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끝없는 하늘, 깊이 모를 바다▒
▒천수경-끝없는하늘,깊이 모를 바다▒
1. 끝없는 하늘, 깊이 모를 바다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의
24자 의미는 참으로 깊고 깊습니다.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부처님 마음입니다.
누구에게는 특정하게 베풀고 누구에게는
베풀지 않는 그러한 마음이 아닙니다.
태양을 생각해 보십시요.
태양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비춰지지 않습니다.
태양은 재벌에게만 특별히 더 비춰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에게만 더 비춰지는 것도 아닙니다.
태양은 그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 빛을 비춥니다.
광대한 세계에 두루 원만하게 말입니다.
장벽이 없습니다.
걸림이 없습니다.
무애대비심이란
누구에게나 항상 장벽이 없는 그런 마음입니다.
광대원만의 의미는 한계가 없다,
무량무변하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진정 끝없는 하늘이시고 깊이 모를 바다이십니다.
무량무변 하십니다.
끝없는 하늘은 무한을 의미합니다.
깊이 모를 바다를 생각해 보십시요.
깊이를 모르니까 그것도 무한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천수경을 보거나 화엄경을 보거나
법화경을 보거나 어디를 보아도 서로 상호모순
당착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입니다.
모두가 한결 같습니다.
성경과 불경의 대비점을 얘기해 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실꾸리처럼 흘러 나오기 때문에
언제 어느 곳을 얘기하더라도 전혀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여러 각도의
많은 사람들이 썼기 때문에 서로 어긋남이 많습니다.
성경얘기가 나왔으니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어떤 보살님이 열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기독교인하고 말씨름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살님이 왜 다툼을 하십니까?
무슨 얘기를 듣더라도 인욕을 해야지"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 보살님 말씀이 계속 얘기를 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 하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에
성경의 얘기 대부분이
아함경에도 다 나온다고 얘기했답니다.
그랬더니 성경은 부처님이 오시기 전부터 있었다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해서 답변이 꽉 막혔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구약은
아브라함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부처님은 2500여년 전에 나셨는데
아브라함은 4천년 전의사람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기원을 4천년 전부터라고 합니다.
그쪽을 잘 모르는 사람은 말문이 막혀버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말이 막히지 않게 설명을 해 드릴테니
다음부터는 대답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잘 들어보세요.
구약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교과서입니다.
그들의 신은 여호와입니다.
전세계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있는 민족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중국, 스웨덴, 이집트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 대한 기록도 5천년 전이지 않습니까?
우리 부처님께서는 2500년 전에 오셨지만 부처님께서는
"내가 오기 전에도 많은 부처님이 계셨고
내가 열반에 든 다음에도
부처님이 오실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문명마다 하나의 부처님이 오신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실제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부처님을
가섭불이라 하고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 분을
미륵불이라 하지 않습니까?
2500년 전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부처님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4천년 전 경전을 내세우면서 불교보다
앞섰다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은 과거 2500년 전에 오신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에도 많은 부처님이 계셔서
3만년 전 불경도 있고 그 이전의 불경도 있었던 것입니다.
아틀란티스에 관계된 얘기나 앞으로 오실
미륵부처님의 용화세계에 대한 얘기들은
모든 문명이 끊임없이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성주괴공(成住壞空:
생겨나고 머물고 파괴되고 허공으로 돌아간다는 뜻)
하는 차원이라는 것을 그들은 전혀 이해 못하고 있기에
그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아무튼,
다른 종교인들과 다투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차원이 다르기에 다투는 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포용해야 합니다.
만상을 살리는 불법
부처님은 진실로
`광대원만 무애대비심(廣大圓滿 無碍大悲心)입니다.
부처님은 끝없는 하늘이시고 깊이 모를 바다이십니다.
정말 무한의 존재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불가사의한 청정공덕을 따사로운 햇살처럼
끊임없이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나의 마음, 나의 집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또한 온 겨레온 중생 가슴속에
한없이 골고루 나누어 주십니다.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이 의미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부처님의 가호지묘력과 부처님의 위신력은 이와 같이
누구에게나 미치지 아니하시는 곳이 없으십니다.
온 중생, 온 세계,온 우주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속에 감싸여 있습니다.
걸림이 없습니다.
걸림이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편견이 있거나 아집이 있거나
집착이라거나 하는 것은 장애입니다.
무애대비심,
무애의 대도는 걸림이 없어야 탄탄대로처럼 나갈 수 있습니다.
계를 지킨다고 할 때에도
계를 위한 계를 지켜서는 안됩니다.
계를 지킨다는 상(相)을 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경에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사슴이 달려와 숨겨 달라 하였습니다.
잠시 뒤 사냥꾼이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사슴이 어디로 갔습니까?" 묻자
반대방향을 가리키며 거짓말을 했다 합시다.
그런 경우 계를 파한 것이 될까요?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알아야 할 일은 계는
계를 위한 계가 아니고 생명을 위한 계란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계인 것입니다.
만상을 살리기 위한 불법이지,
만중생을 죽이기 위한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이라는 것은 만중생을 걸림없이
자유자재로운 경지로 승화시켜
삶을 자유자재하게 살도록 하려는 것이지,
결코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겹게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다는 걸 믿으십니까?
믿음이 확고하면 확고할수록 공덕은 더욱 크게 늘어나고
믿음 자체가 박약하면 쌓는 공덕도 별 볼일이 없습니다.
믿음의 자세로 공덕의 척도를 잴 수가 있습니다.
믿으려면 확고하게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하고 물으면
있는 힘을 다해서 "믿습니다"하는데,
불교인들에게 "부처님을 믿습니까?"하고
물으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믿어요"합니다.
"믿어요" 해놓고 그 다음은 꿀먹은 벙어리입니다.
그러니까 불교가 이다지도 힘겨운 상황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확고부동하게
부처님의 존재와 부처님의 실존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무량대자대비하신 광명의 실체라는 것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스님들도 그렇고
불법을 설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심지(心地)를 분명히 갖고 분명히 심어주어야만
`원아불퇴보리심"이 되는 것입니다.
확고부동하지 않으니까 흔들흔들합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은혜는 나의 생명과 우리 국토,
온 세계에 넘치고 있습니다.
단지 기도가 부족해 체험해 보지 못해 그렇지,
부처님의 은혜는 온 우주에 넘실대고 있습니다.
참되게 믿지 않아서 그렇지,
부처님의 가득하신 자비는 이 세상 가득히 넘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이같이
부처님의 은혜로운 공덕을 받고서 태어났습니다.
또한 그 은혜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온 중생은
모두가 일찌기 축복받은 자들입니다.
거룩한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거룩한 삶의 역사를 열어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부처님의 거룩한 광명과 은혜로 살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를 중생이라 하였습니다.
무애한 차원으로 무한하게 걸림이 없이,
누구 한 사람 빠짐없이,
나와 너, 우리 국토 모든 중생을 전부 다
어루만지시는 그러한 마음을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이라 합니다. 그리고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리니 계청"의 의미는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님의 무한한 위신력의
모두가 다 갈무리되어져 있고,
또 부처님의 무상심심미묘한 비밀이 다 들어있는
천수대다라니를 깨우치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계청"에서 계(啓)자는
계몽할 계, 깨우칠 계입니다.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 스스로 깨우치고자
청하옵나이다"하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천수경의 의미를 모르고
바보같이 입으로 중얼거리기만 한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2. 기도 없는 곳에 번창 없다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
원력홍심상호신(願力弘深相好身)
천비장엄보호지(千 莊嚴菩護持)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遍觀照)
낮출수록 높아지리라!
<계수관음대비주>`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의
`계수"의 뜻은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입니다.
흔히 귀의(歸依),귀명(歸命)의 뜻이라고도 얘기합니다.
`계수"의 참뜻은 몸과 마음을 다
던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전의 첫머리에 `계수"란 두글자가 나오는 이유를
분명히 이해하셔야만 합니다.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공부하기에 앞서
우리의 마음자세는 문자 그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마음이어야만 합니다.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중요롭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만,
그들 중 진실로 중요로운 부분은 머리입니다.
