kilpatrick, Bobgan), 13) 심리학은 주장하는 것만큼 치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Vitz, Kilpatrick, Bobgan), 14) 적인 심리학을 여러 면에서 포위해서 공격하라(Vitz, Kilpatrick), 15) 심리학 이론 내부의 비평을 이용해서 역으로 비평하라(Adams, Bobgan).8) 이 주장들을 보면 옥성호의 책에는 특히 1), 2), 3), 4), 6), 10)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옥성호는 성경의 충분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장에서(제 5장 “성경은 참으로 충분한가”) 성경적 상담학자들이 잘못 이해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며 ‘오직 성경으로’ 상담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고 하는 종교개혁자들의 부르짖음은 교회의 전통이나 교회 회의를 통한 결정을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진 것으로 해석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매우 상식적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성경의 충족성(sufficiency) 교리 또한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계시를 성경에 이미 하나님은 충분하게 하셨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며 특별계시의 종결성을 말해주는 교리이다. 따라서 성경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으며 성경에 모든 인간의 삶과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교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9)
성경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정보와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일반계시적인 내용은 불필요하며 심지어는 사탄적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것은 성경의 충족성 교리를 오용한 것이다. 옥성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짓말을 가장 그럴듯한 ‘참말’로 들리도록 하는 것이 사탄입니다....심리학의 이론적 바탕 위에 누가 보아도 성경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옷을 곱게 차려 입고 얼굴에는 천사의 미소를 띠고 교회 속으로 들어옵니다.”10) 그의 관심어린 경고에는 나름대로 경청해야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균형을 너무 많이 잃을 만큼 심리학과 기독교상담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반면 심리학과 기독교상담의 긍정적인 기여와 장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필자가 견지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특별계시의 조명 하에서 일반계시의 유용성을 인정하며 일반은총의 영역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심리학은 인본주의에 기초한 이론이기 때문에 모두 “쓰레기”와 같은 것이라고 가치절하하는 태도는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흐름에 맞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근본주의 신학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경을 해석하며 인용하며 연결할 때 해석자의 주관적 인지와 성격장애 여부에 따라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왜곡과 편견이 존재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심리학, 특히 정신분석학적인 인간이해는 성경을 해석하며 적용하는 목회자나 상담사의 내적 동기나 방어기제, 무의식적 역동성에 대하여 도움을 주는 가치와 통찰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심리학을 싸잡아 비판하거나 쓰레기 처리하는 것은 상식과 일반적인 지혜와 일반적인 학문도 소중하게 보시며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다.
3. 상담에 있어서 성경 사용에 대한 역사적 이해
목회상담 운동이 시작된 1930년 초반부터 상담 과정에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핵심적인 논란 문제들 중의 하나였다고 캡스는 말한다.11) R. C. 캐봇과 R. L. 딕스는 그들이 공저한 책 The Art of Ministering to the Sick(1936)에서 한 장을 할애하여 병원환자들에게 성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다루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환자의 독특한 필요와 상황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고(적합성 원리) 둘째는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한계에 맞는 목회적 민감성을 갖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적절성 원리).12) 세 번째 원리가 더 추가되었는데 시워드 힐트너는 그의 책 Pastoral Counseling(1949)에서 성경이 상담의 원리와 방법과 일관성이 있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일관성 원리).13) 이 세가지 원리들을 보면 상담학의 원리와 방법이 더 우선시 되며 성경은 상담학의 범위 안에서 적용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즉 성경이 상담의 흐름과 방법을 인도하며 변화를 주는 원리를 제공하는 주요 치료 자원이 되기보다는 상담 이론의 흐름에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 성경이 사용된 것이다. 이 전통은 사실상 미국의 목회상담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되었다. 캡스는 이 세 번째 원리에 하나를 더 추가하여 상담자는 특정한 성경 본문은 선택하거나 사용할 때 사용자의 동기와 의도에 대한 자각을 하는 원리를 말하였다(자각의 원리).14)
