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하여
-자끄 프레베르
먼저 새장을 그린다
문이 열린 새장
그 다음에 그린다
뭔가 예쁜 것
뭔가 단순한 것
뭔가 아름다운 것
뭔가 쓸모 있는 것
새를 위하여
그런 다음 나무에 그림을 기대놓는다
정원에
숲 속에
혹은 산림 속에
그 나무 뒤에 숨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꼼짝 않고서
가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여러 해가 걸리기도 한다
결정하기 전엔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몇 년 동안이나 기다려야 한다
새의 도착이 빠르든 늦든
그림의 성패와는 상관없는 일
새가 올 때는
만일 새가 온다면 아주 조용히 지켜본다
새가 새장 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린다
그리고 새장에 들어갔을 때
살며시 화필로 문을 잠근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새장의 창살을 지운다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런 다음에 나무의 초상을 그린다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주고
새를 위해
푸른 잎들과 신선한 바람을 그린다
햇빛의 가루와
뜨거운 여름날의 풀벌레 소리들을 그린다
그리고는 새가 노래하기로 마음먹도록 기다린다
혹시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
그림이 나쁘다는 조짐이다
하지만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
당신이 서명을 해도 좋다는 신호이다
그러면 당신은 아주 살며시
새의 깃을 하나 뽑아서
그림의 한 모퉁이에 당신의 이름을 써 놓는다.
--------------지난 금요일, 서시 동우회에 참석하지 못한 대신 제가 좋아하는 Jacques Prevert의 시 한편을 올립니다.
이 시의 묘미는 언어와 언어가 이루는 상징의 벽을 가볍게 넘어(음악적 리듬을 타고) 별다른 의미의 충돌 없이 그러나 읽어 가며 의미의 상승작용을 배가시키는데 있다 할 것입니다. 초현실주의적, 아방가르드 기법을 차용하고 있으나 정작 어색하거나 조금도 거스름이 없이
문장과 문장은 산뜻한 기호로 연결 됩니다.
맨 마지막 행에 이르러는 signe(영어로는 sign)이라는 단어가 중의법으로 표현되어 압권을 이룹니다.
즉, sign이 조짐, 징조, 신호로 해석되다가 갑자기 마지막 행에 이르러 sign 즉 서명으로 둔갑하여 ‘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당신은 친히 친필서명, hand writing sign을 해도 좋다는 문장으로 종결됩니다.
이런 말장난(jeux de mots)의 기법, 재치있는 언어의 유희야말로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 이상의 정신적 긴장과 지적 쾌락을 가져온다 할 것입니다. 서시 동우회 여러분과 함께 음송하고 싶은 시입니다.
3월의 창밖, 어둠 속에서
청매화가 푸른 꽃봉오리 벙그는 소리를 내고 있는 이 깊은 봄밤에.
2008.3.15일. 찬.
(추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회장님의 회람편지를 받았습니다. 오늘시인님의 노고에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첫댓글 아름답습니다.
고맙습니다. '새의 초상화'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어요.