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정(李叅政)에게 보낸 대혜 선사의 답장 2-1
答
信後에 益增瞻仰하노라 不識커라 日來에 隨緣放曠하야 如意自在否아 四威儀中에 不爲塵勞의 所勝否아 寤寐二邊에 得一如否아 於仍舊處에 無走作否아 於生死心이 不相續否아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公이 旣一笑에 豁開正眼하야 消息頓亡하니 得力不得力은 如人이 飮水에 冷煖을 自知矣니라
본문 ; 편지를 받은 뒤에 더욱 우러러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요즘 인연을 따라 거리낌이 없으며 뜻대로 자유자재하십니까? 행주좌와의 일상생활 속에서 번뇌에 시달리지는 않습니까? 잠이 깨었거나 잠을 잘 때에도 한결같습니까? 전례대로 사는 일에 바쁘게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생사하는 마음이 계속되지는 않습니까? 다만 범부의 생각만 없어졌을 뿐 특별한 성인의 견해는 없습니다[但盡凡情 別無聖解]. 그대가 이미 한번 웃음에 바른 눈을 활짝 열어 생멸변화[消息]가 몰록 없어졌으니 힘을 얻고 얻지 못함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강설 ; 앞의 편지에서 이참정이 공부의 효험을 세 가지로 정리해서 보냈다. 대혜 선사는 다시 안부와 아울러 다섯 가지를 더 물어보면서 깨달음의 삶이란 어떤 것이라는 점을 밝힌 내용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어떤 인연을 만나든지 그 인연에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하며 뜻대로 되는가? 이제 더 이상은 번뇌에 시달리지는 않는가? 잠을 자나 깨어 있으나 참 나에 대한 주제는 변함이 없는가? 예대로 살되 크게 바쁨을 느끼지는 않는가? 마음의 생멸을 벗어나서 참으로 불생불멸하는가?”하는 등이다.
다음의 말씀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범부의 생각만 없어졌을 뿐 특별한 성인의 견해는 없습니다[但盡凡情 別無聖解].”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선시(禪詩) 선화(禪畵) 선서(禪書) 선차(禪茶) 등, 선의 정신에 의한 예술을 정의할 때 이 한 마디로 표현한다. “범부의 생각은 없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성스러운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뜻이다. 흔히 서법이나 화법을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면서 선서화(禪書畵)라고 하여 글씨나 그림에 삼독번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을 걸어 놓아서는 안 된다. 서법이나 화법을 초월하고 다시 범부의 정(情)이 다 떨어져 없어진 글씨여야 한다.
이참정 그대는 이 불법에서 궁극적 경지를 터득하고 크게 한 번 웃었으니 이제 다시 무엇을 논하랴? 모든 문제들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였다.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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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盡凡情 別無聖解...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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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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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盡凡情 別無聖解.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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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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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다만 범부의 생각만 없어졌을 뿐 특별한 성인의 견해는 없습니다[但盡凡情 別無聖解].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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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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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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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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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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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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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緣放曠 如意自在否 / 四威儀中 不爲塵勞 所勝否 / 寤寐二邊 得一如否 / 於仍舊處 無走作否
於生死心 不相續否 / 但盡凡情 別無聖解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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