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시평>
겨울에 읽은 시편들
월 강 주 원 규
겨울은 ‘시 읽기 좋은 계절, 시가 그 깊이를 보여 주는 계절’ 이라고 한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공기도 무거워지고, 꽃과 이파리와 가지보다는 삶의 둥치와 뿌리가 되는 일들이 운위되고, 이들이 시의 근원적인 촉매들이라 ‘겨울과 시’ 는 한 권의 시집 제호처럼 진지하고 상징적이다.
이번 겨울에 만난 시편들은, 실로 엄청나다. 마음먹고 수백 편을, 여러 날 새벽까지 읽었다. 첫 발표작이든 재수록 작품이든, 시를 대접하여 귀히 모시는 지(誌), 지면(紙面)들이 수없이 많았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읽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었다.
시 모양을 갖춘 글을 만나면 그저 반갑다. 내가 쓰고 싶었던 작품을 만나면 법열(法悅)을 느낀다. 구순희의 「오줌 누고 싶다」, 박노해의「마루완의 꿈」, 박주택의 「독신자들」, 조용미의 「구름저편에」, 정진규의 「귀」, 최창균의 「두릅나무」, 이창수의 「허물」, 이건선의 「홍바람 신바람」, 김기택의 「어떻게 기억해 냈을까」, 김혜순, 나희덕, 이재무, 한영옥, 정현종, 문인수, 문정희, 이수익 ·········의 시들, 진지하게 목숨 걸고 시업(詩業)에 몰두하여 빚은 정예(精銳) 시인들의 10년 뒤 100년 뒤에도 거듭거듭 음미하고 싶은 그 주옥 같은 시들을!
그러나, 겨우내 읽은 그 많은 작품 중에 시성(詩性)을 찾지 못한,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신선감도 없고 언어의 조탁(彫琢)도 운치도 치열성도 별로 없는 시 비슷한 모양의 글들은 내 이마를 뜨겁게 했고, 심신을 몹시 피곤하게 하였다.
이런 와중에 대여 김춘수(大餘 金春洙) 시인의 부음(訃音)을 들었다. 2004년 11월 29일 타계하여 12월 1일 시인장(詩人葬), 경기도 광주 공원묘역에 모신다고. 미당(未堂)이 한겨울에 눈을 밟고 가시더니 대여(大餘)도······. 「현대시학(現代詩學)」에서 와병을 전후한 최근의 김춘수 신작을 집중 게재하며 병상 소식을 자주 들려주어서 별세의 예감은 진작 있었으나, 막상 이 땅의 시의 큰 별이 한겨울에, 그것도 시의 계절에 타계하시니, 애통하기 이를 데 없다.
뒤이어 ‘시 「낙화(落花)」로 떠남과 이별의 미학을 보여 주었던 이형기(李炯基 · 72)시인이 별세하였다. 194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인은 투병 중에도 시 창작을 계속하여 시혼(詩魂)을 불태웠다.’(現代文學 2005.3월호). 2005년 2월 2일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운명하였고, 2월 4일 입춘(立春)날 영결식을 가졌다. 이형기 시인은 1949년 약관 17세의 나이로 문예(文藝)지를 통하여 등단하였으며, 이는 최연소 등단 기록이다. 11년간의 투병 생활 중에도 詩作에 몰두하여 많은 力作들을 발표하였고, 1998년에는 마지막 시집이 된 「절벽(문학세계사 펴냄)」을 상재하였다.
시와 시인의 위상, 자존심을 지켜 온 두 분의 신작시는 이제 아무리 기다려도 더는 보지 못하세 되었다. 아쉽고 애통한 마음으로 두 분의 시 「달개비꽃」과 「절벽」을 조망하며 간략히 그 체취를 맡아본다.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알리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울지 않는 저 콩새는 알리라,
누가 보냈을까,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눈 뜨는,
- 김춘수 「달개비꽃」 전문
‘영원한 꽃의 시인,
투명한 時魂을 살라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시집’
저자가 원고를 정리하여 넘기고 출간을 기다리다가 유고집이 된 마지막 17번째 시집 (시 선집 등을 포함하면 25권의 시집을 냄) 「달개비꽃(2004. 12. 3. 현대문학 펴냄)」에 대한 현대문학지의 시집 겉표지 띠에 올린 홍보문구다.
