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을 일으킨 제수이트
1547년 7월, 일본 큐우슈우 (九州)에 상륙한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사비에르(Francis Xavier)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를 허용한 일본 최고 지배자였던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예수회 신부들을 만나 명과 조선을 정복하여 전역에 교회당을 세우고 그들 백성들을 천주교인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하며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당시 천주교가 포교에 열을 올린것은 새로 생긴 개신교가 새로운 나라나 대륙에서 퍼지는 것을
막기위해 먼저 들어가서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예수회가 일본에 조총을 전수한
프란시스 사비에르 신부는 카톨릭 사제로 예수회 창립멤버 6인중 일인임.그리고 천주교는
뒤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한 것으로 생각됩니다.천주교는 막강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세스페데스 신부(예수회)가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군에 종군하여 조선에 전도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 가운데에는 기독교에 개종한 자들이 다수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1611년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天家康)의 천주교 박해 때에는 무려 21명의 조선인이 순교하였다.
콘스탄티누스가 바빌론 종교와 그리스도교를 혼합해 만든
거짓그리스도교인 로마카톨릭(천주교)은 마틴 루터 같은 신앙인들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무너져버렸다.
교황은 좌절했고 종교재판으로 그리스도교를 뿌리뽑아 없애려하던 도미니크수도회도
좌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군사적인 지식에 해박하고 정치적 식견이 풍부한 뛰어난 전략가 이그나티우스 데
로욜라는 교황을 알현하여서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세상의 종교를
교황청을 중심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곧 루시퍼를 숭배하는 일루미나티 지부를 창설하고 '예수회(Jesuite)'를 창설하였다. (로욜라역시 유대인이라는 설이 많음)
로욜라는 천주교에선 성 이나시오로 불린다. 그가 설립한 예수회 지부는 바다를 건너고 산맥을
넘고 대항해를 하며 어디든지 못간 곳이 없었다. 그들은 곳곳에 지부를 설립하고
거짓그리스도교 신앙을 알리며 정치인들이나 상인들과 거래했다.
그런 목적으로 그들은 일본으로 항해했다.
1543년. 천주교 예수회 신부들이 탄 포르투칼의 상선이 일본 의 바다에 도착하여서
일본의 어린 영주에게 그들은 화승총을 선물하였다. 그 화승총을 그 후 계속 보급하여서
일본으로 하여금 정복적 야욕을 뜨게 하는 첫 계획에 착수하였다.
조중화라는 임진왜란 전문가가 저술한 '다시쓰는 임진왜란사'를 보면
프란시스코 사비엘 이라는 천주교 신부가 일본 땅에 1549년 에 정식적으로 와서
포교를 시작하며 그와 함께 온 유럽인들이 화승총을 계속 보급했다고 하는데.
프란시스코 사비엘은 예수회 소속이었다. 그는 포르투칼의 예수회 신부였다.
(26p~28p)
화승총을 조총으로 개량하고 삼단철포부대를 운영하여서 일본 을 제패한
오다 노부나가는 천주교 예수회를 적극후원하였다. (31p)
조중화가 쓴 '다시쓰는 임진왜란사'는 이 후 오다 노부나가의 대를 이은
히데요시는 임진대전쟁을 일으켰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대전쟁을 권유한 배후의 인물이 고니시 유키나가 였다고 한다.
(61P)
고니시 유키나가는 천주교 신자였으며 특히 예수회에게 세례를 받은 인물이다.
예수회 신부 세스페데스를 같이 데리고다니며 신부들과 함께 조선땅을 밟으며
온갖 미사와 고해성사를 하게 한 이 인물은
정유재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강항의 '간양록'에 보면 그가 소오 요시도시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쟁을 할 것을 권유했다고 일본국민들이 서로 수군수군
거렸다고 말한다.(61p)
고니시가 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분명하다. 천주교는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조선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중국 등지를 차지하여서
그곳에서 자본을 많이 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회 신부는 틀림없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우리 예수회가 중국은 물론 인도까지 정복시켜줄것이다."
그래서인지 히데요시는 인도까지 정복할수있다고 너무나 자신만만했고
심지어 부채의 앞 과 뒷면에다가 중국어와 조선어를 써서 달달 외웠다고 조중화는
말한다.
여기서 독자들이 명심해야할 바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예수회 비밀조직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예수' 즉 거짓예수를 믿는 자들로 그들은 익히 들어오던 루시퍼의 숭배자들이다.
그들의 위험성을 알아차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무모한 전쟁이 끝난 이후
천주교인들을 일본에서 씨를 말려버려서 예수회를 추방시켜버렸다.
그러나 예수회는 수백년이 흐른 뒤 함포를 단 미국 함선들을 끌고와 일본땅에 쏘며
협박하게하여 결국 일본을 개항시키게 해버렸다.
그리고 예수회는 급속도로 일본 열도를 점령하고 그에 이어서 조선을 일본이 점령하게하여서
천주교인들이 거기에 합법적으로 드나들수있게 하였다.
굳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대원군이 예수회와 천주교인들을 목을 잘라가며 개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지금도 한국에서는 대원군때문에 조선의 개화가 늦어져서 망했다고 대원군을 증오하게 만드는 역사교육을
시킨다. 한국의 교육체계가 서양인들의 입맞에 맞게 교육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성인이나 위인으로 존경해오던 김대건 신부나 알퐁소 신부 조차
예수회의 소속임은 이미 알려진 상식이다.
이미 예수회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익히 알려진 존재이며 공개적으로 활동하고있다.
무서운건 개신교가 아니라 예수회와 천주교임을 알아차리자.
