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의자 450개가 거의 빠짐없이 주인을 만났다. 젊은불자연합회(KAYBA) 회원들은 자리도 없이 입구와 무대주변, 객석 이곳저곳을 누비며 안내도우미로 활약했다. 주방과 장내 뒤편 공양대에서는 한혜경 보살 연화장 보살 김숙희 보살 등이 엉덩이를 붙일 겨를없이 공양준비와 설거지를 맡았다. 곁방에서는 관음행 보살 등이 사오십명쯤 되는 어린이들과 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보모역할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국인들을 포함한 외빈들도, 중간에 들렀다 도중에 뜬 이들도 꽤 많았다.
이들까지 합쳐 줄잡아 600명이 함께한 불기 2552년 제3회 북가주 불자 송년잔치가 7일(일) 유니온시티 서던알라메다 불교사원에서 열렸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북가주 승가회가 주최하고 북가주 재가불자 일동이 주관한 이날 행사는 당초 예정보다 늦은 이날 오후 4시40분쯤 시작해 밤 9시를 넘어서까지 5시간 남짓동안 제1부 송년법회와 제2부 나눔의 장(장기자랑)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1부 : 송년 법회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개회사 뒤 삼귀의는 언제나처럼 경건했다. "둥글고 또한 밝은 빛은 우주를 싸고…한마음 함께 기울여서 찬양합니다." 찬불가에 이어 반야심경이 행사장을 은은하게 감쌌다. "…행심 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정원사 지연 스님을 시작으로 여래사 수원 스님, 삼보사 대석 스님, 보리사 형전 스님이 차례로 행사를 위해 수고한 준비위원 진행위원들은 물론 행사장을 찾은 모든 이들에 감사하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둡고 긴 터널을 힘들게 통과한 뒤에는 터널밖의 그 밝음이 더욱 눈부시듯이" 길고도 어려운 시간을 함께 이겨나갈 것을 희원했다. 이석찬 SF한인회장, 남중대 SV한인회장, 정에스라 SF평통회장, 이애나 북가주무역협회장 등은 직접축사와 서면축사를 통해 송년법회를 축하하며 "나라가 어려웠을 때 불자들 역할은 지대했다"고 호국불교 전통을 상기한 뒤 "미국땅에서도 조국의 평화와 한미간 관계증진, 북가주 동포사회의 화합에 앞장서는 멋진 역할"을 당부했다.
1부의 꽃은 음성공양 1인자 정율 스님이 지도하는 연화합창단(단장 보월화)의 화음이었다. "길을 갑니다, 외로운 길을, 부처님 말씀 등불을 삼아, 쉬지 않고 정진하며 끊임없이 걸어갑니다…"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 높푸른 하늘에 계실까, 두터운 땅에 계실까, 아닐세 내 가슴에 와 계시네…" 한달에 한번 주말에 모여 찬불가를 배우고 익힌 40여 단원들은 정율 스님 지휘아래 브렌다 여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길을 갑니다"와 "찬미의 나라"를 선사해 박수를 받은 뒤 앵콜요청에 "오늘은 기쁜 날"로 화답했다. 경쾌한 민요풍 "찬미의 나라"는 한복과 양복을 차려입은 연화어린이합창단과 함께 한마음 화음을 빚어냈다. 허성호 거사와 여여심 보살이 진행하고 신선호 법우가 통역을 맡은 1부는 사홍서원으로 마무리됐다. 지혜심 보살은 삼귀의 등 반주를 맡았다.
◇제2부 : 나눔의 장
이상운 거사가 사회를 맡고 공태윤 법우가 부분통역을, 정원사 보살이 무대도우미를, KAYBA 회원들이 경품도우미 역할을, 밴드매스터 엘비스 김씨가 반주를 나눠맡은 2부는 저녁공양과 함께 전통예술인 고미숙씨가 지도하는 "우리사위"의 부채춤 북춤 특별공연으로 막이 올랐다.
장기자랑 스타트를 끊은 것은 새싹불자들. 보리사의 남매 4명(박정진 박정은 강형욱 강예림)이 종이모자를 쓰고 귀염율동을 곁들여 청개구리를 불러 바람을 잡자, 여래사의 세라 & 해나 메고완 자매가 아일랜드 전통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경쾌한 리듬의 아일랜드 댄스를 선보여 맞장구를 쳤다.
막간이벤트로 북가주승가회를 대표해 수원 스님이 젊은불자연합회(KAYBA)에 노트북을 증정한 뒤, 신규영 거사 부부와 김원구 거사 부부가 중심이 돼 매달 둘째주 산행을 해온 불자산행단이 모자를 눌러쓴 등산복 차림으로 산에 오르듯 무대에 올라 묵소 보살 지휘아래 "소나무야"와 "에델바이스"를 흔들흔들 살랑살랑 불러제꼈다. 이들은 합창 뒤 하산길에 십시일반 마음모아 마련한 랩탑컴퓨터 2대를 중학생 김욱진 군과 대학생 신지호 군에게 전달, 뭉클박수를 이끌어냈다.
감동은 전등사를 대표한 그레이스 문 양의 피아노 독주(The Maidens Wish/Franz Liszt) 아름다운 선율에 실려 행사장을 가득 메운 500여 참가자들 가슴가슴을 잔잔하게 출렁였다. 바로 그 즈음에, 위아래 하얗게 새하얗게 차려입은 삼보사 보살이 "칠갑산"을 열창, 다가오는 세밑 모정의 세월을 건드렸다. 뒤이어 정원사의 최재연 허윤정 최수현 귀염불자 셋이 스테이지 한가운데를 차지하더니 무대앞 엄마아빠 지휘손과 카메라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기찻길옆"과 "Pass it on"을 율동과 함께 선사했다.