캡스는 성경을 역동적으로 사용하는 방법과 도덕적 교훈을 위한 것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크게 나누어 미국 목회상담의 역사적인 흐름을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15) 앞에서 언급한 세가지 원리에 대해서 많은 목회자들이 저항을 드러내었고, 인간의 필요로부터 출발하여 성경을 사용하려는 것보다 성경이 인간의 필요를 규정하고 성경으로부터 인간으로 향해야 한다는 접근이 대표적으로 유럽의 목회신학자 에드워드 투르나이젠의 A Theology of Pastoral Care에서 나타난다고 캡스는 보았다. 반면 성경을 인간의 심리내면적인 역동을 다루는데 사용하며 관련성이 있는 성경구절들을 깊이 있게 연구하여 접목하려는 시도를 한 흐름의 대표적인 목회상담 학자는 웨인 오우츠였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오우츠는 “성경은 성도들의 보다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주는 목회자의 ‘왕도’이다”라고까지 그의 책 The Bible in Pastoral Care(1953)에서 말했다.16) 필자의 최근의 책 “성경과 분노심리”(2007)와 “성경인물과 심리분석”(2005)도 이와 같은 전통과 흐름을 같이 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17)
성경적 상담학의 효시 역할을 한 제이 아담스는 역동심리학적인 접근을 하는 성경의 사용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였고 도덕적이며 권면적인 성경의 사용을 주장하였다. 그는 내담자의 죄를 깨닫게 하며 도덕적인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하여 성경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는 내담자의 심리역동적인 이슈들을 탐색하고 드러내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 말씀이 빛이 되어 내담자의 숨겨진 죄를 드러냄으로써 내담자가 고백하고 회개하며 행동의 변화를 시도하고 제자훈련을 받는 것으로 성경적 상담의 단계를 이해하였다.
성경적 상담의 장점은 내담자의 이슈나 필요에 대해서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단점은 성경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강박적으로 성경과 연결하려는 시도에 있다.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며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는 시각을 견지했던 종교개혁자 칼빈의 성경 해석법의 정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충분한 정보를 담고자 하는 것이 성경의 일차적인 목적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성경적(biblical)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 나오는 것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인가? 성경만으로 (only Scripture) 상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성경의 정신에 일치하는 상담을 한다는 것인가? 성경적이라는 것은 성경 그 자체로서 보다는 해석자의 주관성을 내포하는 것이 아닌가? 허딩이 던진 질문처럼 성경적이라는 것이 “상담의 가정, 목표, 기법들을 포함해 모든 측면들이 성경적인 원리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믿는 것을 의미하는가?”18)
허딩은“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너무나 섣부르게 ‘비성경적’이라고 간주했던 방법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놀라게 하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여러 심리학의 이론들이 기독상담의 과정에 사용될 수 있음을 말한다.19)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성경적 상담학의 입장을 비판한다:20)
성경은 ‘교과서’라기보다는 ‘안내서’다. 그것은 딱딱한 이론이나 엄격하게 제시된 행동양식이 아니라 원리와 방향을 제시해 준다....그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값진 통찰과 이해를 제공할지라도, 성경은 일차적으로 심리학이나 상담교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경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허딩은 리차드 러브레이를 잘 인용하는데 다음의 인용글은 우리가 상담과정에서 심리학적 통찰과 아울러 성경을 연결해야 하는 근거와 당위성을 잘 제시한다: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 필요한 모든 진리가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는 가정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는 모든 필요한 지식의 요약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진리들을 시험하고 확증하는 시금석이며, 그것들을 통합하는 구조다. 그것은 백과사전이 아니라 백과사전을 만들기 위한 도구다.21)
4. 성경을 상담의 과정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나요?
