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고서원 포은유물관은 589㎡ 규모로 건립된 유물전시관에는 성리학의 보급과 실천에 힘쓴
포은 선생의 일대기와, 이름에 얽힌 설화, 포은 선생 문집, 임고서원 연혁, 소장전적 등이
전시되어 있어 선생의 곧은 절개와 효심, 높은 학덕을 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조옹대 입구에는 포은유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정몽주의 출생과 삶, 업적 등을 전시한 포은관을 비롯해 임고서원의 연혁과
성리학 이야기를 담은 임고관, 영상실로 꾸며져 있다.
포은유물관 포은유물관은 ㅁ자 모양으로 포은관, 임고관, 영상실로 나눠져 포은 선생의 충효와 그이 생애을 살펴볼 수있으며 임고서원의 역사와 소장자료를 전시와 영상으로 만날 수있는 전시관이다. 로비에서는 포은정몽주의 상징이미지원과 정보검색을 할수 있다.
포은관에서는 포은 선생의 발자취에서 시작하여 "인.의 예.지" 포은의 4가지 덕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있다. 또 다른 전시관 임고관에서는 포은 선생의 충효정신을 담은 임고서원을 전시로 만난다.
로비에 들어서면 종합안내소와 함께 포은 정몽주의 상징 이미지월과 정보검색, 동판으로 제작된 "석죽판"과
"포은 선생화상판"의 스크래치체험을 할 수 있다.
[입구에 걸린 포은 초상화와 포은 선생 상]
포은 정몽주 선생은 고려말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끝까지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해 절의를 굽히지 않은 충신이다.
▲임고관
임고관에서는 포은 선생의 충효정신을 담은 임고서원, 임고서원과 영천의 성리학과 성리학자들을
고문서를 통해 소개하고 성리학의 보고 임고서원의 축소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義倉(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개성에
5부 學堂(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진흥을 꾀하였다.
유물관에는 대책문, 제김득배문, 포은 선생의 문집, 선죽판,
임고서원 관련 중요 서적들과 포은 영정이 유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東方理學之祖(동방리학지조) 圃隱 鄭夢周(포은 정몽주)]
鄭夢周(정몽주. 1337-1392)
본관은 迎日(영일). 자는 達可(달가). 호는 圃隱(포은)
▲연도로 보는 포은 정몽주의 생애
포은 정몽주는 네가지 덕을 실천한 포은의 생애와 학문을 살펴볼 수있다.
인.의. 예. 지 로 6년의 여묘살이를 통해 효를 실천하고 김득배의 제문을 통해 문생의 도리와 동방이학의 조종으로서
성리학을 널리 알리고 탁월한 문학작품을 후세에 남겼다.
▲제김득배문
김득배를 장사지내며 지은 제문이다. 포은 선생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김득배를 위해 문생의 예로써 장사지내며 그를 위한 제문을 남겼다.
▲장충첩
장충첩은 일명 녹죽첩이라고 하는데 포은 선생의 충효 정신을 승장하여 박힌 풍속을 고치도록 장려하기 위해 1486년 경상도 관찰사 손순효가 성급한 공문서로 포은 선생의 후손에게 공부이외의 요역을 면제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좌측 석축판은 충판 중의 하나로 탄은 이정이 그린 녹죽을 판각한 여덟번째판이다.
포은 선생은 고려말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끝까지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해 절의를 굽히지 않은 충신이다.
1337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태어나 고려 공민왕 9년(1360) 과거에 급제해서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기도 하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기도 하고 시와 글, 그림솜씨도 뛰어났다.
또 외교술도 뛰어나 여말 명나라와의 관계개선에도 큰 역할을 했고 왜구토벌에도 많은 공을 세웠다.
또 효심도 지극해서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 각각 3년간씩 총 6년을 시묘살이를 했을 정도로 효심 또한 지극했다.
특히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포은 선생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승정원일기
선죽판
장충판 중의 하나로 장충판은 조선 성종이 1486년에 포은 선생의 충과 효를
널리 장려하기 위해 경상도 관찰사 손순효에게 명하여 내린 문서로 후에여러 차례 보태어졌다.
총 18장의 장충판 중에 선죽판은 탄은 이정이 그린 녹죽을 판각한 여덟번 째 판이다.
▲임고서원의 축소모형
임고서원은 1980년 부터 1999년까지 임고서원중건성역사업을 마치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다시 배향함으로써 서원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현재 경내는 사우인 문충사, 내삼문인 유정문, 강당인 홍문당, 문루인 영광루, 동재인 수성재와 서재인 함육재 등 서원의 규모를 완벽하게 갖추었다.유물을 보존하는 심진각과 전사청 등이 있으며 경내에는 포은 선생 신도비, 단심가비, 백로가비 등이 있다.
신편음정성리군서구해
주돈이, 정호, 정이 등 송대의 유학자 18인의 시문을 종류별로 분류하여 편찬한 것으로
명종 8년(1553년)에 국왕이 이황에게 내린 선사본을 본 서원에 기증한 것이다.
임고서원의 소장전적의 의미를 살펴보면 약 200여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전적 문화재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10종 25책을 보물 제1109호로 선별 지정되어 있다.
임고서원이 창건된 명종9년(1554)에서 조선후기까지의 사정을 알수있는 자료는
서원의 운영과 구성등 서원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할 수있다.
▲대우수전판(조선중기)
조선 중기의 유학자 허목이 중국에 있는 대우수전 77자중 48자를 새긴 목판
▲임고서원고왕록(1553년 ~ 조선후기)
임고서원소장/보물 제1109호
임고서원의 연혁과 당시의 원장 유사 등 서원과 관련된 중요사실을 기록한 책(복제품)
첫댓글 포은 선생을 기리는 곳도 있네요?
서체가 너무 반듯하고 아름다워서 흉내도 못 낼 것 같네요.
포은선생의 이모조모에 대해 많이 배우고 왔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