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룻기 1장 1-22절
여러분!
저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저의 첫 번째 질문은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움 앞에 놓여 있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저의 두 번째 질문은 '여러분은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저의 세 번째 질문은 '우리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는 것이고, 네 번째 질문은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들과 그 해결책을 룻기를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을 바르게 찾기 위해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룻기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룻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있습니다.
첫째, 룻기가 독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오락 문학이며 민담이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고유 문화인 계대 결혼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 룻기가 기록되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셋째, 룻기를 저항문학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구약성경에 에스라, 느헤미야가 포로에서 돌아올 때 아내들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러한 잡혼 금지라는 편협한 시각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저항문학으로 룻기를 보는 시각입니다.
넷째, 효도의 신학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룻과 같이 부모를 곤경해야 축복을 받는다는 시각입니다.
다섯째, 한 이방 여인의 개종 이야기로 보는 시각입니다.
여섯째, 룻과 보아스의 사랑 이야기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룻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한 가정이 몰락과 공허함으로부터 다시 회복되어 풍성함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룻기는 4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책입니다. 간략하게 룻기를 정리해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살던 엘리멜렉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조금 더 살폅면 룻기의 시작은 한 가정의 몰락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룻기의 가장 끝 부분은 어떻게 막을 내리고 있습니까? 룻기의 마지막 절인 4장 22절을 보면 그 끝은 바로 다윗왕의 이름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룻기서는 한 가정의 몰락으로 시작하서 그 가정이 다시 한 나라의 왕의 가문으로 회복되는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룻기는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는 한 가정의 몰락과 몰락한 그 가정이 다시 회복되어 한 국가의 왕위를 잇는 가정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룻기는 한 개인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공허와 궁핍이 어떻게 풍성함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최고 왕의 가문으로 말입니다. 룻기는 한 가정의 이야기가 전 국가의 아야기로, 그리고 더 나아가 전 우주적인 이야기로 발전되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사회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가정이 분열되고 있습니다.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빠져 있습니다. 많은 고통과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마치 룻기 1장 1-5절까지 말하고 있는 엘리멜렉의 가정과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쓰러지고 소망이 없던 엘리멜렉의 가정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셔서 역사의 중심에서 그 빛을 발하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가정도 다시 힘을 얻어 회복되고 이 암흑과 같은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가정이 디시기를 축원합니다.
룻기에서 나오미가 살던 시대는 오늘날의 시대 상황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 시대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입니다.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생각에 옳다고 생각되는 대로 사는 시대" 였습니다.
사사시대의 구체적인 시대적 상황을 함께 살펴보며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사기 8장 27절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둘째, 사사시 11장 29-40절을 보면 입다가 자기의 딸을 산 채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사사시 16장 1절은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 사사시 17장 10-13절에 유다 베들레헴의 한 레위인이 미가라는 한 사람의 집에 제사장이 됩니다.
다섯째, 사사시 19장 29절에서 에브라임 산지의 레위 사람이 자신의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는 사건이 나옵니다.
나오미가 살던 사회적 배경은 바로 이러한 상황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현실보다 더 비참하고 암담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룻기는 한 가정의 회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는 사사시대와 마찬가지로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덯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의 회복해야 할 모습은 룻기 1장을 통햇 찾아보고자 합니다.
룻기에 나오는 엘리멜렉의 가정은 흉년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났습니다. 이방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기 시작햇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가족의 가장이요 인도자인 엘리멜렉은 그 땅으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은 계속해서 그곳에 남앗고 그의 두 아들은 그 땅의 여이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의 두 아들이 10년이나 그 땅에서 결혼하고 살았지만 자녀도 없이 죽고 말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가정은 고통과 정말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나오미의 가정 형편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오미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본문은 왜 엘리멜렉의 가정이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가정이 흉년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 가정이 겪은 것은 고통과 아픔과 공허함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비었습니다.
나오미의 삶은 세 가지 면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첫재, 흉년이 들어 '떡의 집' 이라고 불리우는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지방으로 올겨가게 됩니다. 이것은 자연적 수준에서의 공허함입니다(1-2절).
둘째, 얼마 뒤에 남편이 죽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장가들어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자손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두 아들마저 죽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수준에서 공허함입니다(3-5절).
셋째, 개인적인 공허함입니다.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도 없습니다. 그녀의 상황은 옛날에는 풍족하였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픔만 있습니다.
나오미의 이러한 삶은 고통과 괴로움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몰락해 가던 가정, 아니 더 이상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오미의 가정이 다시 회복되어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고의 가문이 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가 그 이유를 찾는다면 오늘 우리 가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회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 1장 13절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그녀가 당한 모든 고통이 하나님이 치셨으므로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고통과 고난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발걸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또 한 가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방 여인 이었지만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작정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온 룻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돌아오는 것을 축복해 주시는 것처럼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저는 사실에 대한 원인을 나오미가 모압에서 10년 동안 살았던 삶의 고백에 대한 두 사람의 반응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나오미에게는 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남편이 죽었는데도 시모를 섬기고 살림을 보살피고 끝까지 봉사하고 헌신하는 두 사람입니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으나 끝까지 봉사하고 헌신한 오르바와 룻이었습니다. 여러분,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결심하였던 두 며느리가 결정적으로 이별하는 말씀이 바로 이 13절 말씀입니다. 오르바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시어머니를 따라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나오미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벌하셔서 고통 가운데 빠졌다고 고백했을 때 오르바는 인간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르바에게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르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바는 이스라엘 백성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어머니로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다." 그리고 "내 마음이 너희로 인하여 더욱 아프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괴로원서 함께 울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백성을 고통 가운데 빠지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시어머니를 따라서 이스라엘 땅으로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르바는 나오미의 하나님을 고통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룻의 고백은 달랐습니다. 16-17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저는 죽어도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디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만약 제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천벌을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13절의 나오미의 고백과 연결시켜 보면 이런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절대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고통 가운데 빠뜨리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습니다. 어머니를 고통 가운데 빈손이 되도록 만드신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우리에게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을 룻과 같이 붙잡겠습니까? 아니면 오르바와 같이 버리시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닫고 돌이켜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나오미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이방 여인인 룻이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다짐하고 그분께 나아갈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1장 22절에 보면 흉년으로 '떡의 집' 이라 불리우는 베들레헴을 떠났던 그녀를 다시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도 추수 때에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문제로 인해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있습니까? 의식주 문제 때문입니까? 사회적인 문제 때문입니까? 자신의 능력 문제 때문입니까?
오늘 한국에 고통이 왜 왔습니까? 이 고통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시겠습니까? 우리의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회복되는 것은 정부나 기업, 지도자나 우리의 수단과 벙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축복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의 하나님, 룻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