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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에 가득 찬 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다, <카포티> | |
2006-05-23 10:29:23 | 문석 mayday@cine21.com | 씨네21 | |
당신은 기자다. 세상을 놀라게 한 살인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잡혔는데, 당신만이 그와 지속적으로 일대일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범인으로부터 사건의 상세한 정황을 듣기 위해선 ‘너를 옹호하는 기사를 쓰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한 내용은 도무지 그를 옹호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끈다. 객관적인 진실을 적기만 해도 당신은 명성과 부를 얻을 수 있지만, 범인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기게 된다. 자,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카포티>의 주인공 트루먼 카포티(필립 세이무어 호프먼)가 맞닥뜨렸던 딜레마는 이러한 취재윤리 차원을 넘어 훨씬 복잡하고 극단적이다. 1959년 11월 미국 캔자스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클러터네 가족 4명이 몰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카포티가 이 현장으로 뛰어든 것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오 헨리상을 두번이나 수상했고,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같은 작품을 성공시켰으며, 뉴욕 사교계의 재담꾼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었던 그가 칙칙한 범죄현장을 취재한다니. 그건 아마도 여성 취향의 말랑말랑한 글뿐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담는 글까지 쓸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허영심의 발로였거나, 게이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반박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하기만 했던 시골 마을이 이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기록하려 했던 그의 애초 의도는 취재를 위해 보안관 사택을 들르면서 뒤틀리기 시작한다. 집안에 설치된 여죄수 감방에는 이 살인사건의 두 범인 중 하나인 페리 스미스(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가 수감돼 있었던 것. 이 만남을 계기로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담당 수사관의 안방마님을 공략하는 장기를 활용해 두 범인과 독점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페리 스미스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다. 그림 등 예술에 재능이 있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페리에 매혹된 카포티는 인간적인 교류를 꾀하고, 지방법원에서 사형 판결이 내려진 뒤에는 그의 구명을 위해 나서기도 한다. 카포티의 딜레마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사형 집행이 연기되면서 시작된다.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이자 유년기의 친구 하퍼 리(캐서린 키너)의 도움을 받아 방대한 분량의 취재를 마친 카포티는 범인들과의 만남을 덧붙여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라는 책을 쓰려 한다. 하지만 상급법원의 재판이 거듭되면서 스미스의 사형 집행이 계속 미뤄지자 그는 이 책의 결말을 짓지 못해 초조해한다. 범인의 인간적 면모까지 담아 한 살인사건의 외양과 내면을 담으려 했던 그는 결국 책의 완성을 위해 페리 스미스가 사형당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또 그러한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그는 자신의 영혼이 형편없이 망가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삶을 심오한 곳에서 지배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바친 파우스트처럼, 트루먼 카포티는 명성과 대중의 기대를 위해 영혼을 버린 것이다. 1965년 출간된 <인 콜드 블러드>는 500만부 이상이 팔렸고, 객관과 주관이 결합된 새로운 저널리즘을 탄생시켰지만, 이후 한권의 책도 완성하지 못한 채 1984년 알코올중독 합병증으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 카포티의 운명은 이미 이때 예고된 것이었다.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쓰기 시작한 59년부터 ‘클러터가 살인사건’의 범인 페리 스미스와 딕 히콕이 사형당한 65년 4월14일까지의 6년을 그리는 <카포티>는 전 생애를 다루지 않더라도 훌륭한 전기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 영화의 미덕은 카포티라는 캐릭터 하나에 초점을 맞춰 정묘하고 농도 깊은 묘사법으로 표현됐다는 점뿐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카포티에 정서적으로 동화될 수 없도록 해 가능한 한 냉정한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이다. 카포티가 책 제목을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라고 지었다고 하자, 경찰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범죄자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범죄자들과 얘기하는 자신을 가리키는 건가요?” 그렇다고 카포티를 ‘냉혈한’으로만 묘사하는 건 아니다. 카포티는 하퍼 리에게 다음처럼 얘기한다. “(카포티의 애인인) 잭은 내가 페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동시에 내가 캔자스에 있을 때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해. 둘 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나로선 알 수가 없어…. 이런 느낌이야. 페리와 나는 한집에서 자라다가 어느 날 그는 뒷문으로 나가고 나는 앞문으로 나간 것이라는.” 그러니까 카포티에게 페리는 친구이자 애인이자 문학적 캐릭터이자 또 다른 자신이었던 것이다. 카포티가 정말 원했던 것은 부와 명성보다 진실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카포티는 “난 정직해요. 내 글에 관해선 정직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때로 치명적이다. 사건 당시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듣기 위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페리 스미스를 이용하는 그의 모습은 잔혹해 보이기까지 한다. 때문에 <카포티>는 결말로 치달을수록 공포나 슬픔보다는 적극적인 침묵을 자아낸다. <카포티>가 이처럼 모순에 가득 찬 한 인물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연기가 절대적인 공헌을 세웠다. 초반 몇 장면만으로 카포티라는 존재를 파악하게 하는 그의 세심한 연기는 영화를 보지 않은 이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의 연기와 연기 사이를 메워낸 감독 베넷 밀러의 재능 또한 평가받을 만하다. 첫 번째 장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간중간 삽입되는 캔자스의 스산한 겨울 들녘 풍경이나 단속적인 느낌의 음악 등을 통해 ‘냉정함의 정서’를 포착해냈다. 어쩌면 감독 자신이 데뷔작인 다큐멘터리영화 <크루즈>에서 카포티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베넷 밀러 또한 속사포처럼 말하고 빌딩 옥상을 옮겨다니며 생활하는 팀 레비치라는 뉴욕시의 관광안내원을 ‘이용’한 셈이니까. 이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자는 누구인가. 저작권자 ⓒ 씨네21.(www.cine21.com)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오늘 경상대 쥬니어반에서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입니다.
생각보다 넘 연기를 잘 해서 과연 "2006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작가의 정신과 한 인간의 진정한 자신에 대한 고뇌를 잘 표현한 것같아,
이 작가가 말년에 알코올중독합병증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는 슬픈 그의
운명도 감히 짐작이 가더군요.
아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햇을가?~~~ 많이 감명받은 표정들이
었는 데~~~~ 오늘 좋은 토요일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