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漢昭烈이 將終에 勅後主曰 勿以善小而不爲하고 勿以惡小而爲之하라
(한소열 장종 칙후주왈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
한나라 소열황제가 임종(臨終)시에 후주에게 조칙을 내려 말하기를 “선이 적다고 해서 아니 하지를 말 것이며, 악이 작다고 해서 하지를 말라.”고 하였다.
⋇ 漢昭烈(한소열) : 촉한의 소열황제(劉備 : 유비)
⋇ 將終(장차 장. 끝날 종) : 임종. 죽을 때
⋇ 勅(조서 칙) : 임금이 내리는 글. 조칙. 또는 경계함, 타이름
⋇ 後主(후주) : 뒤를 잇는 군주. 여기서는 유비의 아들(禪)을 말함. 어리석어 제갈량 사후 위나라에 항복함.
⋇ 勿(말 물. 말아라. 없다) : 하지 말라.
(해설)
그 유명한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의 하나인 유비의 말입니다. 선한 일은 아무리 작고 보잘 것이 없더라도 실천하는데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아야 하고, 반면에 악한 일은 터럭만큼의 작은 것이라도 금하고 하지 말아야 쌓은 덕에 손상을 입지 않으며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을 이어갈 수 있다. 작은 이익에 급급하거나 커다란 유혹이 눈을 현혹시켜도 바른 길이 아니면 미련을 두거나 마음이 동하여 쉽게 동조하게 되는 성급함을 경계하도록 이루는 말로 언제나 신중하고 밝은 눈과 마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선한 말을 들으면 수레에서 내려 절을 하였다는 옛 聖王(성왕)의 행동처럼 실천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작은 물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시냇물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작은 선과 악이 쌓이면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므로 자신을 살피고 주위를 살피는 일에 게을리 하면 안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삼국으로 나뉘어 치열한 세력다툼을 하는 와중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선정을 강조함은 이미 망한 漢(한)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이를 실천하여 혼란하고 살벌한 상황인 삼국을 통일하여 원하는 聖人政治(성인정치), 즉 요순과 같은 태평성대를 하루 빨리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망도 포함되어 있다 볼 수 있겠습니다. 자기 대에서는 보지 못한 꿈을 후대에서 이루어 주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 시대에 맞지 아니한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상향으로 그리는 정치를 재삼 강조한 것은 중요한 덕목인데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기에 난세가 도래하였음을 한탄하는 뜻도 포함이 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자원입니다.
惡(악할 악)은 亞(버금 아)와 心(마음 심)이 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인데 버금 亞는 항아리. 동이를 나타낸 것으로 “막혀있다” “융통성이 없다”의 뜻이고 惡은 “가슴이 막혀 답답하다” “막혀있는 마음”을 의미하였는데 오늘 날에는 “나쁘다” “증오하다”란 말로 확장되어 쓰이게 됨. 옛날에는 善의 반대는 不善(불선)으로 쓰였다함. 勿(말 물)은 기둥에 깃발 세 개를 달아 휘날리는 형상과 잘 벼려진 칼로도 보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終(끝날 종)은 실 絲와 冬(겨울 동)이 합해진 글자로, 바느질 하고 실 끝에 매듭을 만들듯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것을 나타냄.
而(말 이을 이)는 수염을 형상화한 자임. 之(갈 지)나 止(머물 지)나 足(발 족) 모두 발을 형상화 하였습니다. 將(장차 장)은 달 月과 寸(마디 촌) 그리고 무기爿(나무 조각 장)으로 되어 있으며 풀이하면 달밤에 손에 무기를 들고 전장을 누빈다.
後(뒤 후)자는 罪人(죄인)이 발(뒤쳐져 올 치 : 夂)에 끈(실 絲)이 묶여 길(조금 걸을 척 : 彳)을 따라 끌려가는 모양. 以(써 이)는 사람이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
초한지나 삼국지 등에는 많은 고사성어가 나옵니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故事(고사)와 成語(성어)는 뜻에 차이가 있지요, 성어는 일상에서 성공이나 실패 등의 교훈이나 속담, 금언 등을 두자 내지 네 자로 표현한 것으로 目不識丁(목불식정), 燈火不明(등화불명) 등을 들 수 있고, 고사는 역사 속에 실제 있었던 사건이나 사례를 두자 내지 네 자로 표현한 것으로 泣斬馬謖(읍참마속) 혹은 得隴望蜀(득롱망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후 관련되는 한자가 나왔을 때 고사성어에 대한 소개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간자체입니다. 나라 漢은 “汉”으로, 뒤 後는 “后”로 표기 함.