캡스는 성경이 단순히 기존의 상담이론에 보충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목회상담에 도입되며 사용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성경은 내담자에게 일반 상담학이나 심리학적 통찰이 제공하는 유익을 넘어서서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22) 뿐만 아니라 성경적 가치관과 어떤 심리학 이론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 목회상담사는 성경적 가치관에 우선순위와 권위를 두어 내담자를 인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모라비아(현 체코) 출신의 기독교 교육철학자 코메니우스(1592-1670)는 ‘모든 지혜로’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일반계시와 일반은총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다(골 1:28 참조).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와 일반은총으로서 주어지는 상식이나 여러 학문으로부터 얻어진 지식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하며 연결하지 않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과 오만이다. 연결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잘 연결하면 지혜와 통찰이 발생하는데 하물며 분명하게 보이는 연결점들을 굳이 분리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세계관이 아니다.
4.1 균형 있는 해석학적인 접근의 필요성
허딩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본문의 원래의 의미를 잘 파악하는 첫 번째 단계를 거쳐 그 본래의 의미를 현대적인 삶 속에서 성찰하고 적용하는 둘째 단계가 포함된다고 말한다.23) 따라서 “연구하는 본문과 현대 사회의 문화적 상황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24) 본문의 컨텍스트를 무시한 텍스트는 왜곡된 해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더 나아가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의 컨텍스트 혹은 내담자의 컨텍스트에 적합하게 연결되며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허딩은 독일철학자 가다머(Gadamer)의 ‘두 지평’(two horizons)라는 개념을 빌어 기독상담자들이 성경을 해석할 때 ‘두 지평’에서 움직임을 인식할 것을 강조한다. 첫째 지평은 “개인의 경험과 현대 문화의 가설로부터 나온 좀더 제한된 관점”이며 둘째 지평은 “성경에 의해 제공되지만 자주 편견이나 교만이나 지식의 결여로 인해 가려지는 보다 넓은 관점”이다.25) 필자는 해석자의 주관적인 경험으로부터 보는 관점과 다른 해석자들의 주관적인 해석들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관점이 조화를 이루면서 성령의 조명을 받게 될 때 균형 있는 해석과 접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역동심리학적 이해를 가진 목회(기독)상담사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살아있는 인간문서’의 상징적 의미를 분별하며 해석하며 통찰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문서’의 상징적 의미를 깊이 묻힌 금강석을 캐내듯이 끌어올리며 드러내며 해석하는 탁월성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이중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능력을 갖춘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상담사인 동시에 '심리학적인' 상담사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26)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하라” 또는 “하지 말라”라고 하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상담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적용해야 할 것이다. 상담자의 개인적인 이해나 견해가 성경의 가르침보다 더 우선시되거나 권위를 발휘하는 것은 기독상담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경우에는 해석에서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유추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할 때에는 더욱 지혜와 기도가 필요할 것이다.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는 배우자를 상담할 때 “이혼하지 말라”는 명시적 가르침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또는 “내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 “네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여겨 더욱 귀히 여기라”라는 가르침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목회상담사는 균형을 유지하는 해석력과 분별력, 그리고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성경해석의 기본 원리인 부분적인 해석보다는 전체적인 성경의 정신과 원리에 비추어 부분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4.2 신학적 틀을 염두에 두기
성경은 죄와 파괴성, 중독성의 역동성에 대해서 잘 지적한다. 창조와 타락, 구속의 패러다임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의 파괴성과 병리성, 그리고 인간의 회복과 치료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더 나아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잘 드러나는데 창조와 질서를 사랑하며 파괴성과 병리성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난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하는 피조계를 재창조하시며 회복시키시고 궁극적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이 드러난다. 성경은 이런 인간과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산 지식을 제공한다. 이 큰 신학적 틀을 염두에 두고 세부적인 본문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숲을 보면서도 나무를 볼 수 있는” 균형성을 유지하며 성경을 상담 현장에 접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창조는 내담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신본주의적 인본주의를 견지할 때 상담사는 내담자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며 상담을 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의 타락은 내담자의 무능력과 무력감, 매임과 중독성의 실상을 직면하게 하며 죄의 역동성을 깨닫게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과 지속적인 치료와 변화 및 성장이 구원론적인 의미가 있음을 보게 한다.
