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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치 시인 : 박남준) (공지영 작가의 멘토)
지리산 둘레길
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안에 한그루 푸른나무를 숨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의로 들어가며 뒤돌아 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음을 걷는 길이란
그대 지금껏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 보는 일이네
숲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생명의 지리산을 만나는길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 다는 것은
그대안의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이네
껴안아 준다는 것이지 사랑한다는 것이야
어느새 가슴이 열릴 것이네
이윽고 눈앞이 환해질것이네
그대가 바로 나이듯
나또한 분별을떠나 그대이듯이
이제 그대와 내가 지리산이 되었네
이제 그대와 내가 지리산 둘레길이네
(하동군 악양 박남준 시인님의 안식처:쓰러져가는 초가집을 개조한것임)
삼월 눈 속에 차를 마시다
- 남준 -
산에 들에 꽃들 저만큼 노란 생강나무꽃
여기 분홍 진달래꽃 피어나더니
비바람 불고 우박, 진눈깨비, 함박눈 퍼부어댄다
사람 사는 일도 때로 그러하리
뜰 앞에 청매화꽃 홀로 피어 그 눈보라 다 아랑곳하지 않는구나
찻물을 달여 설중매 한 송이 차 한 잔 마시네
남실 기울이는 푸른 찻잔에 바람과 구름과 별빛
청춘의 여름이며 노을 붉던 가을
폭설의 지난겨울이 파랑을 이루며 찰랑거리네
문득 풍경 한 편을 떠올려보네
살아 지은 죄 안고 다시 돌아가는 날
한 그루 어린 나무 아래 누워야겠다 생각하네
그 나무의 가지가 되고 푸른 잎이 되어
새들의 노래에 귀기울여야겠네
사과나무라면 사과 꽃을 피우겠네
감나무라면 붉은 홍시를 꽃등처럼 내달겠지
고운 꽃의 향기라면 바람 불러모아 구석구석 나누겠네
가지마다 익어간 열매들로 어느 가난한 아이의 배를 채우겠네
살아서는 다 쓰지 못한 나의 시 한 편
나 그때서야 한 그루 나무의 꽃으로 세상에 전하겠네
(박남준 시인이 직접 수확한 야채밭에서 채취하여 직접 만든 주먹밥: 입이 황홀 했습니다.)
흰 부추꽃으로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나무를 하다보면 자주 손등이나 다리 어디 찢기고 긁혀
돌아오는 길이 절뚝거린다 하루해가 저문다
비로소 어둠이 고요한 것들을 빛나게 한다
별빛이 차다 불을 지펴야겠군
이것들 한때 숲을 이루며 저마다 깊어졌던 것들
아궁이 속에서 어떤 것 더 활활 타오르며
거품을 무는 것이 있다
몇 번이나 도끼질이 빗나가던 옹이 박힌 나무다
그건 상처다 상처받은 나무
이승의 여기저기에 등뼈를 꺽인
그리하여 일그러진 것들도 한 번은 무섭게 타오를 수 있는가
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
내 삶의 무거운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
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
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자급자족: 자연산 야채밭)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 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 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
지천명 사내 무릎처로 강 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 비는 오고 지랄
십 리 벗길 환장해도 떠날 것들 떠나더라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악양천 수양 버들만 머리 풀어 감더라
법성포 소년 바람이 화개 장터에 놀고
반백의 이마 위로 무애의 취기가 논다
붉디 붉은 청춘의 노래 초록 강물에 주고
쌍계사 골짜기 위로 되새 떼만 날리더라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난온 세월이야 내 마음속 언저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움켜진 인연이 나를 한순간 멈춰 서게 하였다...
그 멈춤이 이리 더디게 나를 아프게 할줄이야...
이제 저 끝으로 다시 마음을 내어야 하나보다...
멈추었던 마음속 비애(悲哀)는 겨울안에 묻어두고...
완주 : 모악산방...(고양이 한마리가...)
노신아자씨 집으로 가던 길목에서 노선을 바꿨다...
노신아자씨도 오랫만에 남준님을 추억하셨다...
오래된 호두나무아래 주차를 하고
한보리님이 빠질까 눈속의 촛불을 깔았다는 그 길을 밟으며,,,
미루나무를 자른 사연과 (까치와 파랑새...)
