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11 17:00
동구청 중강당(5층)
버스로 가는 동구는 정말 멀다. 게다가 동구청으로 가는 직행 버스도 없다. 그런데, 그 길은 낯선 길이라 운전도 겁난다.
결국 버스 환승도 제대로 안 돼서 자가용보다 훨씬 비싼 비용을 치르고 시간 내에 갔다.
부모교육협동조합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협력사업이다.
노동조합과의 이런 협력사업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노동조합이 노동/ 사업장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서 다양하게 사람과 관심영역을 만날 수 있다면, 노동운동에 새로운 에너지로의 전환의 힘을 얻을 수 있을 수도 있겠다. 또한, 지역사회는 노동자가 곧 시민이니 달리 덧불일 말이 없을 정도의 너무나 당연한 행보이다. 이런 일들을 부모교육협동조합이 해나가고 있는 걸 보니 울산도 조금씩 깊어지는구나 싶어 기대를 하게된다.
채현국 선생님을 모신 토크콘서트 자리였다. 사실은 저런 자리를 작년에 기획을 했었다. 선생님께서 기꺼이 응해주마 허락도 받은 상태였는데, 추진하지 않았다. 처음에 기획을 마음 먹었을 때는, 선생님이 당신이 주인공이 되는 강연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시던 시기였다. 그런데, 지역의 어른을 객석에서 만나뵙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 저 살아있는 말들을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 등이 어우러졌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해야할 도리이지 않을까 그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에 갑자기 선생님이 전국적으로 강연을 다니시는 소식들을 접했다. 아, 저렇게 인기있는(?) 분을 우리가 모시는 것은, 우리가 모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 분을 이용하는 것일 수 있겠다 싶어, 그런 것은 우리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서 그만뒀다. 오늘 콘서트에 참석해보고 그때 우리의 결정이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돈벌던 사업주가 노동조합에 초대되어 이야기 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장 큰 영광이다. 그 영광을 제게주셔서 감사하다. 노동조합에서 저를 초대해주신 것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시작했다. 멋있다. 할배.
기억에 남는 말들은
대화의 목적
"나는 사람들 하고 친해지기 위해서 이야기한다. 좋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야기의 첫번 째 이유다. 좋은 말 지식 전달은 이야기 목적의 네번 다섯 번째도 되지 못한다." 선생님의 거리낌없는 언어와 친밀한 미소는 저기에 연원한다.
내게 철학은
본인은 철학을 전공하셨다. 당신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 잘 받는 기술자라고 말씀하셨다. 생존경쟁에 대한 잠재적 불안이 점수를 잘 받게 자극한다는 말씀은 인상적이다. 당신은 문제집, 학원 갈 형편은 안 되고, 학비는 벌어야(장학금) 되니(불안) 수업에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니 선생이 강조하는 부분은 다 알아채게 되더라는 말씀. 그리고, 철학을 하게된 이유는 다른 공부를 하게 되면, 앞장이, 비겁쟁이(취업인)가 될 것 같아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철학과로 들어갔다는 말씀. 당신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셨다. 그리고, 덧붙여 지는 ' 수학과 철학은 외워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꿈은 상상력이 들어가야 한다. 상상력이야말로 생명의 기적이다'는 철학론. 지금의 아이들은 꼼조차 꿀 줄 모르는 거지들이다는 말씀도 하셨다.
앎과 어른
공자의 정언정명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사물에 대해 정확히 말하고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제대로 보고 제대로 사는 길이라는 말씀. 그런 의미에서 "공부 잘 하는 것"과 "성적 잘 받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사형을 당하고, 성적 좋은 사람들은 출세한다. 성적 좋은 사람들은 앞잡이가 되고,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저항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앞잡이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 '어른'이다. 독약은 사탕을 발라야 먹는다. 지금 세상에서 말해지는 것들은 사탕 바른 독약이다. 지금의 지식은 '아첨'하기 위한 지식으로 존재한다. 나는 죽을 고생을 해서 그 달콤함에서 벗어나 겨우 이 정도 삶을 살게 되었다. 없는 돈을 뻔뻔하게 남을 위해 쓰는 것이 어른이다. 지금의 시대는 아는 걸로 살지 못하고, '통념'으로 살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 우리의 생각으로 산다면 이 세상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시대를 읽고 말하다.
선거 전에 선생님은 정말 많은 곳에서, 정말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언어로 말씀하셨다. 의무감으로 산 삶을 부끄럽다고 말씀하셨는데, 여전히 의무감에 넘친 행보이셨을 거다. 그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속이는 놈들과 속아주던 놈들이 게으름 피운 덕분에 이긴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승리는 아니다. 권력진 자들은 권력에 미친 자들이지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여소야대가 된 이후의 한국사회의 상황변화에 대한 우려도 하셨다. 엄중한 역사의 시기를 건너온 자가 가질 수 있는 통찰이기도 하고, 생래적 불안과 공포의 감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없는.
