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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산 731m / 전남 담양군 용면, 전북 순창군 복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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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과 전북 순창군 경계를 이루면서 암봉으로 우뚝 솟아 있는 추월산은 담양읍에서 북쪽으로 14km쯤에 위치해 있으며, 이름만 들어도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산이며 전남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추월산은 수림이 울창하고 능선 곳곳에 암봉과 기암괴석들이 즐비하여 수려한 산세를 이루고 있으며 가을이 되면 온 산이 울긋불긋 붉게 물든 단풍이 장관이다. 그리고 주능선에 올라서면 발아래로 담양호가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추월산은 계절마다 특색이 있는데 봄에는 진달래가 온 산을 수 놓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의 녹음과 발아래로 펼쳐지는 담양호의 풍경, 가을에는 울긋불긋 붉게 물들은 단풍, 겨울에는 눈 덮인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추월산의 등산기점은 월계리 주차장이 대표적인 기점이다. 일반적인 산행은 제1등산로와 제3등산로를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제4등산로로 하산하면 된다. 원점회귀산행 할 때는 정상에서 제3등산로를 거쳐 제2등산로로 하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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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산행지 추월산은 말그대로 가을산이며 가을이 되면 온 산이 붉게 물들은 단풍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며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담양호와 주변 경치가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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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주차장 입구입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리 주차장 입구 매점에서 따뜻한 국물 먹고 올라갈려고 하는 도중에
여기는 남해 보리암과 또 다른 맛이 나는 추월산 보리암입니다
올라가는 도중에 찍었는데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가 봅니다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더라구요
추월산은 아무래도 단풍으로도 유명하기에
담양호를 바라보고 사진을
▼하산후 올려다 본 추월산줄기들
추월산
추월산은 담양읍에서 7㎞ 떨어진 용면 월계리에 있으며,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해발 731m의 추월산을 만나게 된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기암절벽이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어, 전남의 5대명산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담양호와 그 주변의 경치가 장관을 이루며, 자생 난초와 물이 맑고 샘이 많은 산으로도 유명하다. 추월산은 월출산과 더불어 전남에서 산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역사유적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담양읍에서 보면 스님이 누워 있는 형상인데 각종 약초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옛부터 명산으로 불렸으며, 진귀종의 추월산난이 자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추월산 하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고, 노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여름이면 가족을 동반한 관광객들에게 더없는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그리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오를 수 없는 산능성으로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또한 경칩(2∼3월)을 전후해서 용면 분통 마을 주변에서 나는 두릅은 상큼한 향기와 특유한 맛으로 봄의 미각을 한껏 돋우어 준다.산 중부의 울창한 숲을 지나 추월산 정상에 오르면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고 산아래에 널직하게 펼쳐지는 담양호와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을 이룬다. 추월산과 담양호와 만나는 지점에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식당과 주차장 등 편익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전 암벽 위로 보리암(문화재자료 제19호)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임진왜란(1592)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부인이 순절한 곳으로도 알려있다. 보리암에 얽힌 전설을 보면, 고려 때 보조국사가 나무로 3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보낸 뒤 그 매가 앉은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절이 바로 순천 송광사, 장성 백양사, 그리고 추월산의 보리암이라 한다. 추월산은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 농민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많은 수림과 기암괴석, 깍아 세운 듯한 석벽이 마치 성을 쌓은 듯이 산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고 오직 서쪽에 겨우 사람하나 통행할 정도의 길이 트여있다. 추월산은 말그대로 가을 산 이다. 숲이 유난히 깊고, 골마다 약수와 맑은 물줄기가 솟는다.
가을이 되면 숲이 온통 붉은 색을 띄고 산정상에 올라가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단장한 산과 호수가 어우러지며,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담양호와 주변경치가 일대장관을 이룬다.