버들치들이 살았던 그 개울...(송사리만...송사리 한마리 잘 찾아보세요~~^^)
내가 나에게 묻는다
글· 박남준
길이 빛난다
밤마다 세상의 모든 길들 불을 끄고 잠들지 않는 것은
길을 따라 떠나간 것들이 그 길을 따라
꼭 한번은 돌아오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길>
언제였더라. 아마 내가 모악산에 살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밤이 깊었을 것이다. 달도 별빛도 없었을 것이다. 비틀비틀 술 취했을 것이다. 그 밤 작은 산골짜기 외딴집으로 가는 길, 맹인처럼 더듬어 길을 가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개울 옆 산으로 오르는 길이 밝다. 환하다. 눈을 꿈적거려보았다. 거기 캄캄 어두운 길이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길이 빛나다니, 스스로 제 몸에 빛을 품어 길을 밝히다니. 누군가 저 어두운 길을 걸어 먼저 갔을 것이다. 새들이 날아갔을 것이다. 토끼가 다람쥐가 너구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갔을 것이다. 지렁이가 민달팽이가 오체 투지로 온몸을 엎드려 나아갔을 것이다.
지난 3월 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시작하여 4월 14일까지 지리산 자락의 마을들 구례, 하동, 산청, 함양, 남원 1500여리 길을 걸었다. 생명평화탁발순례의 길, 고개 고개 산 넘고 구비구비 물을 건넜다.
탁발의 길, 밥을 얻으려는 것이다. 밥을 얻어 몸을 살리려는 것이다. 잠자리를 얻어 몸을 쉬려는 것이다. 돈을 얻어 순례의 길에 유용하게 쓰며 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얻어 생명과 평화의 등불을 세상에 밝히려는 것이다. 그 길에서 얻은 진리로 나를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 탁발을 해주는 이들, 탁발이란 곧 자신을 비우며 끊임없이 나누는 일이다.
많은 이들을 만났다. 자식들 다 도시로 떠나버려 버림받은 채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아 병으로 누워있는 꼬부랑 할머니를 만났으며, 죽어라 일만 했으나 빚더미에 올라앉아 일하는 낙이 없다는 늙은 농부를 만났으며, 부모에게 물려받은 땅을 팔아 주식투자를 했으나 모두 날려버리고 아내마저 집을 나갔다는 젊은이를 만났으며, 외국유학까지 했으나 산중 고향마을에 내려와 어린 날 꿈꾸었던 목장의 아저씨가 되기 위해 소 두 마리를 키우며 농사일을 배우고 있다는 앳된 청년을 만나기도 했다.
목사를 만났으며 신부를 만났으며 원불교 교무를 만나고 수녀를 만나고 스님들을 만나 함께 길을 걷기도 했다. 눈보라를 만났으며 비바람을 만났으며 님도 몰라본다는 봄볕에 까맣게 얼굴이 그을리기도 했다.
자장면을 얻어먹었으며 다리 밑에 앉아 주먹밥을 나누고 빵과 우유를 탁발 받고 푸짐한 주안상을 마주하며 한숨과 절망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교회와 성당과 원불교 교당과 절간에서 탁발의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주었으며 가난한 시골마을 허름한 마을 회관에서 하룻밤 몸을 누이기도 했다. 그렇게 1500여리 지리산 일대의 마을들을 걸었다.
지리산권 45일의 순례를 마치고 한달 정도 제주도 지역을 순례하기 위해 떠나는 배 위에서 이 글을 쓴다. 뱃머리를 부딪치며 파도가 일렁거린다. 그 부서지는 포말들이 햇살을 받아 고운 무지개를 내건다. 비가 개고 해가 나면 산 너머 떠오르던 누이들의 색동저고리 같은 무지개를 좇아 언덕을 넘어 달려가던 어린 날이 있었다.