머리를 조아린다는 의미는 진실로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깨우칠 때
과연 어떠한 마음의 자세이어야만 하는 것인가를
숙연히 생각해 보아야만 합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를 낮추는 마음 가운데
진보의 문이 열립니다.
교만한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불교의 수행법 중 중요한 것의 하나는 절입니다.
108배, 3천배 등 끊임없이 절을 올리는 이유는
한없이나를 내려 낮추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나를 낮추는 가운데 높아지는 도리가 있습니다.
불교가 `계수"의 종교이기에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종교인 것입니다.
흔히들 `절은 하기가 힘들다" `
절은 요즈음 시대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수행법이다"
등등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얘기입니다.
절의 과학성과 인체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을 드렸지만,
정말 절 이상의 탁월한 수련법이 없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정신과 육체 양면에 절만큼 심원한 효과를
가져다주는 수행법은 달리 찾을 길 없습니다.
불교는 진정 절이 있기에 성불하는 종교입니다.
절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신 적이 계신가요?
3천배,만배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진정 원력(願力) 보살입니다.
마음 가운데 한없는 원력을 머금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불제자, 참다운 수행자들은
진정 `계수"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길 가운데 열반의 문이 열려 옵니다.
그 길 가운데 영원한 지혜와 복덕의 문이 열립니다.
항상 절 하십시요!
항상 기도하십시요!
`관음대비주"란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하신 마음이
깃들어 있는 신령스러운 주문이란 뜻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신령스러운 주문이란
바로 천수경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계수관음대비주"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거룩하시고 대자대비하신
천수경에 예경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 뿐만 아니라
여러 중요로운 주문이 들어 있는
관세음보살님의 본심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들은 천수경을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귀의하는 마음으로 받들어지녀야만 합니다.
천수경을 독경하며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그들은 모두 넓고 깊은 원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상호는 관세음보살님을 닮아 거룩합니다.
관음의 원력 <원력홍심상호신>
원력홍심상호신(願力弘深相好身)"의 의미는
`계수관음 대비주"하는
수행자들의 마음과 몸의 자세를 의미하는 동시에,
관세음보살님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진정 원력이 크고 넓은 사람은 그 상호도 그 마음을 닮습니다.
불교를 원력의 종교라 하듯,
원력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과 몸은 보통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은 관세음보살님을 닮아 있습니다.
원력이 넓고 깊기에,
그리고 상호가 탁월하기에 그들은
천개의 팔로 장엄하신 관세음보살님께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닮아 갑니다.
사홍서원이라거나 여래십대발원문 등의 예를 보십시오.
그 원력이 얼마나 거대하고 거룩합니까?
사해(四海)를 다 가슴에 안을 듯한 원력이요,
서원입니다.
서원이란 원력이 승화된 자리입니다.
발원과는 차원이 다른 마음입니다.
천 개의 팔로 무량중생들을 보호하시는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항상 원력보살들을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십니다.
무한의 포용력 <천비장엄보호지>
`천비장엄보호지(千 莊嚴菩護持)"의 의미는
관세음보살님께서 한량없는 대자대비심으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천비장엄보호지"는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遍觀照)"와 함께
관세음보살님의 무량한 보살심을 담고 있는 가르침입니다.
앞서나온 천수천안의 의미와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의 의미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합니다.
`천비장엄보호지",
천개의 팔과 천개의 손[千,千手]의 의미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천개의 팔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그러한 팔과 손을
천개 가졌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무한한 포용력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손이란 모든 것을 끌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또 손은 무한한 창조의 능력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손을 천개씩 지니신 분이란 뜻은
관세음보살님의 무한한 포용력,
무한한 창조력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이같은 의미는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에 연결되어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한결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천개의 팔로 장엄하신 관세음보살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내용은 참으로 거룩한
신앙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교가 자력신앙이라고 하지만,
이와같은 자력을 바탕으로 한 타력신앙이기에
무량대중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종교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내용은
흔히 금강경등 여타의 경전에 등장하는
호념(護念),부촉(付囑)의 사상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천비장엄보호지"의 뜻은
`부처님께서 항상 우리를 보호하시는 마음을 품고 계시며,
또한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무한한 능력을 부여해 주시고
부처님의 아들로 삼아주신다"는
금강경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자애의 눈 <천안광명변관조>
`천안광명변관조(千眼光明遍觀照)의미 역시
진지하게 관조해야만 합니다.
천개의눈이란 무한한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우리들을 무한히 자애로운 눈으로
지켜보심을 믿으셔야만 천수경을 공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어디 관세음보살님의 눈이 천개 뿐이겠습니까?
천안광명은 부처님의 광명,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대비한 무애대비심의 광명으로,
문자 그대로의 실상광명입니다.
변관조의 변(遍)은 두루변자입니다.
우주 만유를 빠짐없이 관조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서 무애대비심으로
여러분들을 어루만지시고 빠짐없이 살펴보고 계시다는
뜻을 통해 참된 신앙의 마음으로 승화되어집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올바른 불교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중생들을 다 어루만져 주시고,
모든 중생들을 다 보살펴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들은 그분의 품에서
무한한 평화와 안락을 느낄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손을 바로 어머니의 약손으로 생각하십시오.
눈으로는 항상 모두를 관찰하며 통찰력있게 두루
살펴보신다는 의미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진정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도
빠짐없이 무한한 자비심을 골고루 부어 주십니다.
그러면 `천안광명변관조"에 이어 관세음보살,
즉 관자재보살의 자재(自在)의 경계인
10자재를 공부해 보기로 합니다.
기도를 통해 열리는 자재의 세계
10자재의 경계는 부처님 법문가운데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유자재의 경계가 열린다, 다만
시간만이 문제일 뿐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이니까
부처님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시간이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시간과 공간에 구속된 세계입니다.
씨를심으면 자라야 열매가 열리는 세계입니다.
경전도 단계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아함경, 방등경에서는
`너희들은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반야경도 마찬가집니다.
법화, 열반경에 가면 패턴이 좀 달라집니다.
`너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처다,
그럼에도 부처임을 모르고 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너희들은 부처다"라고 가르치면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너희들은 부처의 길로 가는 존재이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시간 속에 파묻혀 사니까요.
그러나 실은 우리들은 지금도 부처입니다.
다만 착각 속에 살면서 부처임을 모르는 부처님들이지요.
법화경에 들어가 보면
이같은 사실이 여러가지 차원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착각을 깨는데는 우리들이 워낙 물질에
밀도 짙게 물들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래 성불해 있습니다.
본래성불의 존재입니다.
본래성불과 원래성불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원래 부처이니까
기도를 하기만 하면 모두 다 성취되어 집니다.
자유자재로와집니다.
기도를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끊임없이 기도하는 한
무한하게 자라서 부처의 경계가 됩니다.
지금의 능인선원 문제가 아닙니다.
20년 30년 끊임없이 계속 기도를 하게 되면
상상을 초월한 차원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스님, 어떻게 그렇게 그 많은 일들을 혼자서
힘들게 하십니까?"라고 묻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럴 때 저는
"부처님과 함께,관세음보살님과 함께 있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부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지휘자는 원래 혼자입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해도 콘덕터는 하나입니다.
여러사람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단원들이 따라 주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펼쳐집니다.
사실에 있어 모든 역사는 어떤 한 사람의 탁월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그 생각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믿고
`내가 부처다"라고 확신하고 계속 뛰면
부처의 위신력을 힘입게 되고 이 땅 위에
대역사를 펼칠 가능성이 무한대로 자라나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스스로가 부처임을 포기합니다.
그 누구도 부처님입니다.
저는 확신속에 살고 있기에
정말로 폭발적인 기세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의 번창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먹고 잘 입으려 무언가 물질 위주로만
살아가는 삶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본래성불의 존재라고 확신하며 살아가십시오.
본래 성불의 존재라면 부처님답게 행동해야지
중생처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관자재보살의 10자재
처음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지 않고
관자재보살로 표시한 의미를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세계는 자유자재라고 하는데
10자재 뿐이겠습니까?
무한자재이신데 단지 인간들이 살아가다 보니까
10자재 정도만 하더라도 모두가
해결되기에 그 정도로나온 것입니다.
