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은 도서출판 학고재와 공동으로 노무현 대통령님 서거 1주기를 맞아 추모에세이<노무현이, 없다-다시는 못 볼 아주 작은 추억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노무현이, 없다>는 4월 말 출간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와 함께 노무현재단에서 발간한 1주기 공식 추모집입니다. 이 책의 서문 격인 노무현재단 이사인 도종환 시인의 “당신도 우리가 보이십니까?”라는 글은 5월 23일 봉하마을에서 열릴 1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로 쓰일 예정입니다.
마크맨 기자, 피디, 만화가, 역사가, 요리사, 코디네이터… 열여덟 사람의 ‘사람 노무현’ 이야기
<노무현이, 없다>는 대통령님과 인연을 맺은 취재기자, 피디, 만화가, 역사가, 요리사, 코디네이터 등 열여덟 사람의 ‘사람 노무현’ 이야기입니다. 기존의 대통령님 관련 책들이 대통령의 전기적, 정치사상적 측면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 책은 여러 분야 필자들의 추억을 통해 ‘인간 노무현’의 다양한 면면이 풍성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령 대통령을 밀착 취재했던 취재기자의 먼지 묻은 취재수첩에서 끄집어낸 미공개 즉흥 연설의 현장(고형규 연합뉴스 차장, 취재원 노무현을 추억하다, 15쪽), 마치 “탈춤 속 말뚝이나 홍동지를 떠올리게 했던” 대통령의 춤사위(하어영 한겨레21 기자, 노짱의 춤을 본 적이 있는가?, 66쪽) 등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대통령님의 흥미롭고 유쾌한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또
TV토론에서 만난 열정적인 개혁 전도사의 모습(손혁재 경기대 교수, 내가 만난 개혁의 아이콘, 76쪽), ‘바보’ 별명을 붙여준 시민과 이메일로 나눈 우정(유중희 회사원, 바보 별명을 좋아했던 사람, 165쪽) 등 ‘낮은 사람’과 함께했던 서민 정치인의 모습이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한때 우리에게 노무현이 있었다
이 책은 1부 ‘낮은 사람 노무현’과 2부 ‘아주 작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정윤수, 정혜윤 등의 작가들이 쓴 노무현론이 눈에 뜁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는 김윤식, 김원일 등 노무현 대통령과 동향(경남 진영)인 문인들의 작품들을 읽으며 좌우 쟁투로 희생된 진영 사람들의 슬픈 역사를 짚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는 ‘노무현 스타일’, 또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위대한 관용의 정신’이 사라졌음을 애도합니다. 또
정혜윤 CBS라디오 PD는 대통령이 서거 전 마지막으로 읽은 책, 특히 <유러피안 드림>을 통해 그가 꿈꾼 사회를 다시 그려보며 “한때 우리에게 동정심, 따뜻한 마음, 권태와 무기력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있었음에 안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뭔가 다시 시작해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2부 ‘아주 작은 이야기’에서는 청와대에서 5년 동안 대통령님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한 코디네이터 박천숙씨, 청와대 요리사 신충진씨의 회고가 이채롭습니다. 백화점이나 남대문 시장에서 대통령님 옷을 살 때마다 아버지가 입을 옷이라고 했던 기억에 가슴 먹먹해하거나(박천숙, 아버지가 입을 옷이에요, 145쪽) 퇴임식 날 대통령님의 마지막 식사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고향행 KTX에 함께 오른 이야기(신충진 조리사, 대통령의 마지막 점심, 156쪽)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이들에게 비친 대통령님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 대통령님의 정신적 후원자 송기인 신부와 단짝 친구 원창희 오앤앤통상 대표, 대통령님 초상을 그린 ‘농민 화가’ 이종구, 봉하마을 사저를 설계한 인연으로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를 함께 꿈꾸었던 건축가 정기용, 대통령님과 봉하마을 농민에게 오리농법을 가르쳐준 홍순명 전 풀무농업기술학교장,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이 사진사가 되어야 했던 사연을 담은 ‘봉하찍사’ 이야기의 김정현 전 행정관 등 모두 18명의 필자들이 써내려간 이야기 전편에는 대통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이 흐릅니다.
한편 <씨네21>에서 ‘정훈이 만화’를 연재하는 정훈이의 만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고형규, 송기인, 원창희 등 참여 필자들이 처음 공개하는 대통령님 관련 사진 등 흥미로운 이미지와 이종구 화백의 추모작 <봉화산>, 정기용 교수의 ‘봉하마을 스케치’ 및 노무현재단이 제공한 대통령님 사진 여러 컷을 수록해 추모의 뜻을 더했습니다.
