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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6:14, 눅24:5, 두 종류의 믿음(산 믿음, 죽은 믿음).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너무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갈라지고 식물들도 타들어가고 사람도 짐승도 물이 없어 허덕입니다. 그 동네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전도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느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모여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저 뒷동산에 올라가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 하자 했습니다. 성도들이 뒷동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다 빈손으로 올라갑니다. 주일학교 학생한아이만이 우산을 들고 갑니다. 전도사님이 아이에게 말합니다. 애 너 비도 안 오는데 왜 우산을 들고 가니? 아이가 대답을 합니다. 지금 비 달라고 기도하러 가는 거잖아요?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고 했잖아요.
우리의 믿음은 이 전도사님 같은 믿음은 아닌가요? 오늘 말씀에서 보면 막16:14,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마14:31절에 적은믿음을 원어사전을 찾아보니 놀라지 마세요. 적은 믿음은 거의 믿음이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적다, 작다는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의 없는 것, 거의 신뢰하지 않는 것, 확신이 없는 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믿음이 작다, 혹은 적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거의 없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적다 작다라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은 주께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했을 때는 그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곳인데 훗날에 그곳에서 슬픈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열 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늘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열 한 제자들보다 나을까요. 다시 말해서 칭찬을 들을까요? 오늘 나의 우리 모두의 믿음을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1,내 믿음은 살아 있는 부활의 믿음인가? 아니면 무덤을 찾는 죽은 믿음인가?
마28:1절에 새벽미명에 여자들이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의 믿음은 있는 걸가요? 없는 걸까요? 죽은 시체를 왜 찾아 갔을까요. 죽은 예수님에 대한 예의였을까요? 분명히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고 죽은 후에 3일 만에 살아나리라 우리 갈릴리에서 만나자, 이 말씀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그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의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도, 그들에겐 예수님을 따라는 다녔지만 기적은 보았지만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자를 죽은 자의 자리에 가서 찾고는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회귀를 했습니다. 믿음이 없어 두려워 떨고 숨어 있는 그들을 주님은 버리지 않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고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구요? 제자들보다 나은 믿음인가?
우리는 이것이 확실한 것이라고 믿은 것을 끝까지 믿어 확신하고 흔들리지 않았는가,
예를 들어 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약에 모델 요셉이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창37장에 보면 요셉이 두 번의 꿈을 통해 주권자가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속에 담아두지 않고 형들에게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미움을 받아 형들의 손에 이끌려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갔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집에 팔려가 노예로 전락을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느 한 구절에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혹은 절망했다는 말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어두운 밤은 더 짙게 찾아 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깁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감옥으로 내려갑니다. 우리 같으면 어떨 것 같나요? 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아마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젠 이 감옥에서 죽겠구나, 절망하고 하나님을 욕하였겠죠,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처하여진 환경에서 낙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은 이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로에게 꿈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해몽할 사람을 찾게 하셔서 하루아침에 이인자의 자리로 끌어 올리셔서 바로만 빼놓고 모두가 그 앞에서 절하게 만드시는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는 죽을 때에도 그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갈 것을 믿고 그곳에 들어갈 때에 내 해골도 가지고 가 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조금만 힘들어도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기나 한가?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시는가?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드니 왜 기도는 안 들어 주시는 거야, 그리고 나 이런 하나님 안 믿는다고 등 돌리고 떠나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돈 몇푼 때문에 신앙을 팔고 주일을 지키지 않는 성도, 직분자, 거기에는 목사도 있겠고 장로도 있겠죠? 집사는 허다하고, 그리고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이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과거에는 내가 어떠했고 은사, 능력, 봉사, 헌신 다했다고, 지금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과거는 잊어버리고 표대를 향하여 앞만 보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은사 체험은 여인들처럼 말씀을 믿지 않고 눈으로 보여 진 것에만 초점을 둡니다. 그래서 무덤을 찾아 갑니다. 믿음이 없는 그들은 주님이 눈앞에 나타나도 알지 못 하고 동산지기인가 합니다. 왜 일까요 그들은 죽은 예수를 찾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다라는 이 단어는 믿음이 없는 것도 말하지만 믿음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배척하는 일에도 사용되어지는 단어입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안에서 배척해 버렸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요, 그들의 지식, 경험, 상식, 가치관등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배척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대로 그들은 어두운 새벽에 무덤을 찾아 갑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머리에는 그 지식이 없어 살아 있는 예수를 죽은 시체 속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혹시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 지식이 가치관이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내 경험으로 대처해 버리지는 않았나요? 내 지식에는 혹은 상식으로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다 하고 그리고 말씀을 찾아 획인하고 고치려 했었나요? 우리는 정확하지 않는 기억을 더 앞세웁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가 갈릴리로 가겠다, 거기서 만나자
2, 내 믿음은 순종의 믿음인가, 글자로만 믿는 믿음인가?
