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농사 이야기(2012/10/10~11/18)
열심히 산거 같긴한데-별거 없는 가을
벌써 11월 하순으로 넘어가고 있다.
요때 쯤 되면 항시 1년을 절로 돌아보게 된다.
참 별거 없이 살았구나...
좀 더 바지런 떨걸...
후회가 밀려 온다.
그래서 내년이 있나부다.
내년엔 후회없이 살아보리라!
여름 밭매는 일 땜에 시작한 막걸리 담기가 이젠 밥짓는 것처럼 일상이 되버렸다.
콩 밭에서 일 하는데 근처에 계시는 형님이 3종의 막걸리를 사 오셨다.
어느 하나 입에 맞는게 없다.
차라리 안 먹고 말지...
요번엔 찹쌀 현미로 술을 담았다.
술은 언제 뜨느냐가 관건이다.
일찍 뜨면 술이 달면서 도수가 안 나오고, 늦게 뜨면 도수는 나오는데 술이 시다.
결론은 좀 달 때 떠서 저온 숙성하는게 가장 좋다.
가을 산에 올랐다.
추위가 일찍 찾아왔고, 비가 장마처럼 내리는 사이, 화창한 날을 잡아 계룡산에 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산은 그대로였다.
산은 초조해 하지도, 안달하지도, 후회하지도, 욕망하지도 않고 산 그대로 였다.
그대로인 산에 조금 놀랐다.
서풍골(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목수인 서승광 형이랑 두부틀을 만들었다.
먼지 쌓이고 거친 판대기를 대패로 깍고, 사포로 문질러 들기름과 콩물을 발라 그늘에 말렸다.
바쁜일이 겹쳐 아직 다 만들진 못했지만, 잘 만들어서 꾸러미에도 두부를 넣고 여기 저기 나눠 먹으련다.
노린재다.
종류도 다양하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가 콩을 빨아 먹어 쭉정이로 만든다는데, 이번 농사에 노린재 피해는 별로 없는 듯 하다.
지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고, 나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데 어쩌겠나.
같이 사는 수 밖에...
복술황차조.
좁쌀이다.
괴산 선배네서 얻어 온 토종 종자인데 씨나 받을까 해서 늦게 심었더니, 모냥이 안 나온다.
첨에는 강아지 풀인줄 알고 뽑았다가 알맹이가 굵어서 놓아 두었더니 나름 잘 컸다.
내년엔 좀 많이 뿌려 볼란다.
아직 콩잎이 지지 않았다.
푸른 기운이 남아 있다.
콩은 잎이 다 져야 대를 꺽는다.
푸르스름한 놈 몇개를 꺽어다 콩서리를 해 먹었다.
같이 먹던 옆에 형님이 연신 맛있다를 외쳐 댄다.
중국집 주방장 하는 친구의 말이 떠 오른다.
"맛은 추억이야."
어릴적 콩서리 해 먹던 추억이 떠 오를테지.
그리고 너무 크고 나이 먹은 자기 손도 보일테고....
예상 수확량 1톤. 평당 500그램.
자연재배로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결과다.
아쉬운건 좀 더 철저히 풀을 매고, 북을 줬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 저나 1톤이 나오기는 할라나...
콩대를 예초기에 원형톱날을 달아 자르다가, 소음과 매연 땜에 집어던지고 낫으로 대를 꺾었다.
둘이서 이틀 쯤 했다.
대를 모아서 쌓아 놓고....
가을 장마를 피하려고 비닐로 덮어 두었다.
기술센타 콩탈곡기는 예약이 꽉차 빌리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손으로 털고 키질해서 까부르고, 풍구질 하기가 겁난다.
여기 저기 쫒아다닌 끝에 탈곡기를 빌려 반 정도 탈곡한 상태다.
두부를 만들어 보았다.
지난날 실패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두부하면 겁부터 난다.
시골집에도 물어보고, 포탈 사이트도 뒤지고 해서 결국 성공했다.
몇번 만들어서 지인들과 나누어 먹기도 했다.
두부틀만 있으면 그래도 괘안은 모냥이 나올게다.
서풍골 서승광 형이 콩농사 대선배다.
유기콩을 직접 재배해서 된장이랑 간장을 담아 판다.
뻑하면 전화해서 콩에 관해 물어본다.
가끔 곰국 끓이는 날 전화하면 재수좋게 한 그릇 얻어 먹을 수도 있다.
콩도 반 털고 그대로고, 벼도 반쯤 베고 그대로다.
벼베다 콤바인이 고장나 공장에 들어가 버렸다.
뭐 하나 잘 풀리는게 없냐!
비는 연짱 뿌려대고 말이야!
기찬 밥집.
프로젝트 밥집을 시작했다.
자연재배 콩으로 순두부를 만들고, 자연재배 쌀로 밥을 지어
한달에 한번 밥을 판다.
거의 재료비만 받고 판다.
대전 중촌동 어느 식당주가 흔쾌히 식당을 공짜로 빌려준단다.
밥값은 3천원이다.
여유 있는 사람은 더 내고, 어려우면 3천원만 내고....
혹 대전에 계시는 분은 밥 먹으러 오시길...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았다.
콩 터는 일이 늦어지면서 양파랑 마늘을 못 심었다.
꼭 심어야 하는데 말이다.
헌데 꼭이라는 게 사람을 조인다.
그냥 안되면 안되는 대로, 되면 되는 대로 살고 싶다.
건강과 평화!
첫댓글 기차게 잘 산거 같구먼 그려 ㅎㅎ
아닙이다 형님.
아닌거 같아요.
글만봐도 풍성하네요. 칠보산마을신문으로 역시 스크랩합니다.
칠보에서도 이렇게 농사이야기 쓰는분이 언젠가는 생기시겠지요.
그러고보니 지금에서야 생각나네요.
칠보산마을신문을 보내드려야지 싶네요. 집주소가 어찌되시는지요?
저두 신문 보고 싶어요. 몹시!
충남 논산시 상월면 백일헌로 963번길 23
김광영 입니다.
네. 오늘 부쳐요
자연재배쌀에다 자연재배콩으로 만든 순두부까지 예약이요~~~언제 공지 뜰라나요,,,
어렵고 험난한 길을 가시네요.
그러나 누군가는 가야할 길 입니다.
그 길을 닦아 놓으면 많은 분들께서 다닐 수 있겠지요.
희망이 빛 바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