김춘수 첫 시집이 「구름과 薔薇(1948. 9. 1. 행문사 펴냄)」 , 56년 뒤 마지막 시집으로 펴낸 「달개비꽃」 . 꽃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본다면, 첫 시집 ‘薔薇’에서 마지막 시집 ‘달개비꽃’에 이르는 시인의 시의 긴 역정(歷程). 그 역정의 대표적 상징물이 ‘薔薇’와 ‘달개비꽃’ 이다.
‘薔薇’는 꽃이 아름답고 탐스러우며 색채가 다양하고 다양성(方向姓)이 탁원한 관목성의 화목(花木)이다. 꽃피는 기간이 길고 절화용 · 화단용 · 분재용으로 쓰인다. 영국의 국화(國花)이기도 하며 꽃말은 꽃 색깔과 꽃잎 수, 꽃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이나 빨간 장미는 욕망, 기쁨, 아름다움, 절정을 뜻한다.
‘달개비꽃’ 은 닭의장풀과의 1년생 초. 길가나 냇가의 습지에 흔히 자란다. 7~8월에 하늘색 꽃이 달리며 봄에 어린잎을 식용하고, 한방에서는 생잎 즙을 내어 화상을 치료하며, 한열(寒熱), 간질, 이뇨, 천식에 탁효한 약용식물. 한국의 전국각지, 일본, 중국, 사할린 등지에 분포 자생한다.
물론 시의 오브제로서의 꽃은 식물도감의 설명이나 생태학적 이론에 근거할 수도 있지만, 우선은 꽃 이름이 주는 어감이나 리듬감, 그 꽃에 대한 꽃말이나 전설, 토속적 전통이나 민족 정서, 외국산 이름의 낯설음 등의 효과를 얻고자 꽃을 등장시킨다. 아니 어쩌면 꽃이 아니면 시를 쓰지 못할 정도로 시와 꽃은 불가분리의 유기적 관계에 있다. 진달래꽃 엉겅퀴 수선화 개밥풀 봉선화 복엽채송화 며느리밥풀꽃 민들레 백합 무궁화 강아지풀꽃 패랭이꽃 창포 동백꽃 연꽃 할미꽃 해당화 해바라기 베고니아 글라디올러스 칸나 ········· 지상(地上) 산천 방방곡곡에 피고 지는 꽃이 이리도 다양함은 새와 짐승 · 물고기 · 나무와 더불어 예술창조에 동기를 부여하는 귀중한 매체가 아닐 수 없고, 신의 축복으로 감사를 드려 마땅한 일이다.
표제시 「달개비꽃」은 김춘수 마지막 시집 맨 마지막에 배열하여 앉힌 1연 7행 51의 단시(短詩)다. 대게 시집을 대표하는 작품은 그 시집의 모두에 놓거나 1부 중간쯤의 가장 안정된 자리에 배치함이 통례다. 제1시집 「구름과 薔薇」에서는 표제시 「구름과 薔薇」를 맨 앞에 놓았고, 「달개비꽃」은 맨 뒤에(2004. 1. 15. 현대문학사판 김춘수 시전집 참조)배치하였다. 분명 의도된 배열이다.
장미와 달개비꽃은 같은 꽃이로되, 지극히 상대적이다. 장미는 꽃의 여왕, 정열적 서구적 이미지로 확장되는 대표적인 꽃이다. 릴케의 ‘장미’는 그의 삶뿐만 아니라 작품의 중요한 상징적 매체 역할을 하면서,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뿐만 아니라 더불어 변화, 성장해 온 대표적인 사물 이상의 것이다. 「그는 ‘장미’에게서 인간에게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특성을 읽고 있으며, 가득 참이나 향기 그리고 색상에서 완벽한 꽃의 대변자이며, 신비주의에서는 신적 특성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복합어 형태로 쓰여진 것을 제외하면 순수한 ‘장미’ 라는 말이 그의 시에 대략 250번 정도 등장한다.(릴케: 볼프강 레프만 지음, 김재혁 옮김. pp 706 - 708 부분 변용)」그는 생전에 장미를 지극히 사랑했고, EH 그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죽었다. 릴케는 죽기 1년 전에 직접 그 유명하고 난해한 <묘비명(墓碑銘)>을 썼다.