믿음이란 다른 뜻은 충성입니다. 예수이름을 믿으면 그 이름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 예수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 이 믿음을 하나님은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입니다. 나의 모두를 말씀 앞에 내려놓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약2:17,에 말했습니다. 글자로는 믿는데 몸은 안 움직인다 이것을 김남준 목사님은 병적인 유아의 믿음이라 했습니다. 어린아이 믿음인데 자라지 않는 병든 아이의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이 믿음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닌지요? 믿음이란 단어의 또 다른 뜻은 열정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데 열정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보다 더 등대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요 속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멀리 있으면서 전도지를 만들었다고 다음에 와서 보여 준다고 계란도 미자립 교회에 3판씩 준다고 극동방송에서 신청을 하라해서 했다고 어제 토요일 날에 배달이 왔습니다. 3판이 아니고 4판이나 이것을 가지고 저보다 더 사랑한다 말 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분명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순종입니다. 그 이름으로 명하시는 일에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고 따르고 있는가, 믿음에 의존하는 자. 믿음에 속한 자, 누구일가요?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피를 말리는 고통은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새벽에 자기 부인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산으로 번제를 드리러 갑니다. 그의 순종이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그 순종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자, 그는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사랑을 겸한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라고 엡6:23절에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모델이 되어 주셨을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아버지와 의논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께는 순종하시고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버림 받는 그 두려움이 몰려 올 때 부르짖었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우리가 버림받아야 할 그 자리에서 주님이 친히 버림받으시고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주님이 친히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죽음에 자리에도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아버지 하나님과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는 그리고 휘장이 찢어지는 그래서 새롭고 산길을 열어 주시는 그것은 주님의 사랑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바로 믿음을 겸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신 것입니다.
살아 있어 능력을 일으키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믿음, 주님을 통하여 불러 일으켜진 믿음(행3:16)믿음으로 생기는 기도(약5:15)이 기도는 약속들에 대해 신뢰하고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는 영육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행3장에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말했습니다. 나사렛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 믿음은 그를 일어나 걷게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있나요? 저부터 예수이름보다 병원으로 먼저 달려갑니다. 지난 수요일에 홍목사님이 오셨는데 지난번에 중국에 가셨는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한번도 기도해서 병을 치유한 일도 없고 귀신을 쫓아낸 일이 없는데 중국에 가서 기도로 귀신도 쫓으시고 병도 치유되고 너무나 놀라워하시면서 간증하셨습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믿음보다 그들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를 일군이라 청지기라 했습니다. 교회에서 일군이라 하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서약한 것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그를 보면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사람 앞에 진실하고 사명 앞에 성실한 자를 말합니다. 맡겨 주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분명히 묻어 준 종에게는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행위가 아니고 믿음이라고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맡겨주신 사명을 땅에 묻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반드시 주님 앞에서 회계를 하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소리를 듣는다면 저는 그가 천국에 간다라고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믿음이 없으면 주님이 앞에 계셔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생전에 하셨던 말씀을 믿었다면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어두운 새벽에 무덤을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 주님과 처음 만났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믿음이 아닌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죽은 믿음은 예수를 구원주로 믿는 자가 아닙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정말 주님을 믿고 있는가? 말씀을 믿고 있는가? 눅18:8, 주님이 오실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점검을 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인가, 믿음 가운데 있는가 점검을 해야 합니다.(고후13:5)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 했습니다.
부활은 신비스러운 사건입니다. 어느 종교에서도 없었던 일입니다. 한국에 그 많은 예수들이 다 죽어 땅속에 뭏혀서 썩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재림의 날에 모두 다 참예하시는 은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첫댓글 주님이 오실대 믿는자를 보겠는냐? 그러게요 두려워요 과연 믿음있다고 하면서 주님오실대 물으시면... 살아있는 믿음으로.. 충성하는 믿음으로... 순종하는믿음으로...열정 있는 믿음으로..서있어야활텐데...그날 재림하는날 모두 참여하는자로 서있길 원합니다..늘 감동하고 감격의 말씀 아멘으로 받습니다..건강하시고 평안을....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하나님의 말슴을 내게 주시는 말슴으로 받고 순종했는가.혹여 종교생활은 아닌가...돌아 봅니다. 가슴이 찡해 옵니다. 터질듯이 오 주님 믿음없음을 고백합니다. 입술로만 주를 경외하고 마음으로는 떠나 있엇던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이제 용서하여 주시고 새롭게 하소서..주의 선한 일군으로 설수있도록..
두분 믿음있는 자가 되소서.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