10자재만 제대로 나의 것으로 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부처님 경계가됩니다.
10자재의 첫번째는 명자재(命自在)입니다.
명자재는 부처님 전에 기도하면
수명이 자재해진다라는 뜻입니다.
마음 가운데 탁하게 오염된 것을 자꾸만 씻어내고,
죄를 짓지 않고 참된 마음으로 살아가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렇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난국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명자재입니다.
옛날에
`진묵"이라는 스님은 자신의 목숨을 마음대로 했다고 합니다.
진묵대사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내가 몇월 몇일에 열반에 들어야겠으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이 어린 사미승이
"스님!, 그 날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정초여서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진묵 스님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럴 듯해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미승이 그 다음날 돌아가시라고 했습니다.
마침 그 날짜가 닥쳐오니
스님이 또 내일은 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번에도 그 날은 큰 49재가 들어왔는데
스님께서 그 날 돌아가시면
49재와 겹치게 되어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일리가 있으시다면서
"그러면 49재 지나고 가야겠구나"하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 날이 지나자 홀연히 떠나가셨습니다.
죽음을 자유자재로 선택하실 수 있는
스님의 놀라운 법력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두번째는 심자재(心自在)입니다.
기도를 하면 마음이 항상 안정되고 여유로와집니다.
마음 속에 부처님을 모시면 어디를 가나 행복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이런 원리를 다 깨닫게 되기에
기도하라고 계속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작업은 부처님을 만나는 작업이고,
스스로가 부처임을 입증하는 작업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사람들은 무한 번창의 길을 바라면서도 왜이렇게
좋은 길을 잊고 사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어리석은 나머지 애꿎게 주위 사람만 원망합니다.
스스로를 원망하고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해야만 합니다.
세번째, 업자재(業自在)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면 업이 녹아져 내립니다.
기도는 업장소멸입니다.
좋은 업을 짓게 되고 또 기도하며 사니까
좋은 업이 쌓이게 됩니다.
기도를 오래 계속하다 보면
부처님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어집니다.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이 모두 부처님 말씀이고
생각과 행동들이 모두 좋은 업으로 승화되어 집니다.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모실 때는 부처님과 하나 되지만
부처님을 잊어버릴 때는 악마와 하나가 됩니다.
악마가 여러분의 주변에 서성이면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을 받을 때 부모를 원망하고
조상을 원망하고 부처님을 원망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탓인데도 말입니다.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의 원천이신 분께서
왜 여러분을 괴롭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진노하는 하느님이요.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요"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참 이상한 하느님도 다 계시는 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원천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진노하거나 질투하는 부처님도 아니고
시기하는 부처님도 아닙니다.
부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깨버리고
바벨탑을 깨버리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 얘기입니다만,
성경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벨탑을 인간의 교만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면 그 의미가 선명해질텐데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마음이라는 게 궁극적 대상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 이데아가 나올리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도 인간들이 죄악과 자멸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깼다 이러지 말고 인간의 마음가운데 존재하는
근본적인 양심,
참의 세계로 나아가는 마음이 쓰레기 같은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 가운데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라고 얘기해야 옳습니다.
실천 없는 곳에 성불 없다
네번째, 재자재(財自在)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공덕이 쌓이고 모여
재물의 궁핍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재물 때문에 항상 곤경을 느끼는 것은
지은 바 공덕과 복업이 짧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부처님 전 관세음보살님 전에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이 맑아져 저절로 부처님 전
관세음보살님 전에 공양을 올리게 됩니다.
공양의 결과는 항상 우리들을 복업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마음은 여러분들을 재물이
자재로운 경계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궁핍한 사람, 재물에 곤란을 느끼시는 분들은
열심히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실제 그와 같은 경계가 열려지는 지는
직접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번째, 생자재(生自在)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언제나 좋은 곳에 태어납니다.
내생에 복받고 태어나려면 금생에 기도를 열심히 하세요.
부유하고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는 경계가 모두 생자재입니다.
여섯번째, 승해자재(勝解自在)입니다.
`승해"는 `최고의 이해"
`부처님의 이해"라는 말입니다.
기도하고 살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두뇌회로가 일관성을 가지니까
산란한마음이 녹아지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번뇌가 다 제거됩니다.
쓰레기같은 마음들이 다 스러지니까 모든 것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기도하고 난 다음에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세요.
머리가 깨끗해진 상태에서 무엇이든 쏙쏙 들어옵니다.
워낙 쓰레기통 같은 사람은 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기도할 때는 곗돈같은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관세음보살님 하나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음 가운데 잡념이 일어나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으세요.
마음의 쓰레기를제거하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아이들도 기도를 많이 시켜야 합니다.
머리가 맑아져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
특히 공부를 못하고 산만한 녀석들은
기도를 많이 시켜야 합니다.
마음을 집중시키지 않고 머리를 맑게 하지 않으면
공부를 아무리 시켜보았자 헛일입니다.
머리를 깨끗하고 맑게 한 다음 공부하도록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기 전의 정지작업이 중요합니다.
집에서 기도를 시켜서 보내는 것이 훨씬 슬기로운 것입니다.
괜히 공부 못한다고 야단치지 말고
절 시키고 염불시켜 보세요.
물론 전생서부터 복업이 많아 가지고
똑똑한 아들딸들을 잉태한 그런 보살님들은 상관없겠지만,
그렇더라도 미래에 또 좋은 집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만 합니다.
일곱번째, 원자재(願自在)입니다.
원력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면
소원한 것이 모두 다 이루어집니다.
불교는 이미 말씀드린대로 원의 종교이니까,
한번 실천해 보시기바랍니다.
여덟번째, 신력자재(神力自在)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신통력이 나오고 숙명통이 열립니다.
끝으로 아홉번째 지자재(智自在)와
열번째 혜자재(慧自在)입니다.
지"는 일체 보이는 현상계에 대한 완벽한 통찰력입니다.
`혜"는 마음의 세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투철한 파악을 의미합니다.
신통력이 자재하게 되니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훤히 다 알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보이는 세계에 밀착되어 살면서도
그 세계를 잘 모릅니다.
삶을 엮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를 바탕으로 살아가게 되면
소망하는 모든 것들이 자유자재해진다는 것입니다.
자재란 `자유롭다,
마음먹은 대로 다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런 뜻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분명히 아시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10자재라고 10가지를 하나하나 떼어서 얘기했지만,
부처님 경계는 떼어서 얘기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경계는 광명입니다.
햇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태양처럼 햇살을 끊임없이 부어 주시는데,
여러분들 스스로 방벽을 치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재력이 광대원만하게
두루 어디나 한계가 없이 무한하게 우리들에게
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바로 착각 속에 싸여 있고 무명 속에
싸여 있으며 미혹에 휩싸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
이와 같이 온 중생, 온 세계, 온 우주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 속에 감싸여 있습니다"하는
내용이 바로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의 의미입니다.
이모든 내용이 천수다라니에 다 들어 있으니까
기도하고 정진하는 마음가운데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거두어들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증적으로 설명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대단히 중요로운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신 다음에라도 실제로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공을 하려는 사람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듯이,
성불하려고 하는 사람이
기도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성불할 수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엮어 나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법(法)이 불(佛)이요,
불이 곧 법이라고 했습니다.
법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이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이고 바른 행동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1년에 한두번씩 찾아와서 연등이나 달고
입춘날 부적이나 받아 가지고 가서는 안됩니다.
정말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 길 가운데 자재의 경계가 있습니다.
♣3. 무위심(無爲心)으로 승화되라!
진실어중선밀어(眞實語中宣密語)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
영사멸제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
`참"만이 열매를 맺는다 <진실어중선밀어>
부처님 말씀은 `참[眞]"입니다.
`참"만이 열매[實]를 맺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항상진실(眞實)입니다.
부처님은 진리이시고 법(法)이시기에
그를 따르는 자는
무한 영광이요,번창입니다.