추월산은 계절마다 특색이 있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개하고, 여름엔 울창한 숲의 녹음과 발아래 펼쳐지는 담양호의 푸른 물결, 가을엔 붉게 물든 단풍, 눈 덮인 겨울에는 나무숲에 가려 있던 바위의 자태가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단풍이 아름다운 산>
가을이면 산봉우리가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높다고 해 이름지어진 추월산은 마치 충북의 월악산을 담양에 옮겨놓은 듯 기암절벽의 절경과 함게 절벽끝에 아슬아슬 매달린 듯한 보리암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움츠러들게 만든다. 보리암의 창건자나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설에 따르면 보조국사 지눌이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깎은 세마리의 새 중 한마리가 날아와 앉은 곳이 추월산 보리암이라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때 절명한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 이씨가 왜병에게 쫓기자 보리암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순절했다는 곳이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단풍나무가 많아 온산이 붉게 물드는 가을이 가장 아름다우며 산을 오르다 아래로 보이는 담양호의 푸른 물결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월계리,밀재, 쌍태리 기점으로 등산로가 나 있으며 어느 코스든 3시간 가량이면 충분하다. 이중 월계리에서 보리암을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동굴대피소 쪽으로 돌아 월계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산행코스
① 월계리 태웅산장-북릉 안부-정상-697봉(보리암 정상)-보리암-
관리사무소 주차장 (총 3시간)
② 밀재-정상-보리암-굴암바위-관리사무소 주차장 (총 3시간)
③ 쌍태리-697봉(보리암 정상)-정상-북릉 안부-월계리 혹은 697봉(보리암 정상)-보리암-관리사무소 주차장 (총 3시간)
산성산은 용면 도림리와 금성면 금성리, 전라북도 순창군의 도계를 이루는 산으로 높이가 605m이며 담양읍에서 북동쪽으로 약 6km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광덕산을 포함한 일대의 산성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암벽과 가파른 경사로 되어 있는데 특히 주봉인 철마봉의 형세는 주위가 험준한 암석으로 둘러싸이고 중앙은 분지로 되어 있어 예로부터 요새지로 이용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유적이 금성산성이다.
금성산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전해오는데 산성의 둘레가 7,345m이고 성 안에는 곡식 2만3천석이 해마다 비축되었다한다. 특이한 점은 금성산성 밖에는 높은 산이 없어 성문안을 전혀 엿 볼수 없는 형세를 잘 살펴서 지은 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의 성문과 성벽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일단 산성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곳곳에 우물이나 절구통 같은 유물들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산성의 동문 밖은 전라북도 순창군의 강천사 등 관광명소와 바로 연결 되는 길이 있어서 관광코스나 호반유원지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사적 제 353호)
추월산에 올라 정상에 가까이 다다르면 깎아지른듯한 암벽에 사찰 보리암이 자리잡고 있다. 아래서 올려다 보면 바위에 걸려 있는 제비집처럼 보이지만 암자에 들어서면 아늑하고 발아래 푸른 송림이 수면처럼 펼쳐져 있으며, 담양호가 명경같이 산 그림자를 안고 있는 수려한 경관에 심취되어 무아지경에 이른다. 이 암자는 고려 때 보조국사가 지리산 천왕봉에서 나무로 만든 매 세 마리를 날려보내 앉은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고 하는데 그 세곳이 바로 장성 백양사와 순천 송광사, 그리고 담양의 보리암이라는 전설을 간직 하고 있기도 하다. 보리암 바로 아래에는 조선 선조 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 이씨가 임진왜란시 왜군의 치욕스런 행위를 피하려 순절하였다는 곳이 있으며, 그 후 담양부사 조철영이 부인의 순절을 기리는 비문을 그 바위에 음각하여 지금까지 보전되어 온다. 보조국사가 선리불불의(禪理不佛義)를 통달하기 위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구경(九境)을 목적으로 명산을 순회하다 수도(修道)의 적지로 보고 세웠다는 설(設)도 있는 이 암자는 담양 3대 사찰중의 하나로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호이다. (보리암 : 061-382-2838)
가마골은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소재한 용추봉(523m)을 중심으로 사방 4km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이다. 그다지 산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총 311,000㎡ 의 넓은 규모에 울창한 숲 사이의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곳곳에 쉼터, 잔디광장, 자연학습장 등 각 종 편의 시설을 두루 갖추어 있어 산림욕을 하기에 좋다. 가마골로 향하는 길은 왼쪽으로는 산을 끼고 오른쪽으로 그림 같이 아름다운 담양호의 풍경 이 이어진다. 드라이브 코스로 그만이다. 이 길을 달리다 용치 3거리에서 순창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3km 정도 가다보면 "영산강 시원 - 가마골"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이 곳이 남도의 젓줄인 영산강 발원지이다. 용추봉(583m)에서 발원된 영산강물줄기는 담양읍을 지나 광주, 나주, 영암 등지를 거쳐 목 포 앞바다까지 111.5km에 걸쳐 흘러 영산강 하구둑을 통해 서남해로 흘러들게 된다. 가마골계곡 주변은 오염원이 없어 맑디 맑다.