두려움 그리고 불안
당신은 평생 두려움 없는 듯 살아왔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두려움이 어떻게 없겠는가. 이렇게 쪼그만 한데. 깡패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기운 센 놈이 아니라, 기운도 없는데 안 무서워하는 놈을 제일 무서워한다. 선생님이 보는 권력기관 종사자들은, 권력이 망해가는 것을 봤기 때문에, 마지막 한 점까지 다 덜어내어 충성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인간이라 살기위해서 일을 하긴 하지만, 은연중에 태업한다. 두려워만 하지 않으면 된다. 속으로 두렵고 불안해도 까무러치지만 않으면 죽지 않는다.
지혜로운 삶이란
인간은 감정으로 살지 이성으로 사나?라는 말씀도 인상에 깊이 남는다. '위선' 아첨' 따위를 자신을 망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첨하고 위선하는 사람들을 당신은 좋게 본 적이 없다시면서도, 자신을 해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돈도 주머니에 꽂아주고, 술도 한 잔 사면서 '나 좀 살려줘'했다고 한다. 그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건 아첨이 아니라고 했다. 이럴 때 '지혜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울렸다. 우리가 이성을 발하는 순간, 저 분은 감정에 호소했다. 그래서, 자신의 안정을 지키고, 타인은 잘못할 기회를 박탈했다. 지혜로움이란, 앎이란 이렇게 사용되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배움
'앞잽이' '이용당하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는(이것은 소위 좋은 직장) '노동의 불안' '노동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노동(육체노동)의 잠재적 공포에서 벗어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의식이 발현된다. 삐딱해보며 잠재의식이 위기를 느끼면, 인간의 능력은(공부하는 능력도) 저절로 살아난다. 그랬을 때만이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있고, 성적도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청소년들이 해야할 일은, 춤추고 노래하고, 시나 읽으며 방황하면, 잠재의식이 내가 이러다가는 경쟁에서 못 이길텐데,하는 잠재의식이 발동하게 되면, 공부하게 된다...일동 웃음.
무겁게 던지는 질문
일본어에서도 공부는 勉强이다. "힘쓰는데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工夫공부는 그저 '궁리'하는 방편에 불과하다. 논어를 새롭게 해석하는 어떤 글에서 文을 애쓴다로 번역하고 好學을 애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공부하는 아이를 기대할 것인가, 성적 잘 받는 아이를 기대할 것인가. 세상을 위해 애쓰는 아이를 기를 것인가, 방편을 구하는 아이를 기를 것인가. 일동이 웃었다는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실은 배움, 공부와 동떨어져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정명해야 한다. "성적 잘 받아라"라고. 원하는 것이 그것 아닌가. 그리고 "간사한 앞잽이가 되라"고. 자기 자식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면,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아니면 화를 내거나. 그러니 이제 제발 "공부 열심히 하라"고 내 아이에게 그리고 자신을 향해 말할 용기가 내게 있는가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플로워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는.
-아무리 두려워도 까무러치지 않으면 살만 하다.
-남에게 고통을 주면 자기가 먼저 파괴된다.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똑똑한 말은 안 좋은 말이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들도 많지만, 아주 겁나고, 불안햇지만,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면 타인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
- 신념으로 사는 나를 발견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평생 나의 비겁에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타인의 비겁은 탓하지 않고, 말하지 않았다. 사명감은 쓰레기다. 사회적으로 인간들이 '합의'하지 않은 것들은 시비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합의만이 옳고그름의 기준이 된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던져지는 질문.
우리의 '합의'는 무엇인가. 합의된 것들은 항목별로 기록해가야 하나...
도서 증정 추첨이 있었다.
65번도 당첨되고 67번도 당첨이 되었는데, 66번은 없었다.
장태원선생님은 당첨되셨다길래, 책 뺏다시피해서 내가 들고왔다.
하니, 이거 우리 다 돌려가며 알뜰살뜰 읽고 채현국의 삶을 우리의 베이스로 깔아봐야한다.
그게, 오늘 두 어른을 뵙고 온 값을 하는 것 되것다.
집에 돌아오니, 열시도 훌쩍 지났다.
첫댓글 나도 장학금을 못 받으면 학교 다닐 형편이 안 되어 열심히 해서 성적은 잘 받았지만 공부 잘하는 놈은 아니었다(다행) 사회지도층 전반에서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놈들은 대부분 공부 잘했던 놈들인듯. 서울대를 폐쇄하라~.
공부 잘하는 놈은 저항한다고 했잖아.
성적 잘 받는 놈은 앞잽이가 되고...
내가 글을 잘 못 적었나? ㅋ
@갈샘(김연숙 그렇군..어쨌든.. 공부 잘하는 놈은 못 됐다. 성적도 무지 잘 받은 것은 아니니 앞잡이는 면했군 ㅋㅋ
제목만 보고 나물이야기인줄~ ㅋㅋ 나이들면서 쓴 나물이 쌉싸름하니 맛있어지고 있어요~
인생도 그럴까요?!
쓴나물을 맛있다고 드시는 분들이시네요. 멋있어요.
그런 경지에 도달하진 못해도, 흉내는 내면서 살아야 그래도 이 세상에 나와 부끄럽지 않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