4.3 위로부터 접근과 아래로부터의 접근을 유연성 있게 병행하기
성경과 문화, 신학과 일반학문과의 관계성에서 상반되는 접근이 있다면 칼 바르트의 “위로부터의 접근”과 폴 틸리히의 “아래로부터의 접근”을 들 수 있다. 특별계시로부터 출발하여 일반계시를 해석하며 적용하는 것을 ‘위로부터의 접근’이라고 한다면 일반은총의 영역을 연구함으로써 하나님 지식 또는 신학과 연결하며 그 의미를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을 ‘아래로부터의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여기서 각각의 장단점을 언급하는 대신 내담자에 따라서, 상담상황에 따라서 상담사는 지혜롭게 두가지의 접근을 유연성 있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잠정적이며 주관적이며 오류가 많은 “살아 있는 인간 문서”와 영구적이며 객관적이며 신실하며 참된 “살아있는 하나님의 문서”는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유비(analogy)를 발견할 수 있으며 또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성경적 상담학의 효시가 되었던 제이 아담스는 “위로부터의 접근”만을 강조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경만으로, 성경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주장했던 ‘권면적 상담’은 부정적인 것만 있는 이론이 아니다. 그가 주장한대로 내담자의 죄를 의식화시키고 드러내며 고백하게 하며 회개하게 하며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하고 꾸짖고 직면하는 요소는 기독상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내담자를 충분히 이해하며 공감하며 지지하며 품어주는 환경을 제공한 상태에서 권위와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결하여 가르치며 꾸짖는 것은 치료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내담자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진단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성경을 인용하여 처방할 때에 그 말씀은 치료약이 되는 것이 아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여된다면 독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보다 명시적으로 가르치며 명령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담자가 성경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내담자의 상한 마음을 치료하고 때로는 갈아엎고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은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어 내담자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때로는 수용력이 없는 마음에는 말씀이 접목되어도 전혀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도 들을 귀가 열리지 않는 자들, 즉 마음 눈이 열리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더 완악하여지며 강퍅해지는 반응을 보였다. 따라서 목회상담사는 내담자의 마음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있는지를 잘 진단하고 평가하여 말씀과 연결하는 지혜를 겸비해야 할 것이다.
성경을 연결할 때 첫 회기부터 혹은 매 회기마다 강박적으로 성경을 인용하거나 적용하려는 것은 지혜로운 접근이 아니다. 내담자가 안전한 환경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인 상담사에게 그 누구에게도 하기 힘든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효과적인 상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상담의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상담의 초기에는 특히 상담사는 내담자와 치료적인 동맹을 형성하며 신뢰감을 형성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담자의 보다 깊은 이야기와 문제점과 갈등은 회기가 거듭될 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상담의 초기에는 내담자에게 꼭 필요할 때에만 부분적으로 짤막하게 성경의 이야기나 가르침, 핵심 구절을 연결함으로써 내담자에게 ‘성경적인’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있는 상담사라는 신뢰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역으로 살아있는 인간문서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중요하며 필요하다. 특히 성경과 익숙하지 않은 내담자나 불신 내담자의 경우에는 내담자 자신의 삶의 여정에 담겨 있는 신앙적 요소들과 신학적 이슈들을 의식화시키며 발견하게 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내러티브와 연결시킬 때 의미가 발생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을 출발점이라고 선언한 잠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에 대하여 무의식 상태에 있는 내담자를 의식화 시킬 때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을 새롭게 알 수 있는 눈이 열릴 수 있다. 성경은 이런 점에서 상담의 과정에서 사용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자 도구이다. 더 나아가 내담자의 마음에 투여되어 내사화될 수 있는 치료제이다.
4.4 성경에 기초한 검사지 사용의 가능성
상담과정에서 심리학적 인간이해에 기반을 둔 여러 심리검사지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상담과정에서 성경의 사용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담사들은 성경적인 인간이해에 기반을 둔 검사지의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창의적인 생각과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성경을 사용하여 문장완성검사지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나는 몇 가지만 예시해보겠다:
(1) 내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 )이다.
왜냐하면 그는 ( ) 때문이다.
(2) 내가 성경에서 제일 좋아하는 성경 본문은 ( ) 이다.
