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민연금에 대한 적대감을 실로 엄청나다. 포털에 연금 관련 기사가 떴다 하면 금새 수백 개의 비난 댓글이 폭주하고, 게시판에서는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글이 잊을만하면 나타나면서 인터넷은 주기적으로 연금 성토장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국민연금에 대한 일방적 여론이 쌓여 이제 국민연금은 사회악이 되다시피 했다. 국민연금을 옹호하면 바로 국민연금 직원 취급을 받을 정도이다.
그러나 숱한 비판 덕분에 연금은 상대적으로 절대적으로 검증을 받았고 한국사회의 특수성과 정서를 감안한 개선까지 이루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인터넷 등에서 보이는 연금에 적대적 여론은 연금이 폐쇄되어야 직성이 풀릴 태세다. 도저히 국민연금 자체의 개선으로 적대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연금의 개선 후에도 또 다른 빌미로 국민연금 반대 여론은 불붙게 될 것이고 여론에 의해 국민연금제도는 안정성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이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연금제도를 고민해야할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과도한 연금 거부감을 생각해봐야 한다. 큰 문제가 없는 제도를 자꾸만 뜯어 고쳐 안정성을 해칠게 아니라 한국인에게 내재되어있는 연금거부감을 분석해서 반대여론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왜 한국인들은 이다지도 국민연금에 적대적인 걸까? 다섯 가지 정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연금에 적대적인 다섯가지 이유
첫째, 국민연금 수혜자가 아직 적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2007년 1월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는 200만 명이다. 평균 연금은 18만원이고 92%가 40만원 미만을 지급받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 실망스러운 금액이다. 이 돈으로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다.
이렇다 보니 현재의 젊은 연금가입자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누리게 될 연금의 혜택이나 잇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연금수혜자가 2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는 형편인데 이걸 보고 어떻게 연금에 기대하겠는가. 연금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노후와 해외여행을 다니는 노부부를 흔히 보는 해외선진국의 젊은이와 한국의 젊은 가입자는 연금에 대한 기대감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금지급액이 이렇게 적은 것은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가 88년에 시작되어 최고액 수령자의 납입 년 수가 아직 20년도 안되었기 때문이다. 연금에 따르면 올해 7월이 넘어야 100만 원 이상의 고액수급자가 나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앞으로 30년을 채운 연금가입자가 나오게 되면 200만 원 이상의 수급자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연금으로 어느 정도 도움을 받는 노인들을 보면서 젊은 가입자들의 연금에 대한 생각도 점점 바뀌게 될 것이다.
둘째,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 이해가 부족하다.
국민연금에 대한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배우자의 사망 후 연금을 왜 남은 배후자가 가지지 못하냐는 것이다. 사연금이 배우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것은 불합리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망한 배우자의 연금까지 두개의 연금을 받게 되면 연금이 재분배가 아니라 오히려 재산축적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득 재분배의 측면으로 봤을 때 옳지 않은 일이다. 돌아가신 분의 연금 기여와 몫은 배우자가 아닌 사회전체가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연금을 가족 단위로 보기 때문이다.
연금 논쟁에서 배우자의 연금문제가 자꾸 거론 되는 것은 우리가 이 논의를 가족을 염두에 두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배우자의 재산이 가족에게 상속되듯, 국민연금도 가족에게 상속되는 재산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연금을 개인을 기준으로 지급한다. 만약 구성원 모두가 가정을 갖고 있다면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하고 지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을 기준으로 설계된 연금을 가족 기준으로 지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개인의 납입액도 가족의 인원 수에 맞게 책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연금이 가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를 위한 가급연금액도 있고 배우자 사망 시엔 둘 중에 더 높은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한다.
넷째,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국가의 투명성은 많이 높아졌다. 이제는 권력자가 부정을 저지른 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국민이 정부를 보는 수준은 여전히 독재정부의 수준에 맞추어져있다. 100조가 넘는 돈이 부정하게 운영되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심심찮게 나오기도 한다.
물론 국민연금의 운영이 깨끗하다고 밖에서 자신있게 장담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독재시대의 부정적인 국가관은 국가의 민주화를 유도하는 공익적인 부분이 있지만 어느 정도 민주화된 국가에서 어떤 근거도 없이 정부의 행정을 의심하고 단정하는 그런 일이 빈번하면 불신의 비용만 늘어나 우리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를 신뢰의 차이라고 했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신뢰가 튼튼한 국가는 사회적 불신비용이 없어 선진국이고 그러한 신뢰의 인프라가 없는 국가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87 년 민주화 이후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정치인이 감옥에 들어가고 검찰이 독립되었다. 이제는 국민이 정부에 신뢰를 줄 단계에 온듯하다. 국민이 스스로 뽑은 정부에 신뢰를 못줄 이유가 없다. 그들이 신뢰를 상실한 행동을 하면 그 때 또 응징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정치인을 믿지 못해 국민이 무조건 의심하고 두려워 할것이 무어란 말인가? 우리 사회의 기본 값이 불신에서 신뢰로 바뀌어야 한다.
다섯째, 실버대란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 통계청은 2018년에 한국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4%에 도달해 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0년 7%에서 18년만에 두배가 되는 것이다. 장래 인구추계에 따르면 2026년에 20.8%, 2050년엔 38.2%로 급증하게 된다고 한다.
만약 국민연금이 없이 205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이것은 정말 끔찍한 대란이다. 아마 IMF는 거의 비교 불가다. 인구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인구가 아무런 소비력 없이 정부와 자식들만 처다보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를 봤을 때 이들의 대부분이 노후준비 없이 가족에게 의지하며 노년을 보낼 것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개인이 알아서 노후를 준비하라고 하면 몇 십년 뒤 거대한 사회문제가 되어 국가의 경제를 마비시키게 되는 것이다. 40년 뒤 인구의 40%가 노인이라는 이 끔찍한 미래를 앞두고 어떻게 국민연금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건 국가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아예 국민연금을 없애고 세금으로 노인을 부양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더 큰일 날 소리다. 노력의 투입이 없는 분배는 국가경제의 근본을 뒤흔들게 된다. 경제도 명분이다. 분배할 명분이 없는 경제주체에게 분배가 되면 경제참여자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경제는 활력을 잃고 무너지게 된다. 경제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노령층의 소비력을 유지하는 데 국민연금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삐딱하면 제도는 정착할 수 없다. 이제는 국민연금보다 우리의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감정이 아닌 상식과 장기적인 안목과 전체적인 시각으로 국민연금을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