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신 이에게 글 :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
갈꽃 같은 얼굴로
바람 속에 있었읍니다
춥고 어두운 땅 밑에 누워
하얗게 사위어 가는 당신이
지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당신이
살아 있는 이들보다
더 깊고 맑은
영혼의 말을 건네 주십니다
당신의 말은 나비가 되어
나의 하늘에서 춤을 추고
그것은 또 꽃이 되어
내 마음밭에 피고
하나의 별이 되어
어둔 밤을 밝힙니다
시시로 버림받고
시시로 잊혀지는
당신의 목쉰 소리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바람 같은 기도가 되어
내가 믿지 않은
사랑하지 않은
잃어버린 시간들을
울게 하고 있읍니다
스산한 바람이 눈물을 뿌려
꽃도 피지 않은
당신 무덤가에 오면
살라서도 조금씩
내가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읍니다
당신이 누운 어둠의 골짜기
강 건너 저편엔
순간마다 촛불 켜는
누군가의 큰 손이
새벽종을 치는 이의
흰 옷자락이 너울대고 있읍니다
「사계절의 기도」中에서
수녀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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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려서는 산속에서 무덤을 만나면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오곤 했는데... 요새는 산길에서 무덤을 만나면 참 편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나이 탓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