왜냐하면 그 본문은 ( ) 때문이다.
(3) 내가 성경에서 제일 이해가 안되는 본문은 ( )이다.
왜냐하면 그 본문은 ( ) 때문이다.
(4) 성경에서 제일 불쌍한 인물은 ( ) 이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5) 나의 삶과 가장 비슷한 성경 이야기가 있다면 ( )이다.
(6) 탕자의 비유에서 나는 (형이, 동생이) 더 잘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7)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나는 (마르다, 마리아)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장완성 검사를 활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성경 지식을 갖고 있는 내담자여야 가능할 것이다. 다른 대안책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성경 지식만 있어도 답할 수 있는 항목으로 각 항목을 만드는 것이다. 각 항목을 통하여 내담자가 동일시하는 인물이나 본문, 내적인 갈등, 대인관계 유형 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랑의 속성을 잘 드러낸 고전 13:4-7의 내용은 성격적인 장애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원이다. 내담자가 크리스천일 경우 자신의 성격상의 문제점을 성경을 통해 인식하게 될 때에는 훨씬 덜 저항하며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검사지를 만들어보았다. (1: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2: 약간 동의한다, 3: 어느 정도 동의한다, 4: 상당히 동의한다, 5: 전적으로 동의한다)
(1) 나는 오래 참지 못한다 (1 2 3 4 5)
(2) 나는 마음이 넓지 못하다 (1 2 3 4 5)
(3) 나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질투(시기)를 하는 편이다 (1 2 3 4 5)
(4) 나는 나를 드러내며 인정받기 원하며 자랑하는 편이다 (1 2 3 4 5)
(5)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1 2 3 4 5)
(6)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1 2 3 4 5)
(7) 나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편이다 (1 2 3 4 5)
(8) 나는 쉽게 화를 내는 편이거나 화를 심하게 내는 편이다 (1 2 3 4 5)
(9) 나는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을 기억해두며 잘 풀지 못하는 편이다 (1 2 3 4 5)
(10) 나는 죄를 짓거나 중독적인 행동을 함으로부터 즐거움을 얻는다 (1 2 3 4 5)
(11) 나는 진실하기보다는 거짓말을 하는 편이다 (1 2 3 4 5)
(12) 나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타인이나 가족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편이다
(1 2 3 4 5)--12번부터는 점수가 낮은 쪽이 건강하다.
(13) 나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에 대해서 신뢰하는 편이다 (1 2 3 4 5)
(14) 나는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1 2 3 4 5)
딤후 3:1-5절의 본문도 내담자의 심리내면적인 이슈와 대인관계적 이슈들을 파악하며 진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말세의 인간상의 모습은 병리적이며 성격장애적인 요소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모습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인간의 모습과 불신앙적인 모습도 잘 드러낸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식의 성격검사지를 만들어보았다. (1: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2: 약간 동의한다, 3: 어느 정도 동의한다, 4: 상당히 동의한다, 5: 전적으로 동의한다)
(1) 나는 나만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1 2 3 4 5)
(2) 나는 돈을 좋아한다 (1 2 3 4 5)
(3)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1 2 3 4 5)
(4) 나는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이 세다 (1 2 3 4 5)
(5) 나는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성적으로, 또는 관계적으로) 타인에게 폭력적이다
(1 2 3 4 5)
(6) 나는 부모님(또는 권위자)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 (1 2 3 4 5)
(7) 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편이다. (또는 나는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 2 3 4 5)
(8) 나는 삶이 문란하며 난잡한 편이다 (1 2 3 4 5)
(9) 나는 공감을 잘 못하며 매정한 편이다 (1 2 3 4 5)
(10) 나는 용서를 잘 못하는 편이다 (상처받은 것을 마음에 품고 보복하려고 한다)
(1 2 3 4 5)
(11) 나는 내가 싫어하는(상처준)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하는 말을 하며
기회가 된다면 법적으로 고소하고 싶다 (1 2 3 4 5)
(12) 나는 내 욕구나 감정을 잘 절제하지 못한다 (1 2 3 4 5)
(13) 나는 사납고 공격적인 편이다 (1 2 3 4 5)
(14) 나는 선한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좋아한다 (1 2 3 4 5)
(15) 나는 대인관계에서 배반을 하며 속임수를 쓰는 편이다 (1 2 3 4 5)
(16)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 (1 2 3 4 5)
(17) 나는 교회 출석을 하며 봉사도 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이 없고
세속적이라고 생각한다 (1 2 3 4 5)
상담의 목표와 관련해서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염두에 두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성경을 연결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갈 5:22-23 참조). 상담 회기 중에 모든 목표를 다 지향할 수 없겠지만 몇 가지만이라도 성취하도록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내담자를 격려할 수 있다. 각 항목에 대한 부연 목표는 필자가 편의상 예로 들어 본 것이다:
(1) 사랑: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한다; 나는 가족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한다; 나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2) 희락: 나는 범사에 감사할 조건을 찾는다; 나는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고 기뻐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건강하게 쉬는 법을 배울 것이다; 취미생활을 실천한다.
