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에 있는 신숙주가 오언소시,로 답을 한것으로 시기는 14세기 중후반경에 함양군수 정종소(鄭從韶)의 편지를 받고 답을 한 것입니다,
성균관 사성 정헌공 정종소께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쓴 것인지 아직 그 편지가 발견 되지 않아 의문이 있지만, 정헌공께서 함양관아에 있을 때 라면 단종이 폐위 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 강릉에서 몰 한후 신숙주가 세종대왕의 당부를 져 버리고 세조 정권 아래서 숙주나물이 되었으니 그 일을 두고 질타(비유) 하는 글이 아니었나 사료된다,
*어쨌든 신숙주의 오언소시 편 인 (보한재집 제2)권에 이렇게 실려 있다,
신숙주의 오언소시
(보한재집 제2)
答奇同年鄭咸陽 從韶
답기동년 정함양 종소
(同年榜)동방급제 친구
함양수령 정종소에게 답을 부치다,
故人天一極고인천일극/ 옛 친구는 하늘이 맺어준 일극 이지만
別恨路三千별한로삼천/ 이별의 한은 삼천리 길이로다,
珍重相思字진중상사자/ 진귀하고 귀중한 相思의 글
開緘更(心罔)然개함갱망연/ 편지를 뜯고 보니 다시 망연해 지는구나,
망자는(심할망)자 입니다,
신숙주
*정종소=본관은 오천(烏川鄭氏) 또는 영일(迎日鄭氏)로 고려 예종,인종,의종,3대 충신 형양공 諱 鄭襲明의 현손으로 字는 가정(可貞)이요,號는 정헌(靖軒)이니 경상도 영천 대전리에서 아버지 初諱 회형(淮衡)의 5남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어려서 부터 용모가 빼어나고 명랑하며 천성이 영특하여 태재선생과 외숙 이보흠의 문하에서 배워 문장이 일찍이 창달(暢達)하여 12,3세에 공산 은해사에서 글을 읽으니 때에 윤공 통(尹統)이 이웃 고을 군수로서 오거늘 별배(別輩)들이 뒤를 따르는 행차가 심히 성대하니,선생이 동등들을 거느리고 소고(小鼓)를 울리며 말하기를 산당에 늦게 이르면 고풍에 벌(罰)이 있다고 하니 윤공이 성을 내어 말하기를 너가 아이로서 감히 어른을 업신 여겼도다, 너가 만약 詩를 잘 지으면 용서 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너의 종아리를 치리라,,하고 드디어 운자(韻字)를 뽑아 詩짓기를 독촉하니 선생이 지필(紙筆)을 잡고 곧 詩를 지으니 그 말이 매우 사람을 놀라게 하여 윤공이 크게 칭찬을 하고 마침내 자기의 딸로서 사위를 삼게 되었다, 성년이 되어 세종29년 1447년에 문과에 오르니 이승소(李承召) 방(榜)에 병과제7위로서 성균관학유에 보직되고, 이해 가을 중시에서 성삼문,榜에 합격하니 시험관인 하공연(河公演)과 정공인지(鄭麟趾)와 허공조(許稠)와 이공사철(李思哲)이 선생을 을과3등 제1위로서 뽑으니 수찬(修撰)인 이개(李塏)와 교리 박공팽년(朴彭年) 박사 유성원(柳誠源)이 모두 그 榜 가운데 있었다,
이때 일을 두고 모재김공안국(慕齋 金安國)이 말하기를 세종이 바야흐르 문학을 중히 여김에 이번 과거에는 한때의 人제를 다 선발 하였다고 극찬 하였다고 한다,
그 해에 사조좌랑을 거처 지방관리로 청하여 의성,영주,예천,함양,등의 고을 수령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고 내직으로 성균관사성으로 있다가 병자년(丙子年)의 변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 하였다,
선생의 관리 처리는 점필재공(金宗直)이 자세하게 평 하기를 포청천의 포정과 같다고 하였고 김종직공이 항상 오천정선생이라 칭해 불렸다 한다,
*선생의 치적은 점필재김공 종직이 쓴 기문 영주의 영훈정(迎薰亭) 영천의 소루기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함(開緘)은 편지를 뜯다,
*상사자(相思字)는 상사의 글자,
즉 男女가 서로 매우 사랑하나 만날 길이 없어 몹시 그리워 하는 상념(想念)을 의미 하는 것에서 나옴,
*고시(古詩)에 손이 먼 곳으로 부터 와서 나에게 서찰 한 통을 주기에 보니 위에는 장상사를 말하였고,밑에는 구이별을 말하였다,[客從遠方來遺我一書札上言長相思下言久離別]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서신을 가리킨다,
*편지 끝 줄에 [개함갱망연]이라 했는데,,, 이것을 나는 동년방 정종소가 쓰기를 王도 배신했고 同年榜 친구들 모두 배신 했으니 너를 무어라 부르리오" 라고 질타 하며 물으니 신숙주가 선생의 질타에 무어라 변명할 말이 없으니 망연(부끄러워 숨을 길이 없어)어리 둥질해 지는구나,,,라고 쓴 것으로 보여 집니다,
사성공 20대 不肖後孫 烏川 鄭玎容
첫댓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귀한 자료와 상세한 설명, 감사히 봅니다.
시문 중 "이별의 한이 삼천리" 라는 구절에서 두 사람 사이에 몸도 마음도 너무 멀어져 있음을 암시한 듯하며
"상사"에서 임금과 친구 그리고 대의를 저버림에 대한 사성공 어른의 충고의 말씀이 있었던 것으로 쉽게 추정
되네요. "진귀하고 귀중한" 이란 수식어와 "망연" 이란 단어에서 당대 지식인(신숙주)의 내심의 고뇌도 엿보입니다.
정헌공 생존 당시, 문중에서 8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한 "학문의 르네상스"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평소 잘 몰랐던 정헌공의 외숙부이신 이 보흠 선생에 대하여 요즘 관심이 쏠립니다. 시원한 여름날 되시기 바랍니다.
시원하게 보충 설명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자료를 알려주실 정도니... 정말 운영자님은 대단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