장미꽃이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일 수도 없는
기꺼움이여.
- 릴케 <묘비명> 전문. 丘□星 옮김
시 공부를 하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와 삶에 매료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남자이면서 여성적인 섬세함과 존재론적 신비주의에 대한 탐닉, 사물에 대한 직관과 통찰력, 고독과 사랑에 대한 시인 특유의 숭고한 감성, 조각가 로뎅과의 교감, 오로지 시와 산문에만 몰두하여 독일문학의 정점에 이른 후기 작품들.
릴케의 영향을 여러 곳에서 밝힌 김춘수의 ‘장미’는 릴케의 ‘장미’를 어느 부분 그 의미와 상징성을 적절히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릴케가 가꾼 장미꽃밭에 빠져 있다가 마침내 김춘수 정신의 절대 세계인 ‘하늘 위에 하늘, 달개비꽃밭’ 에 이른 것이다. 장미가 서구적 동적(動的)인데 반하여 달개비꽃은 동양적, 토속적, 고요히 홀로 피는 정적(靜的) 정서에 바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위에 인용한 표제시 ‘달개비꽃’은 상기(上記)한 바와 같이 불과 1연 7행 51자의 단시(短詩)지만, 그의 최근의 시작 기법과 시 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김춘수 특유의 이미지(image)가 도드라질 때까지 굴리고굴리고 다듬고다듬어서(새가 금싸라기 알곡을 쪼아 먹듯)콕콕 박아 놓은 시어들, ‘쉼표- 방점- 쉼표- 쉼표- 쉼표’를 분명하게 질러 어떤 절대성의 의미 부여를 하고자 한 문장부호, 특히 마지막 시집의 마지막 시의 마지막 행 ‘눈 뜨는’에 지른 마지막 쉼표, ‘울고가는 저 기러기’와 ‘울지 않는 저 콩새’의 대칭 구도와 ‘알리라’의 동어 반복, 그러나 울며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앎’과 땅에서 울지 않는 콩새의 ‘앎’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이나, ‘앎’의 경지는 동일할 것이다.
시인은 낮이나 밤이나 마음과 머리 속에 궁굴리던 시상(詩想)을 종이 위에 적어내리면서, 지금까지의 자기의 전부를 이입(移入)시키고자, 투영(投影)하고자 진력하였을 것이다. ‘하늘 위에 하늘’을 쓰고는 ‘그래, 이거다’하면서 무릎을 쳤을 것이다. 희열에 차서 몸을 부르르 떨었을 것이다. 천사가 사는, 영원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는 형이상과 형이하를 아우를 어떤 세계를 찾아내고자 고심고심 하다가 새로이 눈을 뜬 ‘하늘 위의 하늘’, 세상에서 처음으로 열린 ‘하늘 위의 하늘’을 펼쳐 보면서 얼마나 기뻤겠는가. 가슴이 벅차서 심장이 벌름벌름 터질 것 같았으리라.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눈 뜨는’을 쏟아 놓고도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울다웃다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조금은 손을 떨면서(노령에 접어들면서 평소에도 손과 목소리를 좀 떨으심) 그러나 힘주어 ‘이 쉼표는 이런 쉼표야’중얼거리며 마지막 쉼표 하나를 찍었을 것이다. 지상에서 마지막 ‘눈 뜨는’을 써 놓고 그 뒤에 지른 쉼표! 종지부를 버리고 굳이 쉼표를 택한 시인의 시심(詩心)에 공감이 가지 않는가.
달개비꽃은 신이 창조하셨으되, 김춘수 시인이 오랫동안 관찰하고 사색하고 그 이름이며 꼴과 생태를 음미하면서 마침내「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어서」그의 꽃이 되었다. 앞으로 많은 세월동안 「달개비꽃」하면「김춘수」가 연상될 것이다. 그리고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알리라, 울지 않는 콩새는/ 알리라’,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눈 뜨는’ 사물들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들을 연상할 것이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
아스라한 그 정수리에선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
냉혹함으로
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구나
아아 절벽
- 이형기「절벽」전문
간결하고 깔끔하다. 그러면서 단호하다. 서릿발 같은 결기가 느껴진다. 자코메티의 철골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한 분위기다.