가마골은 1986년 부터 관광지로 지정, 개발되 기 시작하였으며 편의시설을 갖추면서 최근 가족 단위, 단체그룹의 관광객과 새로운 관광지 로 부상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크고 작은폭포와 연못이 곳곳에 있어 걸음을 멈추게 한 다. 또한 수림도 잘 형성되어 풍부한 그늘을 만들고 있으며 중간 중간 쉬기 좋은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또한 자연미는 덜하지만 길이 잘 닦여있고, 곳곳에 주차장이 설치되어 자동 차로 계곡 주변 어디에나 접근이 가능하다. 다만, 계곡물의 수질 보호를 위해 계곡내에서의 본격적인 물놀이는 금지하고 있으며, 대신 물놀이장을 설치해 이를 이용토록 하고 있다. 가마골 안으로 들어서면 기암 괴석사이로 시원스레 하얀 포말을 일으켜 쏟아지는 폭포와 그 아래로 형성된 신비스러운 못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용소다.
용소에는 용이 지나가며 바위를 뚫고 솟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래서인지 이곳 주변암반은 억겁의 세월 을 통해 계곡물이 암반을 깍아내려 흡사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한 자국을 나타 내 보이 고 있다. 용소폭포의 물줄기는 중간에서 암반에 걸려 한차례 바위구멍으로부터 힘차게 공중 으로 솟구쳐 오른 후 암반 밑으로 쏟아져 내려 용소를 이루고 있는데, 물이 차고 비교적 수 심이 깊다. 물 속에는 피래미, 모래무지 등이 눈에 띈다. 용소를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는 용소 위쪽에 설치해놓은 시원정과 출렁다리로 이곳 또한 가마골의 명물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시원정 에 올라 용소를 감상하노라면,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 싸인 골짜기 속에서 신비스런 용소의 기운이 느껴지며, 잠시 시간을 거슬러 전설 속에 빠져드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호젓한 계곡 감상과 함께 산행을 겸하고 싶다면 용추 계곡 코스가 적격이다. 용추 계곡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주변에 원시림과 원추리, 참나리, 금낭화등의 야생화가 어우 러져 있어 삼림욕을 겸한 도보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또한 이곳 등반길에서는 가마골의 명소인 용연 1폭포와 2폭포를 만날 수 있다. 용연2폭포까 지는 30분정도 소요되고 등산로는 용추사까지 이어진다. 또한, 이곳 지명의 유래를 입증하 듯 인근에 최근 발견된 가마터를 복원해 놓았다.
한편, 이곳 가마골은 6.25 빨치산이 최후까지 저항하던 항거지로도 알려져 있는데,사령관동 굴(계곡)에 당시 빨치산 사령관이 은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흔적이 남아 있어 산행을 하면 서 과거 아픈 역사의 상처를 잠시 더듬어 볼 수 있다. 관리사무소 주변에 마련된 숲속의 집 2동이 있다. 이용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 그 밖에, 시간과 체력에 맞게 다양한 등산로와 산책 코스를 활용한 트레킹도 겸할수 있으며 용추사방면으로 이어진 임도를 타고 드라이브를 시도해 본다면 한 눈에 가마골의 절경을 손 쉽게 감상할 수도 있다.
옛날 담양 고을에 어떤 부사가 부임하였다. 그는 풍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가마골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하여 이곳 경치를 구경하고자 관속들에게 예고령을 내리고 그날밤 잠을 자는데 꿈에 백발선인이 나타나 내일은 내가 승천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부사는 신령의 말을 저버리고 이튿날 예정대로 가마골로 행차했다. 어느 못에 이르러 그 비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못의 물이 부글부글 소용돌이 치고 주위에는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황룡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러나 황룡은 다 오르지 못하고 그 부근 계곡으로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다. 이를 본 부사도 기절하여 회생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사람들은 용이 솟은 못을 "용소"라고 하고 용이 피를 토하고 죽은 계곡을 "피잿골", 그리고 그 일대 계곡을 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많다고 하여 "가마곡"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마곡"이 "가마골" 로 변하여 불려졌다고 전해온다.