(개신교는 단지 예수회와 천주교의 행동대장일 뿐이 아닐런지)http://blog.empas.com/rpflf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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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프리메이슨은 장사꾼, 정복자, 전도자 등 여러 모습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갔다.
체구는 왜소했지만 쇼군을 중심으로 뭉쳐서 강한 군사적 응집력을 보이는 일본에서는 문화전도사,
장사꾼의 모습만을 보였다.그들이 일본에 소개한 물목 중에는 후추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진년에 조선 땅을 밟은 일본장수들은 기생들 앞에서 후추를 뿌리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후추를 즐길 수 있을 만한 ‘무사계급’임을 과시하는 것일 터이다.
프리메이슨은 대마도 도주 요시토시와 그의 장인 고니시 유키나가를 통해 서양의 문물을 일본에 소개했다.
영주 고니시 유키나가는 프리메이슨의 국제무역을 통해 재산을 크게 불려나갔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고니시 유키나가의 기독교를 묘사하고 있다.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부산에 상륙하여 동래성을 함락하고 조령을 넘어 북진했던 고니시의 부대는 줄곧 큰 깃발을 앞세우고 있었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이었다'.
그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유언으로 철병을 명하면서 6년에 걸친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왜군은 철수를 서둘러야만 했다.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충무공은 목에 걸린 큰 가시였다.
앞길을 막고있는 큰 바위였던 것이다.
충무공이 바다의 요충을 가로막고 있어서 도저히 해상 퇴각로를 뚫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니시는 퇴로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면서도 조선 양민들의 목을 베어 소금창고에 옮기는 작업을 계속했다.
조선 양민들의 목을 벨 때에도 그의 진영에는 변함없이 붉은 천에 열십자가 그려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조선 양민들의 베어진 목들이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제삿상의 돼지머리보다 훨씬 처리하기 쉬운 고깃 덩어리에 불과했다.
어느날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선 양민의 목 수백개와 함께 전령을 명나라 수군 장수 진린에게 보냈다.
“조선인의 목인지 일본군의 목인지 누가 구분할 수 있겠소?
이 수급들을 전과 보고용으로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시오.
남의 나라에 와서 힘들여 싸울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소?
진린 장군께서는 이제 해상 퇴각로를 열어주시오. 우리는 이만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오.”
하지만 충무공은 더 많은 왜군의 목을 베어 진린에게 보냄으로 퇴로를 열어주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소설 ‘칼의 노래’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치껴든 십자가 깃발이 픽션인지 역사적 사실인지를 알지 못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프리메이슨계 선교사가 전한 복음의 영향을 받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십자가 깃발을 앞세우고 전쟁에 나가는 것은 템플기사단이나 프리메이슨들이 흔히 사용하는 전형적인 ‘과시’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만약 고니시의 양민 살육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하나의 중요한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과연 고니시는 그리스도인인가? 그 답은 ‘아니다’이다.
그에게 그리스도란 승리의 여신 니케 (Nike)에 불과했다. 십자가 깃발은 승리를 위한 부적이었다.
고니시 같은 자유 성전 건축가 (Free Mason)가 세우는 성전은 ‘사랑이 없는 광기’이기에 더욱 섬뜩하고 무섭다.
도대체 프리메이슨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왜 그토록 한민족을 말살하려고 하는 걸까?
?????
출처: http://cafe.daum.net/vandalism
첫댓글 카톨릭이 가는 곳마다 살육이 있어왔고 임진왜란은 바로 일본 카톨릭 교도들이 20%를 넘어서던 때에 왜군 전체의 40%가 카톨릭인 상태에서 정명가도라는 민수기를 대충 배운 수법을 써먹은 카톨릭에 의한 살육이었고 그들에 의한 동양의 십자군 운동이었습니다. 무고한 양민들이 수없이 죽고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결론 부분에서 말하는 프리메이슨 문제는 우선 트루만이 프리메이슨이었고 맥아더가 프리메이슨, 하지 중장이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점을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데 이들은 한마디로 한민족을 졸로 보거나 물로보는 자들이었습니다.
위에서 도꾸가와 막부때에 천주교가 탄압받았다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사실 제수이트가 반역을 대대적으로 꾀했기 때문입니다. 고니시 유끼나가가 조선 여자들 데려다가 수녀 만들어서 돌려보냈다는 설도 있습니다.
위에 김대건이 제수이트 소속이라 했는데 김대건의 순교역시 따져 보아야 합니다. 우선 의혹이 가는 부분은 황사영 백서사건처럼, 조선 국왕의 목을 쳐달라고 프랑스 국왕에게 하소연 한 까닭에 처형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부분은 문헌 정보상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분명한 것은 김대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실을 믿으시오! 하고
전도하다 죽은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그의 죽음에 관련된 전후 사정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기독교를 전한 내용은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때문에 죽었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저 바티칸의 단체를 선전하다 죽었는지,그저 마리아 숭배교리를 전하다 죽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부활하심, 다시 오심과 영원 속죄의 진리, 성경적 모임의 전파 들을 전하다가 죽었다면 천만 다행이요, 기독교인이엇다 하겠으나 어떤 문헌에서도 기독교 전파를 한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었고 쓰레기 교리의 교파 확장을 위해 죽었을 것이라는 확신 밖에는 안들었습니다. 그러한 순교는 무슬림들도 잘 합니다. 알라 악빨!
고니시 유키나가가 잡은 조선인 포로는 대부분 천주교인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은 일본을 대리인, 하수인으로 내세운 카톨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나온 살육극으로 보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카톨릭이 개입한 내용들은 프랜시스 크사비에의 일본 상륙과 조총 제조 지원 등, 정명가도라는 어설픈 성경 해석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Proxy War 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