그러나 눈이 먼 자, 귀가 멀어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이며 진리이심에도
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어렵고 힘겨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데도,
그를 받아들일 만한 마음자세가
제대로 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햇빛이 그 누구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지만,
창문이 닫혀있는 집에는 비쳐들 수 없는 원리와 같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고
마음의 귀가 열리지 않았기에
참된 말씀이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말씀이지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진실된 말씀을 하시지만
항상 비밀스런 의미처럼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시절 소풍을 갔을 때
보물찾기하던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물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비밀스런 곳에다 숨겨둡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진리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마음의 귀와 마음의 눈이 닫혀있는 사람에게는
비밀스런 내용처럼 들리고, 보이는 것입니다.
오염없는 마음 <무위심내기비심>
부처님 마음은 전혀 오염이 없는 마음입니다.
오염이 있는 마음이란 `나"가 있는 마음입니다.
`나"가 있는 마음은 `아상(我相)"이 있게 되고,
그 마음 가운데 집착이 생겨납니다.
`나"가 있는 마음은
갖가지로 부처님 마음을 깨뜨립니다.
이기심이 생기고 탐욕이 생깁니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물든 마음은
부처님 마음이 아닙니다.
그 마음은 베푸는 마음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마음이요,
병든 마음입니다.
무위심(無爲心)은 `나"가 없는 마음입니다.
부처님 마음입니다.
부처님 마음은 무한자비의 마음입니다.
무위심 가운데 한 없는 자비심이 일어납니다.
무위심에 대칭되는 유위심(有爲心)이 있습니다.
유위심은 `나"가 있는 마음이요,
오염된 마음입니다.
번뇌에 찌든 마음입니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참 말씀을 통해
부처님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부처님 마음은 문자 그대로 베풀며,
주는 마음입니다.베푸는 마음,
부처님 마음을 닮은 마음은
무한한 공덕을 쌓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 가운데 소원하는 모든 희구가성취됩니다.
속히 이루리라! <속령만족제희구>
이 우주는 뿌린대로 거두는 세계입니다.
`무위심내기비심"의 사람은 분명
`속령만족제희구(速令滿足諸希求)"의 경계를 열어갈 것입니다.
`속령만족제희구"의 의미는
`속히 그들로 하여금 모든 희구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리라"의
의미로 해석되어집니다.
참다운 마음,
무위심의 사람은 베푸는 마음의 사람이기에
스스로의 소원하는 바,
희구하는 바를 모두 이룹니다.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희구하는 바 있는 사람,
소망하는 바가 있는 사람은 먼저 씨부터 뿌려야합니다.
씨를 뿌린 다음에라야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뿌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은
애가 타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질병의 포로가 되기 십상입니다.
진실로 기도해야만 되는 이유,
마음 가운데 번뇌 망상을 씻어내고
무위심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그 같은 마음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부처님 말씀대로 살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만이 소구하는 바를 속히 달성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무엇인가 이루려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기도와 정진끝에 자신의 소망을 달성해가는
이유를 면밀히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 가운데
기도를 통해 자신의 행로를 열어가지 않았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무위심의 사람은 모든 희구하는 바를 속히 만족시킴과 동시에
다겁생래 쌓아올린 모든 죄업들을
영원히 소멸시키고 제거하게 됩니다.
업장소멸의 경계 <영사멸제제죄업>
`영사멸제제죄업(永使滅除諸罪業)"이란
`영원히 그들의 마음 가운데 모든 죄와 업장들을
소멸시키고 녹여내리게 되리라"하는 뜻입니다.
억겁을 두고 쌓아온 죄와 업장은
마음을 갈고 닦아 무위심이 되어짐으로 인해 소멸됩니다.
진실로 부처님의 참된 말씀,
비밀스런 뜻을 담고 있는 말씀을 통해 무위심으로
승화되어 지는 것이 우리 수행자들의 소망입니다.
그 같은 마음 가운데 참된 자비심이 일어나고,
그 결과 모든 희구하는 바는 속히 만족되어질 것이고
모든 죄와 업장들은 저절로 녹아질 것입니다.
♣4. 광명의 깃발을 높이 들라
천룡중성동자호(天龍衆聖同慈護)
백천삼매돈훈수(百千三昧頓薰修)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
화엄신장들의 가호지묘력 <천룡중성동자호>
물은 수로(水路)가 깊게 패이고 넓직하게 뚫려서
물이 콸콸 한 으로 흘러가야 힘찰 수가 있습니다.
물의 힘을 이용한 수력발전소를 보면,
큰 뚝으로 댐을 쌓아 일년내내 비를 받아 둡니다.
장마철에 물이 넘치게 되면 수문을 활짝 엽니다. 그러면
그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수문(水門)으로 빠져 나갈 때 생기는
무진장한 힘으로 터빈을 돌려 전력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이 한 으로 흘러가야지만
큰 힘을 발(發)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으면 흡사 물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흐르는 것과 같이 제대로 힘을 발할수가 없습니다.
지리멸렬(支離滅裂)이라고 하지요.
지리(支離),가지가지 찢겨져 있으니까
멸렬(滅裂),흩어져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군대도 단단히 뭉쳐있으면 깰 수가 없습니다.
그럴때 공략을 하는 방법은 게릴라 전법을 쓰는 것입니다.
적국의 한가운데로 간첩,
스파이를 집어넣어서 분열시킵니다.
그 나라와 왕에 대해 욕도 하고 정치 못한다고
나쁜 얘기들을 고의로 마구 퍼뜨리면
민심(民心)이 흩어지고 갈라집니다.
그럴때 때리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백성들의마음이 지리멸렬되어 있으니까
공략하기 쉬운 것이지요.
전쟁에도 다 전법(戰法)이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이나 마음도 지리멸렬되어 있으면
외적이 침범하기 쉽습니다.
외적이란질병이나 재앙의 형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항상 한 으로 정리가 되고 집중이 되어야만 합니다.
마음이 갈라져 있을 때
오열(五列)이 쳐들어오는 법입니다.
그것은 에누리없는 사실이요,
이 우주의 철칙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한으로 모여 있을 때는
온 몸에 펼쳐져 있는 신경의 흐름이 질서정연해지고
정신도 아주 맑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모여 있어야 합니다.
조금 전에 수로(水路)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만,
마음이 한곬로 모여있게 되면
수로로 물이 일정하게 흘러가 듯이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온 혈액도 온 몸을
질서정연하게 흘러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지리멸렬한 상태가 계속되면 변덕이 심해집니다.
변덕이 죽 끓듯하는 사람은
수로가 일정치 못한 물줄기처럼,
혈액의 흐름이 고르지 못합니다.
마음을 이렇게 썼다, 저렇게 썼다 하면
심장에 부담이 가 피가 흐르는 속도도 일정치 못해
부정맥(不靜脈)같은 아주 위험한 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심장을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가 고르게 흘러가도록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마 게이트(Ellma Gaytt)란 유명한
심신상관(心身相關)의학자는
치료를 할 때 동양의 명상법이나
참선법을 도입하여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질병이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 와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앉혀 놓고 일정기간 명상을 시켰더니,
질병이 쾌유되는 속도가 빨라지더라는 것입니다.
환자를 앉혀 놓고 마음이 모이도록 하나만 가르칩니다.
명상을 시키거나 참선을 시키며 화두를 들게 한다든지,
관세음보살님을 염송시키거나
`옴 마니 반메 훔" 같은진언 하나 만을 외우게 하면
마음의 안정상태를 확보하게 되고
그 결과 질병이 속득쾌차 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병이 빨리 낫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리멸렬했던 파이프라인(pipe line)이 뻥뻥 뚫려서
강한 에너지가 콸콸 흘러드니까,
약한 세포에도 힘이 흘러들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혈관으로 피가 막힘없이 흘러다니니 나쁜 병원체가
죽어버리고 독소들이 다 빠져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경이 지리멸렬되어 있으면 각양각색의
질병 현상들이 다발적으로 생겨납니다.
관세음보살님과 화엄성중님을 소리 높여 불러 모시는
순간에는 마음이 하나로 모아집니다.
신체의 지리멸렬하고
깨어져 있던 메카니즘이 하나로 통합되는 작용을 합니다.