(3) 화평: 나는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과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관계를 개선한다; 나는 화해를 시도할 것이다; 나는 내 내면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4) 오래참음: 나는 현재 상황에서 쉽게 포기 하지 않고 견딜 것이다; 오리를 가자고 하는 이에 게 십리까지는 가겠다는 마음 자세로 살 것이다; 나는 자녀들에게 성급하게 요구하거나 그들이 공격성을 보일 때에도 좀 더 견디는 법을 배울 것이다; 쉽게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5) 자비: 나는 나와 접촉하는 사람에게 보다 친절한 태도로 대할 것이다;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려고 노력 하겠다; 나는 보복심을 내려놓겠다.
(6) 양선: 나는 선한 일을 추구 하겠다; 나는 이웃을 위해 좀더 섬기는 삶을 실천 하겠다; 나는 적절하게 베푸는 균형성을 유지하겠다.
(7) 충성: 나는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지겠다; 나는 과도한 책임감을 벗어버리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편집적으로 대하지 않고 조 금 더 신뢰해보겠다.
(8) 온유: 나는 마음을 좀 더 넓혀서 대인관계의 폭을 넓히겠다; 나는 온유하며 겸손한 예수님의 품성을 조금이라도 내면화하며 실천하겠다; 나는 품어주는 환경을 제공하는 대상이 되겠다.
(9) 절제: 나는 균형성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고 실천하겠다; 나는 충동성을 조절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나는 분노를 표현할 때에도 과도하게 하거나 쉽게 표현하지 않겠다
4.5 주제별로 사용하기
많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심방을 하거나 면담을 할 때 목회자들은 성경 말씀을 연결해서 주어야 하는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서 실제로 주제별로 본문을 분류해서 상담 관련 책자로 출간된 것도 있다. 특히 위기 상담 상황에서는 적절한 성경 본문 하나가 내담자의 마음에 의미있게 내사화(introjection)되어 자신을 위한 본문으로 소화되며 동일시(identification)되어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황에 적합하고 적절한 의미있는 본문을 한 구절 선택하여 선물로 줄 수 있다. 몇 가지 구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5);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4.6 인용할 것인가? 아니면 적용할 것인가?