「시를 쓴지 어느덧 50년이 넘었다. 가는 것이 세월이라지만 가도 정말 빠르게 가는 것이 세월이다. -중략- 그래도 그 동안 시를 썼으니 뭔가 지향하는 바가 있었을 게 아닌가. 당연히 제기될 법한 이러한 물음에 대해 나는 시가 무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찾노라고 몸부림친 기록이 여태까지의 작품이라고 대립할 밖에 없다. -중략- 그래서 나는 스스로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찾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략- 요즘 나는 병석에 누워 있다. 얼마를 더 살지 알 수가 없지만 사는 날까지는 시만 생각하겠다는 뜻을 또 한번 다짐해 본다. -하략- 책을 내면서, 2002년 늦가을에」
- 이형기 詩 99選(2003. 1. 20. 도서출판 선(善) 펴냄)
「낙화(落花)」가 그의 초기 대표작이라면 「절벽」은 후기의 대표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육사의 시 <절정>의 “강철로 된 무지개”의 황홀한 소리를 만나고 청마의 시 <바위>의 단호한 남성적 목소리를 만나게 된다. 허무론의 결정판을 보여주는 그의 마지막 시집<<절벽>>에서 우리는 투철하게 준엄한 존재의 절벽 앞에 마주선 단호한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면서 고명수(高明秀) 시인은 ‘-삶과 시를 사랑한 스승을 추모’한 글 「허무를 넘어선, 존재의 불멸」이란 논고에서 아래와 같이 피력하고 있다. ‘한국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이형기의 시는 불교의 존재론과 ‘역설적 근대주의’에 바탕을 두고 현대성의 허상과 폐허를 직시하면서 ‘반속적(反俗的)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개성적으로 심화,발전시켜 온 특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특히 유치환 류의 다이내믹한 남성 화자의 목소리에 대한 자각을 보여 준 점은 한국 근대시의 ‘여성 편향성(female complex)’을 극복해 온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문학사상 통권 389. pp279~283)
앞으로도 대여 김춘수, 남연 이형기 시인의 시들은 세세연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것이고, 시를 쓰고 연구하는 후학들의 귀중한 텍스트가 될 것이며, 학사 석사 박사들을 배출하는 귀중한 자료가 것이다.
「창조문학」겨울호(통권 55호)에는 신작시 특집 25편, 창조시단 30편, 임실문학기행 테마시 16편, 제 54회 신인 문학상 당선 시작품 14편 등 모두 85편의 시가 모여 있다. 과문인지는 모르나, 근래에 시 전문지나 종합 문예지가 이토록 다양한 시의 어울마당을 펼친 예를 흔히 보진 못하였다. 시론 또한 「절망과 희망의 불안한 공존, 서울(홍성식)」, 「이육사의 문학과 인생(이주일)」, 계간시평 「뮤즈에게 묻는 몇 가지 시의 길(윤관영)」등 시맥 짚기와 시의 문제점, 그 발전방향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본격적이며 날카롭고 진지하다. 대게 양(量)을 우선하다 보면 질이 따르지 못하는 안쓰러움이 있으나, 이번 「창조문학」겨울호에 게재된 시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필진을 엄선하여 문제작들을 게재하고자 한 편집 의도가 뚜렷하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임실군에서 세미나를 하고 ‘임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산하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편집후기) 기획한 ‘특집 임실문학기행’은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이러한 성격의 시작품들은 대게 에꼴의 제한을 받아서 작품성을 잃기 쉬우나, 이를 극복하고 시적 성취를 얻은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흥미를 돋우었다.
알알이 열매마다
눈부시게 튀는 신바람
영롱한 아침 햇살
그대 들어 보셨나요
방울방울 약발 잘 받는
이슬방울
독이 올라 새갛게
뻣뻣 빳빳 뻗치는
임실 고추
흥 흥 흥 - 흥 바람
황토밭 고추 빛깔
튼실한 아들
신혼 여행길
길이 닿는 곳.