관세음보살님과 화엄성중님을 부르면서 마음의 수로를
하나로 뚫어나가는 작업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할 때 그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피도 온 머리로 몸으로 일관성 있게 흐르기에,
모든 세포에 영양공급이 잘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절을 계속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이치도 여기에 있습니다.
수로가 열려 콸콸 흘러가니
머리가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머리가 나쁘고 주위가 산만한 아이들은
기도와 절을 많이 시켜야 됩니다.
기도하는 작업은 진실로 수로를 활짝 열어가는 작업입니다.
마음 가운데 관세음보살님을 자꾸 불러 모셔야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화엄성중 화엄성중,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자꾸만 염(念)하는
그 순간보다 마음의 수로를 더 확실히 여는 작업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마음이 한곬로 흘러가면 갈수록
혈관도 한곬으로 흘러가고
신경도 한 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정신집중도가 강해지고
파이프라인이 하나로 통해서 영양분이
온 몸에 고루고루 공급되기 때문에
병이 쾌차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신 분들은 머리가 맑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영양공급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안개끼인 듯 찌푸둥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한 사람들은
뭔가 알 수 없는 병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체의 파이프라인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은 기도를 많이 하셔야 됩니다.
수로가 튼튼해야,
그 튼튼하고 커다란 파이프라인으로
`천룡중성동자호(天龍衆聖同慈護)",
즉 불보살님들과 화엄신장님들의 가호지묘력이
콸콸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막혔던 파이프를 뚫는 기도
기도를 할 때는
화엄성중님과 관세음보살님을 규칙적이고
일관성있게 염송하셔야 됩니다.
능인선원의 기도하는 법들도 다 이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능인선원에서는 혼자서 유별나게
튀는 목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없지요.
한덩어리가 된 목소리로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함께 부르면
서로에게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절에를 가 보면 정근이
동음창화(同音唱和)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기도는 파이프라인이
하나로 통하지 않아서 헷갈려 버립니다.
파이프라인이 뻥 뚫려야 그곳으로 화엄신장님들의
가호지묘력이 콸콸 흘러 들어오는 법입니다.
사람들의 심전도(心電圖)를
한번 점검해 보면 제 각각 다 다릅니다.
심전도는 사람마다 똑같은 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심장의 파동이 강해야 건강한데 그
렇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심전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그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다르니까 심전도가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마음의 수로도 어떤 사람은 넓고
어떤 사람은 형편없이 좁습니다.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서 그러합니다.
파이프라인인 생명관(生命管)이 약하니까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이 쏟아져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밤늦게 동해바다를 건너가 보면
환하게 빛나는 배는 모두 오징어잡이 배입니다.
오징어 배는 캄캄한 밤에도 환히 빛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파이프라인이 크고 굵으면
불보살님들과 화엄신장님들이 모두 다 보시게 됩니다.
그 생명의 파이프라인이 굵고 크기에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을 훨씬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이지,
부처님께서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만
더 많이 베푸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파이프라인은
평상시에 항상 크고 굵게 열어 놓아야 합니다.
전선도 굵은 것이 있고 가는 것이 있습니다.
굵은 전선으로는 전류가 콸콸 힘차게 흐릅니다.
전선이 가늘면 전류도 영 시원치 않습니다.
전류의 흐름은 도선의 굵기에 비례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전기의 도선과 같이
우리 마음의 파이프라인도 크게 만들어 놓고 볼 일입니다.
파이프라인을 크게 만드는 작업에는
기도하는 작업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화엄신장님들과
천용팔부신장님들이 이 허공계에
가득히 계신다는 점입니다.
기도를 참으로 많이 하셔야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하시면 집안에
정말 좋은 일들이 각양각색으로 찾아듭니다.
이 우주에는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이 가득 차있는데,
사람은 자기가 지닌 파이프라인의
크기밖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의 파이프라인이 약하디 약하고 콱 막혀 있으니까
아무리 받아들이려 해도 자꾸만 옆으로 새어 나가는 것입니다.
막힌 파이프를 뚫어야 합니다.
법화경에도 나오듯 관세음보살님과 화엄성중님을
부르는 만큼 머리가 맑아집니다.
얼굴에 밝고 환한 광채를 띄게 됩니다.
화엄성중님들께서 밝고 빛나는 얼굴을 보시고는
`아, 이 녀석은 기도를 많이 했구나!"하고
금방 알아보십니다.
그러면서 `이 녀석은 나의 아들"이라고
어여삐 여기시며 가호해 주시는것입니다.
우리들이 왕이나 재상하고 친구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잘 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잡귀들이 붙었다가도
강한 사람과 가깝게 있으면 범접을 못합니다.
내가 사장과 친하면 다른 직원들이 시비를 못 걸듯이
기도를 많이 한 사람들은 천룡중성들이 와서 함께
자비로운 마음을 내어 보호를 해 주십니다.
`천룡중성동자호"가 되어야
`백천삼매돈훈수(百千三昧頓薰修)"가 되는 법입니다.
삼매는 영원과 하나된 마을 <백천삼매돈훈수>
`백천삼매"라 할 때 `삼매"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삼매(正三昧)이며,
또 하나는 사삼매(邪三昧)입니다.
정삼매란 기도를 자꾸해서 마음의 파이프라인이
튼튼해진 경지를 말합니다.
부처님 세계와의 파이프라인이 튼튼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 법력이 강해집니다.
진정으로 영적인 능력이 열린다거나,
법력이 쌓인다거나, 자기 마음 가운데 뭔가
영원성이 강화된다거나 하는 것은 정삼매입니다.
사삼매란 노름이나 당구나,
자꾸만 뭘 하다 보면 그 방면으로
무엇인가가 열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의 영원성의 세계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렇듯 삿된 경계를 사삼매라 합니다.
`백천삼매돈훈수"라는 말은
마음 가운데 영원성을 희구하는 마음이 계속 닦여지고
기도가 쌓이면 부처의 경계가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용(龍)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말 허공계에는 많고 많은
화엄신장님들과 천룡들이 있습니다.
용을 실제로 못 보셨으니까
믿기 어려우실테지만 용은 정말 있습니다.
저는 용꿈을 자주 꿉니다.
꿈속에서 용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닙니다.
퍼런 비늘이 달린 용이 와서 웃기도 하고
같이 놀자며 춤을 추기도 합니다.
수염이 돋은 용도 있습니다.
정말 기도가 잘된 보살에게는 용이 보여집니다.
용꿈을 꾼 사람들은
화엄신장님들의 가호지묘력이 함께
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만 없지,
보이지 않는 세상에는 용이 있습니다.
저는 용하고 같이 놀기도 했는데 그게 환상이 아닙니다.
이런 것이 환상이고 빈소리면 부처님께서
용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 옛날 도인들이 지은 지명(地名) 같은 것도
예사로 붙여진 것이 아닙니다.
용두동이니, 용인이니, 용산이니, 계룡산이니,
구룡산이니 하는 용(龍)자 붙은 그런 지명들은
산신령님들이나 화엄신장님들의
가호지묘력이 함께하는 장소입니다.
용이란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용이란 글자 자체가 없어졌을 것입니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같은 곳에서 나오듯
`불휘기픈 남 바라매 아니뭘씨 곶됴코
여름 하니 시미 기픈 므른래
아니 그츨새 내히 이러 바 래 가 니"에서 보듯,
필요 없고 쓰이지 않는 글자는 자꾸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용이란 글자는 필요 없는 글자가 아니니까
아직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저 먼 과거로부터 필요 없고 뭔가 헛되고 삿된 건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대로
`언어는 다 유기체"이기 때문에
쓰임이 없는 언어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용이란 낱말은
생생하게 지금도 남아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용꿈을 꾸어본 사람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용꿈 꾸어본 사람들이 계시기에
용이란 말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태몽에 용꿈을 꾸면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색깔이 아주 찬연한 청룡, 황룡도 있습니다.
기도를 작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저에게 청룡, 황룡을 보여 주십시요"하면
홀연히 꿈속에서 청룡, 황룡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의상대사 이야기에도 선묘공주가 청룡으로 변해
부석사 돌을 날라왔다는 것 아닙니까?