상담 과정에서 성경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상담자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할 때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내담자에게는 큰 힘과 도전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인용할 때에는 잘 인용할 필요가 있으며 내담자의 컨텍스트와 수용능력, 문제점에 적합하고 적절하게 인용되어야 할 것이다. 잘못 인용될 경우에는 내담자는 혼란감을 느낄 수 있으며 분노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일종의 ‘의료사고’에 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적용하는 방법에서 상담자가 적용해줄 수 있으며 내담자가 적용할 수 있다. 자아의 힘과 어느 정도의 통찰력이 있는 내담자는 스스로 성경의 어떤 내용과 동일시하거나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동적이거나 의존적인 내담자의 경우에는 상담자가 적용하는 방법을 모델화하면서 내담자 스스로가 점점 적용하는 능력을 키워나가게 할 수 있다. 이 때 한 핵심적인 주제에 대해서 눈이 열리며 통찰력이 생길 때 내담자는 그 성경적인 주제를 삶의 다양한 영역에 연결하면서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삶에서 내면적인 충실함이 없이 겉으로만 성취를 추구하며 인정받기를 위하여 살아온 크리스천 내담자가 반석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이라는 비유에서 자신의 삶이 모래 위에 세운 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에 시선을 고정하라는 말씀(고후 4:16-18 참조), 눈으로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가 영적으로나 재산적으로 가정적으로 파산을 경험했던 롯의 이야기, 여러 해 먹을 것을 쌓아놓고 스스로 만족하여 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전혀 보지 못했던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 등이 서로 연결된 이야기들임을 통찰력 있게 찾아낼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그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그런 모습이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평행과정(parallel process)으로 나타나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4.7 풍부한 성경적 메타포를 활용하기
성경에 등장하는 비유, 은유, 메타포들을 풍부한 상담적 자료를 제공한다. 메타포는 한가지 의미만 담지 않고 여러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창의성과 지혜를 갖고 있기만 하다면 메타포들을 사용하여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의 심리내면적인 이슈, 관계, 신앙을 진단하며 치료하는데 강력한 치료적 도구가 될 수 있다.27)
필자는 예레미야서를 중심으로 상담과 연결하여 백석대학교 상담대학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는데(2005년 봄학기) 예레미야에서 등장하는 메타포만 해도 상담 상황에서 풍부하게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은 특히 자신과 멸망해가는 유다 왕국 백성들과의 관계를 결혼과 외도, 그리고 이혼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여 백성들의 내적 상태를 의식화(conscientization)하려고 하셨다. 예레미야서 8장까지 나타나는 상담적인 메타포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처음 열매 (2:3), 광야, 사막,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2:6), 생수의 근원 vs. 스스로 판 웅덩이, 터진 웅덩이(2:13), 귀한 포도나무 vs.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 (2:21), 발이 빠른 젊은 암약대(2:23), 광야에 익숙한 들 암나귀(2:24), 붙들린 도적의 수치(2:26),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3:2), 창녀의 낯(3:3), 묵은 땅, 가시덤불, 마음 가죽을 벰(4:3, 4),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5:8), 새 사냥군의 매복(5:26), 조롱에 가득한 새들(5:27), 파숫군, 나팔소리(6:17), 해산하는 여인(6:24), 공중의 학, 반구, 제비, 두루미(8:7).
신약 마가복음에서 상담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메타포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신들메(1:7), 광야에서 사십일(:12), 사람을 낚는 어부(1:17), 중풍병자와 네 친구(2:1-3), 의원과 병든 자(2:17), 죄인과 의인(2:17), 생베 조각과 낡은 옷(2:21), 새포도주와 새 부대(2:22), 씨뿌리는 비유(길 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4:1-20), 등불과 등경(4:21), 겨자씨 한 알(4:31), 광풍 사건(4:35-41), 부정한 손(7:1-5), 개와 부스러기(7:28), 바리새인의 누룩(8:15), 물 한그릇(9:41), 불구자와 영생(9:43), 소금(9:50), 하늘 보화(10:21), 무화과나무(11:12-14), 옥합 향유(14:3-9). 메타포들을 사용할 때 때로는 적절한 한 메타포를 가지고 꿈분석에서 사용하는 ‘자유연상법’을 사용하여 그 메타포가 연상시키는 단어들을 자유롭게 연상시키면서 내담자의 무의식적 동기나 갈등을 끌어내어 의식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4.8 상담자의 자기인식의 중요성