또다시 오월이 왔습니다. 당신이 떠나신 오월입니다. 당신을 향한 갈망과 공허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여기 이렇게 그리움과 추억의 말들로 풀어놓았습니다. 어찌 저희만이 당신을 그리워하겠습니까? 이 부질없는 그리움이라도 풀어놓지 못하면 그냥 가슴에 맺힌 채로 응어리져 있을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꺼내놓았습니다. 시간이 나시면 읽어보시고 저희에게도 몇 말씀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는지요. (도종환, 당신도 우리를 보고 계십니까?, 8~9쪽)
분명한 건 그가 우리 사회가 무작정 덮어둬온 수많은 ‘불편한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시끄럽게 토론하고, ‘다 그런 거지’라는 식의 패배주의와 '좋은 게 좋다'는 대세 순응주의, 뿌리 깊은 기회주의,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사고(思考)의 함정’을 끊임없이 깨려했다는 점이다. 그것과 맞물린 화두 ‘사람 사는 세상’은 그래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형규, 취재원 노무현을 추억하다, 32쪽)
‘노간지’라고도 하던가. 나는 ‘노무현 스타일’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스타일을 갖고 있지 않다. 그와 같은 정서와 눈물을 가진 사람이, 그것이 농축된 스타일의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은 스타일은 결코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가난한 서정과 그 서정에서 길러진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위대한 연대와 그 연대에 의해 형성되는 진실한 마음의 울림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거의 유일하게, 그 애틋한 눈물을 진심으로 흘릴 수 있었던 사람. 그가 1년 전에 자연의 다른 한 조각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진실로 슬픈 것은, 그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정윤수, ‘노간지’, 그 매혹과 슬픔의 스타일, 52쪽)
“택시 기사 직업이 좋은 이유를 평생 들어왔지만 그중에 가장 새롭네요. 한밤에 조문하기 쉽다, 기억해 둘게요.” 그렇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사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빈소에 들렀다가는 사람들을 그들의 집으로 실어다주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살다 살다(군대도 가고 사우디에도 가보고 조기 축구회도 해보았지만)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인 사람들을 며칠씩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우리도 누군가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경하고 싶어 했던 것 아닐까…….”
대통령의 삶과 죽음, 성공과 좌절, 그리고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꾸었던 꿈을 생각하며 그가 남긴 것의 무게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한때 우리에게 동정심, 따뜻한 마음, 권태와 무기력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있었음에 안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뭔가 다시 시작해볼 수 있다. (정혜윤, 더 많은 꿈을 꾸어야 하는 이유, 56~57쪽)
“하루는 그가 술상을 물렸다. 등줄기에 방석을 밀어 넣고 양쪽 콧구멍엔 담배를 끼웠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곱사춤이 어울리는 유일한 정치인. 17년 전 민주당 대변인 노무현은 그렇게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하어영, 노짱의 춤을 본 적이 있는가?, 70쪽)
발가락 양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마 대통령의 유일한 사치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발가락 양말을 애용했다. 색깔 별, 재질 별로 여러 켤레가 구비된 발가락 양말 바구니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등산 양말도 발가락 양말이었다. 언젠가 무늬가 있는 발가락 양말을 사 드렸더니 무척 좋아했다. 또 대통령은 모자를 즐겨 썼다. 그것도 기념모자, 이를테면 공군 에어쇼 같은 행사에서 나눠주는 모자를 좋아해서 현관에 쌓아 두고 산책 나가며 골라 쓰곤 했다. 그래서 행사마다 기념 모자를 챙기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박천숙, 아버지가 입을 옷이에요, 152쪽)
대개 대통령이 식당으로 나올 때를 맞춰 운영관은 식당 문 앞에서 대통령을 맞는다. 그런데 그걸 안 대통령은 대기 시간이 10분 넘도록 나오지 않으면 인터폰으로 연락을 취하고 시간을 조정 받으라 했다. 오래 서 있으면 허리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하루는 시간이 10분이 지나 인터폰을 누를까 하고 있었다. 곧 도착한 대통령이 대뜸 왜 13분이 지났는데도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또 대통령이 식사를 하는 동안 운영관은 뒤쪽에서 지켜보다가 반찬이 떨어지면 더 드리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대통령은 맛있던 것도 계속 먹으면 맛이 없어진다며 식사 중에는 반찬 등을 더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직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었음을 왜 몰랐겠는가. (신충진, 대통령의 마지막 점심,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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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익숙치 않은 이름도 보이는 군요.. 곳곳에 노블리를 추억하는 사람이 이리 많은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