이 길, 생명평화탁발의 길, 함께 꿈꾸자는 것이다.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비록 저 허공의 무지개를 좇는 일일지 모르나 나 아직 성한 몸인데도 걷지 않는다면, 함께 꿈꾸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의 병든 땅 위에 한 그루 나무의 씨앗이 싹을 틔우며 푸르러지겠는가. 막다른 길도 그 끝을 가보아야 왜 이 길이 막다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생명과 평화로 가는 일, 그것은 한 그루 나무를 세상에 심는 것이다. 그 나무에 물을 주고 거름을 내는 일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푸른 나무를 드리우며 산다는 일이란 나와 더불어 사는 모든 생명을 아끼고 지켜주는 것이다.
산에 들에 새들과 어린 짐승들 겁 없이 뛰어 놀고 갯벌이 강물이 바다가 막힘 없이 흘러 우리 곁에 있게 한다는 것이다. 지친 이들의 쉴 곳이 되고 다리가 되고 지팡이가 되고 눈 먼 이의 눈이 되고 말 못하는 이의 입이 되어 더불어 산다는 것이다. 꼭 껴안아 준다는 것이다. 그 세상 정말이지 살맛 나는 세상 아닐 것인가. 거기 사랑과 조화로 가는 늘푸른 나무가, 거기 화해와 상생으로 가는 튼튼한 나무가 뿌리내릴 것이다.
아침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길을 간다. 나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길을 가다 길을 묻는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카페지기 대은님을 처음 만나던 날 국선도장에서 만난 길...
시집 <적막>에 있었던 길 이었네...^^
지리산에 가면 있다
박남준
순한 애벌레처럼 가는 길이 있다
땀 흐르던 그 길의 저기쯤 마을이 보이는 어귀에는
오래 묵은 당산나무 귀신들이 수천천수
관음의 손을 흔들며 맞이해서
오싹 소름이 서늘한 길이 있다
두리번두리번 둘레둘레
한눈을 팔며 가야만 맛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
더운 여름날 쫓기 듯 잰 걸음을 놓는 눈앞에는
대낮에도 백년여우가 홀딱홀딱 재주를 넘으며
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무시무시한 길이 있다
서어나무 숲이, 팽나무 숲이, 소나무 숲이,
서걱서걱 시누대 숲이 새파랗게 날을 벼리고는
데끼 놈, 게 섯거랏 싹뚝,
세상의 시름을 단칼에 베어내고
도란도란 낮은 산길이 들려주는 이야기
작은 산골마을들이 풀어놓은 정겨운 사진첩
퐁퐁퐁 샘물에 목을 축이며 가는 길이 있다
막걸리 한 두잔의 인심이 낯선 걸음을 붙드는 길이 있다
높은 산을 돌아 개울을 따라 산과 들을 잇고
너와 나, 비로소 푸른 강물로 흐르고 흐르는
아직 눈매 선한 논과 밭, 사람의 마을을 건너는 길이 있다
너는 바로 내 안의 생명이었네 - 박남준 | |||
작아 2007-08-23 17:35:52 |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나는 태어났다. 저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가 모여 너른 바다를 이루네. 햇빛이, 비바람을 부르는 구름이 거듭 태어나 큰 바다를 이루네. 아, 생명의 바다, 바다를 일러 생명의 모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살아있는 것이요. 움직이는 것이요. 숨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돌은 살아 있는 것인가. 한 아이가 손을 들었다. 예, 돌도 살아 있습니다. 돌도 뽀라지면(쪼개지면) 죽는다 아닙니까. 그렇다. 돌도 살아 있다. 나아가 그 돌에 이끼가 끼고 작은 씨앗들이 날아와 싹을 틔우며 자라날 때 돌은 더불어 살아 있다 할 것이다. 글·박남준
[작은것이 아름답다]에서...
생명의 강은 흘러야 한다
글/사진·박남준
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 마치며 날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해보지 않았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강을 따라 걸어온 길과 걸어갈 내일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1] 아래 사진은 왼쪽 부터 출판일자 순으로 정리해 놓은 작품 사진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여 집니다. [2] 출판일자, 출판사, 집필장소, 분류 등으로 정리해 놓은 엑셀파일 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여 집니다. [3] 작품집에서 시인님의 사진만을 스캐닝하여 책제목, 출판일(집필당시 나이) 순으로 정리해 놓은 자료 입니다. 앳된 청년사진 부터 2010년『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까지의 시인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사진을 클릭하면 조금 더 큰 사진으로 보여 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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