소설 남부군의 현장
6.25 격전지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처참했던 곳 중 하나가 가마골이다. 1950년 가을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던 전남ㆍ북 주둔 북한군 유격대 패잔병들이 이곳에 집결하여 은거하면서 약 5년 동안 유격전을 펼쳤다. 당시 유격대들은 이곳 가마골에 노령지구사령부(사령관 김병억, 장성 북하면 출신)를 세우고 3개 병단이 주둔하면서 낮이면 곳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민가로 내려와 살인, 약탈, 방화를 일삼았고, 전투가 장기화됨에 따라 병기시설인 탄약제조창과 군사학교, 인민학교, 정치보위학교 및 정미소까지 설치해 놓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다가 육군 8사단, 11사단과 전남도경 합동작전에 의해 1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955년 3월 완전히 섬멸되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그날의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려우나 가끔 탄피, 수류탄, 무기 제조에 쓰인 야철 , 화덕등이 발견되어 그 날의 참화를 말하여 주고 있고, 당시 사령관이 은거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사령관 계곡을 등산로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추월산 동쪽에 두개의 석담이 있다. 아래에 큰 바위가 있고 바위구멍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공중에 뿌리고 이 물이 쏟아져 큰못을 이루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바위구멍은 용이 뚫은 것이라 하는데 마치 용이 지나간 자취처럼 암면이 꾸불 꾸불 패여있다. 옛적에 전라도 안겸사가 이곳을 찾아와 용의 모습을 보고자 청하자 용이 머리를 내밀었다. 안겸사와 그를 따라 왔던 기관이 용의 눈빛에 놀라 죽어 용소아래에 안겸사와 기관이 묻힌 그 무덤이 있다."
용소"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이곳 암반으로 형성된 물목을 통과하는 동안 억만겁의 세월을 통해 암반을 깍고 깍아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자국 마냥 홈을 이루었다. 이 홈이 중간에서 석질이 강한 암반에 걸려 이를 뚫지 못하자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분수처럼솟구친 물이암반 밑에 쏟아져 시퍼런 용소를 이루어 놓았다. 원시림과 계곡이 어우러져 여름에도 서늘하다. 용연 제1폭포 와 용연 제2폭포를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경사가 완만하여 삼림욕 코스로 그만이다. 바위채송화, 참나리등 다양한 야생 화가 분포해 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용추사가 있다.
용추봉과 추월산 사이에서 흐르는 물이 바로 아래 담양호를 이룬다. '76년 9월에 축조된 호수로써 제방길이 316m, 높이 46m, 만수면적 405ha에 저수량 6,670만톤이 담양평야 4,245ha의 농토를 적셔주는 농업용수원으로 영산강의 시원(용소)이기도 하다.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 국민관광단지와 가마골 청소년야영장, 금성산성 등이 감싸고 있어 담양 제1의 관광지이다. 또한 산허리를 뚫은 터널을 통하는 신간호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어 주변 모두가 도시민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담양댐 근처에는 애틋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고구마 모양의 애기바위가 있다. 옛날 금성면에 6대 독자를 둔 금부자 부부가 살았는데 후손을 많이 보는 것이 소원이어서 1년사이에 며느리를 여섯명이나 갈아 들였다.
그런데 여섯 며느리가 모두 말이 많아 그 때문에 삼신을 쫓아 애를 못 낳는다는 신령의 말을 듣고 일곱번째 며느리에게는 말조심을 시켰는데 과연 1년 안에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게 되었다. 이즈음 새며느리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날이 밝거든 자기를 찾아오되 신령인 자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입을 열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다.
다음날 며느리는 산신제당이 있는 철마단을 찾아 나섰는데 산등성이에 이르렀을 때 집채만 한 바위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그만 "워메? 바우가 걸어온다냐"고 말하고 말았다. 순간 바위는 걸음을 멈추며 며느리를 깔고 앉아버렸다.
그 뒤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애기바위"라 불리게 되었고, 이 지역 여자들은 말조심하며 살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담양 매타쉐콰이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