상담의 상황에서 성경을 연결할 때 힘과 지식과 권위를 가진 상담자가 성경을 연결하며 해석하며 적용할 때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해석자의 건강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경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인용한다고 해서 성경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려면 해석자 자신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그럴 때 그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롬 12:2). 상담자 자신이 성격장애적 요소가 많게 될 때 성경의 연결과 적용은 병리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상담자 자신이 편집성 요소가 심하거나 강박성 요소가 심할 때에는 본문을 잘못 인용하며 해석하며 적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자기중심성이 있는 상담자가 성경을 연결한다면 유아적이며 과대망상적으로 성경을 인용하며 동일시하게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상담자 자신의 역전이 이슈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담자 자신이 성경만으로 상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경험했던 부정적인 경험들 때문에 성경을 상담에 연결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회피할 수도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으로 심리학의 접근에 치중한 상담사와 부정적인 경험을 한 분들의 경우에는 극단적으로 성경적 상담학의 접근을 주장하는 입장에 설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각 목회(기독)상담자는 자신이 특정한 본문을 선호하는 이유나 회피하는 이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각하며 자신의 이슈를 해결하지 못하고 내담자에게 투사하며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담자의 이전 상담 경험에서부터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경험이 상담 현장에 어떻게 전이되는지에 대해서 상담자는 잘 인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경적 상담학에 기반을 둔 상담자와 부정적인 상담 경험으로 끝난 내담자의 경우에는 성경을 상담에 연결시키려는 상담자의 어떠한 접근에 대해서 저항하거나 분노를 표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민감하게 접근하며 그 이슈들을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4.9 과제로서의 성경읽기
전문적인 상담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한 내담자의 경우에는 “생명의 삶”과 같은 큐티 자료집을 통해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큐티를 자신의 삶과 연결하는 식의 저널을 기록하게 숙제를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상담자 자신도 큐티를 하면서 그 내용에 익숙하게 되어 상담 상황에서 큐티 작업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을 나누며 저널 속에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내담자의 희구, 갈등, 무의식적 동기 등을 의식화시키는 것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내담자와 관련성이 깊은 시편을 뽑아 매주 묵상하면서 일기를 씀으로써 치료적 효과를 경험하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저널치료에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도움을 주는 책으로는 “저널치료”(아담스, 학지사)를 추천하고 싶다.
5. 맺는 말
필자는 목회(기독)상담 과정에서 성경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려고 시도하였다. 글의 한계와 필자의 능력의 한계로 주제와 관련된 모든 방법들을 다 다루지 못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이야기 치료적 관점에서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만 해도 책을 쓸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이슈이자 방법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못했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책 “성경 속의 치유와 상담”에서 레이몬드 팔루지안은 그의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 책의 내용과 접근을 말한다:
성경 이야기가 제시되는 문제 영역은 중요한 인간 경험의 전반을 아우른다. 예를 들면 개인은(아들의 죽음을 당한 후의 다윗처럼)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때에도 삶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해야만 한다. 또한 (야곱과 라헬의 예처럼) 배우자가 서로 존경하고 신뢰해야 하며, (다윗과 밧세바의 경우처럼) 부부는 서로가 불운으로 관계를 시작했더라도 함께 성장하기를 배워야 하며 공동의 관심사에 적절한 배려를 보여야 한다. (엘리야처럼) 극심한 피로를 극복하고 나와야 하며, (모세와 아론처럼) 무능으로 인해 좌절스러운 상황에서도 어려운 과제에 대처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의 예처럼) 유혹에 굴복한 결과를 안고 살기도 하고,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의 예에서 보듯) 단호히 유혹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익혀야 한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에서 보듯이) 인간은 세상 가운데서 악과 질병의 현실을 인정해야 하며,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해 일정 수준의 선하다는 믿음을 계속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28)
이 추천사에 나타나듯이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으며 그 이야기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과 내담자들의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성과 유사성을 담고 있다. 성경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거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선택한 계시이다. 그 거울을 통해 상담자와 내담자는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치료적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인식하며 무의식화 되었던 부분들을 의식화시킬 수 있다. 필자는 슈워츠와 카플란이 삼손의 이야기 속에서 다음의 치료적인 이슈들을 연결시킨 것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여 건설적으로 사용하게 돕는 것이 치료 과정의 일부이다. 이는 능력을 가지고 자기 과시를 추구하거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겸허하게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목적과 맥락의 일부분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개인들이 자신의 장점을 수용하고 그것을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