- 이건선 「흥바람 신바람」 전문
여강 이건선(如江 李健善) 시인은 수석과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시의 곳곳에 회화적 이미지(image)가 빈번히 쓰인다. 시풍이 활달하고 거침이 없다. ‘그는 이미지로 언어의 집을 짓는 시인이요, 고무줄 같은 탄력과 긴장으로 언어를 요리하는 시인이요, 행간마다 파도소리 감추어 놓는 여백의 시인이다. 칼칼한 그의 성격만큼 예리한 직관력과 심미안으로 칼끝(칼끝이 아니다. 칼 끝끝이다.)으로 눈썹의 그림자를 그려내는가 하면, 그의 안경 속에는 돌의 숨소리가 보여 한밤중이면 돌의 울음소리를 건져 올리는 시인이다. 항상 남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기를 좋아하고 늘 새로운 변신을 위해 끊임없이 뛰어다니는 그의 열정과 부지런함은 내가 알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이무원. 이건선 시집 「사랑의 1번지에는 그리움이 산다」해설 일부)
기발하고 생뚱한 발상, 과감하고 특이한 시작 기법, 항상 젊은 기백으로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해온 시인. 이처럼 전혀 독자와 타협 없이 초지일관 자기 고집대로 자기류의 시를 쓰는, 될 수록 혀에 익은 말을 버리고 거칠고 생명력 넘치는 엉뚱한 말을 충돌시켜 의외의 활어(活魚)처럼 싱싱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시인의 독보적인 시세계가 이 시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임실 특산물인 고추를 ‘알알이 열매마다/ 눈부시게 튀는 신바람// 독이 올라 새빨갛게/ 뻣뻣 빳빳 뻗치는/ 임실 고추’를 생명의 열기로 환치시켜 씽씽 내닫게 하는 점층적 구조가 신선하다. 기(氣)로 쓰는 연가풍(戀歌風) 시인의 시다운 작품이다.
외로움은 누구나 소슬바람
시인에게도
화가에게도
소슬바람이다
송상욱이 여인의 옷고름을 만지듯
기타 줄을 풀었다 감았다 한다
관중은 손뼉으로 노래를 청하고
시인의 고독은
‘목포의 눈물’과
‘흑산도 아가씨’를 따라가며
가난했던 세월을 되새기다
기타 줄도 울고
송상욱도 우는 밤
오늘 밤은 울어서 즐겁다
- 이생진 「詩人과 畵家 · 3」전문
목소리나 기교가 승한 작품이 허벌나게 많은 작금의 시단에서 사람냄새 돈후한, 된장맛의 시는 참으로 드물었다.
바다와 섬을 노래해 온 이생진 시인의 신작시 「歸天」외 4편은 쉽게 술술 내려쓴 쉬운 시 같다. 그러나 노회한 시인의 인생과 삶이 얹힌 노련한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인생시다. 모처럼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떠나 육지의, 그것도 충청도 서산의 농촌풍경이 아닌 서울의 복판, 인사동에서 흔히 접하는 인사동 정서의 현장시(現場詩)다. 현장에 대한 스케치에 서정을 얹어 리얼리티를 살린 작품들. 특별한 기교가 없으나 기교를 넘은 천의무봉(天衣無縫). 어느 영역, 어느 소재일지라도 시로 빚을 수 있는 층위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소슬바람/ 시인에게도/ 화가에게도/ 소슬바람이다/ 송상욱이 여인의 옷고름을 만지듯/ 기타 줄을 풀었다 감았다 한다’
손에 잡힐 듯 떠오르는 정경이다.
