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역
억새와 갈떼
두루미가 소녀들을 보네
이섭교라는 돌다리가 있던 곳
숭어떼가 떼로 몰려다니는 곳
망미2동에 있는 정자-이 사진은 빌린 것
정과정곡(鄭瓜亭曲)
(1) 정과정곡(鄭瓜亭曲)이라는 이름은 작자의 호를 따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2) 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高麗歌謠) 가운데 유일하게 작자(作者)가 확실한 노래이다.
(3) 유배 문학의 효시(嚆矢)로서, 모함을 받아 유배를 간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실하게 드러난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이다. 궁중(宮中)에서 속악(俗樂)으로 시연되었고, 노래하는 기녀(妓女)뿐만 아니라 사대부(士大夫)에게도 학습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후 조선시대(朝鮮時代) 정철(鄭澈)의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 같은 연주지사의 원류(原流)가 되었다.
(4) 전체가 악곡의 변화에 따라 11행으로 되어 있는데, 1~2행은 서사(序詞)로 고독(孤獨)을 주제(主題)로 하며, 3∼9행은 본사(本詞)로 결백(潔白)을 주제로 하고, 10~11행은 결사(結詞)로 애원(哀願)을 주제로 한다.
(5) 제8행 삼엽(三葉)과 제9행 사엽(四葉)을 합하여 전체를 10행으로 다루면 그 형태가 10구체 향가와 비슷하고, 또한 고려가요의 특징인 분장(分章)이나 후렴구가 없으므로 도이장가(悼二將歌)와 함께 신라향가에서 고려가요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나타난 향가계(鄕歌系) 여요(麗謠)의 형태라고 하는 견해, 별곡(別曲)의 양식 이전에 나타났다고 전별곡적(前別曲的) 형태라고 하는 견해, 제5행과 제6행의 사설(詞說)이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의 제3련과 비슷하여서 10구체 사뇌격 향가에다가 민요(民謠)를 복합적으로 수용하여 창출한 독특한 형태라고 하는 견해 등이 있다.
(6) 제작된 연대는 의종 5∼24년(1151∼1170)으로 보는 견해,의종 5∼11년(1151∼1157)으로 보는 견해,의종 20년 이후(1166∼1169)로 보는 견해, 의종 24년(1170)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는데, 작자가 의종의 아우를 추대하려는 음모(陰謀)에 가담했다는 참소(讒訴)로 귀양을 갔고 이후 상당한 기간이 흘러서 임금의 소환을 기다리며 지었으므로, 의종 5년을 준거(準據)로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게 여겨지고 있다.
(7) 표현에 있어서 영탄법(咏嘆法)과 상징법(象徵法)을 사용하고 있다.
(8) 제5·6행과 비슷한 구절이《악장가사(樂章歌詞)》에 실려 있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에 있다.
∼넉시라도님을녀닛景(경)너기다니
넉시라도님을녀닛景너기다니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9) 임금을 향한 마음이 향가(鄕歌)인 ‘원가(怨歌)’와 유사하면서도, 원망(怨望)보다는 비원(悲願)의 색채가 짙다는 차이가 있다.
(10) 삼진작(三眞勺)은 곡조(曲調)의 이름이다. 진작은 완급(緩急)에 따라 일·이·삼·사의 종류가 있는데 일진작이 가장 느리고 사진작이 가장 빠르다.
(11) 해석에 있어서 살펴보고 더해보는 관점들
가. 내님을 : 나의 님을, 내가 님을.
나.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니며 거짓인 줄을, 옳지 않으며 거칠다고 하여도.
다. 녀져라 : 지내고 싶어라, 가고 싶어라.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7월령에도‘녀다’의 표현이 있다.
∼七月ㅅ보로매아으百種排야두고
니믈녀가져願을비노다
아으動動다리∼
라. 벼기더시니 : 어기던 사람이, 우기던 사람이, 고집하던 사람이, 헐뜯은 사람이. 이는 모함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임금을 향해 ‘거짓말을 한 사람이 당신이 아니었습니까?’라고 회한(悔恨)을 토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마. 힛마리신뎌 : 모함하지 마시오, 말하지 마시오, 말짱한 말이구나, 할 말이 없습니다.
바. 읏븐뎌 : 죽고 싶어라, 사라지고 싶구나, 슬프구나, 사뢰고 싶구나.
사. 마 : 이미, 벌써.
아. 아소 : 마십시오, 맙소사, 아서라.
자. 도람 드르샤 : 돌려 들으시어. 그런데 노래가 제작된 시점이 참소를 당하는 때가 아니라 유배 생활이 오래 지난 때이므로, ‘도로 (마음에 또는 조정에) 들이시어’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 정서(鄭敍)
고려 때의 문인(文人),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정항(鄭沆)의 아들로 출생사망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인종(仁宗)의 왕비(王妃)인 공예태후(恭睿太后)동생의 남편으로(동서)인종의 총애를 받았다. 의종(毅宗) 5년(1151년)에 동래 및 거제로 유배되었다가 명종(明宗) 1년(1170년)에 회복되었다. 문장(文章)이 뛰어났으며 묵죽화(墨竹畫)에도 능했다. 저술로는 《과정잡서(瓜亭雜書)》가 있다.
* 내용 해석
전강 내님을그리와우니다니
중강 山접동새난이슷요이다
후강 아니시며거츠르신아으
부엽 잔월효성이아시리이다
대엽 넉시라도님은녀져라아으
부엽 벼기더시니뉘러시니잇가
이엽 과도허믈도천만업소이다
삼엽 힛마리신뎌
사엽 읏븐뎌아으
부엽 니미나마니시니잇가
오엽 아소님하도람드르샤괴오쇼셔
전강 내님을 그리워하며 울고지내니
중강 산의 접동새와 나는 비슷하여이다
후강 아니라 하시며 잘못되었다 하신들 아으
부엽 지는 달과 새벽 별은 알으시리이다
대엽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고 싶어라
부엽 우기시던 이가 누구십니까
이엽 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삼엽 말을 하지 마시지요
사엽 슬프구나 아으
부엽 님이 나를 하마 잊으셨습니까
오엽 아서라 님이시어 도로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내 임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더니
두견새가 나와 비슷합니다 그려
아니며 거짓인 줄을 아!
지새는 새벽달과 새벽 별만이
아실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과 한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아!
어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과실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말짱한 말씀이었구나
죽고만 싶은 것이여 아!)
[출처] 고려가요 정과정곡(高麗歌謠 鄭瓜亭曲)|작성자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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