`천룡중성동자호"란
이렇듯 하늘에 있는 많고 많은 용들과 화엄신장님들이
다 함께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호해 주시고,
주변에 있는 모든 잘못된
악귀,사마들을 물리쳐주신다는 뜻입니다.
화엄신장님들과 친하면 그 분들이 두호해 주셔서
잡귀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 잡귀가 다 달아나 버리니까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 `백천삼매돈훈수(百千三昧頓薰修)"의
돈(頓)은 갑자기란 뜻이고,
훈(薰)은 안개나 향기가 뭉게뭉게 퍼져가는 모습입니다.
수(修)는 닦을 수자입니다.
백천삼매를 순간에 얻는다는 뜻은
기도를 시작하면 이내
일념상태에 쉽게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광명의 깃발이 되라 <수지신시광명당>
일념이 되어 관세음보살님 기도를 하는 사람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생깁니다.
이런 강한 힘을 바탕으로 나가는 사람을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이라 부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힘이 강하기 때문에
깃발을 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광명당(光明幢)이란
`광명의 깃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불교를 광명당의 종교,
행동의 종교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공부를 할 때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서
머리속으로
`아! 그렇게 하는 거로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으로만 끝낸다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직접 자기가 그 문제를 풀어보지 않으면
잘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는다 하더라도
직접 실천해 보지 않으면 그 의미를 모르게 됩니다.
직접 실천해 보는 사람들만이 강한 힘으로 깃발을 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아들, 딸 여럿을 둔 큰 부농(富農)이 있었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내가 큰 보배를 땅속에다 묻어 두었으니
너희들이 협조해서 캐서 갖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아들딸들이 정말 땅 속에 보배가 있는줄 알고
이땅 저땅, 이밭 저밭을 온통 파 헤쳐 보았습니다.
그러나 1년을 파고 2년을 파고 10년을 계속 파도
그 보배는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동안 땅을 파헤치다 보니
그 밭에 곡식을 심기만 하면 대풍이었습니다.
땅을 판다고 땅을 갈아 놓았으니 그럴 수 밖에요.
세월이 한 십년쯤 지나고보니,
아들딸들이 그 때서야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아버지가 땅 속에 보배를 묻어 놓았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구나"하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한 10년 정도 계속 자기 마음을 파 보십시요.
그러면 그 마음 밭에서
무엇이 나오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어마어마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기도는 위대한 자의 운명입니다.
정말 원력을 머금고 위대한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 인간들 외에는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정말 쉬운 작업이 아니거든요.
하루 이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은
위대한 자의 운명이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침묵의 시간은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화엄성중님, 관세음보살님 같은 영원의 존재를
내 마음 가운데 자꾸만 머금으니까
내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부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지신시광명당"이 되어
저절로 힘이 샘솟아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솔선해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몸으로 하여금 광명의 깃발을 들리고 남들보다
앞장서서 자신만만하게 당당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위대한 자의 운명 <수지심시신통장>
그러한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한 탓으로
파이프라인이 뻥뻥 뚫려있기 때문에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이 되는 것입니다.
`수지심시신통장"이란
`부처님의 법력 받아지닌 저희 마음
신통력의 곳집[창고]이라"의 뜻입니다.
마음 가운데 이른 바 거룩하신
화엄신장님들과 불보살님들의
신통도력이 흘러들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자꾸만 하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분명한 사실은
기도는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 보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고,
얻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한 10년 동안 죽자하고 기도를 해 보세요.
무엇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주변의 상황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말입니다.
한 10년이고 20년이고 기도해 보시면 자기 주변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들딸들이 부모말을 안 들어서 기도를 했더니
그 아들딸들이 다 부처님께로 오더랍니다.
기도를 하면 벌레들도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는 도리가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들 제도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신랑 법당으로오게 해 주십시요"
하고 자꾸만 기도하면 그 기도의 위력으로 그렇게 됩니다.
백날 이야기만 하면 뭘 하나요.
먹어봐야 맛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직접 행하지 않으면 불교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몸으로 하여금
광명의 깃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시고,
이 마음으로 하여금 신통의 곳집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자꾸만 기도를 하면
정말 광명당이 되고 신통장이 되어집니다.
천룡중성들이 보호해 주고 주변에 잡귀가 없어지니까
마음이 산란해지지 않습니다.
백천삼매가 항상 마음에 가득해지고,
곧바로 부처님과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신자들은 항상 광명의 깃발을 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용맹무쌍한 행동파의 기수가 되어야만 합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행동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이 알아서
부처님의 팔만사천대장경을 다 꿰뚫는다 하더라도
한 마디 실천하는 사람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사람은 못 당하는 법입니다.
토끼가 아무리 뛰는 능력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거북이한테 질 때도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재주가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실천이 없으면 안 되는 법입니다.
걷는 자 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뛰다보면 오래 못 갑니다.
꾸준히 걷는 자 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꾸만 기도를 해 보시면 느껴집니다.
`수지심시신통장", 마음에 신통력의
창고를 지니게 되고 아이디어가 백출합니다.
머리가 확확 열려서 자꾸만
부처님의 이데아가 떠오릅니다.
저는 매일 법회를 하고 살면서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부처님!
항상 부처님의 육성을 흐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언제 어느 곳에 가서 어떻게 입을 열어도
부처님 말씀이 흘러나오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해 보세요.
`수지심시신통장"이라 할 때
신통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신통력, 신통도사 등등의 말을 많이 합니다.
신통이란 말은 문자그대로
신령스러운 힘과 통하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부처님께서도 5신통, 6신통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통력이 자재한 경계를 부처님의 경계라 하셨습니다.
6신통의 경계를 살펴보면
첫째, 신족통(神足通)이라 해서
생각하는 곳에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비행자재의 경계,
마음대로 상(相)을 바꿀 수 있는 변화무쌍의 경계,
외계(外界)의 대상을 마음대로 하는
수의자재(隨意自在) 경계의 세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의자재의 경계는 성여의(聖如意)의
경계라 하여 부처님만이 가지고 계신 경계라 합니다.
둘째, 천안통(天眼通)은
우주 법계를 망라해 모든 것의 원근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경계를 말합니다.
셋째, 천이통(天耳通)은 우주 법계를 망라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계를 말합니다.
넷째, 타심통(他心通)은 타인의 마음 속 모든
선악의 작용을 꿰뚫어 아는 경계를 말합니다.
다섯째, 숙명통(宿命通)은 자타(自他)의 과거세의
생존상태를 모두 아는 작용을 말합니다.
여섯째, 누진통(漏盡通)은 번뇌를 모두 끊을 수 있어
두 번 다시 미계(迷界)에 태어나지 않는 경계를 말합니다.
특히 누진(漏盡)이란
모든 `새는 경계를 다한 상태"라 하여,
일체 번뇌로 생기는 눈물 침 등이 다해 다시는
사람 몸을 받지 않는 경계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지니고 계신
숙명, 천안, 누진의 3통(通)을 3명(明)이라고도 합니다.
특히 부처님의 천안(天眼)은 미래세에 중생의 태어나고
죽는 모습을 밝게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라 합니다.
부처님의 6신통은 모두 혜(慧)를 본질로 하고,
그중 5신통은4선(禪)을 닦음으로써 증득하므로
성자뿐만 아니라 범부도 닦을 수 있다 합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오로지 부처님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합니다.
성실론(成實論)에 보면 불교밖의 외도에서도
5통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5통을 얻은 선인(仙人)을 5통 선인이라 합니다.
신통에는 귀신(鬼神)이나 제천(諸天)등과 같이
태어나서 부터 갖고 있는
생득(生得)신통과 8선정을 닦음으로 해서
중득한 후득(後得) 또는 수득(修得)신통이 있습니다.
신통을 얻는 방법에는 색계에 태어남으로 해서
그 과보로 자연히 얻어지는 과보통(果報通),
선인(仙人)이 업(業)을 닦은 힘으로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업통(業通),
바라문 등이 주문을 오래 지송함으로 해서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주통(呪通),
선정을 닦음으로써 얻게 되는
수통(修通)등의 4가지가 있습니다.
특히 업통과 주통은 외도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밖에 신통력을 5가지로 분류해
5종통(五種通)이라 하기도 합니다.