송상욱 시인은 외로움을 많이 타지만 깊이 정을 트기는 쉽지 않다. 아니, 어느 면 매우 까다로운 구석이 있다. 구수하지만 먼지 같은 잡티가 끼는 것을 질색으로 여긴다. 음식을 특히 가리지는 않지만 비위생적인 것은 어마 뜨거라 한다. 마음이 통하는 벗들과 신명이 나면 ‘흘러간 노래 나 홀로 리사이틀’로 밤을 새워도 밑천이 딸리지 않는다. 애절하고 감미로운 음색과 숙련된 창법이 애간장을 녹인다. 우리 시단에 송 시인만큼 우리 흘러간 노래를 제대로 부른느 시인은 아마 없지 싶다. 이날도 인사동의 작은 레스또(토)랑 「詩人과 畵家」 의 그 주흥(酒興)의 여백 속에서 ‘그럼 한 곡 해볼까’히죽 웃으며 기타 줄을 고르기 시작했나보다. 그런 정경을 진행 과정에 따라 점묘법(點描法)으로 써 내린 시다. 때문에 따로이 특별한 기교도 휘갑할 언사도 췌언도 꾸며서 연출할 필요도 없다. 모임 자체가 시요 모여서 연출되는 자체가 시인 것이다. 삽화처럼 간결하고 아름다운 모습, 이런 정 깊은 시를 만나 그 모습을 그리워하며 음미하니 더없이 행복하다. ‘기타 줄도 울고/ 송상욱도 우는 밤/ 오늘 밤은 울어서 즐겁다’에 이르는 과정이 장편소설의 끝행 같지 않은가. ‘울어서 즐겁다’니! 어깨동무하고 3차행쯤 하면서 ‘어디다 갈기’(작품1)든지 목이 터져라 노상방가(路上放歌)를 한들 우리 시인들을 어느 누가 붙잡아 가랴!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아파트
층층이 세 들어 살며
돌비에 새긴 이름 석자
바람이 읽고 구름이 읽고
세월에 낀 먼지
빗방울로 닦아 주었을까.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고
이사 오는 사람은 문패 대신
패랭이꽃을 피운다.
오늘,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이 곳에 세 들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
대문을 두드리자
꽃대궁이 흔들린다.
마당 가득 패랭이꽃 가꾸어 놓고
<잠시 노을 속으로 외출했다>는
쪽지 하나 남겨 둔 채
한 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 김수용 「공원묘지」 전문
신인문학상 당선 시 중에 ‘구수한 향토적 정서와 시적 운치가’(심사평) 돋보이는 김수용의 작품들은 인생과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 특이하고 뛰어나다. 특히 「공원묘지」는 소화하기 어려운 오브제로서 자칫 격정에 휘말리거나 비감에 젖어 치졸한 영탄조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천연덕스럽다. 감정의 진폭이 참으로 고르다. 잡다한 감정을 다 여과시키고 얻은 표현은 차라리 통곡보다 더한 절규, 그러나 이마가 서늘히 관조하는 자세의 격이 높다. 공동묘지의 무덤들을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아파트’로, 그 아파트에 ‘오늘,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이곳에 세 들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 대문을 두드리자/ 꽃대궁이 흔들린다./ 마당 가득 패랭이꽃 가꾸어 놓고/ <잠시 노을 속으로 외출했다>는/ 쪽지 하나 남겨 둔 채/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착상이나 시상 전개에 무리가 없다.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고/ 이사 오는 사람은 문패 대신/ 패랭이꽃을 피운다.’도 참신한 표현이다. 당선작 4편이 넘고 처짐없이 똑 고르다.습작 과정을 제대로 거쳐서 시를 제대로 알고 쓴 작품이다. 자만이나 오만에 기울지 않고 우선 삶에 겸허하고 성실하며, 몰두하여 시작(詩作)에 정진하시라 격려 드리고 싶다. 「창조문학」에서 귀한 신인 네 분을 발굴하여 반갑고 기쁘다.
장차 시의 골격과 흐름이 어떻게 변하여 어떻게 일가(一家)를 이룰지 예측 불허인, 가변성이 많은 신인들의 시를 계속 주목하고 싶다. 물론 신인상 당선작에 대한 언급은 결례요 췌언에 가까우리라 여겨 조심스럽기다 하지만. 여하튼, 이 나라의 시문학 발전을 위하여 「창조문학」에서 발굴한 실력 있는 네 분의 등단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며 축하드린다.
언급하여 마땅한 많은 작품들을 어우르지 못하여 안타깝다. 이제 또 봄이 오니 봄 작품들을 읽기 위하여 눈을 씻어야겠다. 2005년을 굵게 획을 그을 작품은 누구의 어떤 작품일까? 개구리가 튀어나오는 모습을 가장 생동감 있고 리드미컬하게 써보거나, 시끄러운 세상의 어떤 문제들을 야금야금 파고 들어가 침묵보다 더 엄중한 언어로 명시 한 편 쓰고 싶다. 또 읽고 싶다. 생명력 넘치는 봄이 기다려 진다.
2005. 3. 20. 推敲
2005. 5. 20. 다시 推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