넉넉한 웃음 대견한 박수가 채 가라앉기 전에 보리사 강재인 양의 바이올린 독주(Air Varie No.14 in 6/Charles De Brieot) 선율에 감전된 듯 왁자지껄 행사장은 시나브로 조용해졌다. 그 분위기를 확 뒤집어놓은 세 여인이 있었다. 여래사의 본명 "불랄라 시스터스" 예명 "쥐날라 시스터스"(보월화 연화장 무상화). 다들 한 덩치씩 하는 세 보살이 위아래 검정색과 은비늘 무대복을 입고 드림걸스에 맞춰 쿵쿵쾅쾅 신명댄스를 추는 동안 무대는 발에 채이고 무게에 눌리느라 고생했지만 단하 장내에는 폭소가 만발했다. 이들은 울랄라로 하려다 불자인 만큼 '불'자를 넣어 불랄라로 하기로 했는데 맹연습을 지켜본 어느 보살이 "그러다 쥐날라" 해서 쥐날라를 보조이름으로 취했다고. 달아오른 분위기는 정원사의 자자 '자'자로 끝나는 네 보살(혜성화 원만화 대광명 보광심)이 추억의 히트곡 찔레꽃을 열창한 뒤까지 이어졌다. 인기만점 "자자자자 시스터스"에 들어가려면 첫째 정원사 신도여야 하고 둘째 본명이 '자'로 끝나야 하고 셋째 10년 이상 싱글이어야 한다고.
어린이합창단의 등장. 1부에서 이 새싹불자들의 깜짝실력을 맛본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고 이들은 천진난만 율동을 섞은 노래로 기대에 부응했다. 연화합창단과 어린이합창단 지도법사인 정율 스님이 무대에 올라 이들과 함께 "비옵니다"를 부른 뒤 객석에서는 스님의 독창을 청하는 박수와 성화가 빗발쳤다. 반주와 마이크 등 미처 준비가 덜 된데다 감기로 목이 성치 않은 스님은 "이 다음에 꼭 해드리겠다"고 약속하며 내려섰다.
이어 KAYBA의 장연주, 사만다 주, 장지원 양이 무대를 점령해 파워와 재기가 넘치는 댄스로 분위기로 바꿔놓는 사이 유태원 KAYBA 회장이 중간에 살짝 무대에 올라 동작없는 허수아비 양념댄스로 맛을 돋웠다. 무대는 다시 보리사가 지배했다. 두 쌍 네 남녀(강복문 한형연 김종현 박재영)가 사뿐사뿐 몸을 흔들며 "잔치 열렸네"와 "나눔과 기쁨"을 노래하는 동안, 보리사 새싹불자들이 "I ♥ BUDDHA" 등 글자판을 들고 추임새단으로 등장,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어진 순서는 즉석무대의 연속. 80대 중반 연세에도 날아다니듯 산을 타는 황기준 거사(여래사)가 "각설이 타령"으로 그 옛날 장터맛이나 추억의 유랑극단맛을 적시자 정원사 길상화 보살이 "강원도 아리랑"으로 굽이굽이 재넘이 주막집 감칠맛을 돋웠고, 삼보사 조성자 보살이 가슴 저 깊은 곳 그리움마저도 행여 새어나올세라 쓰다듬어야 하는 "수덕사의 여승"으로 다리를 놓자 권신애 보살은 강물도 달밤이면 목놓아 우는데 임 잃은 이 사람이 아니울고 배길쏘냐 아예 목놓아 그리운 임을 부르는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메아리를 울렸다. 심사위원들이 채점결과를 집계하는 동안, 즉석 추천가수 홍련화 보살(불광사)이 프로 뺨차눈 가락과 제스처로 "장녹수"를 흐드러지게 불러 여흥을 돋우고, 초청가수 성시종 예총지회장이 "파도"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장기자랑 으뜸상은 연화어린이합창단이 차지했다. 이와는 별도로 열린 어린이불자 사생대회 으뜸상은 김현주 양이 차지했다.행사준비위원장 대석 스님은 준비위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그동안 숨은 노고에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경품추첨에서 으뜸으로 뽑힌 왕자 보살은 한국왕복항공권을 곧장 연화합창단 정율 스님에게 보은선물로 증정, 행운스토리를 감동스토리로 바꿔놓았다. 가외의 박수와 여분의 칭찬이 밤깊은 행사장을, 그곳 모든 이들을 다시금 어루만졌다. 행사장 밖 하늘에서는 온달이 다 돼가는 배불뚝이 반달이 밤늦은 귀갓길 안내도우미를 자청한 듯 밝은 빛으로 짙은 어둠을 묽게 풀어놓은 뒤 포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잔치는 끝났지만 이야기는 남습니다. 대석 스님을 중심으로 석달동안 매주 한차례 이상 모여 행사를 준비한 위원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단원 자녀들에게 컴퓨터를 선물한 산행단, 손님안내 장내정리 경품배달 등 힘든 일을 도맡은 청년회원들, 함께 어울리지도 못하고 곁방에서 어린이들을 돌본 보살들, 공들여 붓글씨를 쓰고 나무에 새긴 살점 같은 예술품을 기증한 목각공예인 거사, 경품추첨 대상으로 받은 한국왕복티켓을 선뜻 합창지도 정율 스님에게 보은선물로 내놓은 보살 등등. 올해 송년법회가 남긴 잔잔하고 감동어린 이야기 몇토막을 묶어 다음주 목요일(18일)자에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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