1) 도통(道通):도(道)의 이치를 깨달아
무심(無心)이 되어 능히 사물에 따라 자재한 통력
2) 신통(神通):선정에 의해 마음이 정적하게 되어
사물을 관찰 사유해서 숙명을 아는 등의 통력
3) 의통(依通):약이나 부적, 주문 등에 의해 얻는 통력,
외도 등에 행해지는 통력
4) 보통(報通):업의 과보로 자연히 얻게되는 통력,
끊임없는 나름대로의 세계를 닦음으로 얻어지는 통력
5) 요통(妖通):요괴등 잡귀 등이 갖고 있는 통력,
갖가지 요마(妖魔), 삿된 존재 등의 통력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신통의 경계는
모두가 우리 마음이 갖고 있는 능력으로
수행을 거듭함으로써 차츰 획득되어지는 경계인 것입니다.
신통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신통력이란 혹세무민(惑世誣民)하기 위해
얻으려 하거나 함부로 쓰게되면,
그 재앙이 대단히 엄중함을
부처님께서는 크게 경계하셨습니다.
그 대표적 얘기가 바로 빈두로(Pindola)존자의 얘기입니다.
빈두로존자는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목련존자 다음으로 신통이 자재한 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왕사성에 내려갔다 오는 도중,
시장 한복판에서 신통대회가 열리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장판 한 가운데 수십척 짜리 장대 끝에
값진 전단향 바루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때 주최자가 "누구든 신통력이 있는 사람이
저 바루를 따 가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빈두로존자는 이 말을 듣고 어렵지 않게
팔을 뻗쳐 수십척 장대 끝에 있는 바루를 따냈습니다.
빈두로존자는 의기양양한 마음이 되어
부처님을 찾아 이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제자 빈두로가 신통대회에서
1등을 해 최고가는 전단향 바루를 차지했습니다.
부처님 제자가 신통력에 있어 천하 으뜸임을
입증했습니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칭찬을 들을 줄만 알았던 빈두로존자는
부처님께 호된 꾸지람을 듣고 엄한 벌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은
"내 일찌기 모든 제자들에게 함부로 신통을
부리지 말라 하지 않았더냐.
신통을 함부로 부림은 참된 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가 아니니라"고 호되게 꾸지람을 한 뒤
"너는 내가 열반한 뒤 열반에 들지 말고
미래세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가지
이 땅 중생들을 제도하도록 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아직도 부처님의 분부대로 빈두로존자는
모든 제자들이 열반에 들었음에도 열반에 들지 못하고
사바세계를 이곳저곳 다니면서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다 합니다.
각 사찰에 모셔져 계신
독성(獨聖)님이 바로 빈두로존자이십니다.
경전에 나오는 신통에 관한 일화를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부처님 당시 바사익왕이신하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얘들아! 예전에 내가 어렸을 시절에는 탁월한
신통도사들이 많아 내 마음 한량없이 즐거웠으나,
이제는 예전 같이 탁월한 신통도사가 없는지
심심하기 짝이 없구나.
너희들이 나라에 방을 붙여 탁월한 신통도사를 찾아내
왕궁으로 데려 오도록 하라.후히 상을 주리라"하였습니다.
많고 많은 신통도사들이 왕궁에 불려 왔으나
모두 왕의 마음에 시들하였습니다.
왕의 마음을 안, 한 신하가
"대왕폐하! 제가 듣기로 영축산에 있는
고타마란 분이 신통도력이 출중하다 하더이다.
명령을 내리시어 그를 불러오면
대왕폐하의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신하를 시켜 부처님을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초지종을 다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신하여! 내가 하나 묻겠다.
하늘을 날고 물위를 걷고 신통이 자유자재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느낌이 들더냐?
그 같은 신통의 힘으로 인해 네 마음이 변하더냐?
그 같은 것은 참으로 하등한 신통이니라.
부처님의 거룩한 법문을 전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참 신통은 없느리라.
네 왕에게 가서 전하도록 하라"
갖가지 신통은 거저 눈요기꺼리나 될 뿐
참다운 신통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부처님말씀이셨습니다.
하늘을 날고 땅 속을 다니는 것이 참 신통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법문을 전해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상의 신통이 없다 하신
부처님 말씀을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5. 고통중생들을 제도하라!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
아금칭송서귀의(我今稱誦誓歸依)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번뇌망상을 씻는 작업 <세척진로원제해>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 이것은 다짐입니다.
`세척"은 무엇입니까?
씻어낸다는 뜻입니다.
뭘 씻어 낼까요?
티끌진(塵), 노고롭고 힘들다는 뜻의 노(勞),
`진로"란 티끌로 인한,
즉 물질로 인한 괴로움이니까
바로 우리 마음의 번뇌망상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항상 세척진로,
즉 우리의 번뇌망상을 씻어내어야만 합니다.
번뇌망상을 씻어내는 작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떻게 해야 번뇌망상을 씻어낼수 있을까요?
그 답은 자기를 자꾸만 돌아보는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자꾸만 번뇌망상을 씻어내고 또 씻어내고,
그렇게 씻어내면 낼수록 마음은 점점 밝아지고 맑아져서
건널제자, 바다해자-제해(濟海),
고통의 바다를 건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마음 가운데 있는
번뇌망상에 휩쓸려 지내다 보면
이 사바를 떠날 수 없게됩니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중생들은 모두가
욕망의 포로가 되어서 삽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면,
부처님 세계로 떠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아미타경에서도 공부했지만,
이 지상세계 말고도 너무도 찬연한 세계가
이 우주에는 많이 있습니다.
지구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은 너무도 초라한 세상입니다.
허름한 세상이지요.
정말 환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그런 별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좋은 별들이 가득한 우주입니다.
여기서는 다이아몬드 몇 캐럿짜리
하나만 해도 비싸다고 하지만,
저 극락이라거나, 아촉불국이라거나,
그와 유사한 좋은 국토에는 온 세상이 다
아름다운 보석으로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이아몬드,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같은 보석을 하나 사려고 해도,
땀 흘려가며 모은 많은 돈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세상에 가면 칠보로 된 연못뿐만 아니라,
찬연한 보석들이 즐비하게 널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난간들이 다 아름다운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답니다.
그 세상은 또한 남자 여자의 구별도 없다고 합니다.
남자 여자가 없으니까 괴로움이 훨씬 덜한 세상이지요.
이 세상의 법칙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야지 뭔가 되는 세상이고,
그렇게 사는 게 보편적이지만,
그렇게 업에 끄달려 살면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애욕을 이겨내고 이 지상 밖으로 나가야 되는 것인데,
남들하고 똑같이 사랑하고 살면
끊임없이 윤회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이렇게 남과 다른 생활을 하며
노력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될 일은
이 세상의 허름한 것에 자꾸 관심을 가지게 되면
이 세상을 뛰어 넘을 수가 없어
자꾸 윤회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속에 열리는 초월세계 <초증보리방편문>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의
초(超)는 뛰어넘는다는 뜻입니다.
보리도를 증득해서 자꾸만 기도하며 나아가다 보면,
마음 가운데 방편의 문이 열려서
자꾸만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마음의 새로운 세계,
초월적인 세계가 열려옵니다.
기도를 자꾸하다 보면 마음 가운데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방편이 자유자재로워집니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도
자꾸 기도하며 사시는 분들은
기억력은 좀 쇠퇴된다 하더라도 생각은 깊어집니다.
제가 처음 스님이 되어 산중에서
기도를 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 때는 부처님 기도도 하고,
화엄신장님 기도도 하고,
보살님전 기도도 하며 아무튼 열심히 정진했습니다.
그 때 화엄신장님을 한 번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화엄신장님을
한번 좀 만났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더니,
어느날 정말 문득 저 위 허공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대낮에 꿈도 아닌 비몽사몽간에요.
엉겁결에 허공을 쳐다봤더니 키가 수십척은 되어 보이는
어떤 이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경전에도 키가 몇미터나 되는 신장님들 얘기가
나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분이 화엄신장님이로구나 싶었습니다.