(참고)
자(字) : 옛 사람들은 “사람의 이름은 신성한 것”이라 하여, 나이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대신에 자(字)를 부름. 오늘날에도 성인의 날이라 하여 치르는 의식이 있는데, 옛날에는 남자가 20세가 되면 冠禮(관례)라는 成人儀式(성인의식)을 치르며, 이때 字(자)를 지어 사용하기 시작함. 일반적으로 자는 본명과 비슷하게 짓는 것이 일반적 풍습이었다고 함.
또한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죽으면 왕이 그 공을 치하해 내리는 諡號(시호)가 있는데, 文人(문인)들은 文(문)자가 들어가고, 武人(무인)들은 忠(충)자가 들어갔다고 함.
雁書(안서)
- 철 따라 기러기가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편지를 이르는 말. 동류로 雁信(안신), 雁札(안찰). -
漢(한)나라의 昭帝(소제)는 선황제인 武帝(무제) 때에 포로교환 사절단으로 흉노의 땅에 갔다가 억류당한 中郞將(중랑장)인 蘇武(소무)의 귀환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는데, 특사가 흉노의 우두머리인 單于(선우)에게 소무의 석방을 요구하자, 선우는 소무가 벌써 몇 해 전에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 밤 소무를 수행했던 常惠(상혜)라는 자가 찾아와 소무가 생존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이에 그 특사는 선우에게 “내가 이곳에 오기 전 황제께서 사냥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 헝겊이 감겨 있었소, 그걸 풀어보니, 소무는 大澤(대택) 근처에 있다. 고 적혀 있었소, 이것만 보아도 소무는 분명히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 않소?”하고 따져 물었다. 이렇게 꾸며 낸 이야기로 소무는 풀려났다고 한다.(출전 漢書 : 한서)
蘇武(소무) - 李白(이백) -
蘇武在匈奴(소무재흉노) 소무는 흉노에 잡혀 있으면서도
十年之漢節(십년지한절) 십년이나 사신의 부절을 놓지 않았네
白雁飛上林(백안비상림) 흰 기러기 상림원까지 날아와
空傳一書札(공전일서찰) 편지를 전하였지만 헛일이었네
牧羊逸地苦(목양일지고) 양 치느라 변방에서 고생하면서
落日歸心節(낙일귀심절) 지는 해 볼 때마다 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했네
渴飮月窟水(갈음월굴수) 목마르면 흉노 땅의 물을 마시고
飢餐天上雪(기찬천성설) 배고플 때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삼켰네
東還沙塞遠(동환사색원) 고국에 가려니 사막의 변방은 멀고
北愴河梁別(북창하양별) 북쪽 강다리 위에서 이릉과의 작별은 슬펐네
泣把李陵衣(읍파이릉의) 울면서 이릉의 옷자락 움켜잡고
相看淚成血(상간루성혈) 마주보며 피눈물 흘리었네
※ 窟(굴 굴), 飢(주릴 기), 餐(먹을 찬), 愴(슬퍼할 창), 把(잡을 파).
孟子(맹자) - 離婁章句 上(이루장구 상) -
“孟子曰 恭者는 不侮人하고 儉者는 不奪人하나니 侮奪人之君은 惟恐不順焉이어니 惡得焉恭儉이리오 恭儉을 豈可以聲音笑貌爲哉리오.(맹자왈 공자 불모인 검자 불탈인 모탈인지군 유공불순언 오득언공검 공검 개가이성음소모위재)” ※ 侮(업신여길, 깔볼 모)
- 맹자께서 말하시길, 공손한 자는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한 자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남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빼앗는 군주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에)순종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니, 어찌 공손함과 검소함을 할 수 있겠는가. 공손함과 검소함을 어찌 음성이나 웃음과 모양으로써(꾸밈)할 수 있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
- 詩(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근엄하며 더 중요한 무엇이다.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독특한 것들이지만, 詩가 말해주는 것은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하여 적으로 지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