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봉선_매화_지본수묵채색_34×46cm_2008
또한 눈을 돌려 옛 대가들의 매화 작품과 화론에 관심을 갖다보니 매화의 품종과 관찰력, 묘사력 등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남송대南宋代의 문인文人 범성대范成大(1126~1193)는 『매보梅譜』에서 매화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꽃으로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어진 사람, 불초한 사람을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꽃이다. 또한 매화의 운치와 품격은 줄기가 옆으로 뻗고(橫), 구불구불하게 뒤틀리고(斜), 성글고 야윈 것(瘦), 기괴하게 생긴 모양(怪)이라 하였다. 묵매화는 첫째로 '체고體高'라 하여 노매老梅에서 느끼는 오랜 세월 속에 풍상을 겪은 듯 그려야 하고, 둘째는 '간괴幹怪'라 하여 늙고 오래된 줄기가 뒤틀려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야 하고, 셋째 '지청枝淸'이라 하여 매화는 가지가 곧고 맑아야 하고, 넷째 '초건梢健'이라 하여 어린 햇가지에 힘이 있어야 하며, 다섯째 '화기花奇'라 하여 드문드문 피어있게 그려야 한다.라고 했다. 이는 결국 생태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 인문학적 의미 부여가 결합된 지점에서 탄생하는 예술의 세계일 것이다.
- 문봉선_매화_지본수묵채색_75×95cm_2004
- 문봉선_매화_지본수묵채색_95×62cm_2002
원대元代의 왕면王冕, 송대宋代의 양무구楊无咎, 명대明代의 추복뢰鄒福雷, 조선조 오달제吳達濟의 매화는 줄기와 가지가 활처럼 절도 있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선암사 선암매의 품종과 같음을 알 수 있고, 청대 양주팔괴揚州八怪의 김농金農, 나빙羅聘, 이방응李方膺의 매화는 대명매大明梅로 관념 속의 매화가 아닌 중국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무석无錫과 양주揚州 등지에서 자생하는 매화의 한 종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법고法古 자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당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미감으로 현대적인 운치를 창조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창신創新 없는 법고法古는 회고懷古에 불과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이유로 이번 전람회에서는 법고를 뛰어 넘는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 문봉선_매화_지본수묵채색_47×67cm_1996
이래저래 3월 한 달은 씨 뿌리는 농부만큼이나 바쁘게 보냈다. 이 땅에 자라는 매화를 내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화가 있는 곳이면 불원천리하고 달려가기를 20년. 기이하고 새로운 가지 앞에서 가슴 뛰던 시간들은 화첩 위에 오롯이 남았다. 나에게 탐매 여행은 새봄을 맞는 큰 기쁨이기도 했지만 화도畵道를 찾아가는 지난한 구도의 여정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운명처럼 조우했던 무수한 가지와 꽃망울들이 영롱하게 떠오르고, 지난날 그렸던 매화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제 '해마다 피는 꽃은 변함이 없건만, 해마다 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같지 않네[歲歲年年花相似, 年年歲歲人不同]'라 노래했던 옛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해마다 같은 나무,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매화이지만 같은 모습을 한 번도 보질 못했으니 말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지만 여일하게 그윽한 매화 향기를 들으며 겨우네 덮어 두었던 벼루를 씻어 둔다. ■ 문봉선
첫댓글 감사합니다. 제가 찾아서 올려야 되는것을 ZERO님께서 올려주셨네요.
이리저리 천만 송이 눈에 띄지만[觸目橫斜千萬朶] 마음에 드는 것은 두세 가지뿐[賞心只有兩三枝]
해마다 피는 꽃은 변함이 없건만, 해마다 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같지 않네[歲歲年年花相似, 年年歲歲人不同]
위 두 글귀가 가슴에 절절히 닿습니다!!!
또 하나 관찰의 중요성!!!
관찰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관찰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모든것을 걸고 본다는것입니다.
관찰은 태도이고 삶의 방식이자 곧 내용입니다.
이런 글을 접하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안동 도산서원의 매화나무를 생각하며 내용들을 마음 포근하게 읽어보았습니다.
매보에서 나온 말들을 분재에 꼭 응용해야할 자료 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