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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늦게 봉평메밀꽃 사진몇장 올립니다.. 님들은 산행, 우리들은 여행/탐방 했답니다..ㅎㅎㅎ 산꾼님,아소마내외분은 5m산행, 겨울늠은 거의20m 쯤 산행(?)ㅋㅋㅋ
아래사진은 컴팩트디카 찰영으로 태그없이 그대로 올립니다..(디카의 한계를 아쉬워 하면서...)
이효석(李孝石 1907년 2월 23일 ∼ 1942년 5월 25일)은 호는 가산(可山)이며 강원 평창(平昌) 출생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이다.....
줄거리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 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찮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온갖 피륙을 팔던 가게)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나꾸어보았다. 벌써 먼저 온 동업의 젊은 녀석 동이가 계집을 가로채고 농탕치고있었다. 허 생원은 괜히 화가 나서 기어코 그를 야단쳐서 쫓아내고 말았다. 장돌뱅이의 망신을 시킨다고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얼마 후 되돌아와서 허 생원의 나귀가 발광을 하고 있다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 허 생원은 어이가 없었다. 얽음뱅이요 왼손잡이인 허 생원은 계집과는 인연이 멀었다. 때문에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건만 아직 홀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과 늘 함께하는 나귀의 신세가 느꺼웠던 것이다. 봉평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달이 환히 밝았다. 달밤이면 으례,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겪었던 옛일을 애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멱을 감을 양으로 옷을 벗으러 방앗간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나서 어쩌다가 정을 맺었던 것이다. 그녀는 봉평서 제일 가는 일색이었다. 그는 오늘도 기이한 인연에 얽힌 이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동행을 하다가 허 생원은 이날 밤 동이가 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난 사생아임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그의 어머니의 고향은 봉평이라 했다. 허 생원에게는 맺히는 것이 있었다. 동이 어머니가 제천에서 홀로 산다는 말을 듣자 그는 놀라 개울에 빠지게 된다. 이튿날 그는 동이를 따라 제천으로 가 볼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이하 생략)
요쨔샤 들이 암당나귀와 숫말에서 태어난 노새랍니다.. 라이거나 타이온처럼 번식능력이 없답니다.. 착하고 힘세고 일잘한답니다..
옆자리가 비었기에..
작고 당시에는 결늠보다 나이가 훨~적었답니다...
안성산꾼님..
효석문학관에서 근무하는 아가씨 이런곳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공기 님들을 보면서 일해봤으면...
많은 님들께서 탐독하셨지요.. 개화기때 아주 어려웠던 조상님들의 생활상이 그려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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