그 이후도 여러번 봐 왔지만,
참으로 희귀한 체험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화엄신장님들을
직접 뵙고 싶으시면 기도해 보세요.
지붕 천장을 뚫을 만큼 키가 큰 분이셨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우리 시골마을 동구밖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같은 것도
모두가 우리 선조들이 신장님들을 보고 만든
영감과 슬기가 깃든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동구 밖을 지켜주는 그런 존재들이 신장들이라 생각해서
동구 밖마다 세워둔 것입니다.
정말 예삿일이 아니고 무언가 의미성이 있는 일들입니다.
상호는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어떤 의미성을 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맹세코 귀의 하리! <아금칭송서귀의>
`아금칭송서귀의(我今稱誦誓歸依)",
맹세코 부처님전에 귀의 하옵니다 하는 의미입니다.
끊임없이 정진해 나가다 보면 부처님께 대한
한없는 신심(信心)이 쌓입니다.
원력(願力)을 세우고 나아가는 가운데
만상이 다 기도 속에 성취되어짐을 깨닫게 되고,
그 결과 부처님을 향한 한없는 칭송,
찬탄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기도 정진을 거듭함에 따라
그 같은 마음은 더욱 더 굳어지고
부처님께 맹세코 귀의하리라 하는
마음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맹세코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
다시 말하면 기도하는 마음을
서귀의(誓歸依)라고표현했습니다.
사홍서원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기도 마음은 원만성취의 마음
<소원종심실원만>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의
`소원"은 `원하는 바 모든 것"이고,
`종심"은`마음먹은 대로,마음 자리 따라서"란 뜻입니다.
`실원만"이란 `실로 다 이루어진다"는 풀이가 됩니다.
원하는 바 모든 것이 마음따라
이루어지리라"하는 기원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할 때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합니다.
우선 여러분 마음 가운데 모든
욕망,집착, 번뇌망상 등이 녹아져 내려야만합니다.
기도하거나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
삿되고 잡된 마음을 가지면 기도가 안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항상 죄를 저질러 놓고 참회합니다.
인신매매범은 마음이 뻔뻔해서 나쁜 일을
저지르고서도 자기가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마음 가운데 한 줄기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양심이 혼탁해져서 뭐가 뭔지를 모릅니다.
나쁜 일을 계속 거듭하다 보면 양심이 마비되어
나쁜지 좋은지도 모르게 됩니다.
전과가 많은 폭력범들은 두들겨 패며 싸우고
감방에 드나들면서도 또 죄를 저지릅니다.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인간이면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닌가"하고
도식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급스런 존재가 되기 힘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고급스런 삶을 살아가고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자 하면
정말 기도하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점점 영적(靈的)으로 고급스러워지면
모든 것은 다 해결되게 되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보배로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세척진로원제해"란 뜻도 마음속에 있는
번뇌망상과 욕망같은 것들을 자꾸만 씻어내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는 원(願)을 세우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 가르침은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새벽마다 기도하느냐",
"왜 이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있느냐"는
등의 이야기들을 많이 하십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열매를 거두려면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확을 거두려면 고통스런 나날을
넘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남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그 삶이 남들보다 나아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량한 선조들이 왜 정한수 떠놓고
기도하며 미래의 문을 열어 갔을까요?
고통은 극복하면 할수록
새로운 삶이 열려오는 법입니다.
이 세상의 욕망을 버리지 않으면
커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위대한 인물들이 가는 길은 다 극복의 길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어렵고 힘겨운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몸과 마음을 다 던져서 기도해 보십시요.
`세척진로원제해"해 보십시요.
마음 가운데 욕망을 자꾸 제거하고
마음을 세척해 내면서
고통의 바다를 건너길 소원해 나가면,
머리가 맑아져서
지혜로운 가르침이 샘솟듯 쏟아져 나옵니다.
샘솟듯이 `초증보리방편문"의 경계가 열립니다.
세속에 살면 이런 길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음 한 생각 바로 가지고 욕망과 번뇌를 이기면
무한한 세계가 열려옵니다.
이 사회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이 사회가 점점 돈과 욕망으로 오염되어지면
모두가 나빠져 결국 돈가진 사람들도
다 함께 망하는 것이지요.
그 때가 되면 사회의 일각에서는
사회가 나빠지는 것에 대한 반동의 힘이 싹틉니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의 현상이지요.
`사회가 이렇게 나빠져서는 안되겠다.
사회복지적인 일을 해야겠다"는 운동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진 이 돈으로 이 세상에 어떤 보탬이 되는 일을
좀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욕망의 포로가 되고 재물에만 탐착하는
그런 인간들만 많은 게 아닙니다.
맑고 밝고 깨끗하게 살면서 이 사회에
이바지되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여러분들이 마음만 비우고 살면,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
절대로 돈 같은 것에 걱정하지 마세요.
공은 튀기면 튀길수록 튀어오르듯
이 세상이 나쁘면 나쁠수록 그 반작용으로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수십억씩 동참금을 내어 좋은 일에 쓰이도록 합니다.
그런가 하면 로비를 하면서
몇백억씩 풀어제끼는 인간들도 많습니다.
수서 일원동 땅 사건을 일으킨 어떤 분을 생각해 보십시요.
정치자금이니 뭐니하고 막대하게 쓰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렇게 많은 정치자금을 뿌리는 사람들 가운데서
참 마음으로 뭔가 착하게 살아야겠다,
맑게 살아야겠다,
밝게 살아야겠다는 한 생각만 가지게 된다면
돈 몇억,몇십억 정도 희사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할까요?
그들은 전생에 큰복을 지어서
그만한 마음의 세계도 있을 것입니다.
밝고 맑고 깨끗하게만 닦아 놓으면 정말 재물은
한도 끝도 없이 흘러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세척진로원제해"하면서 삽시다.
부처님 말씀대로만 살아가면 됩니다.
마음 가운데 욕망을 세척하고 고통의 바다를 건너려는
의지를 가지고 보리도를 점점 증득해 나가면
방편문이 활짝 활짝 열려집니다.
방편문은 위대한 아이디어의 개념입니다.
사람들이 찾아와도 한두마디 하면 상대의
마음을 이내 울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법의 힘[法力]을 가진 만큼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진실만이 사람들을 압도합니다.
우리들 마음 가운데 어떤 잘못된 일을 하고 나면 이내
`아, 내가 이래서 되나"하는 반성의 마음이 생깁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있기에
그런 마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면
부처님께서 다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깍쟁이처럼 욕심만 부려선 되는게 없습니다.
부처님으로부터 그 거룩하신 가호지묘력이 내려지는
파이프라인이 막혀 있는데 무엇이 흘러 들어오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마음을 맑고 또 밝게 자꾸만 닦아가면
파이프라인이 열리게 되어 있고,
그를 타고 부처님의 가피력이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되풀이 해보면
`초증보리", 뛰어넘는단 뜻입니다.
이 사바세계를 뛰어넘어 보리도를 중득해서
방편문을 활짝활짝 열어 그 다음에
`아금칭송서귀의"라,
`내가 맹세코 부처님 전에
귀의할 것을 기도드리옵니다"란 의미입니다.
기도를 드리니까 원하는 바,소원하는 바가
종심(從心),마음따라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이
다 원만히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
초증보리방편문(超證菩提方便門),
아금칭송서귀의(我今稱誦誓歸依),
소원종심실원만(所願從心悉圓滿).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마음 가운데 모든 욕망을 세척해서
고통의 바다를 건너기 원하옵나이다.
고통의 바다를 넘고 넘어서 보리도를 증득하여
방편문이 열리고 지혜가 자재하게 되어지이다.
제가 이제 맹세코 부처님께 귀의 하옵나니,
원하는 바 마음따라 모두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따라 모두 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글:출처:해동 용궁사 -
나무 관세음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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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을 배우는 중입니다.많은 도움이 되겠네요.감사합니다.나무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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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의혹을 꿰뚫는 청량한 감로수 법문이었습니다 _()_
나무관세음보살! 불도의 경지는 초심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할 진데, 좋은 정보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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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천수경은 정말 오늘날 힘들게 살아가는 저에게 빛이되는 경전인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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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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