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
갑사는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연천봉 아래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6
교구 본사 마곡사 말사로 등록되어 있으며 부속 암자로 내원암, 신흥암, 대성암, 대적암,
대자암 등을 거느리고 있는 계룡산 지역의 거찰이다.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 아도가 창건하고 위덕왕 3년(556) 혜명대사가 중건하여 사찰로서
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전하며, 679년 신라의 의상대사에 의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는 무염대사가 중창한
기록이 보이며 조선시대 임진,정유 두 병란에 모든 건물이 불에 타 폐사된 것을 선조 37년
(1604)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고 효종 5년(1654)에 사우를 개축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
가 있었다. 갑사의 원 위치는 지금의 대적전이 있는 곳으로, 대형의 초석들이 정연하게 남
아 있어 당시의 규모가 짐작되며 사명 또한 조선 초기에는 계룡갑사라 하였으나 후기에 갑
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역은 부속 암자인 대적전 범위와 본찰인 대웅전 범위로 구분된다. 대웅전이 위치한 본찰
은 계곡간의 높은 축대를 마련한 후, 그 위에 사찰을 조영하고 있는데 입구인 해탈문은 솟
을대문 형식으로 두고 있으며 이 문을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의 오른쪽에 범종각
이, 앞쪽으로 강당을 배치하고 왼쪽에는 진해당과 요사채가 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 강당
을 지나 안마당에 이르면 정면에 대웅전이 자리하면서 좌우에 진해당과 적묵당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안마당보다 한단 높여 세운 서향건물이며, 남쪽에는 삼성각이 남아 있다.
대웅전의 중심부를 벗어난 동북방에 표충원과 팔상전, 그리고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는데
표충원은 임란시 승병장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또한 사역의 남쪽 계곡에는 석
조약사불과 공우탑이 있다.공우탑 남쪽으로는 대적전이 세워져 있고 전면에 원당형 부도 1
기와 이 부도의 남쪽에 대형의 철당간이 있다.
대적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사역을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속 암자로는 1808년에 청담이
세운 내원암, 수정봉 아래의 신흥암, 대성암, 대적암, 대자암 등이 있다.
갑사 일주문
갑사 철 당간 및 지주
보물제256호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갑사(甲寺) 동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당간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네 면에 구름무늬를 새긴 기단(基壇)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 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하였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인데 원래는 28개였으나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없어졌다고 한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기둥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안쪽에 구멍을 뚫어서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있다. 기둥머리의 곡선과 기단부의 단순한 조각이 잘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갑사 대적전
지방유형제106호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에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보수하여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적전은 대적광전이라고도 하며,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삼신불(석가모니·아미타불·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원래의 금당지 옆에 있던 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공포가 2개이며, 양 끝칸은 1개의 공포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위에 천장을 한단 올림으로써 닫집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갑사 부도
보물제257호
갑사 뒤편 계룡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17년 대적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 전체가 8각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며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높직한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차츰 줄어든다. 아래받침돌에는 사자·구름·용을 대담하게 조각하였으며, 거의 원에 가까운 가운데받침에는 각 귀퉁이마다 꽃 모양의 장식이 튀어나와 있고, 그 사이에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을 새겨 놓았다. 탑신을 받치는 두툼한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둘러 새겼다. 탑 몸돌 4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을 새겨 놓았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기왓골을 표현하는 등 지붕 모양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있다.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으며, 후에 새로 만든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올려져 있다.
갑사 공우탑
이 탑은 백제 비류왕 4년(304-344) 계룡산 갑사에 속한 암자를 건립할 때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냇물을 건너다 기절하여 죽자, 소를 현 위치에
매장하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탑은 원래 3층 석탑이었으나 상륜부가 없어진 상태로 기단부가 묻혀 있으며
상대갑석에는 2단의 고임이 있고 옥신에는 양우주가 양각되어 있으며
옥개의 층급 받침은 4단이다.
전통 찻집
갑사 강당
지방유형제95호
해탈문과 대웅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강론하던 건물로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뒤로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의 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를 짰는데,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 건물이다. 단청은 완전히 퇴색되어 무늬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문짝은 많이 변형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절도사 홍재의가 쓴 ‘계룡갑사(鷄龍甲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조선시대 후기의 웅장한 건축물이다.
갑사 동종
보물제478호
조선 초기의 종으로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매달 목적으로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높이 131㎝, 입지름 91㎝로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중간 지점부터 입 부분까지 직선으로 되어있다.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2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다. 종의 어깨에는 물결모양으로 꽃무늬를 둘렀고, 바로 밑에는 위 아래로 나누어 위에는 연꽃무늬를, 아래에는 범자를 촘촘히 새겼다. 그 아래 4곳에는 사각형모양의 유곽을 만들고, 그 안에는 가운데가 볼록한 연꽃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종의 몸통 4곳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를 따로 두었고, 그 사이에는 구름위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이 서 있다. 종 입구 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다. 이 종은 일제시대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되었다가, 광복 후 갑사로 옮겨온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종이다.
갑사 대웅전
지방유형제105호
갑사는 계룡산 아래에 있는 절로 백제 구이신왕 1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지었다는 설과 556년에 혜명이 지었다는 설 등이 있는데 확실하지 않다. 679년에 의상이 수리해서 화엄종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신라 화엄 10찰의 하나가 되었다. 859년·889년에 새로 지었으나 정유재란(1597)으로 인해 건물이 모두 불타 버린 것을 선조 37년(1604)에 다시 지었다. 갑사 대웅전은 절의 중심에 있는 법당으로 원래는 현재 대적전이 있는 근처에 있던 것으로 보이며, 다시 지을 때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4칸으로 1층이며, 옆면이 사람인(人)자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가운데 3칸은 기둥 간격을 양 끝칸 보다 넓게 잡아 가운데는 공포를 2개씩, 끝칸에는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는 우물천장으로 되어있고, 불단을 만들어 석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그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갑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적묵당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진해당.
갑사 삼성각
문화재자료제53호
삼성각은 칠성·산신·독성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건물 이름이 삼성각 인 이유는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한다. 칠성은 도교의 북두칠성이 불교화한 것으로 수명장생을 주관하는 별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며, 독성은 혼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각각의 건물을 따로 지어 삼성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삼성각 안에 같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범종각
갑사 표충원
문화재자료 52호
표충원은 영조 14년(1738)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건물 안에는 서산대사 휴정·사명대사 유정·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갑사 팔상전
문화재자료제54호
팔상전에는 석가모니불과 팔상탱화, 그리고 신중탱화를 모시고 있다. 팔상탱화는 석가여래의 일대기를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며,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을 묘사한 그림으로 호법신은 대개 우리나라 전통의 신들이다. 건물 규모는 작지만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며 격식을 갖추고 있다.
팔상전 내부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지방유형제50호
갑사 동쪽 계곡 약 100m 지점의 자연 동굴안에 있는데, 원래는 갑사 뒷산의 사자암에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고 얼굴은 긴편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가슴을 약간 노출시키고, 무릎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가슴 아래로는 반원형의 옷주름이 표현되었고, 왼쪽 어깨 부근에서는 한 가닥의 주름이 어깨너머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손모양을 살펴보면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어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성미와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부도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